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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steland_ 김문호 근래 나의 작업에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문제가 발생했다. 사진가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삶의 현장에서 이미지를 잡아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는 더욱 난제인 ‘초상권’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이전처럼 연출하지 않은 스트레이트 사진 작업이 한계에 봉착했다. 초상권과 무관한 먼 오지의 사람들이나 특정한 집단의 인물을 찍는 작업이 아니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찍는 내 작업 스타일이 풀어야 할 큰 숙제였다. 인물을 배제한 작업이 가능할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우선 사람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방법을 찾기로 했다. 사람을 둘러싼 풍경을 중심으로 해나가는 작업이었다. 2013년 ‘Shadow’ 이후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한 풍경, 삶의 배경에 관심을 가져왔다. 작업을 한 기간은 채 2년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사이 예기치 않은 일까지 생겨 작업 기간은 더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이 작업을 지속적으로 치밀하게 해나갈 작정이다. 이 도시와 이 땅을 사진에 담으면서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된다.
“나는 사진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
나의 시선은 언제나 쓰러진 자에 닿아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상처 입고 잊혀져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을 텍스트화 하는 것, 그것을 통해 조용히 말을 거는 것이 나의 작업이었다. 아파하며 신음하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산과 들, 강과 바다, 바람과 햇빛마저도 돌이키기 어려운 중병을 앓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나의 작업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침이 되면 ‘오늘은 또 어디로 발길이 향할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내 손에 아직 카메라가 들려 있기에...
검은 땅 우금(于今)에 서다_ 박병문 검은 사람들로 검은 도시가 번창하여 인심 또한 넉넉했던 탄광촌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후로 쇠퇴하여 많은 사람들이 탄광촌을 떠났고, 하나 둘 폐업하는 탄광으로 인하여 그 잔해들은 시간을 거꾸로 당기고 있다. 세월의 망상으로 까시랑카의 자국만 남은 목침의 흔적, 그 흔적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땅에서 오른 희뿌연 안개가 쌓인 폐광된 굴은 그 희미한 기억마저 얼음 기둥으로 만들었다. 겨울의 안개를 끊임없이 뿜어대는 저탄장은 근대문화유산의 건재함을 굳게 지켜 나가고 광부 사람들의 집성촌인 “피냇골”은 아늑하고 포근함과 순수함을 그대로 지닌 작은 탄광촌 마을이다. 그 피냇골 입구에서 마음의 평화를 빌어주는 교회는 오늘도 우금의 중심에서 자리하고 있으며 수천 명의 광부를 거느렸던 광업소는 과거의 영광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앙상한 잔해의 자존심을 고수 하고 있다. 졸고 있는 가로등 그 곁에서 하얀 가로등은 혹여 강아지의 발자국이 남겨 질세라 밤을 꼬박 지키고 있는 정겨운 모습들, 눈을 피해 갈수 없는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내 고향 태백의 모습들이며 잠자는 사진의 감성을 붙잡아 주는 요소들이다. 그 모든 것들은 카메라의 레이더망을 벗어 날수가 없다는 것과 내일의 태양이 될 불빛들과, 내 고향 장성을 중심으로 탄광촌 주변의 마을을 밤과 낮 그리고 계절마다 누비며 매번 새로운 감성을 담았다. 청계천 _이한구 마음이 먼저 찍어야, 손이 찍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년과 얽힌 유정함 대신 피사체로서의 청계천이 새롭게 보였다. 섬유, 전자, 전기, 의료, 기계 등 제각기 물성과 형태가 다른 것들의 밀집이 조형적으로 흥미로웠다. 화려한 대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해있으면서도 누추하고, 이상하게 당당하고, 활기차면서도 어딘지 쓸쓸한 대립각의 정서도 좋았다. 더구나 그 안에 몸으로 생애를 밀고 나아가는 사람들, 헤아릴 수 없는 삶들이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난장, 청계천의 동력은 ‘사람’이었다. 각양각색 공구들 사이에서 책을 읽던 노점 공구상 주인, 찌그러진 양은 세숫대야에 검정 묻은 얼굴을 씻던 철공소 청년, 짐이 올려진 때보다 텅 비어있을 때가 더 고단해보이던 지게들과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손님을 기다리던 손수레 배달꾼의 젖은 바지자락.... 그때 알았다. 눈은 그저 볼 뿐, 마음에 먼저 찍혀야 사진이 찍힌다는 것을.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진 청계천의 역사적 내력들을 살피면서 몇 되지 않은 근대의 사진들과 구와바라시세이의 80년대 청계천 사진들을 보면서, 내 가까이, 나와 잇대어져 있는, 내가 살아가는 당대의 청계천과 그 속의 삶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에 의미를 느꼈다. 사진기를 든 자는, 사진 본연의 의무를 짐으로 진 자이다. 사진가로 언제 어느 곳을 떠돌더라도, 일생동안 다시 돌아와 청계천을 찍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생각을 그 무렵 했다. 이십대 중반, 청계천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1992년도였다. 그리고 2013년. 살다보니 횟수가 드문 해도 있으나, 어느 한 해 빠짐없이 카메라를 메고 청계천을 들고 난 세월이 20여 년이다. 비오면 비가 와서 나가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나가고,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흐리면 흐려서 청계천에 나간다. 여전히 걸어서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어쩌면 나라는 이 한 사진가도 여러 잡다한 청계천의 구성물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 걸음의 결과물인 필름들 속에는, 재개발로 허물려버린 옛 집터를 다시 찾아와 어슬렁거리는 소년들, 야간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볼이 미어지도록 이른 저녁을 먹는 노점상, 물줄기보다 더 빠르게 흐르는 구경꾼들. 곧 헐릴 남루한 집들 위로 마구 그어진 무정형의 전선들, 그 너머로 신기루처럼 직선으로 솟은 빌딩들이 담겨있다.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오래 정주했던 터를 잊지 못해 되돌아온 낯익은 얼굴들도 있다. 찍을 당시엔 의식하지 못했던 시대적 요소들이 버내큘러( vernacular)로 드러나 보인다. 어제도 청계천을 나갔다. 이제는 그 옛날 삼일고가가 허공 중에 그렸던 선을 산책로와 물줄기가 지상보다 낮은 지표면에 매끈한 선을 그리고 있다. 모두가 청계천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내 눈에는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 철공 부품들이 핸드폰으로, 비디오테이프들이 DVD로 , 그 공간의 구성품들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청계천을 살아 꿈틀대게 하는 동력은 사람이고, 생에 대한 여전한 의지와 운동성은 이제나 저제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찍은 2013년의 청계천 사진을 1992년의 사진 사이에 슬며시 끼어 넣어도, 시간성을 알 수 없이 일관되게 보여 지는 ‘무엇’일 것이다. 사진기를 든 자는, 사진 본연의 의무를 진 자이다.
