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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동문학비평사 자료집 1』을 발간할 당시, 판독이 불가했던 것 중에서 새롭게 판독한 것과 오자 및 탈자를 아래와 같이 바로잡습니다.
28쪽: 글자 수정
“(雜俎)讀 『少年』 雜誌”, 『西北學會月報』 제10호, 1909년 3월호.
『少年』 雜誌는 我國 諸種 雜誌 中에 高尙 資格과 特殊 價値가 有 者라. 此를 愛讀 少年 諸君은 忠愛義理의 良心도 滋長 것이오. 世界 見聞의 知識도 增進 것이오. 冒險猛進의 勇氣도 奮發 것이니
31-32쪽: 글자 수정 및 각주 부여
崔南善, “(少年時言)『少年』의 旣往과 밋 將來”, 『少年』 제3년 제6권, 1910년 6월호.
執筆人의 생각에는 다음 卷으로 『少年』에 한 “새 紀元”를 그으려 하노니 이 機會를 臨하야 簡短히 우리의 旣往과 밋 將來를 말하고자 하노라.
──『少年』 發行의 動機──
精神病學者의 말을 드르면 무슨 事物에 對하야서던지 남달니 思・行을 두난 者는 다 狂人이라 하야 誇大狂도 잇고 妄想狂도 잇고 寫眞狂도 잇고 自行車狂도 잇다 하나니 그러면 우리는 免할 수 업난 新報雜誌狂이라.
내가 新聞을 닑기 始作하기는 十歲 前부텀이라. 爾來 十數年間에 하루도 報紙에 對한 精誠이 懈弛한 일이 업섯슬 ᄲᅮᆫ더러 오랜 동안에 생각이 讀者로부터 漸漸 記者로 나아가 機會만 잇스면 한번 報舘業을 일삼아보리라 하얏스니 最初의 新聞 寄稿는 十二歲 時라. 堂堂한 政論 ═ 더욱 革新策 十二條를 만들어 아모 新聞에 投書하얏스나 이것은 不幸히 沒書의 慘을 遭하고 其後 三年만에 다(이상 12쪽)시 달은 新聞에 自請으로 寄稿家가 되야 이번에는 多幸히 容納함을 엇어 나의 報紙上 生涯가 始初되니 이ᄯᅢ의 깃거운 법은 形喩하기 말이 업섯슴은 毋論이라. 이러하야 同情 範圍의 極히 좁은 少年의 가슴에는 冕旒冠 아니 쓴 帝王 된다난 어림업난 바람이 속 깁히 박엿노라.
그러나 이ᄯᅢᄭᅡ지의 나의 報紙에 關한 智識은 極히 淺薄한지라. 눈에 지낸 거스로 말하야도 內地에서 刊行하난 ᄭᅩᆯ갓지 아니한 두어 가지밧게는 上海에 在留하난 西人들의 漢字로 刊行하난 『萬國公報』, 『中西敎會報』 兩種과 日本에서 刊行하난 『大阪朝日新聞』, 『萬朝報』와 밋 『太陽』, 『早稻田文學』의 舊舊紙밧게는 다시 본 것이 업더니 밋 十五의 秋에 日本으로 건너가 본즉 놀납다. 그 出版界의 우리나라보담 盛大함이여. 한 번 발을 冊肆에 드러노흐면 定期刊行物・臨時刊行物 할 것 업시 아모것도 본 것 업고 ᄯᅩ 그 等物의 內容이나 外貌에 對하야 조곰도 批評할 만한 知見업난 눈에 다만 多大하다, 宏壯하다, 璀璨하다, 芬馥하다, 一言으로 가리면 엄청나다의 感이 날 ᄲᅮᆫ이라, 무엇에 對하야서던지, 무슨 구경을 할 ᄯᅢ에던지 우리나라 事物에 比較해 보아 무슨 한 생각을 엇은 뒤에야 마난 이 사람이라, 이를 對할 ᄯᅢ에도 그 압헤 한번 머리를 숙엿고, 숙엿다가 한숨 쉬고, 한숨 쉬다가 주목 쥐고, 주목 쥘 ᄯᅢ에 곳 “이 다음 機會가 잇슬 터이지” 하난 밋지 못할 空望을 ᄭᅧ안고 스스로 寬慰함이 잇섯노라.(이상 13쪽)
自己의 손으로 親히 한 報紙의 일을 맛하보기는 十七의 ᄯᅢ에 日本 東京에 잇난 <大韓留學生會>로서 刊行하던 『大韓留學生會報』를 한두달ㅅ 동안 看事함이니 그리 하난 中 病에 걸녀 오래 呻吟하다가 畢竟 몸이 나라로 도라오고 ᄯᅩ 그 月報도 仍卽 停廢하얏스며 그 後로는 別노 筆硯을 親하지 아니하얏다가 무슨 세 가지 目的으로 新文館이 舍兄의 손에 開設됨애 이에 宿年의 所望을 여긔서나 펴볼ᄭᅡ 하야 一臂의 힘을 더할 次로 舘員이 되얏노라.
내가 海外에 놀매 남과 갓히 學校工夫도 아니하얏고 ᄯᅩ 遊歷見學도 힘드리지 아니하얏스며 오즉 여러 해 두고 이리로 도라 왓다가 그리로 도로 가난 동안에 彼我의 百般 程度를 보고 가만한 中엔 마음을 傷하고 드러나게는 勇氣를 길을 ᄲᅮᆫ이라. 나는 泰西의 實物을 보지 못하얏스니 거긔와는 比較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나 日本 갓흔 데는 多少 본 것도 잇고 들은 것도 잇슨 즉 ᄯᅢᄯᅢ 일일노 우리나라 社會와 人心의 狀態와 比較해 보고 간절한 實感이 업지 아니한지라, 내가 처음 日本으로 갈 ᄯᅢ는 日俄戰爭의 初期 ─ 곳 日本 新文明이 正히 過渡期의 한 ᄭᅳᆺ에 올으려 한 ᄯᅢ라. 爾來 五六年間에 戰勝과 其他 地位 上進 等 여러 가지 일에 奮激된 人心이 일과 물건을 다닥다리 난 대로 거의 急轉直下의 勢로 向上進步의 實績을 보이니 눈에 보이난 바와 귀에 들니난 바가 남달으게 非常히 神經을 衝激하야 아모리 하야도 구경ㅅ군의 마음으로 모든 事(이상 14쪽)象을 接할 수가 果然 업스며 이러케 神經의 感受가 漸漸 異常하야 지난 同時에 “나라로 도라가라! 나라로 도라가라.” 하난 소리가 無常時로 귀의 鼓膜을 ᄯᅡ리난지라. 大抵 나로 말하면 人格의 感化로 最初에 밧은 것은 陶淵明이니 그럼으로 아즉ᄭᅡ지도 마음의 어늬 한 구석에는 隱君子的 色態가 保存하야 잇거니와 뒤에 新文明의 潮流에 휩쓸녀 들어가서 ᄯᅳ며 잠기며 그 波動을 感함에도 한 녑흐로는 아모개 아모개와 갓흔 野心 ─ 더욱 우리 慾으로 하면 知覺 적은 젊은 사람이 다 한번식 가져 보난 온갓 方面에 對하야 다 自己 存在의 意義를 굿게 表하리란 野心이 勃勃하면서도 拙한 書生의 本色으로 心은 弱코 膽은 怯하야 ᄯᅩ 한 녑으론 “예라 그만 두어라. 남몰으게 工夫나 한 數十年 하야서 내 몸은 궁등이를 슬슬 ᄲᅢ여도 남들은 連方 잡아다니도록 하야나 보자.” 