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心修行章
강의를 시작하며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은 최초로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한 사람이 지켜야 할 덕목을 적은 기본 규율서로, 고려 중기 지눌 스님이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신라
원효 스님이 쓴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고려 후기 야운野雲 스님이 지은 「자경문自警文」을 합본한 책입니다. 그중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은 보리심을 발한 사람의 수행에
관한 글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발심한다는 것과 발심을 해서 수행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의 전체 내용은 발심과 수행에 관한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동海東은 우리나라를 뜻하지요. 중국에서 볼 때 바다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사문沙門은 구도求道하는 구도자, 도를 구하는 자, 모든 번뇌를 쉬어 버리고 부지런히 불법을 닦아 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원효元曉는 으뜸가는 새벽, 첫새벽이라는 뜻이 됩니다. 원효 스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분이라 길게 설명드릴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조금은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원효 스님은 617년에 태어나셔서 686년에 열반하셨습니다. 불교사적으로는 신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큰스님이라고 말하지만, 한국불교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뛰어난 사상가,
성자로 추앙해도 결코 손색이 없습니다.
불교 역사 전반을 통해서 보면, 물론 인도에는 부처님의 훌륭한 제자들이 많았고, 많은 저술과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스님들이 많았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한 스님이
100권 이상을 저술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인도에는 용수보살龍樹菩薩, 중국에는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가 있으며, 우리나라는 원효대사가 있습니다.
원효 스님은 신라 진평왕 39년 압량군 불지촌, 지금의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여러 가지 신기한 상서가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어릴 때의 이름은 서동이었습니다.
원효 스님은 열 살에 출가를 했습니다. 옛날 큰스님들은 늦게 출가를 해서 성도하신 분들도 계십니다만, 아주 어려서 출가를 해서 도를 이루신 분들이 많지요. 불교에서는 동진출가를
알아줍니다. 그것은 세속의 때가 묻기 전 아주 맑은 영혼, 총명한 시기에 불교 공부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효과가 크기 때문이겠지요.
원효 스님도 열 살에 출가를 해서 천재성을 발휘했지요. 특별한 스승은 없었다고
전해집니다만, 그 당시 유명한 큰스님과 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34세에 당나라에 유학을 가는데 의상 스님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서 요동까지
갔으나, 국경수비대에 붙들려서 되돌아 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 10년쯤 국내에서 공부하시다가 마흔다섯 살 나이에 다시 의상 스님과 당나라 유학길에 나섰습니다. 그때는 해로를 이용하기로 작정을 하고 백제 땅이었던 당주계唐州界라는 항구에 당도했는데, 날은 어둡고 비바람은 치고 해서 어느 움막 같은 데 들어가 잠을 자게 되지요.
잠결에 목이 말라 일어나 물 한 바가지를 아주 달게 마시고는 기분 좋게 단잠을 잤어요.
자고 일어나 어젯밤에 마신 그 바가지 물을 보니 해골바가지 물이더라 이거지요.
그 해골바가지에는 아직도 피고름 찌꺼기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거기에 빗물이 고인 것을 맑은 물로 생각하고 마셨단 말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비위가 상해 토吐하다가 크게
깨달았다는 겁니다. 어제 저녁에는 물이라고 생각해서 참 달게 마셨는데, 오늘 아침에는
같은 물인데도 불구하고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라고 생각하니 어찌하여 이렇게
구역질이 나고 토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가? 이것이 도대체 무슨 도리인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이 한 마음의 조작이다! 이렇게 해서 마음의 도리임을 깨닫지요.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심멸즉촉루불이心滅則髑髏不二 [髑 해골 촉, 髏 해골 루]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심외무법 호용별구心外無法 胡用別求
한 마음 일으키니 갖가지 분별 생기고
한 마음 거두니 해골과 바가지가 둘이 아니네.