그린랜드_ 최항영
2007년 태안 기름유출사고, 4대강 개발,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과 고양의 백로 서식지 파괴등 일련의 현장을 환경 파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묶어낸 작업이다. 말 그대로 자연은 자연 그대로 있을 때가 가장 자연스럽다. 하지만 정작 사진은 그린이 사라진 흑백으로, 현재의 풍경에 역설을 불어 넣었다.
아직도 태안을 떠돌던 역한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끝도 없는 검은 냄새가 먼저 올라왔고. 역한 냄새를 여러 번 뚫은 후에야 끈적끈적한 검은 파도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악천후 속에서도 크레인을 실은 바지선은 출항했고 200km에 가까운 바다는 순식간에 검은 색으로 변했다. 복구와 피해 보상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없다. 세월호가 그렇고 지금의 메르스 사태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아직도 한반도 전역을 떠돌던 흙먼지를 잊을 수가 없다. ‘살아있는 것을 다시 살려 보겠다.’는 기묘한 논리로 시작된 4대강 살리기. 강은 억울할 수밖에, 파랬던 쑥부쟁이도 물속에서 노닐던 누치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뭘 살리겠다고 하는 건지. 이제는 ‘5대강 친환경 정비 프로젝트’라는 명목으로 섬진강까지 다시 살려내겠다고 한다. 순서가 다를 뿐 그럴수록 자연도 사람도 죽어나간다.
아직도 사람을 바라보던 백로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백로 천여마리가 집단 서식하고 있는 고양시 사리현동에 느닷없이 벌목이 시작됐다. 새들은 나무에 떨어져서 무더기로 죽어나갔고 어미들은 새끼를 찾아 허공을 계속 맴돌았다. 한 달만 기다려줬다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철새들이었는데 나무는 산림지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백로는 법적 보호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식지 파괴를 제재할 수단과 방법이 없었다. 생명과 환경은 꼭 법으로만 보호해야만 하는 걸까. 절집_ 하지권
우리나라의 절은 부처님을 모시는 신앙의 공간과 스님의 생활공간 둘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절과 집이 모여 절집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불시간에 맞추어 법당에 가서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각자 주어진 시간에는 공부를 하거나 울력(일)을 한다. 안거철에는 선방에 들어가 석 달 동안 은둔하며 참선 수행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신앙과 생활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절집이다.
나는 카메라를 메고 이 절 저 절을 돌아다닌다. 방석에 앉아 깊고 고요하게, 하지만 치열하게 구도하는 스님의 모습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산책로에서 만난 노스님은 나를 미소로 반겨주었고 아무 말 없이 카메라 앞에 서 주기도 했다. 촬영했던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간 내가 갔던 절들이 생각난다. 내일 다시 절에 갈 마음 준비를 한다. 내겐 어느덧 수행이자 생활이 된 절집으로. 날마다 사진_강제욱
어느 날부터 스마트폰이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은 훌륭한 일기장이 되어 주었고 필요한 정보들을 기록하는 채집도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제 일상의 시간적 나열에 불과한 것들이었지만 고맙게도 볼품없는 그것들이 세상과 소통을 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국내외의 제 작업의 현장 뿐만 아니라 따로 카메라를 챙겨가지 않은 순간에도 스마트폰은 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약 3년 동안 인스타그램에 제가 올린 사진이 4,930장의 사진이더군요. 대부분의 시간들은 기억으로부터 멀어져 갔지만 핸드폰에 기록된 사진들은 제 기억을 복원해 주었습니다. 참 많은 나라, 도시들을 다녔더군요. 태풍과 지진의 긴박한 현장부터 느릿하게 시간이 흐르는 메콩강변까지, 태평양의 섬과 몽골의 초원부터 파미르 고원까지 함께 했습니다. 어느 날 이 사진들을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되었는데 제가 필름으로 그리고 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로 담지 못한 제 삶의 순간들이 오히려 더 훌륭하고 진실하고 섬세하게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참 인생에 덤으로 얻은 듯한 감사한 사진들입니다. 제 인생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이 너무나도 가볍고 사소하게만 생각했던 핸드폰에 담겨져 있었다니… . 父傳子展_고경대
1960~70년대의 제주 일상을 기록한 사진가 고영일의 제주 사진과, 그의 아들이 40여 년 후 시차를 두고 같은 곳을 찾아 찍은 제주 사진을 나란히 전시한다. 아들인 고경대는 2011년부터 <고영일 사진 따라하기>라는 이름으로 사진작업의 과제를 설정하고 제주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40여 년 전 고영일 사진과 비교하여 그간의 세월 속에서 어떤 곳은 전혀 옛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고, 또 어떤 곳은 40여 년의 세월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러한 간극을 사진을 매개로 한눈에 보여주고자 한다. 40여 년의 세월을 마주하는 제주의 사진은 고영일의 1960~70년대 사진에 대한 아들 고경대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고영일 사진이 과거의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생명력 잃은 옛 사진이 아니고, 지금 봐도 그 순간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여 우리 모두에게 친근하고 생생한 사진으로, 고영일 사진에 살아 숨 쉬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아들 고경대의 의도가 숨어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진을 그 아들이 따라하면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그리 흔치 않은 또 다른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영일과 고경대는 묻는다. “이디가 이추룩 변헌 거 보염수과?”
