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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동아리 활동 계획(1회) |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13기)
1. 일시: 2015. 4. 29.(수) 10:00~20:00
2. 여행 지역: 수덕사(충남 예산), 외암리 민속마을(충남 아산)
3. 일정
시정 |
내용 |
비고 |
10:00 |
함덕당 앞 출발 |
승용차 이용 |
11:30 |
수덕사 도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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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12:30 |
중식 |
자연식당 |
12:30~15:00 |
수덕사 일원 관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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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 |
수덕사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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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16:00 |
이동(수덕사-외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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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17:30 |
민속마을 관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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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 |
민속마을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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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18:30 |
이동(외암리~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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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19:30 |
석식 |
인근 식당(신토불이) |
19:30 |
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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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 경로
○ 함덕당 출발 → 강내삼거리 좌회전 → 오송 → 세종시 → 서세종(동공주)IC 진입 → 공주휴게소(휴식-10분) → 예산수덕사IC 출, 좌회전 → 면허시험장 사거리 좌회전 → 임성교차로 좌회전 45번 도로 진입 12.5Km 진행 → 삽교읍 통과 → 수덕사교차로 덕산방향 좌회전(40번 도로) → 자연식당(T디. 041-337-6060) 도착(중식) → 수덕사 관람
○ 수덕사 출발 → 40번도로 경유 → 45번 도로로 계속 진행 → 예산읍, 도고면, 신창면 통과 → 21번 도로로 우회전 → 39번 도로로 송악면 외암리 방향으로 진행 → 외암리민속마을 주차장 도착
○ 외암리 출발 → 배방읍(21번 도로), 풍세면, 전동면(43번 도로) 경유 → 조치원, 오송 경유 → 학교 도착(석식)
4. 동아리 회원 명단
연번 |
성명 |
지역 |
연락처 |
비고 |
1 |
강애선 |
제주 |
010-2695-0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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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고광명 |
대전 |
010-5439-2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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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권오숙 |
강원 |
010-8101-1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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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김경연 |
충북 |
010-9780-8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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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김미정 |
광주 |
010-9659-7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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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김옥현 |
서울 |
010-3210-6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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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김종훈 |
전남 |
010-2681-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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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김추근 |
광주 |
010-2637-95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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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문성인 |
제주 |
010-9175-7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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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박길선 |
부산 |
010-994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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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박민근 |
경남 |
010-3871-1203 |
|
12 |
박순희 |
경남 |
010-5206-2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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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박유봉 |
경북 |
010-9375-3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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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박종배 |
전북 |
010-4611-3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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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박영애 |
경북 |
010-8567-3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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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서성범 |
충북 |
010-3474-4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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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서순권 |
경남 |
010-3595-1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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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심화정 |
전북 |
010-2685-8824 |
|
19 |
안승기 |
경남 |
010-9414-7625 |
|
20 |
윤경숙 |
인천 |
010-8742-2871 |
|
21 |
이기영 |
충남 |
010-2463-0082 |
|
22 |
이은진 |
충북 |
010-8633-9954 |
|
23 |
이재경 |
강원 |
010-2374-4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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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임유원 |
서울 |
010-5680-9626 |
|
25 |
전용선 |
서울 |
010-7712-35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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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정은이 |
전북 |
010-2768-7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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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최선지 |
경북 |
010-9847-4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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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최형숙 |
경남 |
010-6573-3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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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한점기 |
전남 |
010-9232-2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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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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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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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1. 수덕사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本寺)이다.
[역사적 변천]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창건설화가 분분하나, 사기(寺記)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崇濟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 제30대 무왕 때 혜현(惠現)이 『법화경』을 강론하였고,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599년(법왕 1)에 지명법사(知命法師)가 창건하였고 원효(元曉)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상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지만, 한말에 경허(鏡虛)가 이곳에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고, 1898년(광무 2)에 경허의 제자 만공(滿空)이 중창한 뒤 이 절에 머물면서 많은 후학들을 배출하였다.