하기도 하고 ᄯᅩ 一時는 社會改革家로 一世를 公敵하야 보겟다 하기도 하며 新文藝建設者로 半島文學으로 하야곰 世界上에 光色이 잇게 하야 보겟다 하기도 하야 消極積極이 一張一弛하고 出世遯世가 相勝相負하야 아직ᄭᅡ지도 마음에 愛國이라고 잇난 것은 모든 抽象的 事爲로써 實踐할야 할 ᄲᅮᆫ이오 自己나라의 現在와 밋 將來엣 地位라던지, 사람이란 얼마만콤 時代의 牽制를 밧난다던지, 自己가 오늘날 이판에 난 것이 읏더한 意義가 잇다던지 하난 着實한 方面으론 조곰도 생각이 가지 아니하고 ᄯᅩ 더욱 自己의 周圍가 읏더한 모양이라고 하난데 對하(이상 15쪽)야는 果然 觀察이 極히 幼穉하얏슴으로 自己의 時代는 읏지 되얏던지 一念에 생각하난 것이 오즉 自己를 發展하기 爲하야 自己를 發展할 일이라. 그리하다가 한 살 두 살 나도 더 먹고 한 번 두 번 國勢도 더 보난대로 이ᄯᅢᄭᅡ지 全力을 드려 建築한 幻界樓閣은 하로 아츰에 弱하기 ᄶᅡᆨ이 업시 문허지고 漸漸 心馬의 길이 조곰式 變하야 畢竟에는 “나라로 도라가라.”란 생각을 發하게 되고 ᄯᅩ 그런 말에 귀를 기우리게 되야서 저 혼자 큰 決斷한다 하난 것이 갈온, 나는 世界一般에 對하야 直接으로 무엇(Some-thing)을 寄與할 만한 天才도 아닐지 몰으고 ᄯᅩ 더욱 그러한 자리를 이 世上에 엇은 者가 아니라, 갈온, 죽난 者를 보고 돈 모으기 急하다고 몰은 체 하난 것은 仁人의 일이 아니라, 갈온, 地臺가 문허진다 기동 세우기 애쓰지 말고 먼저 이것부터 修築하여라, 갈온, 너는 날 ᄯᅢ에 國民으로 낫다 너는 살기를 國民으로 하여야 한다 하야 이러케 나라로 도라온 뒤에는 더욱더욱 新文館을 爲하야 盡力코자 하얏노라.
그러나 도라와 보니 이 생각하던 ᄯᅢ와 이 일하려 할 ᄯᅢ가 이믜 갓
(각주)
『萬國公報』는 중국 청말(淸末)에 미국인 선교사 알렌(Allen, Young John)이 중국어로 출판한 잡지이다. 1868년 9월 창간시에는 『敎會新聞(The Church News)』이라는 이름의 주간지였다가, 300호를 계기로 1874년 9월 이후 1883년까지 월간지 『萬國公報(The Chinese Globe Magazine)』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6년 휴간 후 1889년 2월부터는 『萬國公報(Review of the Times)』라고 영문 표제를 고쳤다. 영국, 미국,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조직인 광학회(廣學會)의 원조로 1908년까지 228책이 출판되었다.
『中西敎會報』는 1891년 알렌과 리차드가 광학회에서 창간한 기독교 선교를 위한 잡지다.
『오사카아사히신분(大阪朝日新聞)』은 1889∼1940년 오사카에서 발행된 『아사히신분(朝日新聞)』이다. 1879년 오사카에서 창간된 『아사히신분』은 도쿄 진출을 위해 1888년 『메자마시신분(めざまし新聞)』을 매수하여 7월부터 『도쿄아사히신분(東京朝日新聞)』으로 개제 발행하였다. 그에 따라 1889년 1월 3일부터 오사카는 『오사카아사히신분』으로 개제하였다.
『요로즈초호(萬朝報)』는 일본의 일간신문이다. 1892년 구로이와 로이코(黒岩涙香)가 도쿄에서 창간하였다. 1940년 10월 1일 『도쿄마이유신분(東京毎夕新聞)』에 흡수・폐간되었다.
『다이요(太陽)』는 1895년 1월, 하쿠분칸(博文館)에서 창간한 월간 종합잡지이다. 1928년 2월, 제34권 제2호(통권530호)까지 발행하고 폐간되었다. 주필은 쓰보야 젠시로(坪谷善四郎)를 처음으로, 다카야마 린지로(高山林次郎=高山樗牛), 도야베 센타로(鳥谷部銑太郎=鳥谷部春汀), 우키타 가즈타미(浮田和民), 하세가와 세이야(長谷川誠也=長谷川天渓) 등이 맡았다.
『와세다분가쿠(早稲田文学)』는 1891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가 주재하여 도쿄전문학교 문학과의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제2차로 시마무라 호게쓰(島村抱月)가 주재하여 자연주의의 아성으로 발전하였고, 이후 다니자키 세이지(谷崎精二)가 이어받아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여러 차례 다시 발간되었다.
‘최남선의 나이 15세 되던 가을’이란 뜻이다. 1904년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부립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에 입학하였다. 최남선은 1890년이므로 1904년이면 세는나이로 15세가 된다.
‘최찬(璀璨)하다’는 ‘빛이 번쩍거려서 찬란하다.’라는 뜻이고, ‘분복(芬馥)하다’는 ‘매우 향기롭다.’라는 뜻이다.
『大韓留學生會學報』는 1906년 9월 일본 도쿄에서 조직되어 1908년 1월까지 활동한 유학생 단체 <대한유학생회>의 회보이다. 편집은 최남선이 맡았고, 주요 필진은 최남선, 변영주(卞永周), 윤태진(尹台鎭), 박승빈(朴勝彬), 윤정하(尹定夏), 이승근(李承瑾), 강전(姜荃), 한흥교(韓興敎), 김기옥(金淇玉), 이한경(李漢卿), 최린(崔麟) 등이었다.
※ ‘백반(百般)’은 ‘여러 가지나 온갖 것’이란 뜻이다.
36쪽: 글자 수정
原來가 이 雜誌는 少年을 對手로 하난 것이니 措辭搆想를 平易케 하여야 하난(이상 19쪽) 것처럼 談道說理도 ᄯᅩ한 低近케 하여야 할지라. 그럼으로 언제던지 이 雜誌에는 宏大한 論文이나 深邃한 學說이 揭載되기가 稀罕할지오, ᄯᅩ 달은 나라에 그 나라에 必要한 少年雜誌 編輯法이 잇슬 것 갓히 우리나라에는 毋論 우리나라에 必要한 編輯法이 잇스니 이것을 만일 모도다 달은 나라와 比較하야 評論할진댄 或 拙할 것이오 或 蕪할 것이오 或 幼穉할지라. 그러나 우리는 今後로는 더욱더욱 過渡時代 우리 靑年의 一般的 良師友 되기를 期하야 誠力을 殫竭하려 하노라.