‘살기 품은 풍경’ _김상훈 [KISH]
중동의 전쟁터에서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은 한국에서 보던 일상의 평화로운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폭기가 공습하고 지나가며 만든 하얀 항적운도 사실 서울 하늘에서 종종 보는 여객기의 항적운과 크게 다르지 않고 가자지구의 노을도 영종도의 노을만큼이나 아름다우며, 레바논의 옥색 바다는 삼척의 바다 못지않게 맑고 곱다.
하지만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미사일 소리와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면 곧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바다에 떠 있는 것은 어선이 아니라 함포를 쏘는 군함이고, 마치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밤하늘을 수놓으며 떨어지는 것은 백린탄이다. 포탄이 떨어진 구덩이엔 불에 탄 차가 처박혀 있고, 재개발현장을 닮은 건물 잔해 사이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다시 고개를 들어 먼 풍경을 바라보면 이제 모든 풍경이 달리 보인다. 붉은 흙 아래에는 생명의 씨앗 대신 죽음의 지뢰가 묻혀있고 산속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를 따라가면 따뜻한 밥 대신 차가운 시체가 있음을 깨닫는다.
전쟁터에서는 인간의 증오와 탐욕이 버무려진 살기가 아름다운 풍경을 유린하고 협조마저 강요한다. 전쟁터 풍경은 그렇게 강압적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의 살기를 강제로 품게 된, 무력해서 측은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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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담자
A: 김남진 관장 /
B: 사진가 김문호 /
C: 이광수 교수/
C :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찍은 풍경사진’이라는 참신하고 독특한 전시가 지난 18개월 동안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전시를 하게 되었는지, 일단 기획자이신 김남진 관장님 말씀부터 듣겠습니다.
A : 우선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찍은 풍경사진’이라는 기획전이 열리게 된 계기부터 설명을 드리는 것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서울사진축제’, ‘충무로사진축제’ 등 컨템포러리 계열의 페스티발을 다섯 번을 하다 보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죠, 페스티발과 같은 대규모 전시에서는 대표작을 걸면 되는데 브레송 갤러리 같은 작은 공간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죠. 한 달에 한명씩을 초빙해서 뭘 보여줘야 하는데 이미 발표했던 작품을 또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찍은 풍경사진’이라는 기획을 생각해본 거죠.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작업을 할 때는 주변의 환경적인 요소부터 일단 찍고 시작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4대강을 찍으려면 주변의 환경적인 요인부터 찍을 것이고 결국 그게 풍경사진이 되는 게 아닌가요? 또 기획전 제목에서 약간은 오해가 있을 것 같은데, 풍경사진하면 자연을 소재로 한 그런 사진, 까딱하면 달력사진 비슷한 전시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죠. 그래서 좀 구분을 해 봤어요. 자연을 소재로 한 풍경사진이 당연히 나올 것이고, 그 다음에 풍경을 다각화 시키려고 작가 선정에 신경을 썼죠. 박병문 작가와 같이 태백 지역의 폐광처럼 산업화 이후의 풍경이나 인간에 의해 변모된 풍경도 필요할 것이고, 이한구 작가가 찍은 청계천을 일종의 사회적 풍경으로 바라봤으면 싶어서 그런 쪽으로 갔죠. 그 다음에 최항영 작가처럼 태안 기름 유출이라는 환경주의에 입각한 풍경사진도 필요했죠.
몇몇 작품은 정말 좋았어요. 예를 들어서 김상훈 작가는 전쟁터를 풍경사진처럼 찍었죠. 전쟁하면 떠올려지는 공포, 잔혹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죠.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소이탄이 터지는 장면이 불꽃놀이 하는 것같이 보이죠. 일종의 잔혹미죠. 이게 사진이 갖고 있는 묘한 아이러니라서 상당히 재밌었어요.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사진이 말없는 매체이다 보니 설명이 없으면 전혀 엉뚱하게 읽혀지죠. 그리고 작고하신 아버지의 제주 풍경사진 현장을 다시 찾아서 찍은 고경대의 작업과 서울의 구석구석을 5년 동안 걸어 다니면서 찍은 정진호 작품도 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B :
김상훈 작가의 경우, 언캐니(Uncanny)한 거네요. 낯익은 낯설음 같은 거 말입니다.
A :
그렇죠. 저는 그런 점이 재미있었고, 하지권의 ‘절간’ 작업은 나름대로 자기 문법,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랄까. 또 이규철 작가의 경우, 자기 사진에 대해서 무언가를 열심히 말 하고자 하는 것이 느껴지죠. 7,80년대까지도 사진은 한 장르 밖에 없었죠. 밖으로 나가서 발로 열심히 찍은 사진들. 우리 선배들 말을 빌리면 발 냄새나는 사진을 최고로 여겼죠. 초점 정확히 맞추고 연출하지 않은 이른바 비연출, 노 트리밍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사진 미학인줄 알았었죠. 다큐멘터리란 용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 1920년 이후니까 쉽게 얘기하면 다큐멘터리 사진인줄도 모르고 찍었던 것이죠. 그때 찍었던 사진하고 비교해 보면 스타일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네요.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의식이 어디까지 와 있는 건가? 젊은 작가들하고 토론도 해보고 얘기를 들어보면 문제의식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인식이 너무 구태의연한 방식 속에서 갖고 있다는 게 첫 번째 문제점이고, 그 문제의식이 없으니깐 당연히 새로운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없는 거예요.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가하고 사진기자가 찍는 거하고 변별력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C :
김상훈 작가나 김문호 선생님은 기획 의도를 특별히 말을 안 해 줘도, 말 안 해도 기획이 의도하는 문제의식을 제목 하나만 보고도 파악할 수 있는 분들이라 제대로 작품이 나올 수 있을 테지만, 일부 작가는 기획 의도가 제대로 파악이 안 되거나 ‘다큐멘터리와 풍경’에 대한 개념이 안 서 있는 것 같기도 합디다.
