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하늘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을까. 흔하디 흔한 오보도 이번에는 빗나가 새벽부터 하늘은 빗방울을 뿌려대고 있다. 겨울 가뭄이 심각한 수준이라니 무작정 하늘을 미워할 수도 없는 일. 그저 시승 날짜를 잘못 점지받은 불운을 탓할 뿐이다.
BMW 1시리즈와의 만남은 두 번째. 첫 번째 역시 비에 젖은 노면에서였다. 지난해 스웨덴 고틀란트섬의 고틀란트링 서킷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때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그 때문에 비행기 연착으로 시승 시간을 채우지 못했고, 고출력 135i는 미끄러운 노면에서 연신 엉덩이 춤을 추어댔다. 이 차가 한국에 들어오면 화끈한 성능 테스트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애써 미련을 버렸는데 이번에도 맛만 보다 말 것인가.
날씨가 받쳐주지 않는다고 1시리즈의 탐구에 소홀할 수 없는 일. 더구나 이번에는 처음 만나는 디젤 버전이다. 이렇게 작은 뒷바퀴굴림 디젤 스포츠카는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든 희귀종이다. 아울러 스포츠카의 새로운 미래상을 점쳐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된다. 과연 1시리즈는 스포츠카의 패러다임을 바꿀 태풍의 핵이 될 수 있을까.
작아도 뼈속까지 BMW
2004년 처음 등장한 1시리즈는 3도어와 5도어 해치백이 기본, 3년 후 쿠페와 컨버터블이 추가되었다. 3시리즈를 줄여 만든 3시리즈 콤팩트를 대신해 BMW의 엔트리 모델로 자리잡은 1시리즈는 뒷바퀴굴림 구동계에 직렬 6기통까지 얹어 실용성을 중시하는 콤팩트 클래스에서 상식을 깨드린 이단아적 존재. 대신 ‘작아도 뼈속까지 BMW’라는 평가를 얻었다.
1시리즈 쿠페는 소형 해치백에 무관심한 미국 시장에 투입되어 스포티한 엔트리 BMW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3시리즈를 닮은 둥글둥글한 얼굴에 코로나링이 더해지면 전형적인 BMW 이미지가 완성된다. 하지만 보도자료의 ‘유려한 디자인’이라거나 디자인 관련상을 석권했다는 자랑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확실하지만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고, 특히나 Z4를 닮은 옆구리는 살찐 닥스훈트의 뱃살을 떠올려준다. 조금 더 디자인을 다듬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 그래도 시승차는 다양한 드레스업 파트로 한껏 멋을 부렸다.
2월 현재 1시리즈의 국내 판매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 엔진은 2.0 직분사 디젤 한 가지, 장비에 따라 세 가지 패키지를 고를 수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시승용으로 준비된 흰색 120d는 M 퍼포먼스 패키지로 무장한 라인업 최고의 스포츠 패키지(가칭). 스포츠 서스펜션과 스포츠 시트, 다기능 스티어링 휠 등을 갖추고 있다. 브레이크도 BMW 퍼포먼스 제품. 한편 리얼 카본이 빛을 발하는 립 스포일러와 리어윙, 언더 디퓨저, 그리고 사이드 미러와 카본 스트럿 타워바 등 M퍼포먼스의 멋진 옵션 파츠는 애프터마켓용으로 차후 발매 예정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2007년 도쿄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던 쿠페 tii 컨셉트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같은 플랫폼이라면 해치백에 비해 쿠페가 거주성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쿠페이기에 용인되는 부분이 있다. 실제 120d에 앉아 보면 불편함이나 옹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본형 공조장치(실제 스포츠 패키지는 오토 에어컨이 달린다)의 단순한 스위치를 제외하면 전동식 가죽시트와 자동 변속기 등 편의장비는 충분하다. 특이한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은 간결한 인테리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존재로 스포츠 패키지의 기본 장비. 경주차처럼 LED 불빛으로 변속 타이밍을 알려주는 시프트 인디케이터 외에 랩타이머, 가속도계 등 다양한 계측기능을 담고 있다.
작은 차체를 휘두르는 디젤의 힘
1시리즈는 3시리즈 최강인 직렬 6기통 3.0L 직분사 트윈터보 306마력부터 3.0L 230마력이 있고, 직분사 디젤은 2.3L 204마력과 국내에서 판매되는 2.0L 177마력 등 2가지. 넷 중 120d가 가장 마일드하지만 성능은 결코 만만치 않다. 320d서도 모자람 없는 성능을 보여주던 유닛이 1.5톤 남짓한 가벼운 차체와 만났으니 당연한 일. 0→시속 100km 가속 7.6초, 최고시속은 226km를 낸다.
