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가 없어서 사람이 굶어 죽었다. 김정일 시대 고난의 행군이다. 비료가 없으면 조선시대 방식으로 거름을 주면 되잖아. 말이 쉽지. 그게 가능해? 비극의 원인은 과학에 무지한 김정일이 화학비료를 똥거름으로 대체하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충 말로 때우려고 한다. 탐관오리를 비난하고, 부정부패를 규탄하고, 위정자의 무능을 탓하지만 공허하다. 말하기 좋은 대로 말한 것이다. 둘러대는 말에 불과하다. 본질은 따로 있다. 양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비료가 없어서 일어난 것이다. 반대로 프리츠 하버가 비료 합성에 성공해서 3차대전을 막았다.
무슨 '주의'라는 것은 관념이다. 관념으로의 도피가 적당히 둘러대고 면피하기에 편하지만 거짓말이다. 무슨 주의나 사상 때문이 아니고 정확히 소총의 발명 때문에, 화약의 부족 때문에, 컴퓨터의 등장 때문에, 인터넷의 출현 때문에, 유튜브 때문에라고 말해야 한다. 정확히 타겟을 찍어야 한다. 힘의 균형을 깨는 물리적 근거를 대야 한다. 자연계의 모든 변화는 하나의 균형에서 다른 균형으로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성과와 산업의 발전과 인구의 증가로 하나의 균형이 무너지면 또다른 균형점을 찾을때까지 현장은 시끄러워진다. 청렴한 관리도 필요없고 고상한 이념도 필요없다. 오로지 물리적 균형이 필요하다. 물론 정신적 요소도 기능한다. 정확히는 동원력이다. 종교나 사상은 동원력을 증대시킨다. 이념은 동원기술이다.
파리지앵들이 바스티유를 습격했는데 거기에 풀어주려고 했던 정치범은 한 명도 없었다. 사실은 요새에 보관되어 있던 화약을 가지러 간 것이다. 나폴레옹의 신출귀몰한 작전 때문에 프랑스가 승리한 것이 아니고 혁명에 의해 귀족과 평민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민중의 자발적인 창의가 전술에 도입된 것이 원인이다. 그리스 아테네의 전성기도 마찬가지다. 청동으로 된 갑옷과 무기는 가격이 비싸서 귀족이나 쓰는 것이다. 스파르타에 군인이 2천 명밖에 안 되는 이유다. 해전이 벌어지자 아테네의 빈민들이 갤리선의 노꾼으로 전쟁에 참여하며 발언권을 얻었다. 민중이 전쟁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그들의 창의가 전술에 반영되어 연전연승이 일어났다. 반대로 민중의 폭주가 참주의 등장을 막는다며 엘리트를 도편추방 하다가 자멸했다. 아테네가 성공한 원인과 실패한 원인은 같다. 민주주의는 민중을 의사결정에 동원하는 기술이다. 독재자도 민중을 동원하지만 신체를 동원할 뿐 정신은 동원하지 못한다. 민중의 자발적 창의를 끌어내지는 못한다. 막연히 민주주의 덕분이라고 말하지 말고 정확히 동원력의 증대 덕분이라고 말하라는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같다. 미디어의 발달로 대중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민중의 자발적인 창의를 반영하는 정당과 지도자가 승리한다. 이명박은 국정원 꼼수로 유령 민중을 동원했지만 길게 가지 못했다.
조선이 가난했던 이유는 첫째, 토질이 척박하고, 둘째, 청나라가 씹어서다. 세계 토질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관료주의, 부정부패, 탐관오리,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쇄국주의 탓은 비겁하다. 남탓하기 없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서 피보지 않은 나라가 없다. 명은 은괴를 털어갔고 청은 사람을 잡아갔다. 베트남은 조선보다 더 악독하게 당했다. 일본은 섬이라서 대륙에 털리지 않았고 화산지역이라서 토질이 비옥하고 많은 금과 은이 채굴되었으며, 조선의 도공을 잡아왔고 미국으로 가는 항로에 위치해서 교통의 요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찍 네덜란드 상인과 접촉했으니 지리적인 이점이 크다. 일본은 조선 통신사를 끊고 서양인이 조선으로 못 가게 막았다. 외교가 끊긴 조선은 화약원료인 유황을 못 구하고 청에 굴복했다. 청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망했다. 주범은 정조 임금이다. 식민사학자들이 청나라에 굴복한 치욕을 실학으로 미화하고 있으니 황당한 일이다.