A :
그게 가장 큰 지적을 받아야 될 거예요.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런 거는 말 안 해줘도 작가가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해요. 사실은 소재만 가지고 온 거지, 그 소재를 가지고 뭘 이야기를 한다는, 주제의식이 없는 사진들이 있어요.
B :
작업에서 분명히 의도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거나 그게 전혀 엉뚱하게 엇나가버리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A :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주로 사람에 관심이 많아 풍경에는 관심이 없고 잘 안 찍죠. 한국작가만 그런 건 아니고 매그넘 같은 사진가들도 사람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지 주변 풍경, 환경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지요. 공통적인 현상인거 같더군요. 예전에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다큐멘터리 스타일’이라는 전시가 있었는데, 객관적 다큐멘터리와 주관적 다큐멘터리로 양분시켜서 전시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C :
비평가 박평종이 기획해가지고. 8가지 스타일로 나눴는데. 나는 그걸 보면서 왜 이렇게 객관적 다큐멘터리 어쩌고 하는 어폐가 심한 구별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B :
객관적 다큐멘터리, 그게 뭐죠?
C :
그걸 사람들이 좋아하나? 그 전시에서 기획자 박평종에게 말하기를 이해는 쉽게 간다. 무슨 말인지. 당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겠다. 그렇지만 너무 심한 일반화다. 그 안에 있는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성격, 왜 이렇게 자꾸 구분하고, 규정하려고 하냐고 지적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진 비평가나 매그넘 사진가 정도 되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마저 너무 안이하게 생각들을 하는 거 같아요. 다큐멘터리 사진을 억지로 뭔가로 맞추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사람을 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찍는다 라고 하는데, 그거 정말 웃기는 얘기에요. 다큐멘트가 자료라는 말이잖아요? 그러면 그것은 역사학과 인식을 공유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예전에 주로 거시사를 할 때는 자료가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라서 사료로 썼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똥 싸고 오줌 싸고 이런 건 역사적 가치가 없으니깐 그런 부분에 대해선 자료를 삼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60년대 후반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무너져 가지고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만이 자료로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정치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이 역사가 아니다 라는 개념이 나온 겁니다. 거기에는 전혀 감성적인 것도 있을 수도 있고 해서 미시사 개념이 나온 겁니다. 사진과 관련한다면, 요즘 역사학계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지구사 차원에서 다큐를 한다면, 지구 전체를, 풍경의 변화를, 혹은 변화가 아니더라도 그런 관점으로 주제를 가지고 고찰을 한다면 그게 다큐멘트가 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거대한 인간을 초점을 두고 하는 작업인데. 그 안에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요. 사람이 있어야 다큐라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거지요. 결국 풍경도 중요한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된다는 겁니다. 주제 의식이 갖춰진다면.
A :
어떻게 보면 사진은 전부 다큐멘트인데, 문제는 찍으면 다 사진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사진은 본래 내재되어 있는 의미는 없는 거고, 어떤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르게 읽혀지는데, 그게 다큐멘터리 사진이죠. 그래서 여러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를 배제시키려고 ‘풍경’을 거론하였는데 작가들이 풍경을 너무 좁게 받아들인 거 같네요. 풍경이라는 건 일종의 바라보기 개념이죠. 일정하게 거리를 띄어서 조망을 해야지만 풍경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이죠. 다가가서 좁은 시각에서 보는 건 풍경이라 할 수 없죠. 다가가면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생각은 포토저널리즘에서 많이 쓰던 방법이잖아요.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앞에서 목격하고 찍어야지만 좋은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일정하게 거리감을 유지한 사진들을 소개하고자 했던 겁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객관과 주관을 정확히 나누기 어렵다는 겁니다.
B :
말하자면 현장사진, 학습화될 수 있는 사진, 또는 어떤 공적인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 다큐멘터리인데, 그건 어떻게 보면 유진스미스적인 시각이랄까? 전쟁, 미나마타에 관한 것이나, 그게 어디죠? 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한 도시 ... 거기서 몇 십만 장 찍은 거, 그런 시각이 미국의 역사를 말할 때 꼭 필요한 사진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한편으로는 로버트 프랭크와 같은 시각이 정말 살아있는 다큐멘터리,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 시대의 피와 살로 말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라고 봅니다. 미국의 50년대를 로버트 프랭크를 빼고 얘기 못한단 말이지요. 로버트 프랭크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던 풍선장사, 길에 쓰러진 사람, 해변에 있는 탁자 하나, 아니면 지하철 풍경이라든가 햄버거 가게와 같은 정말 사적인 시각으로 본 1950년대를 찍은 겁니다. 거기에서 정말 그 50년대를 얘기할 텍스트를 찾을 수 있는 겁니다. 그때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의식이나 젊은이들 모습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다큐는 그렇지를 못해요. 내가 가장 아쉬운 건 그거에요, 왜 그런 사적인 것을 자기 주관을 가지고 이 시대를 정리하는 다큐를 못하냐는 겁니다.
C :
왜 그랬을까요? 대학에서 가르칠 때도 그렇게 하라고 했던 것은 아닐 테고. 현장사진가 혹은 기자들이 주로 하는 방식이 큰 영향을 끼쳤을까요? 매그넘의 영향일까요?
