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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호마을 어민들이 들망에 걸린 잔멸치를 걷어 올리고(왼쪽) 천일염을 넣은 가마솥에 잡은 멸치를 삶고(가운데) 건조 과정을 거친 멸치를 포장하고 있다. |
- 고산 윤선도가 유배생활했던 곳
- 한폭 그림같은 빼어난 풍광 자랑
- 드라마 '드림' 촬영세트장이었던
- 작은 성당·등대가 마을 랜드마크
- 500여 주민 중 50여 명 어업종사
- 들망 등 이용 잔멸치잡이로 생계
- 생산한 제품 전국으로 팔려 나가
- 앙장구 알밥은 지역 별미로 인기
부산 기장군청에서 차로 10여 분 정도 길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면 탁 트인 해안가를 품은 기장읍 죽성리 두호마을이 나온다. 기장 멸치축제와 미역·다시마 축제가 열리는 봄과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찾지만, 이맘때에는 한가로운 어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호마을은 130여 가구에 500여 명이 살지만, 어업에 종사하는 이는 50여 명으로 그리 많지 않다.
■고산 윤선도 7년간 유배
두호마을은 두모포로 불린다. 두모포는 부산포의 옛 이름. 지금의 부산 동구청 자리를 예전에 두모포라고 불렀다. 두모포의 원래 위치가 두호마을이다. 임진왜란 이후 두호마을에 있던 군영인 두호포 진영이 부산성으로 옮겨 가면서 이름까지도 그대로 가져갔다. 이후 마을의 별칭이었던 두호가 마을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두호마을은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조선 시대 정철, 박인로와 함께 '3대 가인'으로 칭송받던 고산 윤선도는 두호마을에서 7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두호마을에서 우후효(雨後謠·비온 뒤 노래), 견회요(遣懷謠·마음을 달래는 노래), 아우를 보내며 등 6수의 시조를 남겼다. 노란 학이 나래를 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황학대는 고산이 한과 서러움을 달랜 장소로 유명하다. 황학대에서 마을 정중앙으로 보면 거대한 해송이 자리 잡고 있다. 여섯 그루의 나무가 모여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이는 죽성리 해송이다. 수령이 300년으로 추정되고 직경 30m, 높이가 10m에 달하는 해송은 마을의 수호신인 셈이다.
죽성리 해송에서 다시 북동쪽을 바라보면 산등성이를 따라 돌로 만든 성곽이 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장기간 주둔하기 위해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가 축조한 왜성이다.
세월이 흘러 2009년 인기를 끌었던 SBS 드라마 '드림'의 촬영세트장으로 활용됐던 이국적 풍경의 작은 성당과 등대가 마을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성당과 등대는 두호마을의 깨끗한 바다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다는 게 관광객의 반응이다.
■볶음 반찬용 금멸치
두호어촌계에서 잡는 멸치는 잔멸치다. 맛이 좋아 반찬용으로 인기다. 그래서인지 죽성리 사람은 잔멸치를 '금멸치'라고 부른다. 멸치조업 성수기는 봄과 가을. 이곳 어민은 그물을 물속에 펼쳐 놓고 잔멸치가 그물 위에 모이면 들어 올려 잡는 '들망' 어법을 사용한다. 해가 진 밤부터 해가 뜨기 전 새벽까지 바쁘다. 야간조업을 하는 것은 그물을 펼친 뒤 백열등의 불빛으로 멸치를 유인하기(집어) 위해서다.
들망 조업을 할 때는 세 명이 한 조를 이룬다. 배 오른쪽, 앞뒤로 설치된 도르래를 이용해 그물을 들어 올리기 때문에 많은 인력이 필요로 하지 않다. 도르래 양쪽에 한 명씩 배치돼 그물과 연결된 밧줄을 끌어 올린다. 선장은 배의 동력을 관리하면서 그물을 끌어 올릴 시점(타이밍)을 맞춘 뒤 양쪽 도르래에 있는 선원 가운데로 가서 그물을 같이 올린다. 그물 한 쪽으로 멸치가 모이면 뜰채로 건져낸다.