우리나라 4대 총림(叢林)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으며,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
[내용]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국보 제49호)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冥府殿)을 비롯한 백련당(白蓮堂)‧청련당(靑蓮堂)‧염화실(拈花室)‧조인정사(祖印精舍)‧무이당(無二堂)‧심우당(尋牛堂)‧황하정루(黃河精樓)‧천왕문‧금강문‧일주문(一柱門)‧범종각(梵鐘閣) 등이 있다.
대웅전은 1308년(충렬왕 34)에 건립된 건물로서 건축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대웅전 안에는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불, 아미타불의 삼세불이 모셔져 있다. 이 목조삼세불좌상(보물 제1381호)은 만공이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歸淨寺)’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여래탑이라고도 불리는 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이 있으며, 1936년 대웅전 중수 때 발견된 벽화는 건립 당시의 것으로서 주악공양비천도(奏樂供養飛天圖)‧수화도(水花圖)‧야화도(野花圖)‧금룡도(金龍圖)‧오선도(五仙圖)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서까래에 희미하게 금룡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일주문은 도톰하게 깎은 돌기둥 두 개에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덕숭산수덕사(德崇山修德寺)’라고 쓴 현판은 손재형(孫在馨)의 글씨이며, 지붕의 처마에는 붉은 여의주를 문 용이 조각되어 있다. 범종각에는 1973년에 조성된 무게 6,500근의 종이 봉안되어 있다.
이 절의 산내암자로는 정혜사(定慧寺)를 비롯하여 견성암(見性庵)‧금선대(金仙臺)‧환희대(歡喜臺) 등이 있다. 현재 이 절의 말사는 66개이다.
이 가운데 정혜사에는 비구 선원인 능인선원(能仁禪院)이 있으며, 견성암에는 비구니 선원인 제일선원(第一禪院)이 있다. 또 금선대에는 진영각(眞影閣)이 있으며, 진영각 안에는 만공의 영정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환희대는 『청춘을 불사르고』를 지은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하다가 죽은 곳이며, 견성암 또한 김일엽이 기거하던 곳이다.
이밖에 이 절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로는 노사나불괘불탱(蘆舍那佛掛佛幀, 보물 제1263호), 만공탑(滿空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1호), 칠층석탑(예산군 문화재자료 제181호), 근역성보관(槿域聖寶館)에 소장된 거문고(예산군 문화재자료 제192호) 등이 있다.
노사나불괘불탱은 1673년(현종 14)에 제작된 괘불로서 노사나불을 단독으로 나타낸 독특한 형식의 그림이다. 적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고 공간을 오색의 광선으로 처리하여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만공탑은 만공을 추모하기 위하여 제자들이 세운 탑으로서 구형(球形)의 둥근 돌이 올려져 있는 특이한 부도이다.
조인정사 앞에 세워진 칠층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든 탑으로서 지대석 위에 기단 면석 외부로 두드러지게 우주를 표현하고 있는데 면석에는 두께 10㎝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기단 위에 탑신부의 옥신은 없는데, 그 대신 4개의 정사면체 석재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 옥개석을 받치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근역성보관(槿域聖寶館)에 소장되어 있는 거문고는 만공이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으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이 거문고에는 이조묵(李祖默)이 새긴 공민왕금(恭愍王琴) 이라는 글씨와 함께 만공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수덕사는 한국 불교를 해외에 알리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였던 숭산(崇山, 1927∼2004)이 1949년 고봉(古峰)에게 비구계를 받은 사찰이기도 하다.