B :
사진기자들에 대한 선망도 있었을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초미의 관심사가 그거였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민주화 그거를 빨리 쟁취할 수 있느냐? 그때 의식화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잖아요. 그러다보니깐 이 사람들은 차분하게 기록을 갖고 우리의 삶을 보는 거 보다 저 빨리 때려 부셔야 된다, 빨리 뺐어 와야 된다는 강박심에 잡힌 겁니다. 데모현장, 노동현장 등이 전부처럼 생각이 된 거죠. 그래서 지금도 그래요. 강정마을이니 밀양이니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가는 친구 보면 이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놀란 게, 사진을 찍어서 운동의 도구로 삼자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물론 제가 사진을 위한 사진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록’을 가지고 좀 접근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아,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구나에 대해 기록하는 게 좋지요. 그런데 그런 생각보다는 뭔가 더 충격적이고 쇼킹한 거 찍어가지고, 말하자면 선전 포스터화를 어떻게 하느냐, 여기에 더 관심이 많아요. 물론 그런 친구들도 필요하겠죠. 운동을 가열 차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겠지만, 그 안에 여러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는 거 같아요. 말하자면, 어떤 일상성이나 개인적인 시각을 갖고 차분히 이 시대를 보는 그런 다큐가 지금 더 절실해진 게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C :
80년대를 돌아보면 이제 두 가지 현상이 크게 나타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회과학화지요. 모든 사고를 사회과학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겁니다. 그런 책들을 많이 보고 사회과학도서를 많이 내고, 읽었잖아요. 역사학에서도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려는 사회의 진보, 과학화라는 것이 항상 옳다고 생각했어요. 크고 강한 운동 이런 것에 몰두하다 보니깐 그런 거지요. 그런데 이제 사회 전반에서 다원화가 되었습니다. 역사학계는 그런 다원화 차원의 역사를 보는 눈이 보편화 되었는데, 사진계는 아직 안 되어 있더라고요. 사회과학적 거시적인 것이나 문학적 미시적인 것이나 모두 인간을 지향하는 것인데 유독 사회과학 스타일을 다큐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 유독 사진계가 강한 거 같아요. 이질성, 복합성, 중층성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거지요.
B :
나는 사진을 무엇 대 무엇, 두 개가 공존할 때 건강한 다큐가 된다 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프라이빗 뷰(private view)라는 건 중요한 얘기지만 빨리 성과가 안 나타난단 말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축적이 되어야 하니까요. 말하자면 자기 사고와 인문학적인 바탕과 소양과 이런 것들이 갖춰지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한 장 찍어서 빛나는 사진이 아니잖아요. 어디서 소리 지를 수 있는 사진이 아니니깐. 그래서 아마 그쪽이 가는 길도 험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또 어렵고, 그래서 안하는 거 같아요.
A :
스테이트먼트(Statement)와 뷰(View)는 분명히 그 단어 자체가 주는 게 명확하잖아요. 뷰란 본다는 개념이고 진술이라는 것은 무언가 자기 의사가 명확하게 들어간 거, 목적의식이 강한 건데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스테이트먼트로써 작업하는 사진가들이 의외로 많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집단적 폐쇄성에 빠져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테이트먼트로써 작업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다 보니 프라잇 뷰로 보는 작가들이 많이 묻히는 것 같아요.
C :
근데 자세히 보면 그 쪽, 소위 스테이트먼트, 퍼블릭 스테이트먼트적인 사진을 찍은 사람 중에 영향을 크게 남기는 사람도 없어요. 좀 독특한 일이지요.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소위 원로 분들 가운데 그런 쪽 사진을 찍으신 분은 없잖습니까? 그러니깐 참 독특한 현상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어디 갤러리에서 그것을 전문적으로 쳐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 자부심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요. 주먹 불끈 쥐고 하는 사진을 자부심의 원천으로 생각한 반면, 아트 쪽으로 가는 사진을 찍으면 변절하는 걸로 생각하는 정도까지. 그러니깐 누구를 따라서 가는 것도 아니고. 한국 사회가 어떤 의식화되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의 획일성에 반대하면서 또 다른 자기 획일성을 만들어버린 독특한 한국적 현상이지요. 그러니깐 운동권들이 미워했던 괴물, 싸웠던 괴물을 그대로 닮아가는 거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획은 아주 의미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봅니다. 이제는 다큐멘터리 라는 말 자체를 넓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C :
이제 ‘다큐멘터리’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나누었으니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었으면 합니다. 김남진 관장이 기획했던 바, 다큐멘터리가 풍경과 만나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 좋겠는데, 근데 이 ‘풍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말이거든요. 랜드스케이프를 풍경이라고 말 한 것은 일본 사람들이 서양의 개념을 번역할 때 그렇게 말한 거고. 한국 전통에서는 진경산수라고 했습니다. ‘풍경’에는 과학적 뷰의 개념이 들어가 있는 반면, ‘산수’에는 그런 뷰를 갖지는 않죠. 한국에서의 뷰는 과학적인 원근법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런 거 자체가 밀려나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서양적, 과학적 이런 것에 몽땅 쏠려 들어가 버렸단 말입니다. 자기 개인적, 주관적, 감성적인 어떤 기술(describe)이랄까요? 그런 전통이 깡그리 없어져 버렸다는 겁니다. 과학적인 것도 좋지만, 좀 더 문학적이고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이런 것에 대해 관심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B :
그래서, 진경산수를 이야기하셨지만, 풍경화 다큐 사진의 관점에서 풍경화를 보자면,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진경산수라는 게 그냥 그리는 거잖아요. 거기에 사유가 들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린 사람의 사유와 그 진경산수가 만났을 때 소위 말해서 우리가 말하는 다큐에 다큐 풍경 혹은 소셜 랜드스케이프(social landscape)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좀 만들어졌으면 하는 겁니다. 어떤 사진가의 이 사회나 풍경에 대한 사유가 들어가 있는 거 말입니다. 말하자면 인식이 들어가 있는 거요. 다큐멘터리 풍경화? 용어는 좀 이상합니다만.
C :
그런 관점에서 이번 몇몇 작가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사유, 내가 보는 방식의 세계, 이게 없는 사람이 몇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어떤 작가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풍경 그러면 조금 멀리 좀 떨어져서 보는, 내가 그 안에 직접적 개입을 한 것이 아니고 거리두기 방식 그런 게 되어야 하는데, 너무 다가 가기를 한 것도 있고, 구도를 잡을 때도 너무 강하게 틀고 그럽디다. 일반인이 바라보는 구도는 식상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사실은 일반인이 바라보는 구도가 식상한 것은 아닌데, 일반적이라는 것이 나쁜 뜻이 아니잖아요. 너무 틀고 왜곡시키고 너무 포커스 아웃시키고, ‘예술’을 만들려고 하는 그 억지스러움이 있더라고요.
