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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광안(狂眼)
10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 땅에 발을 디뎌 놓는 발걸음은 착잡하기만 하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발 한발 움직이고 있는데 아내의 방정맞은 소리가 뇌리를 스쳐갔다.
“여보! 어떡카지요? 혹 어무이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문…….”
“이런 옘병할. 고 방정맞은 소리 좀 하지 마. 전번 달에 오셨을 때 멀쩡하던 양반이 돌아가시긴 왜 돌아가셔. 뭔가 또 못마땅한 것이 있는가 벼.” “지도 따라 가께요.”
“관둬.”
어제 저녁의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와서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새카만 덕지가 더덕더덕 붙은 것 같은 연탄 배달부의 옷보다 더 보기 흉한 작업복을 벗어 놓고 막 씻으려는 순간이었다.
“다리이 한 잔 해야지. 요 밑 반 과부 집으로 오게.”
내 여편네가 매일 하는 말이 저 양반은 실수로 술독에 빠져도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항상 지껄여 온 터였으니 내가 술을 마다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반 과부 집에 다다랐을 때 수다스런 반 과부가 또 수다를 떨었다.
“그럼 그렇제. ‘다리이’가 빠질 수 있나 말이다.”
‘윤창근’이라는 내 이름이 버젓이 있었건만 이곳에서 내 이름은 다리이였다.
내가 ‘다리이’라는 이름 아닌 이름을 갖게 된 연유는 간단하다. 고향 사투리로 말을 할 때 ‘다른 사람이 그러는데’ 해야 할 것을 ‘다리이가 그러는데’ 하는 것을 남발하는데서 다리이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내가 첫 잔을 받아들고 막 마시려는데 빨간 글씨로 ‘전보’라고 쓴 완장을 왼쪽 팔에 두른 우체부가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또 누가 죽었나 왜 저 양반이 저리 쏜살같이 지나가누.”
“이 사람이 전보 온다고 꼭 사람 죽으라는 법 있남? 나야 전번에 내 동생 대학시험 붙었을 때 기쁜 소식도 가져오두만.”
“에이 술맛 없게 웬 송장이야. 다리이 술 한 잔 더 달라고.”
“하무하무. 다리가 안마시면 누가 마시노. 고향 사람 많이 마시이소.”
“어어 저놈의 여편네가 저거 저러다 바람나겠네.”
“와 난 바람 남 안되나? 반 과부가 바람 좀 남 안되나 말이다.”
세상에 과부면 과부지 무슨 반 과부가 다 있냐고 의아스럽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반 과부에겐 엄연히 남편이 있었다. 반 과부 남편도 우리와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광부이다.
갑반, 을반, 병반하여 하루에 거의 반씩은 굴에 가 산다고 반 과부라 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 반 과부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이들의 경우는 좀 다르다.
남편이 일을 하러 가면 가는 순간부터 가슴을 조여 온 몸이 새카만 탄가루에 뒤범벅이 되어 들어오는 것을 보아야만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게 광부 아내만이 겪는 크나큰 고통이랄 수 있었다.
굴 안에서 일을 하다 남편이 언제 어떻게 사고를 당해 수천 미터 지하 굴속에서 시체가 되어 나올는지 아님 영영 시체조차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들대로의 비애가 섞인, 따지고 보면 애절한 소리이기도 하였다.
수다스런 반 과부의 잔을 받아 내가 막 두 잔 째의 술을 입에 대려는데 밖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엄마가 집에 빨리 오시래요.”
“왜?”
“몰라요 그냥 빨리 오시라 하데요.”
“알았다. 내 쪼끔 있다 간다 캐라.”
“이 사람아 빨리 가 보게. 또 아는가 장남을 생산할라고 그라는지…….”
“예끼 사람…….”
술좌석에는 금방 요란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광부들에겐 일을 갔다 와서 이렇게 모여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낙이기도 하였다. 과학적으로 어떤 근거가 있는지는 몰라도 막걸리를 마시면 탄가루를 싹 씻어 내려간다는 이론은 제법 그럴싸한 것이었다.
내가 막 석 잔째의 술을 입에 대려는데 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이번엔 거친 목소리였다.
“당신은 그래 어무이가 팬찮으셔서 전보가 왔는데도 술만 퍼 마신단 말이껴?”
“뭐라고?”
방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아내가 들고 있는 전보 쪽지를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빼앗았다.