봄, 가을에 들망 조업을 할 뿐만 아니라 정치망을 설치해 1년 내내 멸치를 잡고 있다. 정치망은 함정 어구의 한 종류다. 함정 어구는 일정한 장소에 설치해 둔 어구에 들어간 어류가 빠져 나오지 못하게 가둬 잡는 방법을 말한다. 설치된 정치망은 오전 6시와 오후 3시 하루 두 번 들어 올린다. 잔멸치뿐 아니라 잡어도 올라온다. 잡어는 근처 횟집이나 시장에 팔린다.
들망과 정치망으로 잡은 멸치는 귀항하자마자 멸치를 삶는 큰 가마솥이 있는 멸막으로 옮겨진다. 멸치가 도착하기 전부터 가마솥에 천일염을 넣은 물을 팔팔 끓인다. 차에서 내려진 멸치는 잡어와 구분한 뒤 바로 가마솥으로 들어간다. 멸치가 잘아 오래 삶지 않는다. 다 삶아진 멸치는 채반에 펼친 뒤 건조기에 넣어 말린다.
김흥익 두호어촌계장은 3일 "두호마을과 인접한 대변항에 멸치배가 입항해 그물에서 멸치를 털어내는 작업을 보고 기장의 어업이 대변항과 비슷할 것으로 착각할지 모르겠다. 잔멸치를 어획하는 두호마을과 젓갈용 멸치를 잡는 대변항은 어업 방식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아는 사람만 찾는 앙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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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장구(말똥성게) |
1, 2월에는 평소 물질을 잘 하지 않던 해녀들이 아침부터 바닷가로 모인다. 아는 사람만 즐기는 '앙장구'를 잡기 위해서다. 앙장구의 정확한 이름은 말똥성게. 앙장구는 다른 성게와 달리 밤색 가시가 있고, 가시의 길이가 짧은 편. 대개 성게의 가시가 뾰족하고 날카로워 찔리면 아픈 데 비해 앙장구는 가시가 부드러워 손으로 집어도 다치지 않는다.
앙장구는 특유의 향과 맛이 뛰어나 예전부터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다른 해산물보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어 해녀들도 앙장구를 많이 먹지 못했다고 한다. 기장 지역 몇몇 식당에서 앙장구 밥을 메뉴로 내놓아 별미로 맛볼 수 있다.
# 차별화된 축제·유적 즐비, 스토리텔링 가미하면 훌륭한 문화관광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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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드림' 세트장이었던 성당과 등대. |
두호마을은 다른 어촌마을과 비교하면 왜성, 황학대, 해송 같은 역사 유적지와 기장 미역축제, 풍어제 같은 풍부한 문화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 드라마 '드림' 세트장이 있어 사진작가도 찾고 있다. 두모포나 죽성 성당을 배경으로 촬영된 사진을 보고 있으면 감탄을 자아낼 만큼 마을의 풍광이 아름답다. 게다가 당일 새벽에 갓 잡아 올린 신선하고 다양한 해산물도 즐비하다. 부산을 떠나지 않아도 어촌 마을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두호마을을 직접 가보면 각각의 관광자원을 이어줄 연결고리가 부족함을 알 수 있다. 마을 명소에는 안내 표지판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관광객이 아닌 낚시꾼만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관광산업도 기존 단순한 문화유적이나 휴양지만으로는 더는 관광객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여행에도 이야기가 있는 스토리텔링이 대세가 됐다.
관광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규모의 예산을 들여 건물을 짓거나 새로운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관광자원을 하나의 스토리로 잘 엮자는 얘기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말이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두호마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홍보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어촌 특유의 폐쇄성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두호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어촌계를 중심으로 관광프로그램을 만들고, 스토리텔링을 가미할 필요가 있다.
공동취재=부산대 사회학과 김민규 이정수 최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