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수업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인터넷의 신나는 가상현실 속을 떠도느라 고생하시는 학생 여러분을 생각하면 기성세대로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 운명은 여러분들의 몫이지만, 그 운명을 만든 것은 기성세대의 무책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장래는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어깨에는 특별히 한국 시의 장래가 달려있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이 강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우선 한국에 살면서 시를 자신의 희망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한 20년 동안 시를 쓰면서 든 생각입니다만, 한국 시의 수준은 다른 인접 갈래와 비교해볼 때 별 볼 일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소설과 비교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나라의 소설 수준은 정말 대단합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시원찮을 작품들이 아주 많습니다.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장길산 같은 작품이 다 그렇지요.
그러나 시에서는 그렇지를 못해서 딱히 우러러 볼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냐면 시에 뜻을 가진 여러분이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입니다. 정말 좋은, 위대한 작품이 아직 안 나왔으니, 그것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여러분에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엘리어트의 황무지 같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시인들이 아니라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시를 자신의 희망으로 택한 여러분은 정말 좋은 기회를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막 시를 시작하려는 여러분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요?
혹시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분야에 눈독을 들이는 학생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장래희망을 얼른 시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더 희망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밥벌이가 된다는 보장을 못 하지만, 이상에 한참 불타는 여러분이라면 그 밥벌이 때문에 희망을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쓴 동기는 간단합니다. 한국 시의 장래는 젊은 학생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시 쓰는 법을 배우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시를 올바르게 읽는 것을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우는 시는, 평론가들이 이미 정리해놓은 이론을 시에 어거지로 꿰맞추는 작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는 정서를 전하려고 하는 물건인데, 그것을 토막내어 내부구조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정서가 전달될 리가 없지요. 발 앞에서 튀는 개구리를 보자는 것인데, 그것의 안이 궁금하다고 갈기갈기 찢어놓은 꼴입니다. 시험지로 묻는 내용은 바로 그 내부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시는 그런 모양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고 난 직후의 느낌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을 보고 놀라 팔짝 뛰는 개구리의 모습을 보자는 것이지요. 이 자명한 사실을 가르치는 교재도 없고 교사도 없습니다. 입시가 원흉이지요.
시중에 나와있는 창작 안내서를 보면 창작보다는 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 창작에서 이론은 수박 껍데기를 핥는 일에 불과합니다. 수박 맛은 껍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거든요. 이론으로 백날 설명한들 단 한 번 쓰도록 유도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런데 시중에는 그런 맛을 느끼게 할 만한 이론서가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도서관을 뒤져서 내린 결론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직접 쓴 시를 인용하면서 실제로 창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발벗고 나섰습니다.
글쎄요, 여러분들이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얻을지 모르지만,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돈을 많이 벌면 저한테 그 돈 좀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이 원고를 좀 책으로 내게. 하하하.
학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한국 시의 유일한 희망인 여러분에게 저의 작은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고로, 이 연재가 끝나면 여러분의 작품을 직접 봐드릴 예정입니다. 여러분이 평상시에 연습한 작품을 이 사이트의 회원 문단에 올리시면 제가 할 수 있는 한도까지 손봐드리겠습니다. 단, 학생인 경우에만 말이지요. 이미 대가리가 다 커버린 것들은, 가르쳐봤자 소용없습니다. 잔머리만 굴리거든요. 하하하.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이 글은 원래 2006년 빈터 홈페이지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정진명 선생님 ! 낯선 사람이 어찌타가 여기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좋은글 많이도 읽다가 도저히 한꺼번에 새길 수 없어, 귀한날 동안 옮긴 수많은 글들을 순식간에 제 홈피로 날라 버렸습니다. 가을이 오기전에 차근차근 씹어 단백한 시편을 퍼 올려 보겠습니다. 흙은 존재의 바닥이라지요. 그리고 공기는 생명의 바닥이라지요. 선생님의 시강의 또한 저의 시작품...........바닥이 되어 줄것 같습니다. (요렇게 인사 드리면 스크랩의 용서가 될런지요).감사 합니다..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말씀만으로도 고마운 일입니다. 얼마든지 이용하십시오. 이 글을 뒤늦게 봤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