“모 위독 속래 병근”
그 뒤부터의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서둘러 밤차를 탔고, 잠 한 잠 못 자고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내가 고향 땅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제 밤에 작업을 했으니 벌써 3일째 꼬박 잠을 못잔 셈이다.
나지막한 고갯마루에 다다랐다. 우리가 어릴 땐 ‘꽃밭’이라고 불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꽃이라곤 한 포기도 없건만 왜인지는 몰라도 우린 그렇게 불렀었다.
납작한 돌을 깔고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릴 때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닷새마다 다가오는 장날이 되면 우리는 꼭 이 꽃밭에 와서 놀았다. 때로는 고무신으로 차를 만들어 차놀이도 하였고, 때로는 열댓 명이 두 편으로 갈라져 상대편에게 먼저 항복을 받아내는 고상박기도 하였다. 그러나 저쪽 장터길에서 장에 갔다 오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쪼르르 달려가
“우리 어메 봤니껴?”
“우리 어메도요.”
“우리 아부지는요.”
하고 제각기 물어 본다. 그러면 그들의 대답은 모두 하나같이
“오냐, 이제 쪼끔 있음 올 끼다.”
하고 금방이라도 저쪽에서 올 것 같이 말하였다.
우린 그 말을 믿고 눈이 빠져라 기다리지만 쪼끔 있다 온다던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나타나지 안하는 것이 태반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담뱃불을 땅바닥에 팽개치고 구둣발로 짓밟았다. ‘왜 오라고 했을까? 왜 갑자기 어무이가 전보를 치셨을까?’ 호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고개를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아이 이게 누구로? 창근이 아이라. 니 연락 받고 왔나?”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지게에 거름을 잔뜩 진 담산 아제가 장승처럼 서 있었다. 담산 아제를 보는 순간 산소 용접을 할 때 반짝 튀기는 새파란 불빛 마냥 내 눈에선 독기어린 파란 불꽃이 담산 아제의 두 눈을 향해 튀었다.
그날도 나는 눈이 새빨개져 노름꾼들을 찾아 나섰다. 오버코트 주머니엔 전날 장에서 판 숫값 십만 원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이젠 전 재산이 이것밖에 없었다.
일 년 내내 못할 짓, 못할 말 들어가며 머슴살이 하여 받은 사경도 노름판에 다 처박았고, 어머님과 아내가 일 년 내내 숱한 고생을 하며 지어 놓은 곡식마저도 노름판에 처박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우리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누렁이 황소 한 마리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마저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사람이 환장을 하면 눈에 뵈는 것이 없다는 말처럼 그때 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조그만 네모판에 아름다운 그림으로 수놓은 48장의 화투장과 돈밖에 없었다.
금방 내게로 굴러 들어올 것만 같은 돈 뭉치들. 그러나 그것은 그림의 떡일 뿐 일확천금을 노리는 용꿈은 꼭 나를 외면하고 말았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싸웠다.
그때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이었기 때문에 무슨 영문으로 싸우는 지를 잘 몰랐었다. 다만 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집안의 물건을 가져 갈려 하였고, 어머니는 울면서 아버지에게 매달려 그걸 뺏으려 했던 것만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그때 쯤 아버지는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집을 자주 비웠다. 어떨 땐 이틀이고 사흘이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낯선 사람이 찾아오듯 불쑥 집에 들어 올 때는 눈은 항상 초점을 잃은 렌즈마냥 흐릿하게 충혈 되었고, 얼굴은 폐병 환자마냥 하얗고 핼쑥했다.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문어 다리처럼 축 늘어져선 잠에 골아 떨어졌다. 해거름의 긴 그림자가 우리 집 지붕 위에 길게 걸리어도 아버지는 계속 그렇게 잠만 자는 것이었다.
하루진종일 그렇게 잠을 자고선 밤이 되면 또 어디론가 슬며시 사라졌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 곁에는 어미 소 뒤에 송아지가 따라 다니 듯 항상 담산 아제가 같이 따라 다녔다.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꼭 겨울철에만 볼 수가 있었다.
내가 차츰 커지면서 나는 아버지가 무얼 하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아버지가 안 돌아오는 날 나를 꼭 껴안고 누운 어머니의 눈에서 뿌연 안개마냥 흐려져 있는 흐릿한 자막을 대충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겨울이었다.
그해도 아버지는 예외 없이 노름을 하였다.
