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개복교회는 1894년 수덕산과 동녕산 사이에 세워진 군산교회에서 구암교회와 개복교회로 나눠 세워졌다는 주장을 하고있어 군산 기독교사정리에 중대한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요지음 군산지역을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질문하는 내용이라서 여기에 우선 개복교회가 주장한 자료를 옮겨본다
제목 : 개복교회
⊙선교불길 1백년… 호남의 모교회/미국선교사·의사창립… 첫 지역 세례 식 거행/근대교육기관 설립… 하늘나라 일꾼양성 심혈/러시아 등지 교회 9 곳 개척 복음세계화 선도
3천여 성도 뜨거운 기도
전북 군산시 예장(합동) 개복교회는 29만 군산시민을 품에 끌어안고 꿈과 복음의 떡을 나눠주고 있다. 군산시의 중심가 얕은 언덕에 자리잡아 한눈에 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있다. 양쪽으로 높이 치솟은 교회의 십자가탑은 마치 그리스도가 양팔을 벌려 피곤에 지친 시민을 인도하는 듯하다. 개복(복을 열어준다)이란 이름처럼 이 교회는 군산시민의 정신적 젖줄이자 전주 서문 교회와 군산의 구암교회와 함께 호남의 모교회로서 교육과 의료의 중심이었 다.
군산시의 복음화율은 호남의 다른 지역보다 높은 25%. 많은 교회가 힘 을 합쳐 복음을 전한 탓도 있으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개복교회의 쉼없는 선교가 복음화율 25%를 이룩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개복교회는 김종석 목사를 중심으로 3천여명 (장년 2천여명,고등부 이하 1 천여명)의 신도가 1백년동안 이어온 선교의 불길을 세계로 뻗치기 위해 뜨 겁게 기도하고 있다. 올해 이 교회의 표어는 『개복교회를 세계로』 교육하 는 교회,치료하는 교회,전파하는 교회로 선교 2세기의 원년을 힘차게 출발 하고 있다.
개복교회는 미국 남장로교회에서 파송한 7명의 선교사 가운데 이눌서(W. D. Reynolds)목사와 유대모(A. Drew)의사에 의해 설립됐다. 당시 인천에서 배로 군산항에 상륙한 이들은 순회전도를 하면서 개복교회의 전신인 군산교 회를 세우고 복음과 의술을 폈다.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들고 1896년 7월 20일 송영도·김봉래씨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호남 최초의 세례식이 기록됐 다.
82년 개복교회로 개명
군산교회는 1899년 선교회본부가 구암리로 이전하면서 권서인이었던 최종 서조사를 비롯해 한국인 교인들이 구복동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905년 현재 의 개복동으로 이전하면서 개복동교회로 불리게 됐다. 이 개복동교회는 1982년 개복교회로 이름을 바꾼 뒤 지금까지 군산시민들에게 정신적 자양분 을 제공하고 있다.
개복교회는 1911년 김 필수 목사가 부임하면서 크게 성장하기 시작해 최초의 한국인 총회장을 배출하는 교회가 됐다. 당시 장로교 총회장은 미국인 선교 사가 맡고 있었는데 1915년 김필수 목사가 총회장에 선출됨으로써 한국인 총회장의 길을 열었다.
▷1911년 영명중학교 세워◁
개복교회의 업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육사업이다. 이 교회는 1910 년 안락소학교를 인수하고 1911년에는 구암교회와 공동으로 영명중학교(현 군산제일중고교의 전신)를 설립했으며 1923년에는 영신여학교 영신유치원을 설립,군산지역의 신교육을 이끌며 계몽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3·1운동 때는 지역만세운동을 이끌었고 6·25때는 백형기 고인영 등 2명의 순교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현대교육이 들어오면서 재정난으로 학교에서 손을 놓게 됐다. 이때 문에 개복교회는 선교2세기를 맞는 지금 교육사업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교인들의 교육을 위해 1천2백평 규모의 교육관을 건립했다. 이 교육관은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12층 건물로 지을 계획이었으나 7층에서 현재 중단된 상태이다. 새신자양육이 교회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룬다는 생각에서 새신자교육을 강화하고 금요일마다 권찰모임을 가지며 새신자를 양육하는 지도자교육에 온힘과 정성을 쏟고 있다.