삼계가 오직 마음이고, 만법이 오직 마음의 작용일 뿐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구할 것이 있으리오.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다면 무엇하러 이 고생을 하면서 당나라까지 가서 법을
구한단 말인가?”
이와 같은 이치를 통절하게 깨닫고는 그 길로 당나라 유학길을 포기했지요.
유학길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닫게 된것입니다.
의상 스님은 그런 경험을 못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당나라 가는 배를 얻어 타고는 유학을
갑니다. 한 사람은 유학을 가게 되고 한 사람은 유학의 길에서 다시 돌아오게 되지요.
두 분이 신라라는 같은 조건에서 그동안 다 같이 불교를 섭렵하고 공부하였는데,
원효 스님은 거기에서 돌아오게 되고 의상 스님은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지요.
중국에 건너간 의상 스님은 화엄학의 대가인 지엄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오기 전 지엄 스님으로부터 『화엄경』의 요지를 써 내라는 명을 받습니다.
요즘 말로는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하라는 거죠. 그것이 바로 「법성게」입니다.
이를 본 지엄 스님은 “네 법성게가 화엄대경보다 더 수승하다”고 크게 찬탄讚歎했다고
합니다. 지엄 스님 밑에 현수법사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의상 스님에 대해 흠모하며
“큰스님께서 제 곁을 떠나신 이후 주야로 스님을 뵙고자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언제나 스님을 만나서 스님의 큰 법을 얻어 들을 날이 있겠습니까?” 라는 편지글이
남아 있습니다. 의상 스님은 귀국하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찰 범어사, 부석사 등을 짓고, 부석사에 자리 잡아 많은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원효 스님은 신라로 돌아와 경주에 머물면서 당신의 깨달음에 따라 가르침을 펴고 저술도
많이 하게 됩니다. 특히, 원효 스님의 저술은 백여 경에 240권이나 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많습니다.
원효 스님은 그렇게 사시다가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 우리나라 유교의 시조로 추앙되며
성인으로 받들어지는 설총이라는 성자를 낳게 되지요. 이때 그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아유탱천주我有撐天柱 [撐 고이다, 버티다, 탱]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柯 자루, 가] [斧 도끼, 부]
내게 하늘을 고이는 기둥이 있으니,
누가 자루 빠진 도끼가 없느냐?
원효 스님은 파계한 승이 되어 머리를 기르고 복성거사, 소성거사라며 스스로를 거사라
칭하면서 거사의 몸으로 설법도 하고 저술도 남기며 살았습니다. 원효 스님의 저술 중
지금 전해지고 있는 것은 기록에 남아 있는 것에 비하면 10분의 1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중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과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는 참으로 뛰어난
가르침이지요. 원효 스님의 저술 중 대표적인 것입니다. 또 『화엄경소초華嚴經疏抄』,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를 썼던 기록 등등 팔만대장경을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며, 당신의 의견을 혹은 길게 혹은 짧게 해설한 업적을 남겼던 분입니다.
원효 스님은 스스로를 복성거사卜姓居士, 즉 아래 하下 자도 못 된다는 의미로 복卜 자를
쓰면서 지극히 낮은 사람으로서 평생을 만행으로 보냅니다. 그중 사복성자蛇腹聖者,
즉 땅꾼과 거지들의 왕과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원효 스님이 사복성자의 어머니 시체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막생생야고莫生生也苦
막사사야고莫死死也苦
나지 말라. 나고 산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죽지 말라. 죽는다는 것도 괴로움이다.
그러자 사복성자는 잔소리가 많다며 ‘생사개고生死皆苦, 생사가 모두 괴로움이다’라고
말합니다. 원효 스님은 사복성자의 말에 한 방망이 얻어맞고 또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렇게 원효 스님은 상류 계급의 사람뿐만 아니라 하층 계급까지 종횡무진 다니면서
교화하셨습니다. 교화의 내용은 발심수행과 화합에 관한 것이 중심이었지요.