그때는 나도 나이가 좀 들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며칠씩 안 들어오거나 집을 나가면 나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러다 며칠 후 불쑥 찾아오는 아버지의 인상만 봐도 아버지가 돈을 잃었는지 땄는지 그 결과도 알게 되었을 정도 나도 거기에 예민해져 버렸다.
그 해 겨울,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다. 며칠 밤샘을 하고 온 아버지가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나더니 장롱을 뒤지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어머니가 어디 갈 때는 꼭 나에게 아버지가 뭐하나 잘 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장롱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장롱에 손만 대면 즉시 알려달라고 나에게 신신당부 하였다. 이것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은 이야기였고, 또 나는 그 일을 썩 잘해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꼴도 보기 싫다며 피해 나가고 나는 아버지를 감시해야만 했다. 아무런 할 일도 없으면서도 나는 공연히 방안을 들락날락 하면서 아버지의 동정을 살폈고, 아버지가 일어나면 나는 잽싸게 어머니에게로 달려가 그 사실을 알리곤 하였다.
그 날도 나는 어머니의 부탁대로 아버지를 감시하고 있었다.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아버지 옆에 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아버지는 장롱을 열어 놓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나는 살금살금 문 있는 데로 갔다.
그리곤 문을 열고 나서기가 바쁘게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내가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일이 없을 정도로 크게 놀랐다.
어머니는 집을 향하여 마치 육상 선수가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리듯 뛰어갔다.
아버지가 일어날 때마다 어머니에게 알렸지만 그날처럼 그렇게 놀란 일도 없었고, 그날처럼 그렇게 허둥지둥 집으로 달려가는 일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꼭 미친 사람 같았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은 시작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싸움은 전에 싸우던 것과는 좀 달랐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들고 있는 문종이를 착착 접은 듯한 누렇게 색이 바랜 무슨 종이를 뺏으려 했고 아버지는 그걸 주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엉엉 울고 있었다.
“이 년이 미쳤나 이거 왜 이 지랄이야, 이거 안 놔?”
“그래 난 미쳤다. 미쳤어. 못 놓는다. 차라리 날 죽여 놓고 가져가라.”
“이 년이 뒈지려고 환장을 했구먼. 발로 콱 밟기 전에 어서 놔.”
“죽여라 죽여. 그만큼 해 쳐 먹었음 되지 뭐가 부족해서 이젠 마지막 남은 땅문서 까징 가주 갈라 카노 말이다.”
“에이 썅. 놓으라면 놓을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아버지는 어머니를 걷어찼다.
그러자 어머니는 발에 차인 짚단처럼 저만치 나가서 나동그라졌다.
어머니 코에선 검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냉혈 인간처럼 어머니를 걷어 차 놓고 아버지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도무지 사람 같지가 않았다.
아까 손에 들고 있던 누렇게 색이 바랜 종이 뭉치를 오버코트 안주머니에 넣는 것 같았다.
그러자 죽은 줄만 알았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달려가 또 다시 매달렸다.
“아니, 이 년이 정말 뒤지고 싶나?”
아버지는 옆에 있던 지게 작대기를 들고 날이 반짝반짝 빛나는 도끼로 장작을 패듯 어머니를 마구 패기 시작하였다.
그때 나는 아버지 팔을 붙잡고 애원하였다.
“아부지요 왜 이카니껴. 어무이를 용서해 주소 아부지요.”
“이놈의 새끼가 뭐라카노? 니도 같이 뒤지고 싶나?”
나를 내려다보며 소리치던 아버지의 눈을 보고 나는 그만 아버지 손을 놓고 물러났다.
빛나던 그 눈.
그건 분명히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충혈된 눈 속에 파랗게 빛나던 그 광촉, 그건 흡사 10여 미터 전방에서 미친 듯 질주해 오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밭았다. 이것은 내가 목격한 첫 번째의 광안(狂眼)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지게 작대기로 계속 내리쳤다. 마치 미친 사람이 미친개를 때려잡듯 무지막지하게 두들겼다.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에서도 검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아버지는 나보고 장롱 서랍에 가서 장도를 가져오라 하였다.
내가 장롱 서랍에서 새파랗게 날이 선 장도를 보는 순간 가슴이 오싹했다. 머리끝이 쭈뼛함을 간신히 억누르고 떨리는 손으로 장도를 갖다 드리자 아버지는 그것도 오버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내 눈앞엔 조금 전에 본 새파랗게 날이 선 장도가 아른거렸다. 아버지는 또 나보고 물을 한 바가지 떠오라 했다. 내가 물을 떠다 드리자 마치 소가 들에서 오다 냇물에서 물을 마시듯 아버지는 그 물을 다 마셨다. 그리고 집을 나갔다.