A :
다큐멘터리사진에서 랜드스케이프 개념은 1960년대 말, 나탄 라이언스(Nathan Lyons)가 기획했던 ‘사회적 풍경을 향하여(Towards a Social Landscape)’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왜 풍경이란 말을 썼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죠.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유명인이나 사건, 현상을 찍는 퍼블릭 다큐멘터리에서 벗어나 일상의 소소한 것으로부터 사회를 바라보려고 하는 태도를 더욱 중요시한 것이죠.
C :
사진이라고 하는 것, 직접 가보지 않은 것도 계속 보면 꼭 가봤음직한 기억을 낳게 만드는 겁니다. 기억을 저장시키는 사진이야말로 소중하지요. 그런데 강한 현장 사진은 그렇지가 못해요. 그 현장 자체에 사건 자체에 무게가 있으니까.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을 많이 찍고 볼수록 사람들은 그 현장에 무관심해진다 말이에요. 이미지가 주는 무서움이지요. 예컨대, 밀양 문제를 거론하려면 내 마음에서 주체적으로 감정이 인간을 향한,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겨야 된다는 그러려면 문학적인 게 훨씬 힘이 크다는 것이죠. 자극적으로 강하게, 증거용으로 하면 저 60년대, 70년대 미국에서 다큐멘터리 사진보면 사람이 피곤해진다라는 현상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좀 더 아름답고 매일의 삶을 반추해나가고 생각해내고 하면서 그 현장 사건에 대해서 다가가야 되는데 남이 강제를 해버리니깐 더 멀어진다는 겁니다.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다큐멘터리의 그 강한 것이 사람들로부터 하여금 그 현장으로 멀어지고 관심이 없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드는 게 사실입니다. 너무 심한 얘기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A :
프로의 작업에 대한 태도와 의식은 물론 사진을 통해서 알아야겠지만 작가노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작업노트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찍고자 하는지가 명시되지 있는 작가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죠. 큰 로드맵을 그리는 다큐멘터리 작가가 없는 거죠.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세월호 침몰, 4대강을 작업한 사진들을 보면 저널리스트인 사진기자들이 찍은 사진하고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사진도 아니고, 개인적인 진술에 가까운 건데...
C :
이것도 있는 거 같아요. 명확하지는 않지만 한국 사회가 유독 근대성에 함몰된 현상이 아주 강해요. 근대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모두 아주 강한데, 근대성이라는 게 둘로 쪼개자는 거잖아요. 플라톤의 동굴 안과 동굴 밖 이렇게 나누는 거 말입니다. 그 안에서 자꾸 과학적이고 기록적이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너무 우월하게 생각을 하고 공적인 것이 더 우월하고 이성적인 것이 우월하고 합리적인 것이 더 우월하고 사적인 거 감성적인 것은 열등하다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이게 소위 근대성인데, 유독 한국 사회에 커요. 자기 혼자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건 이것은 뭔가 죄스럽고, 좀 저질이고,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한테 솔직하지 못하다는 거죠. 그러니깐 나만이 바라보는 거랑 남이 바라보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사진하는 사람들 중에 아주 독한 장애인, 이를테면 시장에서 기어 다니는 사람, 눈이 없고 팔이 잘리고 이런 사람만 계속 독하게 찍은 사람도 있어요. 그래 가지고 사람을 위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은 남이 보는 눈과 동일한 눈만 가지고 있죠. 똑같은 마음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보고 읽어내는 나만의 감성이랄까, 이런 걸 키워내는 훈련이 안된 거 같아요. 어릴 때 일기장에 쓸 때부터 내 감성에 솔직해져야 되는데 그것이 전혀 훈련이 안 되어 있는 거지요.
B :
김관장님이 말씀하셨지만 강정을 가고 밀양을 가고 뭐 그분들이 기자가 아니고 적어도 다큐사진가라면 내가 작업노트에 자문을 늘 하는 문제지만, 좀 외람되게 말씀드리자면, 한번 씩은 자문(自問)을 하고 현장을 나왔으면 좋겠어요. 내가 거기 가서 사진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기자들이 찍는 사진하고 뭐가 다른가를 좀 생각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생각의 흐름이 있을 겁니다. 기자들 다 엉터리들이더라, 기록도 안하고, 왜곡시키고, 조중동 비롯해서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내가 가서 직접 찍어야겠다,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비분강개해서 정의감 높아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보다는 정말 현장에 가기 전에 내가 기록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을 잠깐만이라도 생각해보고 좋겠다는 겁니다. 조금 호흡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는 거지요. 아 오늘 센 거 하나 찍어야지? 그래서 페이스북에 올리고 뭐 그런 거지요. 너무 내가 쉽게 평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긴 호흡도 필요하고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표현을 하는 사람은 자기를 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이것을 표현을 해서 뭐 할 건데? 폐가(廢家) 찍어서 뭐 할 건데? 그런, 말하자면 좀 여유라고 그럴까, 그런 호흡이 좀 필요하지 않나, 그런 말씀입니다.
