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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핳. 연애요? 솔로가 된지 참 오래된 것 같아요.]
-[백현씨같이 매력 넘치시는 분이 왜 여자 친구가 오랫동안 없었을까요~]
-[글쎄요~]
-[그럼 마지막으로 사귄 여자친구분이.. 몇 년 전?]
-[어..2년 전이 마지막..?]
-[2년 전~ 오래되셨네요.]
-[그러게요. 외롭네요. 하하.]
리포터의 말에 장난스레 말을 맞받아치는 변백현.
채널을 돌리다가 TV에 나온 변백현의 모습에 뻐큐를 날리고 채널을 돌리려다가 리포터의 질문에 내 손이 멈췄다.
변백현과 리포터는 변백현의 3년 전 연인. 그러니까, 나를 가지고 한참을 이야기를 했다.
변백현 저 개새끼. 존나 추억 팔이를 해? 우리가 얼마나 자주 싸웠었는데.
우리의 추억들을 아름답게 포장해서 얘기하는 변백현이 같잖다.
손에 들린 바나나킥을 입으로 가져가 아그작 씹었다.
-[그런데 이렇게 전 여자친구 얘기해도 팬들이 실망하지 않을까요?]
-[에이~ 제가 아이돌도 아니고. 나이가 몇인데요ㅋㅋ]
-[그럼 팬들 쿠크 안 깨진다는 전제 하에! 마지막 여자 친구에게 영상편지 한 번?]
-[아.. 영상편지요?]
-[네.]
-[어... ㅎ... 안녕? 잘 지내지?ㅋㅋ]
잘 지내냐고 묻고는 부끄러운 척 하는 변백현이 어이없었다.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잊었냐?
-[우리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지금의 내 연기에 많은 귀감이 되고 있어.]
-[날 좀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줘서 고맙다.]
결국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 TV를 꺼버렸다. 리모컨을 테이블 위로 집어던지듯 내려놓고 씩씩댔다.
성숙하게 만들어 줘서 고마워? 대체 뭐가 성숙해졌어? 육체적 성숙 말하는 거야? 아~ 그래. 니새끼가 아주 섹스에 미쳤었지.
그리고 우리한테 행복했던 추억들이 대체 어디에 있었어? 뻔뻔한 새끼.
내가 그때 너랑 같이 연기를 했던 건, 아니. 사귀었던 건 내 인생에서 제일 큰 오점이다.
변백현, 시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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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과 나는 4년 전에 같이 드라마를 찍은 적이 있었다. 매우 통통 튀는 로맨틱 코메디로다가.
변백현은 남자주인공이었고, 나는 여자주인공이었다.
모든 로맨틱 코메디가 그렇듯 남주, 여주였던 우린 드라마 속에서 사귀면서 온갖 꽁냥질을 연기했다.
그리고 극중에서도 모자라 우리는, 실제로 사귀었다.
연기를 하면서도 설레던 게 현실로도 연장됐기 때문일 거다. 아니. 착각이었을거야, 그건 다.
연기감정과 실제 감정이 구분이 안돼서 그랬던 거라고. 나도 변백현도 미쳤지.
그때의 나에게 가서 싸대기라도 때리고 싶다. 변백현이랑 사귀지 마! 하고.
아무튼 우리는 드라마를 중반 정도까지 찍었을 때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그치만 우리가 사귀는 건 아무도 몰랐다.
일반 네티즌들에게 알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스태프를 비롯한 주변인들에게도 비밀로 했다.
변백현도 나도, 과거에 공개연애를 한 번 겪어본 적이 있었던 터라, 경험해본 바 말해봤자 좋을 거 없다. 가 우리의 공통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백현이랑 한 2년 정도 사귀었던 것 같다.
변백현이랑 사귀는 동안에 좋았던 기억들도 분명 많았다. 변백현은 다정했고, 참 귀엽기도 했고, 섹스를 좋아하는 만큼 잘 하기도 했고. 여러모로 괜찮았지.
근데, 시발... 비밀연애라는 것 때문인지 여자를 대하는 것에 아주 자유로웠다.
자신을 이상형으로 언급한 여자연예인의 칭찬을 내 앞에서 서슴없이 하고, 심지어는 밥도 먹었다는 얘길 대수롭지 않게 얘기해댔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껴서 먹긴 한 거였지만.
그래서 나도 그런 변백현에게 복수하는 차원으로 변백현에게 말도 없이 친한 남자연예인들과 만난 후 SNS에 글을 올리는 걸로 변백현의 눈에 들어가게 하는 둥 별의 별 짓을 다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변백현도 나도 지쳐서 결국엔 헤어지게 된 거다.