그 후 어머니는 이웃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아버지는 통 집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전 같으면 보통 3, 4일이 지나면 들어왔는데 이번엔 좀 이상하였다.
아버지가 문어 다리처럼 늘어져 담산 아제 등에 업혀 우리 집으로 들어온 것은 어머니를 때려눕히고 땅문서를 가지고 간 날로부터 꼭 열흘이 되는 날이었다.
어머니는 간신히 몸을 가눌 정도로 비참하게 멍들어진 그 몸을 해 가지고도 아버지의 병을 극진히 돌보았다.
밤새도록 잠도 안자고 닭을 사다 호박 속에 넣어 푹 달여 주기도 하였고, 동리를 돌아다니면서 수소문을 하여 좋다는 약은 모두 해다 드렸다.
아버지의 기력이 조금 돌아오자 어머니는 외가에 가서 꽤 많은 돈을 가져 오시더니 아버지가 가져갔던 땅문서를 찾아 오셨다.
그때 어머니는 이를 갈면서 핏대를 올렸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카더니 이건 집안 귀신이 사람 잡아 쳐 먹어도 유분수지 차라리 지서에 고발을 해서라도 말려야 할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노 말이다.”
그리고 보면 아버지가 그 모양을 해갖고 온 것과는 필경 무슨 관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더구나 아버지가
“죽일 놈은 담산이야. 땅문서……. 땅문서는 그놈한테 있어.”
하고 여러 차례 잠꼬대처럼 정신없이 지껄였던 걸 보면 어머니의 말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어무이야 왜 그 카노? 담산 아제가 어쨌길래?”
“닌 몰라도 된데이. 아무것도 아이다.”
어머니가 온갖 정성을 다 쏟았지만 아버지는 좀 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자리에 누운 지 2년이 지나면서 부터는 변소도 다니지 못하였다.
대소변은 요강이나 소쿠리에 등겨를 깔아 놓고 방안에서 누었다.
그렇게 일 년이 더 지나던 어느 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내 손을 꼭 잡고 숨을 몰아쉬면서 억지로 내게 말을 하였다.
“야 창근아, 니도 크그덩 노름을 해래이. 애비가 처박은 것 니가 찾아야 한데이.”
“죽을라면 지성으로 죽지 쪼끄마한 아한테 못할 말이 없구만.”
미처 어머니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아버지의 눈에서는 빛이 일었다. 그것은 마치 꺼지기 싫은 촛불이 마지막 순간에 자기 몸을 반짝 연소시키듯 절박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빛나는 눈빛이었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빛나는 눈빛이었다. 그것은 내가 목격한 두 번째의 눈빛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까마득히 잊었던 아버지에 관한 일들이 내 머릿속에서 싹트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유언처럼 나도 어느 사인가 노름꾼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그처럼 뼈아프게 모아 장만하였던 재산을 내가 하나씩 하나씩 노름판에 처박을 때 그 자리엔 꼭 담산 아제가 끼어 있었고 그 돈은 거의 담산 아제가 따 가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를 갈았다.
밖에서야 엄연히 아저씨와 조카 사이였건만 노름판 안에서는 나이고 항렬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글자 그대로 무법천지였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이라곤 마지막으로 판 소 값 십만 원과 땅문서뿐이었다.
나는 돈을 갖고 노름꾼들을 찾아 나서다 말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나는 장롱 속에서 땅문서를 꺼냈다.
오바 주머니에 넣었다.
서랍 속에서 장도도 꺼냈다. 그것도 오바 주머니에 넣었다.
부엌으로 나가 바가지에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벌컥벌컥 마셨다. 바가지는 되는대로 내동댕이쳤다.
15여 년 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던 일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내 손을 잡고 한 말도 생각났다. 아버지의 그 빛나던 눈빛도 또렷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어금니를 물면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마침 여우 같이 교활한 담산 아제가 보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칠 의미 있는 웃음을 피며 내게로 다가왔다.
“야 창근아, 인제 다 떨어졌나? 한분 더 안 땡길래?”
“좋지. 해야지요. 근데 오늘은 다른 사람들은 다 치워삐고 우리 둘이 하시더 아제요.”
“오냐 니 좋은 대로 하자.”
우리는 둘이서 붙었다.