원인은 눈에 보이는 물질에 있다. 영국군 특유의 '씬 레드 라인'이 막강했던 이유는 남미의 초석광산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민중은 총을 가졌지만 영국은 화약을 가졌다. 승부는 거기서 난 것이다. 영국인이 신사라서? 독일인이 근면해서? 프랑스인이 사교적이라서? 거짓말이다. 독일은 기독교 선교 명목으로 동유럽을 식민하며 융커들이 막대한 부를 얻었다. 독일기사단이라는게 그냥 동쪽을 털어먹은 것이다. 독일은 폴란드를 털고, 폴란드는 벨로루시와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를 털었다. 우크라이나는 몽골에 털렸다. 얼마나 악독하게 털었는지 비옥한 흑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구가 희박하다. 유럽의 부는 아프리카를 털어먹은 결과다. 특히 영국은 아일랜드를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관념론에도 일부의 진실은 있다. 원인을 잘 모를 때는 관념으로 밀 수밖에. 유태인은 우수하고, 독일인은 근면하고, 영국은 신사이고, 일본은 단결이 잘 되고, 프랑스는 바캉스를 두 달이나 가서 잘 사는데, 돼먹지 못한 조선놈들은 분열로 망한다고 하면 독재자의 세뇌공작이 완벽하다. 그런데 그게 결과론이다. 영국인은 해적질로 얻은 부로 귀족 신분을 사려면 신사인 척해야 했다. 신분차별이 심해서 양복을 입지 않으면 식당출입은 물론이고 투표도 못 하던 시절이 있었다. 프랑스 역시 식민지에서 얻은 부로 귀족 부인이 주최하는 무도회에 초대받아 신분상승을 하려면 로맨틱해야 했다. 루이 14세가 귀족 부인을 베르사이유 궁전에 인질로 잡아놓고 매일 밤 무도회를 벌인 데서 프랑스식 사교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살펴보면 언제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원인은 날씨, 지리, 환경, 지능, 교육수준, 종교 등으로 다양하며 그 배경에는 대개 눈에 보이는 물리적 원인이 숨어 있다. 정신적 요소가 동원력을 보조하지만 따지고 들면 그 역시 물질적인 이유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일차대전은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 간의 충돌이다. '주의'가 전쟁의 원인이란다. 과연 그런가? 그놈의 주의 때문에 사람이 삼천 만 명 죽었다는 말인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나 피상적인 접근이다. 주의가 일을 키운 것은 사실이나 그 전에 맬서스 트랩이 작동하고 있었다. 다들 위기를 피부로 느꼈다. 세기말이라는 단어가 괜히 생긴게 아니다. 조만간 일어날 양차 대전의 비극을 예감한 것이 세기말과 낭만주의 유행이다. 지식인들은 알고 있었다. 좋은 시절 다 갔다는 사실을.
통제가능성 관점에서 봐야 한다.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다. 말 타고 쳐들어오는 몽골인들은 통제할 방법이 없다. 옛날에는 비단을 몇 필 쥐어주면 오랑캐가 물러갔는데 이제는 무려 6년 간이나 양양성을 포위하고 있다. 저것들이 집에 가라고 해도 안 가네. 권력은 통제가능성이다. 통제하려면 사람을 동원해야 한다. 자유, 평등, 평화, 정의, 사랑, 평등, 이데아, 해탈 따위 레토릭으로 사람을 끌어모은다. 자사의 성, 퇴계의 경, 동중서의 천인감응, 왕양명의 심즉리, 주자의 이기설은 그저 사람을 동원할 목적으로 3초 정도 생각해보고 즉흥적으로 지어낸 말이다. '야들아. 일루 모여봐.' 이런 거다. 깃발이 필요해? 글자나 한 자 써주께. 이런 것이다. 그 깃발에 자유라고 쓰든 평화라고 쓰든 그냥 깃발이다.
우리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원인과 결과가 뒤집어져서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허황된 관념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다. 무슨 주의 때문에, 무슨 사상 때문에, 무신 이념 때문에, 어느 나라 국민성이 어째서, 탈레반이 워낙에 독종이라서, 정치적인 프레임을 걸고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고 정신적 요소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자유가 어때서, 평등이 어때서, 정의가 어때서 말은 그럴듯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기술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결국 총질을 할거면서 말이다. 현실은 어떤가? 아프간에 투입된 무적의 구르카 용병도 탈레반 앞에서는 한국의 예비군보다 못하다. 좌파는 어떻고 우파는 어떻고 하며 억지 프레임을 씌우고 이게 다 무슨주의 때문이야 하고 모함하지만 사실은 컴퓨터 때문이고, 유튜브 때문이고, 인터넷 때문이고, 스마트폰 때문이고, SNS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걸 가지고 말을 하라고.
관념타령을 버려야 한다. 전체주의 때문에, 제국주의 때문에, 신자유주의 때문에 하는 식의 언설들 죄다 개소리다. 사이비 지식인은 편리하게 거짓말로 도망간다. 구소련 멸망으로 신자유주의가 생겨났다. 본질은 생산력이다. 일본의 생산력이 미국의 생산력을 추월했기 때문에 미국이 대반격을 꾀하여 일본을 한 방에 보내버리려고 머리를 쓴 것이 신자유주의다. 공산진영이라는 주적이 없어지자 자기 편끼리 내전을 벌인 것이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 서열정리 들어가 준다. 거기에 신자유주의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때부터는 유령이 힘을 가지고 실체로 행세한다.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하고 선언하면 다들 납득하고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그냥 집에 간다. 더 이상의 탐구는 없다. 그 지점에서 뇌는 작동을 정지한다. 대부분 생산력과 관계가 있다. 한국도 GDP가 상승하며 넥타이부대가 광화문에 등장했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진보정당이 권력을 잡았다. 한국의 희망은 지적, 물적 생산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미국을 등에 업고 만만한 중국을 바라보며 업되어 있는 것이 한국의 역동성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