변백현을 사랑했던 감정만 생각한다면 진짜 진심이었고 좋았던 연애였는데, 우리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여러모로 난장판이었던 연애였어서 그다지 좋은 기억은 못 된다.
아후, 시발. 나는 또 왜 변백현 생각을 하고 있어. 기분 나빠.
너도 나랑 헤어지고 연애 한 번도 못했어? 나도 못했어. 남자라면 진절머리가 나서. 지 혼자 피해자인 척 하기는, 개새끼.
속으로 변백현을 씹고 있는데, 탁자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준면이 오빠였다.
“어? 오빠. 왜?”
-“너 시놉 잘 읽어봤어?”
“어어.”
-“대답하는 거 시원찮은 거 보니까 안 읽었네. 너 진짜 혼날래?”
“아, 뭐가아. 시놉 안 읽어봐도 그 감독님 작품은 믿고 한다니까.”
-“야. 그래도 내일 감독님이랑 미팅이니까, 꼼꼼하게 해둬야지 감독님이 좋게 봐 줄 거 아냐.”
준면이 오빠의 말에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아래에 넣어놨던 시놉을 꺼내 슥슥 넘겨봤다.
시놉이야 뭐, 크랭크인 들어가기 전에 수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아직은 꼼꼼히 볼 필욘 없다. 줄거리만 대충 알면 되지.
그것보다도 내가 지금 매우 답답한 건.
“그래서, 내 상대배우는 누구인지 언제 말해줄 건데.”
-“어? 뭐.. 내일 가서 네 눈으로 보면 되잖아~”
“만약에 내 마음에 안 들면? 감독님이랑 미팅 후에는 캐스팅 무르지도 못하잖아.”
-“그치..”
“막말로 만약에 상대배역이 변백현이여봐!”
-“어? 뭐? 왜 변백현이 왜!”
“..만약이라니까, 왜 이렇게 과민 반응이야?”
-“아..아니이! 만약이래도 변백현은 너무 하니까. 내가 너랑 걔랑 무슨 사이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치? 오빠 말하는 거 보니까 변백현은 아닌가보네.”
-“........”
“변백현만 아니면 돼.”
스태프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아무도 몰랐지만, 준면이 오빠는 알고 있다. 우리가 사귀었다는 걸.
내가 변백현이랑 헤어진 뒤에 술을 진탕 마시고 꽐라가 돼서는 준면이 오빠에게 한탄을 했다고 한다. 난 기억도 나질 않지만.
아무튼 오빠가 저렇게 과민 반응하는 걸 봐서는 변백현은 절대 아닌가보네.
-“어... 미팅 내일 오후 2시야. 내가 데리러 갈 거니까, 그때까지 준비 끝내고.”
“응~”
-“이번 영화 진짜 좋은 작품 인 거 알지?”
“알지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는 거다?”
“..무슨 일?”
-“아니, 그냥. 대답이나 해.”
“알았어~ 내가 계속 말 했잖아. 이 감독님 작품 좋다고.”
-“..휴..그래. 그럼 됐어.”
준면이 오빠가 내쉰 한숨이 좀 걸렸지만, 오빠가 내일 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어버려서 왜 한숨을 쉬었냐고 묻지도 못했다.
전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침대위에 던지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일 잘 보이기 위해서 빨리 팩부터 해야 했다. 바쁘다, 바빠.
-
11시쯤에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감독님이랑 미팅일 뿐인데 샵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는 건 너무 오버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후줄근하게 갈 수도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단장을 해야 했다.
어제 팩을 하고 자서 그런지 화장이 잘 먹는다. 역시, 자타공인 피부여신 김여주답다.
꾸미지 않은 듯, 수수한 듯, 한껏 꾸민 모습으로 감독님을 만나러 제작사로 향했다.
오빠는 운전을 하는데에 열중했고, 나는 핸드폰으로 내 이름을 검색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빠.”
“어?”
“진짜 말 안 해줄 거야?”
“뭘. 아..상대배우?”
“응. 이제 10분? 아니, 10분이 뭐야. 좀 있으면 도착하잖아. 그럼 만나게 될 거, 계속 숨길거야?”
“아.. 그럼 얼마 안 남은 거 그냥 네 눈으로 보라니까.”
“대체 왜?”
“그냥~ 그게 더 재밌잖아.”
별게 다 재밌대. 인생이 참 즐거우셔서 좋으시겠어요, 김준면씨.