A :
방금 김문호 작가께서 표현이란 말을 하는데,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표현이라는 말은 안 쓰죠. 전통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은 정보전달 매체로 기능을 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현장에서 팩트 중심으로 가는 사람들한테는 표현이라는 말은 팩트에 어울리지 않는 개념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근대성 얘기도 했지만, 지나치게 서구적 합리주의에 매몰되다 보니깐 감성적인 개념을 좀 하위개념으로 바라보고 냉철하고 지적으로 기록하려는 태도를 견지해 왔던 것도 사실이죠. 그러게 보면 표현이란 말은 팩트와 부합되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죠. 자기의견을 가급적 배제하고 객관적인 요소가 강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거 같네요. 오히려 아마추어 세계가 더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설희가 찍은 ‘노모’ 사진이라든가, 박병문의 ‘나의 아버비는 광부였다‘는 자전적이고 스토리텔링이 녹아 들어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네요. 모두가 다 아는 유명인도 아니고 뭐 특별한 사건도 없는데 그런 거 찍어서 사람들이 열광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이건, 되짚어 볼 문제가 아닌가 싶은 겁니다. 왜 일반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안 찍을까? 특이한 것, 어떤 사건, 이벤트 등을 너무 쫓아가는 게 아닌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한다면서 어떤 자기 목적, 도구로 쓰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가끔 들 때가 있어요. 자기 이데올로기적인 도구로써, 그러다 보니깐 표현하고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김문호 작가께서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표현이란 말을 쓴 거는 참 좋은 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B :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해서 단순한 디스크립션(description)으로 끝나선 안 되거든요. 자기가 찍는 의도가 있을 거고 선명하게 부각이 되어야 좋은 사진이라고 하잖습니까? 그러면 분명히 익스프레션(expression)이지 디스크립션이 아니거든요. 근데 지금 공적인 다큐멘터리네 뭐네 한다는 사람들이 자꾸만 그걸 디스크립션이라고 우기는데, 저는 화가 납니다. 그렇지가 않거든요. 어떤 앵글로 어떤 장면을 잡을 때, 벌써 이 프레임을 선택할 때부터 익스프레션이 들어가는 거든요.
C :
이제 작가 선정에 관해서 몇 마디 나누시지요. 관장님, 이번 기획전을 하시는 동안에 주로 세간에 많이 알려져 있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보다는 그렇게까지 많이 안 알려진 분들을 일부로 선정을 하셨는데,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습니까?
A :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유명 작가들까지 제가 손을 잡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인 취향일지 모르지만. 어차피 그분들은 자기 나름대로 인지도라든가 유명세가 있기 때문에 그냥 마이웨이 해도 문제가 없어요.
C :
소위 규정하기 어렵지만 그 잘나가는 분들하고 이번 기획전에 참여하신 분들하고의 어떤 사진적 완성도랄까요, 그런 차이가 있습니까?
A :
물론 완성도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죠. 아무래도 참여 작가들의 연령층이 40대가 많다 보니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는 거죠. 이분들이 앞으로 사진계 주역이 될 사람이고 앞으로 10년 이상 작업을 할 사람들이니깐 어떻게 행보를 펼칠지 탐색해보는 정도였죠. 이번 기획전을 통해 몇몇 사람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딱 드는 작가들도 있고, 가능성이 큰 작가들이 있다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겠죠.
사진가가 무엇을 할 것인가? 참 이것이 중요한 거라고 봐요. 사진이라는 매체가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글도 있고, 그림도 있고, 영상도 있지만 굳이 사진을 택한 사람들은 자신이 사진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자문해 봐야 된다고 봐요. 다큐멘터리 사진은 타인과 소통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봐요. 커뮤니케이션 문제인데, 소통이라는 것이 영원한 화두이고 인류가 갖고 있는 영원한 문제라 볼 수 있어요. 모든 예술에서 소통이라는 말을 빼놓고는 얘기할 다른 말이 없을 거 같네요. 다큐멘터리 사진은 팩트를 가지고서 사람들한테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는 것, 즉 소통하려는 것이지만 그게 작가 뜻대로 잘 안 된다는 것이 문제이죠.
B :
의사소통이 분명하지 않으니깐 소통이 안 되는 거군요. 소통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니깐. 아니 분명하면 호불호가 갈리면 되지요. 나는 관심 없어 라든가 나하고 마음이 맞아 라든가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모호하단 말이죠. 사진하고 파인아트하고 뭐가 다르겠어요? 어떤 거를 파인아트에서 표현하면, 그건 보는 사람 마음이지요. 작가가 이런 의도로 그렸다고 말하지 않잖아요. 다큐도 봉쇄하는 것도 아니고, 배제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표현하는 사람이 클리어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C :
특히 작가노트를 통해서 그리 해야죠. 적어도 제목에서라도. 그런데 작가들이 위외로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B :
작가노트든 제목이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그게 불명확할 때는 글을 쓰기도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너무 일반 아트에서처럼 해석을 완전히 열어놓는다,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작가는 명확하게 표현을 해야 합니다. 했는데도 그것을 다르게 보시는 분들도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표현하는 사람은 명확하게 표현할 책임이 있는 겁니다.
C :
이런 거 같아요. 저도 고민을 많이 해본 것 중 하나인데 아직도 정확하게 풀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파인아트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큐를 하는 것을 시하고 비교를 한 법 해 봅시다. 시는 시어(詩語) 하나, 하나에 자세한 설명이 안 들어가고 시어 하나, 하나가 이어지면서 전체적으로 시인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나타나잖아요. 다큐멘터리는 전체적으로 사진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김문호 선생님 말씀대로,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시를 읽을 때를 보면 그것을 1차적으로 습득하는 동시에 특정한 시어에 딱 꼽혀가지고 전혀 그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랄까, 그런 것에 빠질 때도 잇거든요. 예를 들어서 무슨 몸빼라는 시어가 있으면, 느닷없이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거나. 이렇듯이 사진도 사진, 그 이미지 그 한 장 한 장은 아주 해석의 여지가 넓어지는 즉 자기 자신한테 감성의 해석의 여지가 넓어지는 것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건 시보다 더 크겠지요, 이미지니깐. 말을 안 하니깐. 사진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큰 내러티브를 통해서 무얼 말하고자 한다는 것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B : 그렇습니다. 동의합니다.
A :
그런 관점에서 참여 작가들을 비교분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슬쩍 건드려 보면, 몇 명이나 부합되는 사진을 걸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을 겁니다. 애초 우리가 말하는 바 풍경으로 바라보고 찍은 사진들이 아니었고, 기획 의도에 일부러 맞추어 그런 풍경적인 요소를 긁어모아서 전시했기 때문에 그런 잣대를 들이대면 불편하다 항의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그건 분명히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런 판단을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기획전만 가지고 작가들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고요.
