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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리고 어떤 협동조합을 말하는가?
김기섭
자본주의의 모순을 사회적 약자의 협동을 통해 극복하고자 생겨난 협동조합은, 지난 200여
년간의 역사를 통해 세계 약 8억 인구의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하고 1억이 넘는 사람들
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세계 최대의 민간단체(NGO)로 성장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식량의 생
산과 소비는 물론, 금융 분야에서까지 농협과 신협, 생협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고, 2천
만이 넘는 사람들이 이런 협동조합과 관계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과연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
은 사람들이 협동조합과 관계하고 있을까.
일부에서는 협동조합을 가난한 사람들이 그 궁핍한 생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취할 수밖에
없는 일시적인 자구책쯤으로 여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고, 사람들이 먹고살만
해지면 협동조합은 자연이 소멸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국발 금융위기, 유럽의 제정위기, 1 : 99 사회, 점령하라 월 스트리트, ….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전횡이 우리네 삶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유엔은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정했고,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해 협동조합기본법을 시행하면서까지 그 육성에 힘쓰고 있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다시금 사람들은 협동조합에 주목하는 것일까? 왜 협동조합은 농수축산
업, 소비, 금융 분야를 넘어 생산과 노동, 의료와 보건, 문화와 예술, 교육, 여가, 공공재(전기
/가스/수도 등)와 교통 등의 분야로까지 급속히 확대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물질적 빈곤함에
서 벗어난 서구에서 왜 협동조합은 더욱 그 역할을 확대하고 있고, 새롭게 대두되는 노동과
환경, 복지 등에 관한 수많은 과제들에 대해 왜 사람들은 협동조합 방식을 통해 아직도 해결
하려 희망하는 것일까.
물론 협동조합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전문화, 관료화, 제도화된 협동조합에서는 더 이
상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고, 사람들 또한 더 이상 그런 협동조합에 자신의 희망을 의탁하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각광받기도 하는, 그것이 바로 협동조합이고, 그러기에 협동조합이다.
우리가 협동조합을 이해하는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고 나아가 인간
사회의 나아갈 방향과 그 방향을 구체화시키는 방법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
면, 인간과 인간 사회의 나아갈 방향과 그 방향을 구체화시킬 방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
해 협동조합은 새로이 해석되고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체성, 현실에서의 적합성,
미래 지향의 타당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는 협동조합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
체로서의 사회가 그러하듯이, 더 이상 협동조합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1. 협동조합 연구의 방법
협동조합에 대한 연구는 일반적으로 경제학과 경영학의 한 분야에 속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협동조합은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경제 주체 가운데 하나로 규정되고, 미시적 관점에서
볼 때 협동조합은 하나의 독립된 경영체로 규정된다.
협동조합은 종종 농업정책, 상업정책, 금융정책, 나아가 복지정책을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한
유효한 도구로 거론된다. 실제로 정부가 농업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 농업협동조합의 역할은
컸고, 사금융의 폐해로부터 서민을 보호하기 위해 신용협동조합은 육성되었으며, 물가안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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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거래를 타파하기 위해 생활협동조합의 역할이 강조되었고, 나아가 제도권 복지의 비효
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복지 분야 협동조합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협
동조합에 대한 연구는 경제학 특히 경제정책론의 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협동조합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기업 가운데 하나다. 물론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과는 다른 매우 특수한 형태의 것이다. 소유와 노동이 분리되어 있다는 측면에서는 가계
나 소규모 생업과는 다른 기업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경영체이지만, 그 소유가 불특정 다수가
아닌 조합원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 나아가 생산의 결과가 불특정 다수에 의해 향유되는 것
이 아닌 조합원으로 제한된다는 점에서는 일반 기업과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반 기업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데 비해, 협동조합은 이익이 나도록 운영은 하되 이윤을 추구하지
는 않다. 협동조합은 그 목적과 운영 방식이 일반 기업과는 많이 다르지만, 동시에 기업과 마
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독립된 경영체 가운데 하나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협동조합에 대한
연구는 특수한 형태를 지닌 기업에 대한 경영학의 한 분야인 셈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협동조합에 대한 이와 같은 경제학적 경영학적 연구는 그 대부분이 협
동조합 밖에서 국가 정책의 효율적 실행이라는 관점에서 협동조합을 바라보거나, 협동조합 안
에서 협동조합의 경영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계를 지닌다. 협동조합에 대한 세 가
지 조건, 즉 인간의 주체성과 현실에서의 적합성, 그리고 미래 지향의 타당성 가운데 현실에
서의 적합성에 대해서는 도움을 줄 수 있어도 나머지 두 조건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생략되
기 십상이다. 협동조합을 어떻게 운영해야 잘 운영하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
해 알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에 모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런 사람들이 협동조합에 어떤 희망
을 의탁하는지, 또 협동조합이 그런 희망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제대로 운영되는지, 나아가
그 희망의 궁극적 지향이 어디로 향해가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
면 안 된다. 협동조합에 대한 연구가 경제학과 경영학을 넘어, 인문학과 사회학을 포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협동조합의 목적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제정한 협동조합의 정의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한마디로 “공동으
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해, 조합원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
와 염원을 충족하고자,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사체”라 할 수 있다. 이 정의
에서 언급된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해’라는 부분이 현실에서의
적합성 즉 협동조합의 ‘수단’에 해당하는 것이고,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이라는 부분이
인간의 주체성 즉 협동조합의 ‘주체’에 해당하는 것이며, ‘조합원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
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고자’라는 부분이 미래 지향의 타당성 즉 협동조합의 ‘목적’에 해당하
는 부분이다.