67쪽: 각주 내용 수정
천도교 원년(포덕 원년) 4월 5일을 “천일기념일(天日紀念日)”이라 하는데 1860년이므로, 63년은 1922년이 된다.
71쪽: 글자 수정
益善洞 六一 고요한 방에서 「夢幻의 塔에서」란 글을 닑으며 두어 자 씀니다.(이상 100쪽)
※ 소파(小波)의 「夢幻의 塔에서−少年會 여러분ᄭᅦ」(『天道敎會月報』 제138호, 1922년 2월)를 가리킨다.
77쪽 각주 36번: 글자 수정
등의 작품이 있고, 191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82쪽: 글자 수정
日本童話라 하고 歐羅巴 各國에 飜譯되어 잇는 「猿의 生膽」이라는 有名한 童話는 其實 日本 固有한 것이 아니고 朝鮮童話로서 飜譯된 것인데 朝鮮 鼈主簿의 톡기를 원숭이로 고첫슬 ᄲᅮᆫ이다.(『東國通史』에 보(이상 24쪽)면 朝鮮 固有의 것 가트나 或時 印度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되는 바 아즉 分明히는 알 수 업다.) 그 밧게 「혹쟁이」(혹쟁이가 독갑이에게 혹을 팔앗는데 翌日에 ᄯᅡᆫ 혹쟁이가 ᄯᅩ 팔라 갓다갸 혹 두 個를 부처 가지고 오는 이약이)도 朝鮮서 日本으로 간 것이다. 그런데 이 혹쟁이이약이는 獨逸, 伊太利, 佛蘭西 等 여러 나라에 잇다 하는데 서양의 이 혹쟁이이약이는 그 혹이 顔面에 잇지 안코 등(背)에 잇다 하니 ᄭᅩᆸ추의 이약이로 變한 것도 興味잇는 일이다. 이 外에 日本古書(『宇治拾遺物語』)라는 冊에 잇는 「허리 부러진 새」라는 童話도 朝鮮의 「흥부 놀부」의 譯이 分明하다.
104쪽: 각주 내용 수정
‘丁 氏’는 정병기(丁炳基), ‘姜 氏’는 강영호(姜英鎬), ‘새ㅅ별 잡지사 박 선생님’은 『샛별』의 주간을 맡았던 박홍근(朴弘根), ‘마 선생님’은 마해송(馬海松)을 가리킨다. ‘童謠의 鄭 氏’는 ‘정순철(鄭淳哲)’이고, ‘림 선생님’은 분명하지 않으나, 1917년 개성(開城)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새ㅅ별』의 필진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한 ‘임영빈(任英彬: 1900∼1990)으로 보인다.
124쪽: 각주 내용 수정
十二號(新年號)에는 「두더쥐 혼인」 이약이와 新上 新年大會가 모조리 자미잇섯고 특별히 호랑이 잡기 작란감이 잇서서 야단들이엿고 十三號에는 동요 짓는 법과 自由畵 그림 ᄲᅩᆸ기가 잇섯고 方 선생님의 선물 아닌 선물과 柳 先生님의 「조고만 복상자」와 童謠 곡됴가 둘이나 잇서서 大好評이엿슴니다. (이상 27쪽)
※ 버들쇠 작요, 윤극영 작곡의 <고드름>(1쪽)과 뒷면 속지의 <설날>을 가리킨다.
179쪽: 한자 수정
◇… 그 다움에 童話가 가질 요건은 二兒童에게 愉悅을 주어야 한다는 것임니다. 兒童의 마음에 깃붐과 유ᄭᅫ한 흥을 주는 것이 童話의 生命이라고 해도 조흘 것임니다. 敎育的 價値문뎨는 셋재 넷재 문뎨고 첫재 깃붐을 주어야 하는 것임니다. 교육뎍 의미를 가젓슬 ᄲᅮᆫ이고 아모 흥미가 업스며 그것은 童話가 아니고 俚諺이 되고마는 것임니다. 아모러한 교육뎍의 의미가 업서도 童話는 될 수 잇지만 아모러한 愉悅도 주지 못하고는 童話가 되기 어렵슴니다.
251쪽: 글자 수정
본 잡지는 소년소녀에게 유의하신 몃 분 개인의 힘으로 자본 내여 경영하는 것이오 무삼 종교 단쳬나 어던 사회긔관의 개재를 밧을 리 업슨 즉 무엇이든지 우리 어
251쪽: 글자 수정
朴哲魂, “ᄭᅳᆺ인사”, 『영데이』 창간호, 영데이社, 1926년 6월호.
봄이다 ᄭᅩᆺ이다 ᄒᆞ고 ᄯᅥ들든 지가 어제 가튼대 그 봄도 다 지나가고 ᄭᅩᆺ도 ᄯᅥ러져셔 지금은 흐르는 듯ᄒᆞᆫ 녹음이 욱어진 시졀이 되엿슴니다. 이ᄯᅢ에 『영데이』가 어머니 배 속에셔 고고한 소래를 내고 세상에 쳣소래를 부르지즌 지 이제야 바야흐로 쳐음이엇슴니다. 차차 엉금엉금 기어가 거름발 타고 자랑ᄒᆞ는 그것은 너머지고 잡바짐니다. 그러나 거기에 알마진 시일이 지나가면 자연 아름다웁고 어엽분 어린이가 될 것임니다. 그리하야 남이 우러러보고 탐낼 만치 졈잔코도 위엄잇게 될 것이외다. (이상 50쪽)
331쪽: 결락 부분 보충
著者, “어린이들에게”, 韓沖, 『朝鮮童話 우리동무』, 芸香書屋, 1927.1.
童話란 것은 봄ㅅ동산의 ᄭᅩᆺ가티 어엿브고 將來 만흔 希望을 가진 어린이들의 唯一한 동무요, 樂園이요, 寶鑑이요, 指針인 同時에 兼하야 그네들에게 가장 업지 못할 文學이엇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錦繡江山에도 차차 새로운 少年運動이 닐어나자 이것을 ᄯᅡᆯ하 雨後竹筍 모양으로 各處에서 發行하는 무슨 名作이니 傑作이니 하는 童話集들은 원래 言語도 風俗도 다른 西洋童話를 日文으로 日文을 ᄯᅩ 朝鮮文으로 重譯을 하야서 특별한 무슨 趣味가 잇다고 斷言할 수 업습니다.
그리하야 著者는 이를 甚히 遺憾으로 녀기는 同時에 일변 우리 어린이들을 爲하야 가장 獨特한 우리 童話 蒐集에 ᄯᅳᆺ을 품고 合 方面으로 만흔 努力을 하야 오든 中 어느듯 二個 星霜이란 長久한 時日을 經過한 지 오늘날에 이를어 여러 가지 재미잇고 意味 기픈 우리 童話 中에서도 가장 滑稽的이요 藝術的인 것으로만 겨우 三十 編을 ᄲᅩᆸ앗슴으로 이 冊이 出版되는 同時에 一般 少年少女에게 무슨(이상 5쪽) 어듬이 잇서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동무』란 기림을 바닷스면 著者는 無限한 깃븜이 넘칠 줄로 생각하겟습니다.