거울 너머로 날 힐끗 보는 준면이 오빠. 아, 존나 뭔가 찜찜하단 말이야.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아찔한 로맨스’를 검색해보니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저 공감독님이 제작중인 로맨틱 코메디라는 기사 몇 개가 있을 뿐.
“아아!! 왜 안 알려주는데 왜!!”
“야이씨, 시끄러워.”
“김준면 짜증나!! 왜 안알랴쥼?!!”
“어휴..”
내가 난리를 치자 준면이 오빠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가 뒤에서 어떤 말을 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준면이 오빠.
짜증나, 왜 안 알려주는데 도대체?! 뭐, 상대배우가 겁나 나이가 많으시대? 아님 내가 싫대? 대체 왜에!!
온갖 짜증을 부리다보니 벤은 어느새 제작사 앞에 멈췄다.
내게 내리라고 말하는 준면이 오빠를 씩씩대며 째려봤다.
“안 내리고 뭘 봐.”
“김준면 개새끼!”
“뭐?”
흥.
인상을 쓰며 내게 되묻는 오빠에게 대꾸도 않고 벤에서 내렸다.
“나 지금 방송국 다녀와야 하니까, 혹시 미팅 일찍 끝나면 나 올 때까지 기다려!”
내 뒤에 대고 소리치는 오빠의 말을 다 들으면서도 안 들리는 척 대답 없이 걸었다.
사실 상대배우가 누구든지 상관은 없다. 누가 됐든 그냥 ‘아. 그 사람이랑 하는구나~’하고 말겠지.
내게 중요한 건 공감독님의 작품을 내가 한다는 것뿐이니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미팅을 하기로 약속한 회의실 앞에 멈춰 섰다.
후아... 상대배우가 누굴까. 이미 와 있을까? 가슴위에 손을 올려 호흡을 가다듬고 회의실 문을 열었다.
“어?”
“아.. 공감독님!!”
“어~ 여주씨구나.”
“하핳.. 안녕..안녕하세여..”
으흫...날 보고 반가워하신다. 완전 떨려! 포스 쩔어!!
역시 이름있는 감독님이라서 남다르시다. 배우들보다 일찍 와계시다니.
앉아계시는 감독님께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감독님이 웃으시며 내 손을 잡아 악수를 해주신다. 와...미친.. 악수했어.
감격스런 표정으로 방금 악수를 한 손을 보고 있으니 감독님이 웃으시면서 ‘여기 앉아요.’하고 말씀하신다.
네.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감독님의 맡은 편에 앉았다.
감독님과는 초면인지라 약간 어색한 기운이 맴돌아 멋쩍게 웃으며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여주씨는 내 작품 처음이죠?”
“네? 아..네! 저.. 감독님 작품 진짜 하고 싶었는데. 영광이에요.”
“뭐 나라고 별다를 거 있나. 감독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
와, 헐... 겸손하시기까지.
아니라고. 감독님은 우주대감독이라고 손을 내저으며 말하니 감독님이 허허 웃으신다.
아니, 그나저나 내 상대배우라는 사람은 왜 이렇게 안와?
이거이거. 인간성이 완전 글러먹었네. 이 우주대감독님을 기다리게 하고 말이야.
“그나저나 남자 배우는 왜 이렇게 안 오지.”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던 모양인가보다.
감독님과 생각이 통한 것 같아서 속으로 남몰래 좋아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 감독님, 근데.. 제 상대 배우분.. 누구예요?”
“어? 얘기 못 들었어요?”
“ㅎㅎ..네.. 매니저오빠가..얘길 안 해주더라고요..”
완전 나쁘지 않아요? 내가 상대배우에 대해 미리 알아 가면 미팅도 더 수월하고 좋을 텐데. 준면이 오빠 완전 나빴어.
내가 입을 삐쭉대자 감독님이 허허 웃으시며 입을 여시려는 찰나에, 회의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아, 저기 오셨네. 상대 배우분.”
감독님은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배우에게 호의적인 미소를 지으시며 말하셨다.
나는 그런 감독님의 말에 대꾸하지도 않고 멍하게 앉아있었다. 아니, 대꾸할 정신이 어디 있어..
“늦어서 죄송합니다.”
“.........”
“차가 막혀서요.”
“왔으면 됐지. 여기 여주씨 옆에 앉아요.”
“.........”
감독님의 말에 변백현이 고갤 돌려 날 쳐다본다.
“두사람 초면 아니죠? 알아보니까 옛날에 같이 드라마 찍었던데.”
감독님의 말에 변백현이 슬쩍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는다.
“초면 아니죠.”
“.........”
“아주 잘 알지.”
날 보며 웃는 변백현을 보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김준면 죽여버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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