무슨 일을 도모할 때, 우리는 항상 그 일의 목적과, 그 목적을 추진하는 주체와, 그 주체가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필요로 한다. 이 가운데 어
느 하나 빠지거나 어긋나도 일은 성사될 수 없다. 세 가지 모두가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지
만 ‘목적’과 ‘주체’가 ‘수단’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목적’과 ‘주체’가 ‘수단’보다 우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유엔이 정한 ‘세계 협동
조합의 해’의 모토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은, ‘보다 나은 세상’이
라는 ‘목적’을 향해 협동하는 ‘사람들(조합)’이라는 ‘주체’의 명시임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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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대체 협동조합은 어떤 ‘목적’과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에 최초의 근대적 협동조합이 탄생했을 당시, 협동조합에 모인 사
람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보다 나은 세상’ 즉 ‘목적’은 주로 경제적인 것이었
다. 산업혁명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노동자들의 삶은 하루하루를 견디기조차 힘든 궁핍한
상황이었고, 그들에게 있어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들이 서로 힘을 합쳐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협동조합이 여전히 경제적 문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도, 협동조합이 이제는 그 역할을 다했거나 더 이상 협동조합일 수 없는 것처
럼 보이는 것도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과연 빈곤과 같은 경제적 문제가 해결된다 해서 인간 사회의 제 문제가 모두 해결되
었다고 볼 수 있을까. 당장은 먹고살 만해졌다 손 치더라도, 국내를 넘어선 세계적 차원에서
의 빈부 격차는 한층 가속화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의 상태에
놓여 있으며, 설령 일자리를 찾았다 해도 낮은 보수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경제가 수도권과 대기업으로 집중됨에 따라 지역산업과 골목상권은 고사의 위기에 직면
해 있고, 시장의 세계화는 국내의 금융/서비스/유통/농업 분야에 적지 않은 타격을 가하고 있
다. 인간 사회가 직면한 경제적 문제는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일단 벗어나기는 했어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사람들의 삶을 곤경에 빠트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이런 경제적 위기의 근본은, ‘인간과 돈’ 사이의 관계 때문이다.
돈은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고, 또 돈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맺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실천이 동반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경제적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
다.
그러면 인간과 돈 사이의 관계만 개선되면 모든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그
렇지 않다. 조금은 가난해도 서로 도우며 살아왔던 인간 사이의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관계
가 이미 파괴되었고, 마지막 남은 공동체적 인간관계라 할 수 있는 가족마저도 해체일로에 있
으며, 개별적이고 고립화된 인간이 그 ‘차이’를 넘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차별’을 낳고 있는
속에서, 인간과 돈과의 관계 개선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다시 말
해 지금의 사회는 ‘인간과 돈’의 관계라는 경제적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게 ‘인간과 인간’의 관
계라는 사회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고,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새롭고도 실천적인 접근이 없이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경제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만 한정해서 바라보
고 해결하려 하면 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모든 문제들은, 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라는 생태적 문제로부터 기인하고, 따라서 생태적
문제의 해결 없이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금 현재의 물질적 행복을 위해 무분별한 개발과 성장을 통해 자연 생태계
를 파괴해왔다. 유한한 자원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인해 점차 고갈되어가고 있고, 쏟아져
나오는 폐기물과 화학물질은 생태계의 교란과 파괴를 자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은 자연의 자기정화능력과 수용능력을 훨씬 뛰어넘으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
구해왔고, 그 결과는 이제 자연 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지속가능한 생존마저도 위협하는
지경에 놓이게 만들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와 같은 태도야말로, 인간에 대한 인간의 태도이며, 돈이란 그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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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태도가 익명성을 띄고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할 뿐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
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돈’의 관계라는 생태적이고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포괄적 문제의식과 해결책이 없이는 이제 인류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
는 지경에 놓여 있다.
협동조합은 그 시대 시대마다 인간 사회에 대한 나름의 문제의식과, 그 문제의 해결의지를
담은 목적의식을 지니며 성장해왔다. 19세기 협동조합이 경제적 문제에 전념해왔고, 20세기
협동조합은 포괄적인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아왔다
면, 이제 21세기 협동조합은 포괄적인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와 더불어 생태적 문제에 대
해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그것이 협동조합으로 만들어가려 하는 ‘보다 나은 사회’ 즉
‘목적’에 해당하는 것이다.