丙寅年 菊花 피는 가을
芸香書屋 晴窓 下에서
著者 識 (이상 6쪽)
342쪽: 한자 수정
○
나는 생각한다──그러면 오늘날의 우리들이 지을 童話는 어ᄯᅥ한 어린이들의 世界를 對象으로 하고서 成立될 것인가?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들의 어린이들이 가질 童話는 어ᄯᅥ한 어린이들의 生活 現實을 土臺로 할 것이냐고.
오늘날의 어린이의 世界는 가장 가엽스게도 階級 對立의 現實의 色彩로써 물들여젓다. 하루ㅅ날 드듸어 그들의 生이 地上에 ᄯᅥᆯ어지자 그야말로 傳說에 잇는 魔術師의 怪奇한 魔法으로도 ᄯᅡᆯ흐지 못할 魔術이 作用하야 ᄯᅩᆨ가튼 어린 生命이 ᄯᅩᆨ가튼 瞬間에 誕生되는 것임에도 不拘하고 한 어린이는 巨萬의 富를 스스로 가질 運命을 밧고 地上에 서며, 한 어린이는 平生으로 貧窮과 汚穢와 襤褸의 運命을 뒤집어쓰고 地上에 서게 되는 現實이다. 오늘날의 우리 어린이들이 자기들의 環境에 對하야서 奇異한 눈으로 볼 것은 참새가 ᄭᅡᆼ충ᄭᅡᆼ충 ᄯᅱ는 現象보다도 파리가 압발을 싹싹 부비는 現象보다도 무엇보다도 먼저 어ᄶᅵ해서 福順이는 비단옷 닙고 人力車 타고 學校 다니고 어ᄶᅵ해서 막동이는 어버지가 품팔이하는 나무ㅅ장에 가서 自己도 수중들지 아니하면 안 되게 되엇는가? 하는 이 움즉일 수 업는 現象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童話의 世界의 構成要素의 其 一은 이러하다. 그러면 이러한 現實을 土臺로 하는 童話의 敎化的 方面의 意義는 스스로 決定되는 것이다.
要約하야 말하면 오늘날 우리들의 童話는 階級的 色彩로 깁히 물들은 어린이들의 環境 그것에 어린이 自身이 눈을 ᄯᅳ는 世界에서 誕生되어야 할 것이며 ᄯᅩ는 어린이들로 하야금 이에 눈ᄯᅳ게 하도록 하는 作用을 갓는 이러한 어린이들의 現實 世界에 立脚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42-447쪽: 글자 수정
朱耀翰, “머리말”, 文秉讚 編, 『世界一週童謠集』, 永昌書舘, 1927.6.
文 君은 오래전부터 소년문학운동(少年文學運動)에 ᄯᅳᆺ을 두어 왓습니다. 이제 그의 손으로 이 세게동요집(世界童謠集)을 발간하게 된 것은 소년문학운동을 위하야 크게 깁버할 일임니다.
소년문학운동은 그 범위가 이약기를 중심으로 한 동화(童話)와 노래를 위주한 동요(童謠)로 난홀 수 잇는 중에도 ‘리듬’이 아희들 생활에 가장 중요한 내용의 한 가지가 되는 관계로 “동요”라 하는 것이 더 중요시(重要視) 될 것이 아닌가고 생각됨니다. 동화가 호긔심(好氣心)과 상상녁(想像力)에 호소하는이만침 신경질뎍(神經質的) 쟹뎍(靜的) 색채가 잇는 대신에 “동요”는 박자(拍子)를 련상하고 동작을 련상하는 다혈뎍(多血的) 동뎍(動的) 색채를 가젓다고 볼런지요. 이런 의미에 잇서서 이약기보다 노래가 더욱 소년예술(少年藝術)로 갑시 잇는가 합니다.
지금ᄭᅡ지의 조선의 소년문학으로 “동화”와 “동요”가 갓치 만히 일어나면서도 책으로 발간되기는 동화집이 비교뎍 만흔 대신에 “동요집”이 얼마 업는 것은 유감이엇습니다. 이 책이 발간됨으로 이 방면에 대한 구급(救急)이(이상 2쪽) 되리라고 밋고 그 발간을 환영합니다.
더욱이 이 책에 모혀진 동요는 여러 나라의 것이 잇서서 색채(色彩)가 가장 잇고 ᄯᅩ 능히 각 국민(各國民)의 민족성(民族性)을 그 동요에서라도 차자볼 만한 것을 알게 되니 어린이들의 “읽어리”로도 ᄲᅡ지지 안을 터이요 ᄯᅩ한 한 낫의 조흔 참고서도 될 만합니다.
다만 유감 되는 것은 번역한 동요가 혹 읽기에는 편하나 부르기에 어려울가 함이니 이것은 원작(原作)의 ᄯᅳᆺ을 일치 안키 위하야 그리함인 듯합니다.
바라건대는 ᄯᅳᆺ잇는 이들이 이 책에 실닌 수만흔 보석(寶石)을 갈고 다듬어서 우리 어린이들의 노래 주머니를 채우게 하소서. 그리하야 이제 이 압흐로 더욱 크게 일어나는 우리의 소년문학운동에 새로운 출발점을 주게 하소서.
셰상사람들이모다
손과손을마조잡으면
세게ᄭᅳᆺ에서ᄭᅳᆺ으로
춤추며돌수잇겟지요.
“폴 훨”
一九二七. 一. 三一 朱 耀 翰 (이상 3쪽)
洪銀星, “머리말”, 文秉讚 編, 『世界一週童謠集』, 永昌書舘, 1927.6.
사랑하는 문 군(文君)이 지난번에는 조선소년소녀동요집(朝鮮少年少女童謠集)을 ᄶᅡ 내엿섯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조선 소년소녀계(朝鮮少年少女界)의 공현(貢獻)을 다하얏다 하랴.
그리하야 ᄭᅳᆺ업는 황막(荒漠)하고 ᄶᅡᆨ 업시 싱거운 조선의 어린이 사회(社會)를 위하야 이번에는 세계동요집(世界童謠集)을 ᄶᅡ 내엇다. 이 얼마나 졍역(精力)이 든 귀여운 보배(寶貝)이랴.
그리고 각국의 귀여운 졍서(情緖)가 조선의 어린이의 입을 통하야질 ᄯᅢ 얼마나 반가우며 귀엽겟슴잇가.
젓(乳)빗 갓치 ᄲᅩ얀 안개가 나리는 봄날 아츰이든지 ᄭᅢᄭᅳᆺ이 씨슨 듯한 푸른 하날에 둥근달이 ᄯᅮ렷이 ᄯᅥ 잇는 가을 밤 갓흔 ᄯᅢ 이 노래가 마을(村)에서 마을로 거리에서 거리로 불너질 ᄯᅢ 뉘 안이 감회(感懷)가 일어나지 안이하며 뉘 안이 이 노래에 ᄯᅱ놀지 안이하겟는가.