2. 외암리 민속마을
이 마을은 입구의 물(다리)를 건너면서 약한 구릉지에 집들이 길을 따라 독특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안길이 있고 이 안길은 올라가면서 좌우로 샛길을 뻗치고 있다. 이러한 모양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나무가지와 같이 큰줄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작은 가지가 뻗고 가지 끝에 열매가 맺어 있는 것과 같은 자연형태와 같은 마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듯한 마을이지만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원칙이 있다. 즉 마을의 동북쪽에 위치한 산을 주산이라 하는데 주산인 설화산과 서남쪽에 위치한 봉수산을 잇는 긴 선이 이어지는 축선에 일정한 영역을 만들어 그 영역 안에 집들을 배치해 두었다. 마을의 전체적인 모양은 동서로 긴 타원형이다. 동북쪽의 설화산 자락이 마을에 이르러서는 완만하게 구릉을 만들면서 마을 앞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따라서 서쪽의 마을 어귀는 낮고 동쪽의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동고서저(東高西低)형상이다. 이러한 지형조건에 맞추어 집이 앉은 방향은 거의 서남향이다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살림집이지만 그저 살림집만 모여있다고 마을이 제 모습을 갖추었다고 볼 수는 없다. 마을은 사람이 살아가는 거주공간인 살림집 외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과 생명을 이어주는 농경지, 집과 집, 집과 농경지, 농경지와 농경지를 서로 이어주는 교통로, 경관을 부드럽게 해주고 공기를 맑게 정화시켜주는 숲과 수목 등이 한데 어우러질 때 마을의 모습이 제대로 갖추어 지는 것이다.
외암리 마을의 경관은 크게 '마을 밖'이라는 외부경관과 '마을 안'이라는 내부경관으로 구분된다. 외부경관은 다시 멀리 본 경관(원경)과 가까이 본 경관(근경), 마을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 등이 있다. 내부경관은 자연적인 조형물과 인위적인 조형물, 상징적인 조형물, 꾸며진 경관과 꾸며지지 않은 경관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암리 마을은 입구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개천으로 인해 '안'과 '밖'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개천의 다리를 건넘으로써 마을로 들어간 것이고,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아직 마을밖에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개천은 마을의 경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런 경계구분이 없는 마을에서는 마을 어귀 적당한 곳에 장승을 세우거나 솟대를 세워 자연스럽게 마을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마을 후면에 해발 441m의 설화산이 우뚝 서있고, 그 산줄기가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몇 개의 가닥을 뻗어내려 마을 주변을 감싸듯 펼쳐져 있다. 그 산줄기 중 하나는 마을의 남쪽에 불쑥 쏫아 면잠산이 되었다.면잠산의 한 능선이 북쪽으로 흘러 마을 앞쪽에서 작은 동산을 만든것이 바람동산이다.
마을로 진입하는 다리 앞에는 송덕비, 장승, 솟대가 세워져 있다. 마을 입구를 상징하는 표시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마을의 안녕과 질서를 지켜주는 신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 정려는 원래 다리를 건너 마을 안에 있었으나 옮겨져 지금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정려 또한 선조의 선행을 누대에 걸쳐 모범으로 삼으려는 교육적 의미를 담고 있다.
마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시설물이 물레방아와 정자이다. 물레방아는 노동공간으로 마을의 중요한 공동생활 시설물 중의 하나이다. 일정한 수량을 확보하고 있는 마을어귀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정자를 경관이 수려한 곳에 지어 놓은 유희시설이지만 반드시 유희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농경지 가까이에 세운 것은 농민들이 힘든 농사일을 하다가 잠시 쉴수 있는 휴식장소로 이용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마을 안 경관은 안길을 중심으로 샛길들이 이어지면서 돌담과 집들이 다른 마을엣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거의 모든 담장은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마을의 지질구조는 땅 밑을으로 일정한 지층에 이르기까지 호박돌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돌을 걷어내 경작지를 만들고, 집터를 확보하면서 걷어낸 돌로 담을 쌓은 것이다.
마을 안에는 2개의 정자나무(亭子木)가 있다. 하나는 마을 안길을 들어서면 샛길이 뻗어지는 고삳에 자리잡고 있고, 또 하나는 마을 후면의 가장자리인 개천 변에 있다. 안에 있는 것은 마을 동제나 마을 축제를 할때 이곳에서 제를 지내는 신성시되는 공간이다.
마을 안의 집들은 모두 사랑채와 대문채 사이의 사랑마당에 정원을 꾸며 놓았으며 각각 특색있는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건재고택, 송화댁, 교수댁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고 이 마을의 대표적인 정원인 만큼 원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면 좋을 것이다.
첫댓글 맞아요 프로회장님, 꼼꼼 총무님 ^^ㅎㅎ
덕분에 더욱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오래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