원효 스님의 사상을 정리하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심사상一心思想, 화쟁사상和諍思想, 무애사상無碍思想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심사상이란 모든 진리는 결국 하나의 진리를 향해 있다는 것이죠. 원효 스님은 당나라
유학길에 머문 무덤 속의 경험을 통해 ‘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인식할 뿐이다’, ‘심외무법心外無法 호용별구胡用別求,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것이 있으랴’하는 일심사상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화쟁사상이란 어떤 문제에 두 가지 이상의 다른 견해가 있을 때 서로 다른 견해를 융섭의
이념에 의하여 화해시키고 회통시켜 큰 법의 바다로 귀납시키는 사상입니다. 융섭이란
서로가 받아들여 화합하는 것이죠. 원효 스님이 추구하였던 화쟁의 방법은 첫째는 불교
경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둘째는 특정한 이론과 논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며, 셋째는 상반되는 이론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이의도 제기함이 없이 긍정과
부정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깨달음의 경지로 이끌어 쟁론을 화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무애사상은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한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뜻합니다. 원효 스님은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원효 스님은 부처와 중생을 둘로 보지 않았으며, ‘무릇
중생의 마음은 원융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니, 태연하기가 허공과 같고 잠잠하기가 오히려
바다와 같으므로 평등하여 차별상差別相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효 스님은
철저한 자유가 중생심衆生心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고, 스스로도 철저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던 거죠.
우리가 공부하려는 「발심수행장」도 그분의 많은 저술 중 하나인데 참으로 짧습니다.
짧으면서도 천하의 명문名文으로 한국의 고전 중에 손꼽히는 글이지요.
「발심수행장」은 출가한 사람과, 또 출가하지 않고 사회에 있으면서도 수행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내어 불교적인 관점에서 인생을 의미 있고 보람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글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첫댓글 우리가 불법을 만난 인연을 감사히 여겨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되고 큰 가치를 누리면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부터 대강백으로 일컬어지는 무비 큰스님의 강의로 원효 스님의 "보리심을 발한 사람의 수행을 위한 기본 규율서"
'발심수행장'을 올립니다. 법우님들, 발심을 바탕에 두고 정진해 나가면 나날이 지혜와 자비심이 증장하고 마음과 몸이
안락함을 이룰 수 있게 되겠지요? 많이들 오셔서 같이 공부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너무수고많으시네요.~.공부.열심히하도록.발심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바쁜 중에도 이렇게 오시니 누구보다도 반갑습니다.
우리 같이 걸어가요..^^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또 한 과목이 늘었지요?
천천히 걸어갈께요..
공부하는 모습만 봐도 좋아요..^^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을
무비스님의 강의로 듣게 되니 감사합니다.
붇다사는 행복한 절입니다.
산수월보살님의 노고에 늘 감사드립니다.
네 스님.. 온 힘을 다해서
정성 껏 올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
늘~ 정진하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잠은 언제 주무시는지~ 건강도 살펴가면서 공부하세요...^^
감사합니다^*^
발심수행장도 너무 좋지요?
부담갖지 말고 천천히 하세요...^^
후배들이 나태 해 질까 늘 신경 써 주시고
수고 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셨군요. 많이 기다렸습니다..
매일 오시는 겁니다? ^^
평소에 원효스님을 가장 존경했는데,
스님의 발심수행장을 공부하게 되어 넘 기쁨니다.
감사합니다.^^()
바쁘신 분이 빠지지 않고 오시네요.
많이 힘이 됩니다...^^
늘 가르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배우겠습니다~~ ^^
매일 오시니 든든하고 힘이 납니다...^^
전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시간되느데로 공부하겠읍니다.
어서 오십시요..일향 님!!
시간 나는대로 언제든 오셔서 마음 껏 공부하십시요.
붇다사 일주문이 항상 열려 있듯이
우리 카페 공부방도 항상 불이 밝혀져 있습니다..
천천히 따라 오십시요....^^*
차근차근 챙겨보갰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