망막한 어린이 사회에도 ᄭᅩᆺ이 픠도다
거츠른 동산에 ᄭᅩᆺ이 픠니 나븨는 펄펄 나라 들고 ᄭᅩᆺ다운 향긔는 사람의 마(이상 4쪽)음을 ᄭᅳᆺ업시 상쾌케 하도라.
이것을 생각할 ᄯᅢ에 나는 어린이 사회를 위하야 질거워하며 깁버함을 마지안는 ᄭᅳᆺ헤 문 군에 대하야 치하를 드리는 바이다.
一九二七. 一五 夜
江戶城 아래에서
洪銀星 (이상 5쪽)
文秉讚, “머리말”, 文秉讚 編, 『世界一週童謠集』, 永昌書舘, 1927.6.
참! 우리 어린이 世上엔 너무나 童謠가 貧弱하다. 아니! 貧弱하다는 것보다도 오히려 童謠의 硏究者가 만치 안음이다. 우리 朝鮮에도 固有한 名作童謠가 만이 잇섯다는 것은 事實이다. 여긔 실닌 童謠 中에 「人鏡」 갓흔 것을 볼 것 갓흐면은 참! 훌륭한 童謠이다.
나도 어릴 ᄯᅢ에 술네잡기하고 솟곱질하며 ᄯᅱ놀 ᄯᅢ에는 아모 멋도 모르고 불으든 것이다. 只今에도 어린이들이 숨박잡기나 술네잡기할 ᄯᅢ 보면 종종 불으는 것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 「人鏡」이라는 童謠의 意味에 對하야는 어른들도 지금ᄭᅡ지 잘 알지 못하고 잇다. 이는 童謠의 對한 어른들에 硏究가 不足한 것은 事實이 證明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 책에 世界童謠 中에 朝鮮 童謠가 만은 자리를 占領하게 된 것은 나로서의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훌륭한 童謠가 만이 잇다든 것을 스스로 자랑하고 십흔 心事가 한 가지의 原因이엿고 ᄯᅩ는 페지 수(頁紙數)의 制限도 잇슴으로 말미암어 다른 나라 童謠는 만이 실어니지 못하게 된 것이 ᄯᅩ 한 지 原因이엿다. ᄯᅡ라서 英吉利나 獨逸이나 佛蘭西 갓흔 곳은 事實로써 童謠가 만음(이상 6쪽)을 ᄯᅡ라 童謠集이 만이 發刊 되여 잇슴으로 名作童謠를 만이 추려서 실엇스나 希臘 埃及 諾威 墺地利 갓흔 곳은 童謠가 적음을 ᄯᅡ라 童謠集 갓흔 것을 어더 보기가 困難한 關係上 그중에 잘 됨즉한 것으로 不過 멧 가지식밧게 안이 실케 된 것은 나로서의 遺憾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고 世界 名作童謠를 蒐集하야 飜譯할 ᄯᅢ에 童話나 小說과 달너서 조금이라도 飜譯이 不撤底할 것 갓흐면 童謠의 그 本味를 損失케 하기가 쉬움으로 나로서는 無限한 苦痛 中에서 별별 勇氣를 다− 내여 붓그럼을 무릅쓰고 임의 出版하기로 한 것만은 童謠 硏究家 諸氏 ᄯᅩ는 讀者 여러분ᄭᅦ 만흔 理解를 바라는 바이다.
一九二七. 一. 一八
北岳山 밋에서
秋波는 삼가 올님 (이상 7쪽)
604-607쪽: 글자 수정
方定煥, “새ᄒᆡ에 어린이 指導는 엇지 ᄒᆞᆯ가?(一) 少年會와 今後方針”, 『조선일보』, 1923.1.4.
어린아희들을 잘 지도하여야
미ᄅᆡ의 사회도 완젼하게 될 듯
세계에 엇더한 나라이던지 그 나라의 발달을 보랴면 먼져 그 나라의 아희의 노는 것이라든지 일상의 생활하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라. 그런데 죠선에셔는 지금ᄭᆞ지 아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만 생각하야 오즉 압박만 하야 조금만 잘못하면 ᄯᅡ리고 나물하고 할 ᄲᅮᆫ이며 그리고 그 아희가 잘한 일에 ᄃᆡ하야는 조곰도 잘하얏다는 표사는 업섯다. 그럼으로 아희들이 어렷슬 젹부터 어른의 말에 눌니여 자긔의 마음에는 잘하얏건만은 자긔의 어른의 마음과는 맛지를 안이함으로 오직 잘못하얏다는 나무ᄅᆡ는 말만 듯고 울 ᄲᅮᆫ이얏다.
그럼으로 아지 못하는 사람이 자긔에게 더하야 알지 못하는 ᄎᆡᆨ망을 하건만은 그는 어른인 고로 마음ᄃᆡ로 ᄃᆡ답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태로 한 ᄒᆡ 두 ᄒᆡ 지ᄂᆡ이다가 어른이 되야 사회에 나셔셔 무슨 일을 하는데도 관습에 어른이란 것이 눌니여 자긔의 이상과 자긔의 하고자 하는 바와는 ᄃᆡ단히 틀니이건만은 엇지할 수 업시 순종하다가 필경에는 신구의 충돌이 ᄆᆡᆼ렬하게
일어나는 일은 근일의 각 사회를 보드라도 가히 짐작할 바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먼져 어린아ᄒᆡ를 잘 인도하고 ᄒᆡ방하야셔 죠곰 자유스럽게 텬진 그ᄃᆡ로 직히게 하는 것이 자녀교육의 가장 필요할 바이다. 이에 ᄃᆡ하야 죠선에셔 쳐음으로 조직된 소년회를 지도하는 <텬도교소년회(天道敎少年會)>의 방졍환(方定煥) 씨는 말하되 우리의 회가 성립되기는 벌셔 ᄌᆡ작년
오월 일일이외다. 우리의 회가 조직되자 조선 젼도에 이르는 큰 곳은 거의 다 조직되얏스며 겸하야 각 사회에셔도 소년 문뎨에 ᄃᆡ하야 현ᄌᆡ에 주의를 깁히 하여 이에 ᄃᆡ하야 노력하는 중이외다. 그럼으로 작년 오월 일일에는 ‘어린이의 날’이라고 하야 젼조선에 선뎡하얏슴니다. 이제브터도 될 수 잇는 ᄃᆡ로 긔회가 허락하는 ᄃᆡ로 ᄃᆡᄃᆡ뎍으로
선뎐하랴고 하는 중이외다. 이것은 우리 <텬도교소년회>ᄲᅮᆫ 안이라 다른 소년회와 련합하야셔 하는 것이 조흘 쥴 밋습니다. 겸하야 우리 회는 종교뎍으로 텬도교인ᄲᅮᆫ만 한하는 것이 안이라 엇더한 사람이던지 입회를 식히나이다. 그럼으로 현ᄌᆡ의 회원이 사ᄇᆡᆨ오십팔명이외다. 이 소년들만 완젼히 지도한다고 하야도 이후의 소년들은 비록 만분의 일이나마 ᄒᆡᆼ복스러울 듯하외다. 참으로 조선의
아동교육은 넘우나 한산하얏슴니다. 외국의 상ᄐᆡ를 보고 뎐하는 말을 들을 것 갓흐면 어린이를 극히 사랑하고 만반사를 어린이에게셔 비롯하고 그들을 위□□□□지도 발ᄒᆡᆼ하고 신문ᄭᅡ지도 발ᄒᆡᆼ하얏스며 학교의 교육도 극히 완젼하야 잇슴니다. 그러나 조선에셔는 넘우나 어린이에 ᄃᆡ한 긔관이 부족하외다. 부족할 ᄲᅮᆫ 안이라
무졍ᄒᆞᆫ 터이외다. 작년에 ᄂᆡ가 『사랑의 선물』이라는 ᄎᆡᆨ도 그들을 즁심하고 그들의 환락을 주기 위하야 발ᄒᆡᆼ한 바이외다. 이제부터는 각디의 소년단체가 만이 이러날 쥴을 밋으며 우리 동포가 하로라도 먼져 사람스럽게 ᄯᅩ는 자유스럽게 ᄒᆡᆼ복스럽게 ᄉᆡᆼ활을 하랴면은 먼져 어린이들을 조흔 길로 인도하고 그들을 위하야 사업을 경령하여야 하며 긔관을 셜비하여야 할 것이외다. 참으로
어린이들쳐럼 중한 이는 업슬 것이외다. 그들은 바다에 ᄯᅴ워 잇는 ᄇᆡ와 갓치 바람이 동으로 불면 동으로 셔으로 불면 셔으로 흘너가는 것과 갓치 지도하는 이의 지도하에 ᄯᅡ라셔 혹은 ᄒᆡᆼ복의 길로 혹은 불ᄒᆡᆼ의 길로 도라가는 것이외다. 이러한 쳐디에 잇는 그들을 엇지 하로이나마 범연하게 역이랴 하고 ᄆᆡ우 근심하는 빗으로 말하더라.
