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시]
천국의 언어로 쓴 시를 | 임보
― 황도제 시인을 애도하며
2009년 새해를 맞는 이 벽두에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식인가요?
누구나 한번은 다 가는 길이지만
이렇게 서둘러 떠나시는 까닭이 무엇인가요?
어수선한 세상 보기 싫었던가요?
약삭빠른 사람들에게 실망이 너무 컸던가요?
아니, 어쩌면
하늘이 당신의 충직과 노고를 어엿비 여겨
천상의 보좌에 일찍 앉히고자 모셔간 것인가 봅니다.
그러나 황 시인이여,
당신과의 마지막 이별의 자리에 모인 우리들,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친척과 친지, 시우(詩友)와 제자들의 가슴은
슬픔과 아쉬움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그 호쾌한 풍채에 서글서글한 미소며
무슨 음식이든 잘 자시던 그 먹성이며
무슨 말이든 재미있게 하던 그 입담이며
그 다감한 모습들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당신이 남긴 아름다운 시편들은 당신을 대신해서
이 지상에 오래 남아 세상을 밝히겠지만
당신이 떠나간 이 겨울 아침은
더 춥고 쓸쓸하고 적막하기만 합니다.
바라옵건대
이젠 지상의 모든 근심 걱정 다 놓으시고
하늘의 품에 안기시어 영락을 누리소서.
그리고 가끔은
천국의 언어로 쓴 당신의 황홀한 시를
지상의 꽃이나 새들의 노래에 실어 보내 주소서.
황도제 시인의 영전에 | 洪海里
도제 형! 아니 황도제 시인!
이렇게 마지막으로 한 번 불러 봅니다.
언제 어디서나 논리 정연하게 또박또박 이야기를 풀어내어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하고 한편 숙연하게 하며 좌중을 휘어잡던 형이 이렇게 나보고 조사를 하게 하는 것이 어디 황 시인의 논리에 맞는 일입니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들 하지만 황 시인이 내 조사를 해야 할 일인데 내가 황 시인 앞에 조사를 하게 되다니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꿈에도 생각지 못한 뜻밖의 슬픈 소식을 듣고 모든 친지, 동료, 선후배와 제자들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모두가 가슴이 울렁거리고 막막하여 일손을 놓고 있습니다.
형은 어휘력이 부족한 우리들에게 청천벽력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다. 그저께 아침 동생으로부터 형의 부음을 전해 듣고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 이렇듯 태연하게 우리 곁을 떠나가십니까? 이 추운 계절에 그 먼 길을 혼자 떠나가십니까? 참으로 슬픈 감정을 어찌 다 표현하고 다스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형과 나는 35년 전 돈암동 성신의 동산에서 만나 동덕의 뜰로 함께 거닐었고, 함께 시를 쓰면서 우리시회 회원으로 지금까지 우정을 변치 않고 다져왔습니다. 이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처음 만났을 때 소설을 쓰겠다는 형에게 뭐 하려고 힘들게 소설을 쓰느냐, 쉽고 간단하게 쓸 수 있는 시를 써라,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父子詩人이 될 것이고 富者 시인이 되지 않겠느냐고 나는 형을 부추겼지요. 그래서 결국 형은 시를 썼고 내가 주선을 해서 『현대문학』으로 등단을 하게 되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잡지로 등단한 父子詩人이 탄생하게 되었지요. 그 후 아버님과 함께 父子詩集도 펴내지 않았습니까?
아버님과 함께 맛깔스런 시를 쓰면서 정연한 이론으로 시를 이야기 하고 많은 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다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시니 정말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직도 앞길이 양양한 형이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떠나버리니 아직 쓰지 못한 많은 시와 소설은 어찌 할 것입니까? 형의 글을 애독해온 수많은 독자들을 이렇게 버리시니 너무나 야속하고 허망합니다. 앞으로 써야 할 작품으로 열 권 스무 권의 시집을 엮어내야 할 텐데 그 일들을 언제 다 하시렵니까? 써야 할 글을 다 쓰지 않은 채 이렇게 허망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허탈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평생 사는 일이 참으로 별것 아니라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형의 사진을 보니 더욱 서러워 만감이 교차합니다.
형은 해방되던 해에 이 땅에 태어나 춥고 어려운 시대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나와 교사로, 시인으로 살다 이제 모두가 살 만한 때가 되니 더 누릴 수 있는 큰 복을 마다하고 떠나십니다. 형은 그간 꾸준히 시작활동에 전념하여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시집으로『태풍』, 『황홀한 기억』, 『얼굴을 만들어야지』, 『소주연가』, 『겨울새가 물어온 시 한 편』등과 에세이 소설『사랑 끝 사랑 시작』을 펴냈습니다. 그밖에도 논술에 관한 여러 권의 저서를 내어 논술 분야의 한 획을 그으며 우리들의 논리를 든든하게 해 주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몸을 받은 두 아들을 위해 형은 한평생 몸을 바쳐 얼마나 열심히 일선에서 뛰었습니까? 이제 헌거롭게 자라서 헌헌장부가 된 두 아들에 대한 형의 자긍심과 애정이 얼마나 자별했습니까? 이제 효도를 하려고 하는 자식들을 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시면 뒤에 남은 그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이제까지 고락을 같이 해온 부인과 아우들, 그밖의 가족들은 또 어떡합니까? 무엇보다도 참척을 당하신 아버님은 어떡하시라고 이렇게 훌훌 떠나십니까? 망극하고 망극한 일입니다. 조사를 하는 제가 이렇게 슬픔에 잠겨 있는데 유족 여러분은 얼마나 상심하고 괴로우시겠습니까? 삼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서 아무쪼록 낙심치 마시고 기운을 차리시기 바랍니다.
