분단문학포럼 - 소설독회 문화의 시도
이 호 철
우리 문학행사에서 ‘시낭독회’라는 것은 흔히 있어온 것으로 알지만, ‘소설독회’라는 것은 조금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부터도 그렇다. 이 땅에서 50년 동안 소설을 써오고 있지만, 소설만으로 독회를 여는 것은 이때까지 겪어본 일이 없다. 하지만 별별 문화행사가 다 있는 마당에 ‘소설독회’라는 것도 없으라는 법은 없을 터이다.
한데,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의 독일이며 프랑스며 미국이며 중국 등, 필자의 연작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각국어로 번역이 되어 나와, 그 출간 기념행사로 이 나라 저 나라로 돌면서 번역된 그 나라 글로 읽는 독회라는 것을 겪으면서는 원작자대로 신선한 맛을 안 느낄 수 없었다.
“우리말로 된 내 소설이 독일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으로 읽혀지다니, 이런 경지를 언제 상상이나마 했을 것인가. 참으로 희한하구나”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소설독회가 어엿한 문학행사로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아, 극장에서 입장료를 내고 영화, 연극 구경을 하듯이 버젓이 일정 요금을 내고 입장을 하곤 하던 것이었다.
물론 필자의 경우는 소설가 이름부터가 그이들에게는 생소하여, 처음부터 그렇게 기대할 수는 없었다. 2004년 여름 6월말에서 7월초에 걸쳐서는 구 동부 독일의 몇 도시, 동베를린을 비롯, 라이프치히, 예나, 에어푸르트 등지를 약 1주일 동안 돌면서 도서관이나 학교, 혹은 서점에 ‘소설독회’를 가졌었는데 당연히 입장료는 받지 않았지만, 첫 날 에러푸르트의 큰 서점에서 할 때부터 필자는 대단히 놀랐다. 태반이 부인네들이었는데, 120명 정도가 몰려들어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란 것은 그들 거개가 독일어로 된 필자의 그 작품을 완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질문 시간에 그들은 여러 가지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는데, 그 수준도 대단히 놀라웠다. 그들 중, 더러는 제2차 대전 이후 공산권에 편입되던 무렵의 동독과, 같은 무렵 똑같이 소련권에 편입되던 북한사회의 정황이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하였느냐고 운운하기도 하여, 그 소설의 원작가로서 여간 흐뭇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전 해인가, 베를린에서 현 독일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인 마르틴 발저의 ‘소설독회’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그때도 엄청 놀랐던 것은 큰 홀이 꽉 차게 초만원이던 인파였다. 3백 명 가량이 빈틈없이 앉아 있는데, 주로 4,5,60대의 시민들이었다. 그 분위기도 우리네가 서울서 흔히 보던 어린 문학소년들 놀음이 아니고, 어른스럽게 성숙하여 독일문학 터전의 깊은 뿌리 같은 것을 듬직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독회가 끝난 다음에는 그 작가의 책 한권씩을 들고 질서정연하게 주욱 한 줄로 서서, 저자 싸인들을 받고들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바쁜 사람들 태반은 그냥 돌아갔지만, 7,80명 정도는 그렇게 기다리고 있어, 필자는 신청했던 인터뷰를 위해 30분 정도나 더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 사이 필자는, 이렇구나, 독일의 작단과 우리네 작단의 차이가 바로 이거구나, 작가의 사회적인 위상부터가 이렇게 다루구나, 이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 작단은 아직 문학인 끼리끼리만 어쩌고 저쩌고 하고 있는 아이들 놀음이로구나, 하는 점을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여, 최근에 필자도 ‘분단문학포럼’이라는 기관의 주관 하에 앞으로 2년 작정하고 매달 셋째 금요일 두 시부터 네 시 사이, 주로 외국에 번역되어 나간 작품들 위주로 이호철 ‘소설독회’를 시작한 것이다. 9월, 10월 두 번에 걸쳐 본인의 데뷔 작품들이었던 ‘탈향’과 ‘나상’을 해보았는데, 그런대로 재미가 쏠쏠하였다. 마침 운 좋게도 10월 중순에는 필자의 단편소설집 ‘판문점’을 영어판으로 번역해낸 콜롬비아대학 교수께서 안식년으로 6개월간 내한해 있어, 그 이 진행으로 ‘독회’가 진행됐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물론 세 번째인 11월 17일과, 그 뒤 매달 셋째 금요일은, 돌아가실 3월까지는 별 일이 없는 한, 결코 빠지지 않겠노라는 확약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어떤가. 조금 귀가 솔깃해지지 않는가. 이 글을 읽은 분들 중에서도 혹여 이 독회에 관심이 있거들랑, 분단문학포럼 측 전화번호 (02-335-2431, 011-415-8115)를 알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