鄭聖采, “새ᄒᆡ에 어린이 指導는 엇지 ᄒᆞᆯ가?(二) 斥候軍과 今後 方針”, 『조선일보』, 1923.1.5.
셔양의 ‘ᄲᅩ이쓰카옷’과 갓치
남을 도아주는 것이 뎨일 사업
참으로 그럿슴니다. 조선에셔는 어린이에 ᄃᆡ한 긔관이 전부 업섯다고 하야도 가하외다. 어린아희가 잇스면 집에셔 신바람이나 식혓고 그럿치 안흐면 글방에나 보ᄂᆡ이든 것이 뎨일의 일이얏슴니다. 그ᄅᆡ셔 어린아ᄒᆡ들은 오직 구쇽만 밧게 되는 것이 그의 할일인 줄로 아랏스며 우리가 인뎡하야 왓섯슴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엇지하면 그들로 하야금 자유스럽게 ᄯᅩ는 자연 그ᄃᆡ로 지ᄂᆡ이게 할가 하고 비상이 근심하얏슴니다. 그ᄅᆡ셔 작년 사월부터 우리 소년회의 주최로 <소년쳑후단(斥候團)>이란 것을 조직하게 되얏슴니다. 이것이
셔양으로 말하면 ‘ᄲᅩ이쓰카옷’이란 것이외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어린아희가 잇는 집이면 누구나 반다시 ‘ᄲᅩ이쓰카옷’이라는 단톄로 보ᄂᆡ여 치루어 나게 하나이다. 그런데 ‘ᄲᅩ이쓰카옷’이라는 것은 혹시 군인 갓흔 ᄉᆡᆼ활을 하는 듯하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안이외다. 셔양에 ‘ᄲᅩ이쓰카옷’이 하는 일로 말하면 길로 걸어가다가도 엇던 사람이
자긔 혼자 무엇을 하지 못하고 ᄋᆡ를 쓰는 사람이 잇슬 것 갓흐면 그것을 보조하야셔 그 사람으로 하야금 넘우 노력을 하지 안코도 가히 할 만치 보조를 하며 그 외에도 어린아희나 부인이 위험한 일을 당하야 자긔의 힘으로는 도뎌히 할 슈가 업는 경우를 보는 ᄯᆡ에는 속히 가셔 그것을 구제하고 그 외에도 무슨 일이던지 사회의 유익한 일이면 하도록 주선하야 주는 것이외다.
이것이 즉 <소년쳑후군>의 사업으로 ᄒᆡᆼ하는 바외다. 그런데 현ᄌᆡ 우리 회의 회원은 십사 명이외다. 그러나 지금ᄭᆞ지 아무것도 한 일이라고는 전부 업다고 하야도 가하외다. 그중에도 셔양사람으로 말하면 옷을 ᄆᆡᆫ들어 입어도 자긔네가 스스로 지여서 입게 됨으로 제도만 가틀 ᄲᅮᆫ이면 그 외에는 다른 돈이 들 필요가 업겟지만은 오즉 조선에셔는 ᄯᅡ로히 돈을 들이지 안흐면
안 될 것이외다. 그럼으로 극히 어려운 바이외다. 보통 녀름 낫 가트면 운동복에다가 토ᄉᆡᆨ물감만 들이면 그것으로 완젼하겟지만은 겨울옷으로 말하면 돈이 젹지 안케 되나이다. 이러한 형편에 잇슴으로 회원을 좀 만히 모집하고 십흐나 경비 문뎨로 인하야 어렵슴니다. 그리고 쳑후군들도 아즉 쳐음인 고로 무엇을 하랴면 조곰 붓그러운 긔ᄉᆡᆨ을 뵈이고 수즈버하나이다. 그런데
금년브터는 되도록 회원도 늘니고 조곰 일다웁게 하랴고 회의하는 중이외다. 그ᄅᆡ셔 조선의 소년게도 자연게와 즉졉의 연락을 바다서 젼보다 좀 텬진스럽게 자유스럽게 하고 하나이다. 어린이브터 이럿케 ᄒᆡ방하고 자유를 주지 안을 것 가트면 우리의 사회는 언제ᄭᅡ지던지 이 상태를 면치 못할 것이외다. 그러나 우리의 소년군으로 말하면 종교 범위 안에셔
실ᄒᆡᆼ하는 고로 일상의 ᄒᆡᆼ동도 군인 가튼 ᄉᆡᆼ활을 식히지 안이하나이다. 톄죠라던지 그 외의 무엇은 형식에 의지하야 하지만은 군인뎍의 ᄉᆡᆼ활은 식히지 안이하며 단지 남들 도아쥬기를 뎨일의 목뎍으로 식히는 바이외다라고 말하더라.
618쪽: 탈락 부분 보완
少年會員, “民族的으로 祝福할 五月 一日 ‘어린이’의 날”, 『天道敎會月報』 제151호, 1923년 4월호.
오날은 五月 초하로 어린이의 날임니다. 해마다 이날은 어린이의 날임니다. 한 집안이 잘 살내도 만저 이날을 祝福하여야 하고 한 나라가 잘 살내도 만저 이날을 祝福하여야 함니다. 아울너 三千里江山에 죽어가든 無窮花를 다시 滿發하게 하랴면 만저 이날을 誠心으로 祝福하여야 함니다. 그리고
五月 一日은 世界의 모든 無産者 勞働者가 世界的으로 永遠히 紀念하며 祝福하는 勞働祭(메데)日이외다. 이날은 이러케 意味가 깁고 ᄯᅩ 燦爛宏壯한 날임니다. 勞働世界 少年世界가 아울너 祝福하는 歷史的이요 民衆的이오 世界的인 人世 最大의 紀念日이외다.