형이 가는 곳이 분명 좋은 곳이기에 이렇게 황망히 가시는 것이겠지요. 그곳은 아무런 근심과 걱정, 슬픔과 괴로움이 없는, 늘 따뜻하고 평화로운 하늘나라겠지요.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어머님과 만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효도도 하고 뒤에 남은 유족들을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승에서 다 쓰지 못한 글을 그곳의 언어로 적어 이곳으로 내려 주십시오. 그리하면 풀은 더욱 푸르고 새들의 노래는 더욱 청아하고 꽃은 더욱 향기롭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잊고 평안히 쉬시기 바라며 다시 한 번 형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하나의 별을 보며 우리는 형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2009년 1월 7일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 이사장 洪 海 里
고별 외 4편
황도제
당신의 자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봅니다.
가만히 손도 잡아 봅니다.
사랑이 따스하군요.
당신도 내 손을 잡는군요.
처음 만나던 날의 떨림이군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떠나는 인사임을
어깨에서 앞가슴으로
흐르는 흐느낌
자신의 탓이라고
혼절하는 장면
눈에 보이는군요.
어린놈도 함께 우는군요.
용서해 주세요.
변명과 이유는
구차스러워 접습니다.
이제 고별입니다
그동안 함께 살아온
인사치레로
조금만 우세요.
아직도 사랑이 남아 있는 세상
떠나갑니다.
산벚꽃나무의 울음
모질었던 인정
죄 많아
이승, 저승
밤이슬이 되어
산자락 한 모퉁이
하늘이 몰래 쉬는 자리
숨어서 만삭의 흐느낌
깔아 놓으니
아가야. 아가야.
목이 메어도
품에 안기지 않아
열꽃이 돋아 울음 울더니
울음이 망울지는 산벚꽃
이목구비마다 산벚꽃으로 피었느냐
아가야, 아가야
퉁퉁 불은 젖 짜내며
우는 축문
눈도 맞추지 않고
그리 바뻤느냐
죄 많은 어미를 용서해다오
봄을 용서해다오
어미 가슴에
못을 박으며
산벚꽃으로
다시 태어난
아가야
목백일홍과 가을
초여름에 죽은 형님의 눈빛이
목백일홍으로 툭툭 불거질 때
형수는 귀신이 붙었다고
노골적으로 낯선 사내를 끌어들였다
밤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형은
바람난 형수가 죽였다고 소문이 났고
나는 무거운 이승에 짓눌려
달빛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했다
목백일홍은 형의 등신等身
상처 입은 사랑에 사로잡힌 영혼의 나무
다가가면 “이놈의 세상, 천벌 받을”
중얼거리는 형님의 울음소리
목백일홍을 끌어안으면 술 냄새가 났다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죽어서도 술을 마셔야 하는 형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애처로운 형,
조금 있으면 가을이야
술 안 마셔도 돼
가을이 되면 펄펄 끓던
형수의 치마도 누렇게 변해
이제 그만 잊어버려
그래야지만 죽어서도 편해
가을이 오고 있어
독백
수심 가득한 아픔은
하나 둘
종말로 이어지고
반나절 해를
조류 따라 헤매다 지친 시간
옛날 그림자 속에 담겨진 얼굴
마음은 낙장된 파본 속에
때묻은 시름으로 젖는다.
물새의 울음 따라
바다를 맴돌다 사라져 가는 고기떼
한 밤은 몇 년이기에
하루 해가 긴 세월이 되었을까?
등촉불 따라
자식의 숨결은
부모의 베옷에 잠기고
우중雨中 속의 바닷가는
피맺힌 전설을 뿌린다.
끊임없이 출렁이는 물결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의 꽃을 그리며
내 어깨에 내린 그늘
머리결같은 검은 하늘에
뿌려지는 겨울비
깊은 삶의 고뇌가
마음으로 구전된다.
봄이 오면 뭘 해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마음을 흔들면 뭘 해
꽃들이 발목을 덮으며 미치게 만들면 뭘 해
나를 지켜 줄 당신이 없는데
꽃들이 저마다 앞 다퉈 가슴을 열면 뭘 해
꽃들이 속삭이며 품에 안기면 뭘 해
나를 안아 줄 당신이 없는데
꽃들이 자태를 뽐내며 유혹하면 뭘 해
꽃들이 속삭이며 품에 안기면 뭘 해
나를 사랑해 줄 당신이 없는데
꽃들이 노래를 부르면 뭘 해
꽃들이 춤을 추면 뭘 해
사랑을 할 수도 없는데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데.
황도제(黃島濟) 시인 (1945~2009)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1984 현대문학에 시(「신호등」, 「마루운동」, 「고궁의 잠자리」)로 데뷔
동덕여고 교사를 거쳐 한솔 아카데미 운영 위원 역임
저서
시집
1985년 :『태풍』
1988년 :『황홀한 기억』
1991년 :『얼굴을 만들어야지』
2008년 :『겨울새가 물어온 시 한편』
공동시집(부자 : 황금찬, 황도제)
1994년 :『구름 호수 소녀』
사화집
1999년 :『소주연가』
에세이 소설
1999년 :『사랑 끝 사랑 시작』
논술교제
1995년 :『논술 이렇게 쓰면 만점』
1998년 :『논술 실전 만점 정리』
2006년 :『플라톤 논술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