BMW 최신 직분사 디젤 중 하나인 2.0 엔진은 다이내믹한 주행과 경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잡아냈다. 4기통 엔진블록을 알루미늄으로 만들고 커먼레일 직분사 시스템과 싱글 터빈을 결합해 35.7kg·m의 강력한 토크를 내고 6단 자동 변속기가 힘을 잘 살려낸다. 반박자 느린 드로틀 반응은 어쩔 수 없지만 뒤이어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만큼 시원스러운 가속이 이어진다. 엔진은 3천∼4천rpm을 넘나들 뿐이지만 묵직한 토크가 발끝에서 느껴지는 순간 주변차들이 저만치 뒤로 멀어진다. 약간의 위화감마저 느껴지는 광경이다.
FR 구동계 특유의 가속력과 BMW가 자랑하는 핸들링은 이 차를 콤팩트 클래스 최강의 핸들링 머신으로 만들어준다. 특히나 스포츠 서스펜션이 달린 시승차는 스티어링 조작에 따라 신속하게 반응하는 노즈와 BMW 퍼포먼스 브레이크의 강력한 제동력이 굽이치는 와인딩로드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아이들링에서 갈갈거리는 소음도 1천rpm을 넘기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아울러 브레이크 건조기능이 디스크와 패드를 관리하기 때문에 젖은 노면에서도 뛰어난 제동력을 보장한다.
더 놀라운 점은 이처럼 준수한 성능을 지니고도 L당 15.9km를 달려내는 높은 효율성. 직분사 디젤 엔진의 실력에 버려지는 에너지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이피션트다이내믹 기술이 더해진 결과다. CO2 배출량은 km당 128g. 이처럼 높은 효율과 저공해를 뛰어난 성능과 결합시킨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럽에서도 120d는 1시리즈 쿠페 중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다.
디젤 스포츠카에는 성능 좋은 자동 변속기가 필수. 토크밴드가 좁아서 단수까지 많을 경우 잦은 변속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BMW의 6단 팁트로닉은 작동이 빠르고 동력전달감도 확실하다. 수동 모드에서는 스티어링 휠에 달린 시프트 인디케이터가 도움이 된다. 3천rpm 부근에서 초록색 불이 들어오고 4천200rpm을 넘기면 반짝거리면 변속을 재촉한다. 직선 도로에서는 꽤 재미나고 유용하지만 와인딩로드에서는 스티어링 휠을 조금만 돌려도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중앙의 LCD 모니터에는 랩타임과 0→400m 가속 측정, G센서 등 다양한 기능이 들어 있다. 특히 앞뒤, 좌우 두 가지 가속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G센서는 운전재미를 더해주는 활력소.
쿠페 시장에서 디젤을 외치다
120d도 좋지만 한급 위의 123d도 수입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천995cc로 배기량이 같아도 L당 100마력이 넘는 204마력. 저회전에서는 터빈 하나를 돌리고 일정 회전수가 되면 하나를 더 돌리는 시퀀셜 터보 기술 덕분이다.
135i가 거대해진 M3를 대신하는 엔트리 퍼포먼스 BMW라면 120d는 더 많은 사람이 스포츠 주행을 즐길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경제모델. 요즘 유럽산 쿠페 대부분이 디젤 엔진을 얹고, 르망 24시간 우승을 위해서도 디젤 경주차가 필수인 세상이 되었다. 디자인이 조금 아쉽지만 예리하게 코너를 파고드는 핸들링에 뛰어난 연비까지 매력이 넘치는 차다. 120d는 쿠페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Editor's Comment
자동차의 매력은 디자인이 전부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20d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스포츠 쿠페다. 작지만 FR이고 2.0 디젤 엔진은 파워와 경제성의 뛰어난 밸런스를 보여준다. 구동계나 서스펜션의 조화, 쿠페에 요구되는 핸들링 성능 등 나무랄 데가 없다. 오르지 못할 M3를 쳐다보느라 목 빠지지 말고 120d로 관심들 돌리시라. 군침 넘어가는 카본 드레스업 파트 가격이 얼마나 될지는 조금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