3. 협동조합의 주체
위대한 철인 이반 일리히(Ivan Illich)에 따르면, 현대사회 인간은 세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먼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정치적 선택지가 있다. 이는 정치적 견해의 차이, 즉 생산수
단의 소유제, 자원의 분배 방식, 정치적 권위의 소재 등에서 자본주의적 입장이냐 사회주의적
입장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다.
다음으로 기술적 선택지가 있다. 이는 경성(hard)이냐 연성(soft)이냐, 즉 관료 지향적이고
중앙 집중적이며 에너지 다소비형이냐, 아니면 민중 자치적이고 지역 분권적이며 에너지 절약
형이냐에 관한 문제로서, 단순히 에너지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재화나 서비스의 생
산과 유통, 소비에 해당한다. 거대한 제조업체와 슈퍼마켓, 종합병원 등은 모두 경성 기술의
대표적 사례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자기규정에 대한 선택지가 있다. 한쪽에는 소유를 통해 만족하고 상품
을 소비해야 생활할 수 있는 경제인(homo economicus)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산업 생산물
의 소비를 포기하거나 산업 활동에 협력하기를 거부한 플러그를 뽑은(unplugging) 사람이 있
다.
우리는 지금 다음과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자본에 의해 고용된 노동을 하면서 경성
기술에 의해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해야만 살아가는 경제인으로 사느냐, 아니면 스스로
가 자신의 노동을 조직하면서 생산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자연과 인간의 눈높이에 맞춘 연성
기술에 의해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통해 지금과는 다른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다.
일리히가 말하는 정치적 선택지의 문제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대안으
로 찾은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시
장을 통해서가 아닌 노동자 간 협의와 호혜에 통해 자원을 분배하며, 이런 행위를 주관하는
정치적 권위를 노동자 자신이 지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대항마로서 등장했던 것이다.
협동조합은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한마디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정직한 노력”일 따름이다. 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협동조합이지만, 어느 시대 어느
상황을 막론하고 협동조합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꿈(=목적), 그 꿈을 이뤄갈 사람(=주체),
그런 사람들에 의한 정직한 노력(=수단)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그 안에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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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 그 비전을 담지해낼 주체, 그런 주체가 비전을 구
체화시킬 현실 적합적 방법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이다. 인간과 사회가 변하듯,
협동조합도 변한다. 따라서 우리가 협동조합을 이야기할 때, 그 안에는 그 시대와 그 상황에
맞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 사회의 나아갈 방향과, 그 방향을 구체화시키는 방법이 함의
되어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해 인간과, 인간 사회의 나아갈 방향과, 그 방향을 구체화시킬 방법
을 통해 협동조합은 항상 새로이 해석되고 논의되어왔다는 것이다. 미래 지향의 타당성, 인간
의 주체성, 현실에서의 적합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시대의 요구에 맞게 변하지 못하는 협동
조합은, 더 이상 협동조합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올해는 우리나라 협동조합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한 해다. 지난 60여 년간 우리나라의 협동
조합은 사업 내용에 따라 각기 다양한 영역에서 발전해왔다. 농수축산업 분야에서의 농협과
수협, 금융과 보험 분야에서의 신협, 소비 생활 영역에서의 생협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2012
년 말에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협동조합을 사업 영역에 따라 구분 짓는 시대에서 주
체에 따라 자유롭게 설립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마디로 협동조합 개별법의 시대에서 협동
조합 기본법의 시대로 변화한 것이고, 이는 사업 내용이 협동조합의 성격을 규정하던 데서 사
업 주체가 협동조합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으로 협동조합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개별법 시대의 협동조합은 그 주체가 노동자 농민이라는 동질의 계급의식에 기반했고, 일리
히가 말하는 정치적 선택지의 문제를 등한시한 채로 자본주의의 주변 문제에 집중하면서, 광
범위한 노동자 농민 계급의 경제인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개별법에 근거한 협동조합이 주식회
사와는 이름을 달리하면서도 여전히 경성 조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비해 기본법 시대의 협동조합은 산업사회의 주변인(minority)들, 즉 청년, 여성, 노약
자, 영유아, 취약 계층과 같은 사람들을 주체로 한다. 일리히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플러그
를 뽑은 사람들이고 플러그를 뽑힌 사람들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협동조합은 이미 개별법 시
대의 협동조합과는 그 괘를 달리한다. 그들은 자본제 소유냐 공동 소유냐 하는 ‘생산수단의
소유제’, 위계적이고 자본 소유에 따른 분배냐 아니면 협의적이고 노동량에 따른 분배냐 하는
‘자원의 분배 방식’, 자본이 지배하느냐 사람이 지배하느냐 하는 ‘정치적 권위의 소재’를 전면
에 제기할 것이고, 나아가 산업사회의 경성 기술이 거들떠도 안보는 틈바구니에서 자신만의
강점인 연성 기술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유통해낼 것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왜’ 지금 협동조합을 이
야기해야 하는지, 나아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협동조합이 ‘어떤’ 협동조합이어야 하는지 이다.
‘왜’와 ‘어떤’에 대한 논의와 모색의 과정을 통해 200여 년이 넘는 오랜 역사의 협동조합은 새
로운 미래로 다시 태어나,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현실 적합한 대안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