再昨 辛酉年 五月 一日은 우리 朝鮮 少年界에 가장 첫거름으로 鍾을 울니고 비로소 <天道敎少年會>라는 一個의 조고마한 團體가 生긴 그날임니다. 우리 民族이 이날을 祝福치 안으면 어늬 날을 祝福하겟슴니ᄭᅡ. 範圍를 넓게 말하자면 이 어린이의 날은 全人類가 祝福할 날임니다. 그럼으로 어늬 社會 어늬 民族을 勿論하고 그 生活上 가장 큰 問題는 어린이임니다.
現時에는 우리 民族이 아무것도 업는 가난뱅이임니다만은. 우리 民族이 어린이만 잘 키우고 보면 그ᄯᅢ에 이르러서는 잘 살 슈가 잇슴니다. 그리고 自然히 偉大한 人物도 生길 것이며 同時에 偉大한 事業도 할 슈 잇슴니다. 그러면 우리는 復活하는 民族임니다.
그러나 우리 民族 中에는 아직ᄭᅡ지도 그를 ᄭᅢ닷지 못한 이 만슴니다. 그리고도 平和와 安樂이 오기를 멀−건이 바라고 잇슴니다. 이는 맛치 아무것도 업는 븨인 병을 기울느고 술 나오기를 기다리는 天痴와 갓슴니다. 건지 업시 잘살기를 바라니 이런 氣가 막힐 일이 잇슴잇가.
엇텃튼지 여러 어른들은 사랑하시는 子女의게 만저 이러케만 하여 쥬십시요.(이상 45쪽)
一. 어린사람을 헛말로 속히지 마라 주십시요.
二. 어린사람을 늘 갓가이 하시고 자조 이약이하야 쥬십시요.
三. 어린사람의게 恒常 敬語를 쓰되 되도록은 브드럽게 하야 쥬십시요.
四. 어린사람들을 沐浴과 理髮을 ᄯᅢ 맛처 식혀 쥬십시요.
五. 어린사람들의게 잠자는 것과 運動을 充分히 하게 하야 쥬십시요.
六. 낫분 求景을 식히지 마시고 動物園에나 植物園에 자조 보내 쥬십시요.
七. 장가나 싀집 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하여 쥬십시요. 以上은 昨年 五月 一日 天道敎少年會 第一週年 紀念을 利用하야 全朝鮮에 子女를 기르시는 어른들에게 忠告한 것임니다. 만저 이러케만 次次 行하야 가면 自然히 어린이의 마음이 純潔하게 자라갈 것임니다.
ᄭᅳᆺ흐로 한 번 더 願하는 바는 우리 二千萬 同胞가 一心으로 誠心ᄭᅥᆺ 生活上의 基礎인 이 어린이의 날을 祝福합시다. ……(ᄭᅳᆺ)…… (이상 46쪽)
647-650쪽: 판독 불가 글자 복원 및 수정
李定鎬, “少年運動의 本質−朝鮮의 現狀과 밋 五月 一日의 意義”, 『매일신보』, 1925.5.3.
五月 초하로는 어린이의 날임니다. 해마다 이날은 어린이의 날임니다. 집안이 잘 살려도 어린이가 잘 커야 하고 나라가 잘 되랴도 어린이가 잘 커야 함니다. 동포가 한마음으로 이날을 祝福합시다. |
어린 사람의 마음은 항상 단슌하기 ᄯᅢ문에 아침 해ᄯᅳᆯ ᄯᅢ부터 저녁 해질 ᄯᅢᄭᅡ지 잠시 동안을 쉴 새가 업시 무슨 작란이든지 하고야 놈니다. 이것이 즉 어린 사람의 生命 속에셔 날ᄯᅱ는 自然의 姿態 그것의 衝動임니다.
어른은 이것을 공연히 막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은 아조 잘못임니다. 만일 어린 사람의 노는 것을 조금이라도 ᄯᅳᆺ잇게 注目하여 본다면 참으로 놀ᄂᆡᆯ 만한 일이 만슴니다.
흙을 파셔 山을 만들고 내를 만들며 풀을 ᄯᅳᆺ어다 각씨를 만들어 놈니다. 이럿케 어린 사람은 어른이 ᄭᅮᆷ도 못 ᄭᅮᆯ 創造를 그들의 손으로 만들어 ᄂᆡᆷ니다.
그ᄲᅮᆫ 아니라 ᄭᅩᆺ이나 풀이나 즘승을 對하면 사람과 가치 녁이고 이약이를 함니다. 이와 갓치 어린 사람의 ᄉᆡᆼ각은 무한히 溫和한 가운대 가장 단슌하여다. 어른의 生活과 趣味와는 全혀 다른 것임니다. 이것을 널니 알지 못하고 ᄭᅢ닷지 못하는 이는 이것을 공연한 쓸대업는 작란이라고 무단히 制止하거나 괴롭게 하지만은 무한 自由롭게 ᄲᅥᆺ어나가는 어린 싹을 그대로 뭇질너바리는 것임니다.
어릴 ᄯᅢ에 제 마음대로 작란을 하고 노ᄅᆡ를 하는 것은 이다음 커서 學校 敎科書를 배호는 以上의 효과를 낫하내는 것이니 어린 사람의 生活은 될 슈만 잇스면 아모조록 自由롭게 고대로 키워야 할 것임니다.
어릴 ᄯᅢ는 무슨 작란을 하거나 모다 空想的임니다. 이 空想이 가장 偉大한 創造를 나하 놋는 것임니다. 임금 노릇을 하고 대장 노릇을 하고 先生님 노릇을 하는 것이 모다 어린 사람의 單純한 感情을 굿세게 衝動식히는 空想의 힘으로 낫하내는 것임니다. ᄯᅩ 어른의 흉내를 내거나 무슨 장사치에 흉내를 내여가며 그것으로써 즐거워하고 깃버하는 것이 어린사람의 先天的으로 自由에 對하야 가장 굿세게 要求하는 것임으로 되도록은 이러한 작란을 우숩게만 알 것이 아니라 그를 助獎하여야 할 것임니다. 特히 어린 사람이란 말과 힘이 어른과 가치 充分치 못한 ᄭᅡ닭에 自己의 意思가 잇셔도 어룬이나 누구에게 發表치 못하는 대신에 單純한 어린 마음의 空想을 現實의 世界로 옴겨다 노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들은 마음과 ᄯᅳᆺ이 잇스면 무엇이나 잇는 대로 實地를 낫하내려는 欲求를 가진 것임니다.
어른은 무엇이나 ᄉᆡᆼ각한 것이 잇스면 마음으로 경륜과 決定이 잇셔야 實行을 하나 그러나 어린 사람의 마음이란 한번 늣긴 일이 잇스면 늣긴 그대로 그여히 하고야 마는 先天的으로 欲求하는 마음이 강한 것임니다.