인재육성 장학제도 운영- 역사만큼 큰 인물을 배출하지 못한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교인들을 키우 기 위해 각종 장학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학생에게는 4년동안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 이를 위해 올해 3천5백만원의 예산이 편 성됐다. 또 과거처럼 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대학교 의과대학도 설립하겠 다는 포부로 15명의 교역자와 3천여명의교인이 힘을 뭉치고 있다.
이처럼 교인들이 하나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은 김종석 목사의 청빈한 생활과 성경중심의 현장목회 때문이었다. 김 목사는 75년에 부임해 20년동안 목회를 하면서 청빈한 생활로 교인들에 게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성경에 중심한 말씀목회로 신앙의 뿌리를 단단하게 키워주고 있다.
교회가 김 목사의 생활편의를 위해 3천만원의 예 산을 편성했으나 모두 부목사와 교역자의 생활을 위해 쓰도록 했다. 그래서 김 목사는 자가용 없는 목사로도 유명하다. 개복교회 교인들의 가장 큰 관심은 선교다.
모든 교인은 『칼빈주의,성경 의 정신으로』를 모토로 전 군산시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힘쓰 고 있다. 전북지역에 있는 교단의 미자립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사슴과 생활비를 지원해 오고 있다. 총력선교 교회 19곳 설립 지금까지 국내에서 서울 반포중앙교회를 비롯해 19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선교 비용만 한해에 1억5천만원씩 지출한다. 독일에 1명의 선교사를 파송하 고 22명의 협력선교사를 두고 있으며 중국 필리핀 러시아 등에 9개의 교회 를 설립했다.
현재 군산지역은 초교파적으로 연합사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개복교회는 이 연합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후원하고 있다. 김종석 목사는『우리 교회들은 그리스도 나라를 위한 전우다. 사탄의 세력을 정복하기 위해 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산=이승한기자〉
□ 개복교회 약 사 1894. 3. 30=교회설립 1904. 3. 20=군산부 구복동에 헌당 1905=현 개복동 13의1로 이전 1910=안락소학교 인수 1911=제3대 김필수 목사 부임,영명중학교 설립 1923=제5대 홍종필 목사 부임,영신여학교 설립, 1935=제6대 이수현 목사 부임, 1947=제7대 김정현 목사 부임 1964=제9대 김상권 목사 부임, 1971=제12대 윤철주 목사 부임, 1975=제13대 김종석 목사 부임, 현 최광렬 목사시무
⊙“무기명 설문조사 교회운영에 큰 도움”/담임 김종석 목사(인터뷰) 20년째 개복교회를 이끌고 있는 김종석 목사(65)는 교회설립 2세기를 맞아 선교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목회생활을 마칠 때까지 전,군산시민이 십일조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의 기도제목이다. 『올해의 표어는 『개복교회를 세계에 선교하는 교회』로 삼았습니다. 좀 더 많은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아니겠 습니까』
김 목사는 교인들이 선교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해 외에 설립한 교회들도 모두 교인이 경·조사비를 절약해 설립한 것이라며 교인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목사는 매년 한차례 전교인을 대 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기명으로 하는 이 조사 에서는 교회생활에서부터 교회의 각종 사업에 대한 의견,김 목사의 목회에 대한 개선책까지 묻고 있다. 김 목사는 이 설문에서 제기되는 의견을 토대 로 목회의 질량을 조정한다. 올해 교단의 지역노회로부터 차기 부총회장으로 추대된 김 목사는 『호남 ,특히 전북의 순번이 되어 지역교회들이 강하게 부총회장으로 추대한 것으 로 알고 있다』며
『부총회장으로 선출되면 총회의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이 나마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군산지역교회의 지도자로서 김목사는 『교회가 연합해 선을 이루는 일에 협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승한〉
한편 이 교회에 시무하시던 김 종석 목사는 2002년 2월 12일 71세로 소천 하였고 42년 동안 전주팔복교회와 개복교회에서 시무 하였으며 군산지역 기독교원로로 존경을 받았던 목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