그날따라 끗발이 쑥쑥 올라 내 앞에는 돈이 수북이 쌓여 나갔고 담산 아제는 집으로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면서 돈을 가져왔다.
이제 마지막이라며 돈을 복판에 갖다 놓고 둘이는 짓고땡을 계속하였다. 이번 한 판만 잘하면 나는 이제 노름을 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다섯 장의 화투를 줍는 담산 아제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도 내 앞에 놓인 화투 다섯 장을 주워들었다.
씨름 선수가 전신의 힘을 모아 상대방을 넘어뜨리려 애를 쓰듯 나는 화투장에 전신의 힘을 쏟았다. 손끝에 온 힘을 모아 화투가 부러져라 쪼아 나가기 시작하였다.
첫 장은 솔 꺽지였다. 둘째 장을 훑었다. 빨간 단풍잎과 까만 단풍잎이 각각 세 개씩 그려진 복판에 기다란 네모를 퍼렇게 그린 풍띠가 나왔다. 나의 모든 정신과 힘은 세 번째 장으로 집중되었다. 이번에 다리가 기다란 학 한 마리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둥근 달을 쳐다보며 외로이 서 있는 솔광이 나왔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불안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네 번째 장을 쪼아 나갔다. 쪼끔 조았지만 그것이 국화 꺽지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일, 구, 장에 짓고 일이 남았으니 솔광에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이 끗발이었다. 마지막 한 장은 더욱더 힘을 들여 조았다. 마지막 장은 빨간 싸리와 검정 싸리 사이에서 힘차게 달리는 홍 돼지가 나왔다. 끗발은 여덟 끗이었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 나는 땅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담산 아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담산 아제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화투 다섯 장을 한 장 한 장 힘을 주어 내리쳐 놓고는 복판에 있는 돈을 움켜잡았다. 더 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을 멋있게 장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막 돈을 끌어 올려는데 담산 아제가 내 손을 뿌리치고 판돈을 싹 끌고 갔다.
“야가 성질이 왜 이리 급하노. 여덟 위엔 뭐가 없나.”
그때 나는 아마도 담산 아제가 돈을 다 잃더니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담산 아제가 한 장씩 내리치는 화투장을 보고 나는 그만 정신이 아찔했다.
사칠구에 짓고 갑오였던 것이다.
쉽게 끝이 나는가 했다가 그 밑천이 생겨 다시 또 해야 하는 것이 약간 기분 나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로 개의치를 않았다. 나에겐 밑천이 두둑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일은 그때부터 일어났다. 내 앞에 놓였던 그 많던 돈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의 쌀독에 쌀이 없어지듯 내 앞에서 야금야금 사라졌다. 야금야금 하던 것이 급기야는 내 앞에 있던 돈이 몽땅 넘어가고야 말았다.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주머니에 있는 장도가 생각났다. 그러나 조금만 더 참기로 하였다.
담산 아제에게 부탁을 해보고 안 들어 줄 때 그때 칼을 사용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제요, 돈 좀 빌려 주고 하시더.”
“야가 뭐라카노. 노름판에서 돈 빌려 주는 사람 봤나?”
나는 속이 탔다. 도저히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꼭 갚아 줌 될꺼 아이껴. 땅문서 재필까요? 차용증이라도 써 달라면 써 주께요.”
“좋다 그럼 땅문서 잽혀 놓고 차용증을 써래이. 돈 갚을 때 땅문서는 돌려주마.”
“알았니더 돈이나 빨리 내 노소 고만.”
그렇게 해서 나는 10만원을 빌렸다. 망쪼가 들려고 그랬는지 그것마저도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또 10만원을 빌렸다. 그것마저도 얼마 못가서 바닥이 났다.
이렇게 빌려주고 따먹고 하던 것이 어느 덧 100만원이 되었다.
더 빌려 달라고 애걸했지만 교활한 담산 아제는 안 된다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때려죽이고 싶었다. 안주머니에 있는 장도로 자꾸만 손이 가려고 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살인자가 되느니 보다는 참았다가 나중에 다시 한 탕 댕겨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나는 노름 밑천을 구하지 못하였다. 내가 노름꾼이라는 건 동네의 꼬마들까지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나에게 돈을 빌려 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면 온통 화투장 투성이었다. 어쩌다 깜빡 잠이 들어서 꿈이라도 꾸면 보이는 것이라곤 꿈속에서조차 화투장뿐이었다.