그리고 어린 사람의 滋味 붓치는 感興이란 一定한 것이 안이라 마음으로 注意하는 焦点은 感情의 衝動을 밧는 대로 變動되는 ᄭᅡ닭에 그들의 눈은 恒常 분주하게 四方으로 注視하고 活動하는 것임니다.
이럿케 어린 사람의 心情은 클수록 自己自由대로 무슨 일이든지 쳐단하려 하며 ᄯᅩ한 感動되는 것도 ᄆᆡ우 銳敏하고 變化가 만흔 고로 그 品性을 바로 잡기 爲하야셔의 고ᄯᅢ에 가장 適應한 敎訓이 잇서야 하고 指導가 잇셔야 할 것임니다.
×
일천구ᄇᆡᆨ십팔년에 米國에셔 일어난 兒童保護運動은 世界 사람의 耳目을 내일 만큼 宏壯한 運動이엿슴니다. 그ᄲᅮᆫ 안이라 米國 政府에셔는 이 해를 젼히 兒童保護年이라 하야 여러 가지로 國民에게 兒童에 對한 認識을 普及식히기에 적지안은 努力을 하엿고 그ᄯᅢ에 一般에게 宣傳햇든 標語는 “健全한 兒童은 健全한 國家의 긔초라” 일커럿슴니다. 이와 갓치 좀 더 ᄭᅢ이고 좀 더 發達된 다음에 잇셔셔는 어른의 問題보다도 兒童의 問題를 얼마나 重大視하고 힘쓰는지 몰음니다. 그만큼 얼만한 偉大한 효과가 들어나는가를 다- 갓치 ᄉᆡᆼ각해 보십시요.
그 뒤를 니여 우리 東洋에 잇셔셔도 各處에셔 일어나는 少年運動은 불 일듯이 猛烈한 氣勢로 일어낫슴니다. 日本이 그럿코 中國이 그럿슴니다.
그러나 우리 朝鮮은 남의 나라에셔 “健全한 兒童은 健全한 國家의 긔초”고 民族의 根本을 主로 한 가쟝 올흔 運動을 하는 대신에 어린 사람은 반듯이 “家庭敎育이 엄해야 한다.”는 無識한 主見으로 잘한 일에 칭찬은 잘 안하고 조곰만 ᄭᅡㅅ닥하면 벼락 갓흔 ᄭᅮ지람과 사나운 매만 ᄯᅢ려셔 윽박질느고 나리눌너셔 키운지라 씩々하고 참된 사람을 만들기는 고사하고 겁 만코 비슬비슬하는 못난 사람을 만들엇슴니다. 이리하야 限업시 自由롭고 快活한 어린 사람의 高尙한 性格을 그대로 짓발버 온 것은 事實이엿슴니다. 이러케 자란 그들이엇는지라 항상
“무엇이나 하면 반듯이 된다는 自信力을 기르지 못한 지라 하면 된다는 自信을 가지고 달겨들지 못하고 먼져 하다가 안 되면 엇져나− 하는 겁부터 가지기 ᄯᅢ문에 每事에 어물어물해바리는 病身을 만들엇슴니다.”
어린 사람을 이러케 無識하게 키우고도 남보담 더 나은 幸福과 成功을 바란 것이 우리 朝鮮 사람이엿슴니다. 그리다가 비로소 三年 前에야 <天道敎少年會>를 비롯하여 全鮮 各地에셔 우리도 남과 갓치 잘 살녀면 家庭으로나 社會로나 다 갓치 우리 朝鮮의 씨가 되고 ᄲᅮ리가 되는 어린 사람을 ᄯᅳᆺ잇게 키우자는 어린 사람의 압길에 對한 ᄭᅳᆺ업는 光榮을 ᄯᅳᆺ하며 民族의 압길에 對한 ᄭᅳᆺ업는 幸福을 누리기 爲하야 가장 ᄭᅢᄭᅳᆺ하고 가장 아름다운 動機에셔 이루어진 날이 卽 五月 一日이며 復興民族의 모-든 새 建設 努力 中에 잇는 우리 朝鮮에 잇셔셔는 아모것보다도 가장 緊切한 일로 누구나 다 갓치 무참하게 짓발펴 온 어린 사람들의 生靈을 爲하야 一年 中에 한 날을 作定하여 이 날을 祝福하고 紀念하자는 ᄯᅳᆺ에셔 發論된 날이 卽 五月 一日임니다.
이 運動이 始作된 후로 적으나마 한 군대 두 군대셔 어린 사람만을 爲한 集合이 ᄉᆡᆼ기고 團體가 ᄉᆡᆼ기고 어린 사람만을 爲하는 雜誌가 하나둘 生겻스며 어린 사람에 對한 問題를 精誠ᄭᅥᆺ 알녀 하시고 연구하시는 분이 작고작고 늘어가는 것ᄲᅮᆫ은 아모것도 보잘것업는 우리 朝鮮에 잇셔셔 가장 깃거워할 現像이겟슴니다.
理論보다도 事實에 잇셔셔 三年 前 ᄆᆡᆫ 쳐음으로 어린이 運動이 이러낫슬 ᄯᅢ는 全鮮을 통드러 三十餘 少年團體에 五萬枚의 宣傳 ‘비라’가 오히려 남든 것이 再昨年에 와셔는 六十餘 少年團體가 되고 十萬餘枚의 宣傳 ‘비라’를 쓰게 된 것과 再昨年보다도 昨年에 잇셔셔 百餘 少年團體가 되고 三十萬枚의 宣傳 ‘비라’를 쓰게 된 것과 昨年보다도 今年에 잇셔셔는 一百六十餘 少年團體에 七十萬枚의 宣傳 ‘비라’도 不足될 現像을 보게 되엿스니 멀지 안어셔 朝鮮도 가장 새로운 意味에 잇셔셔 굿세인 朝鮮이 될 줄로 알고 疑心하지 안는다는 것을 가라쳐 망녕된 밋음이라고 말할 사람이 누구이겟슴닛가?
새로운 朝鮮, 굿세인 朝鮮, 未久에 어린 사람들의 힘으로 建設될 것이며 빗나는 三千里江山 無窮花 동산에 새롭은 ᄭᅩᆺ이 피일 ᄯᅢ 아− 이것이 朝鮮 사람의 깃븜이 안이고 무엇이겟슴니 ᄭᅡ? (ᄭᅳᆺ)
695쪽: 글자 수정
一記者, “‘메이데’와 ‘어린이날’”, 『開闢』 제69호, 1926년 5월호.
(중략)
“어린이날”에 하고 십흔 말
五月 一日은 國際的으로 勞動祭日이 되는 同時에 우리 朝鮮에 잇서는 다시 少年運動日 卽 “어린이날”이 되엿다. 이 “어린이날” 紀念은 亦是 一九二二年 辛酉에 端을 發하야 一九二三年 五月 一日부터는 아조 全 朝鮮的의 少年運動日로 化하고 마랏다. 그래서 그날은 京城이나 地方임을 勿論하고 數千數萬의 어린이 示威行列이 行하게 되는 同時에(이상 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