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5년의 세월 동안 위와 같은 사연은 내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3D 프린터로 의수를 제작한다는 것은 내전 지역 같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생각해왔기에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동갑인 '올해 35살'이고, 포기하려고 했으나 포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건 없이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의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약간 망설이는 사이, 다른 회원들께서 아래와 같은 댓글들을 달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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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월 8일, '정상에서' 님의 글에 대한 초기 댓글 반응 ]
비록 직접 도움을 주진 못하지만, 희망을 갖고 힘내고, 기다리라는 이야기, 현재로선 도움을 드리기 어렵다는 현 상황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만약 "두 손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상황일까?"를 떠올려 보기도 하며, 두 손이 멀쩡한 내가 반드시 도와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을 실현하기 위하여 외국의 제작 사례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마침 아래와 같은 전자 의수 제작 사례를 미국 중부에 있는 WUSTL 대학의 웹 페이지에서 찾아냈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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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WUSTL 대학교의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전자의수 ]
위 기사의 내용에서는 만 13세의 어린 학생을 위해서 생체 의공학 전공의 학생들이 의수를 만드는 과정을 다루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위 사진과 함께 제공된 약 3분 내외의 의수 제작 과정에 대한 소개 동영상 및 사진들을 참고해 본 후,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하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하나 '만드로' 볼까요?"
제일 먼저 한 일은 간단한 회로 설계 및 테스트를 통해 내가 구상했던 위의 그림과 같은 설계가 맞아 떨어지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미국 WUSTL 대학에서 사용한 어깨 움직임을 인식하여 손을 쥐었다 펴는 것에서 착안하여, 어깨에는 가속도/각속도 움직임 센서를 달았고, 팔에는 아두이노 나노 보드를 달았고, 마지막으로 서보모터의 구동을 확인했다.
마침 위와 같은 전자 의수의 핵심 구성 요소인 아두이노 보드, 센서, 그리고 서보 모터 들을 미리 사 놓았기 때문에 바로 그날 밤에 회로 구성을 마무리한 후, 동작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 전자 의수 제작은 처음이지? 어서 와~ ]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자 의수 제작에 관한 세부 사항들이었다. 나는 의수 제작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서만 알았을 뿐 이에 필요한 재료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어떠한 센서, 제어 장치, 모터, 와이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또는 어떤 고무줄을 사용해야 하는지 등의 모든 디테일을 정말 잘 몰랐다.
따라서 비슷한 형태로 생긴 부품이라면 최대한 구입을 해야 했고, 각 부품들의 배송 시점을 기다려야 했기에 약 10일 정도의 시간 지연이 발생했다.
첫 번째 전자 의수 제작에 필요한 재료 및 부품들은 크게 다음과 같았다.
전자 의수 하나에 20만원 한도 안에서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기에 국내외의 여러 온라인 쇼핑몰에서 최소 비용을 지불하며 살 수 있는 것을 추려서 쇼핑을 시작했다.
비록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com)에서 주문한 주요 부품에서 배송사고가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다행히 국내에서 조금 더 비싼 값에 바로 구매할 수 있었다.
"3D 프린터로
두 손을 출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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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크리에이터즈 아몬드 3D 프린터로 제작 중인 의수 모형의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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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로보틱스의 Clone S270 3D 프린터로 제작 중인 의수 부품의 일부 ]
드디어 3D 프린터로 의수의 골격을 제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나는 예전부터 로봇 자체엔 큰 관심이 없었기에, 이러한 의수 또는 로봇 손 모형은 만들어 본적이 없었다. 역시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기에 몇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다.
먼저 1) 의수를 구성하는 각 손가락 마디 사이의 공차(여유)를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는지 몰랐다. 또한, 2) 손가락의 길이와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개념 없이 3D 프린팅을 착수한 것이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3) 3D 프린터의 작업 도중 실패로 인한 불량 발생에 따라 약 130시간에 걸쳐서 3D 프린팅의 시행착오 및 재시도를 거치게 되었다.
[ 시행착오 1: 공차 없이 프린트하여, 약 다섯 시간에 걸쳐 힘들게 가공하여야 했던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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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행착오 2: 3D 프린팅 작업 도중 실패한 결과물들 (3D 프린팅에는 약 100가지 설정과 외부 환경이 영향을 미치고, 이에 따라서 작업이 실패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
"위키데이 해커톤 행사에 참가 신청하다"
위와 같이 여러 번의 3D 프린팅 시행착오가 끝나는 시점에 몇 분의 지인들께서 성남산업진흥재단 / 경기콘텐츠코리아랩이 주관하는 위키데이 해커톤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주셨다.
당시 공지된 위키데이 2기/3기 해커톤 행사는 1박 2일동안 약 70% 완성된 작품을 최종 완성 및 발표하는 행사로 1등과 2등에겐 각각 200만원 및 100만원의 상금도 주는 멋진 행사였다.
사실 나는 전혀 위키데이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고민해 보지 않았다. 나는 위키팩처링 캠프의 3D 프린팅 분야 강사이기도 했고, 위키데이는 예비 창작자들을 위한 비영리 창작 지원 프로그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상에서' 님을 위해 만들고 있는 전자 의수는 '재능 기부'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고, 보다 더 멋진 의수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재료비와 지원금 확보가 필요했다. 결국 위키데이 2기/3기 참가신청 마감날짜인, 2015년 1월 15일에 참가신청서를 접수하게 되었다.
단, 혼자서 뭔가를 단시간에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큰 압박이기에 이를 짧은 시간 안에 성공시키고 팀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한 명의 참가 인원이 더 필요했다. 물론 모델링 및 회로 납땜 작업 등 모든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을 섭외하는 것이 유리했고 그 결과 3D 프린팅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니오' 님과 한 팀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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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산업진흥재단과 경기콘텐츠코리아랩이 주관하는 위키데이 2기/3기 포스터 ]
그리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게 되는데 이후의 이야기는 '2화: 첫 번째 의수 제작'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첫댓글 감동이 있는 흥미진진한 글입니다.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주심에 고마운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