C :
처음부터 의도해서 찍은 거 아니니깐요.
A :
그렇죠. 참여 작가가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찍은 건 아니고, 기획 의도에 부합되는 사진들을 고르다 보니깐 그런 거 같아요. 너무 지나치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 생각이 들어요.
C :
전 이걸 느꼈어요. 전체적으로 표현에 관해 여러 가지의 방식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고 봅니다. 기계적인 것까지 포함하면 더욱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대상을 어떻게 표현을 하느냐에 관한 거지요.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가도 있고요. 너무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것에 치우치게 된다는 부정적인 면도 있는 반면에. 발랄한 도전, 발랄한 시도 이렇게 봐주는 것도 있을 수 있을 거 같아요.
A :
그런데 이번에 김문호 작가를 포함해서 흑백작업도 몇몇 있는데, 색이 갖고 있는 표현력이 무궁무진한데 왜 흑백을 고집할까요?
C :
저는 이런 거 같아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자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서 그런 거 아닐까. 시선을 분산시키기를 바라지 않는 다는 거지요. 시선이 분산되길 원하면, 칼라로 가는 거고. 대체로 다큐멘터리의 사진가들은 시선을 한 쪽으로 모으고 싶을 거예요. 칼라 때문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혀 의외의 대상으로 가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느닷없이 빨간 조끼 입은 사람이 툭 지나가다 찍혔다 말이에요. 그런데 그 무의미한 빨간 색에 보는 사람이 꽂혀 버리면 낭패잖아요. 그렇다고 지우기도 그렇고. 그래서 그 색에 의해서 괜히 내 주제 의식을 뺏겨버리지 않게 하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주제의식이 중요하니깐. 김문호 선생님은 사진가로서 어떠세요?
B :
말씀에 공감이 되네요. 그게 칼라가 되면, 제 자신이 산만해져요, 볼 때. 보는 분들도 물론 그럴 것이고. 칼라 개입이 되다보면 평면화 된다고나 할까? 흑백은 메타포니까, 한 꺼풀 벗겨낸 거잖아요. 말하자면 알갱이를 발라내라, 이런 의미도 있는 거 같고. 그런 거 같아요. 인식을 제한하는 거죠.
C :
해석의 여지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도로 찍은 사진은 칼라로 많이 가는 것 같아요. 포스터모던 쪽으로 가는 거지요. 다큐멘터리스트 특히 사회성이 강한 다큐를 하는 경우 해석의 여지를 넓히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고 완전히 팩트 중심의 기록으로 가는 것도 싫은 경우에 적당한 선이 흑백으로 가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C :
마무리를 짓는 쪽으로 가야겠습니다. 어떻게 섣부른 거일 수 있겠지만, 김관장님은 본인이 기획을 하셔서 말하기가 좀 뭐하겠습니다만, 이번 기획전이 한국 사진사에 작은 파문이라도 하나 남길 수 있겠습니까?
A :
젊은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탐색전이었기 때문에 파급효과나 영향력은 너무 거창한 것 같고, 또한 심도 깊은 기획도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다큐멘터리 영역에 다시 발을 들여놓으면서 어떤 작가들이 있고, 어떤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본 게 큰 소득이라 할 수 있겠죠.
C :
이번에 참여한 사진가로써 사진가들은 이 기획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할까요?
B :
저는 제가 하기 전까지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보았는데,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찍은 풍경사진’은 당연히 다큐적인 풍경이 걸릴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달력사진이 걸려 있는 거야, 그걸 보고 화도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콜이 왔어요. 눈빛 이규상 대표하고 김남진 관장님이 강권해서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 마침 작년부터 풍경화적인 접근을 하고 있었는데 다큐 작가라면 이런 정도는 걸어놔야 되지 않겠냐,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기획 의도를 딱 들었을 때 처음에 바로 감이 왔어요. 아 뭘 원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사실, 사람 얼굴. 피곤해요. 두 장만 보면... 그런 거 말고 서정이 있는 다큐, 사람의 흔적과 우리가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적인 이슈가 담겨져 있는 그런 풍경을 당연히 생각했었죠. 저는 원래 김관장이 생각했던 기획 의도는 제목을 보면서 알았고 굉장히 참신하고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젊은 다큐 작가가 평소 지면이 없어서 못했거나 화랑이 없었거나 세이브 됐던 거를 한번 풀어내 얘기를 외연을 넓혀가지고 자기 작업을 보여줄 타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근데 엉뚱하게 좀 몇 분이 엇나가신 것 같고 ... 하여튼 저는 개념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죠.
C :
다른 분들은 이 기획을 어떻게 보시든가요? 참여 하지 않은 사진가들 말입니다. 말씀들 많이 하셨을 텐데. 엉망이다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B :
처음에 사진가들 중에 이 기획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제 주변에는. 왜 그러냐면 그 사람도 역시, 자기 자신이 가졌던 생각과 작품으로 보여 진 것이 너무 다르니까. 그런데 진행이 되면서 많이 수정이 됐던 것 같기는 해요.
C :
이제 매듭을 좀 짓겠습니다. 모든 게 다 그렇겠지만, 특히 사진이라는 것은 기록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이 아주 묘하게 섞여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사진 그 자체의 정체성도 갈수록 넓어지면서 크로스오버도 많이 일어나고. 그런 차원에서 전통적으로 생각해왔던 ‘다큐멘터리’와 ‘풍경’이 만나는 지점을 기획했다는 것은 사진의 성격이라든가 장르라든가 정체성이라든가 하는 부분에서 좋은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만든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사진가들의 반응이 좋아 처음 예정했던 것보다 12회나 더 연장해서 전시를 했다는 것도 의미 있는 현상이지요. 이번 전시가 한국 사진계가 실력 있는 사진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풍토를 조성하는데 좋은 게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두 분 선생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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