며칠이 지났을 때 족제비 같은 담산 아제가 찾아왔다. 배슬배슬 웃으며 그는 내 앞에 종이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차용증서였다.
“돈은 금방 안 갚아도 대이께 여기다 용호 아지매 도장이나 좀 찍어다고.”
나는 홧김에 보증인 김천순이라고 쓴 곳에 어머니의 도장을 콱 찍어 주었다.
아직까지 외상 노름하고 돈 갚아 주었다는 소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였기에 속으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도 담산 아제는 그 쓸데없는 종이쪽지를 착착 접어서 무슨 값진 보물이라도 간직하듯 안주머니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때도 나는 속으로 그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나에게서 보증인 도장까지 찍어 간 담산 아제는 그 후 하루 한 번씩 돈을 받으러 왔다. 나는 그때마다 제발 웃기는 소리 좀 하지마라고 했다.
“야 니가 정말 이러케 나오만 나도 다 생각이 있데이. 나는 법으로 할끼라 그때 가서 딴소리 하지 마래이.”
“좋니더 맘대로 하소. 어떤 눔 법이라 카만 사죽을 못 쓰는 줄 아니껴.”
세상엔 사람 웃기는 일이 참 많다더니만 그야말로 나에게 웃기는 일이 벌어진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나서였다.
S지방 법원에서 온 노란 봉투 속에는 출석 요구서와 함께 고소장 사본이 들어있었는데 그것이 가관이었다.
일금 백만 원을 빌러 가서 갚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에 담산 아제가 찾아왔다.
“니 받았제? 잔말 말고 돈 갚아라. 그라문 내가 소 취소할게. 그래 되면 피차 갱비도 안들이고 법정에 까진 안가도 되능기 아이라.”
출두 요구서를 받은 어머니는 울고불고 야단이었다.
“이놈의 새끼가 그 많든 재산 다 떨어 처먹디로 이젠 하나 나문 지 어마이 재판소까지 끌고 갈라카네.”
나는 장날 읍에 가는 길에 대서소를 찾아갔다.
서류를 내어놓고 사실 얘기를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기고만장 이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사법서산가 뭔가 하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것이 노름 할 때 꾸어준 돈이라는 걸 말해 줄 증인이라도 있소?”
“그야 뭐 우리 둘이 한 것이니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지요.”
“그렇담 당신이 영락없이 당하겠는데요. 일은 딱하지만 문서상으로는 당신이 절대로 불리하네요. 설사 이게 노름빚이라는 게 밝혀진다 해도 당신들은 도박죄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지요.”
나는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힘없이 대서소를 나왔다.
S지방 법원에 출두하는 날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침도 안 드셨다.
신작로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꼴도 보기 싫은 담산 아제도 차를 타러 왔다.
원고와 피고가 한 차를 탔다.
“야야 창근아 아직도 늦지 않았데이. 우리 서로 좋게 하는기 어떤노?”
“노름빚 갚아 주면 삼대가 망한다 카뒤더. 내사 그러케는 모타겠니더. 우리 둘이 영창에나 가시더.”
“야가 뭐라 카노.”
“그기 노름빚이라는기 발케지만 아제하고 내하고 영창 간다 카데요.”
우리 둘의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어머니의 눈에선 빛이 흐르고 있었다. 검은 동자는 하나도 안 보이고 흰 동자만 보이는 것 같았다. 눈에는 힘이 솟아 있었다.
오전 11시.
법관 앞에 선 내 몸이 엄동설한에 팬티 바람으로 연병장에 집합한 병사의 몸마냥 떨렸다.
“윤삼남.”
“윤삼남.”
“윤삼남.”
“윤삼남씨 안 오셨습니까?”
“본 공판은 원고가 출두하지 않았으므로 다음으로 연기합니다. 다음 공판은 ⨉월 ⨉일 11시에 본 법정에서 열립니다.”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우리가 정류장에 왔을 때 담산 아제는 거기 있었다. 담산 아제는 재판을 걸어 놓으면 선뜻 돈을 줄줄 알다가 내가 한술 더 떠서 같이 영창이나 가자했더니 일이 틀린 걸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다음 공판 날에도 담산 아제는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소송은 싱겁게 끝나 버렸다. 원고가 출석을 안 하니 그 사건은 자동적으로 폐기가 되어 버렸다.
그 사건이 있고 난 얼마 후 나는 집을 떠나기로 했다. 도저히 고향에서 낯을 들고 살 염치가 없어서였다.
조그만 옷 보따리 두 개에 양은 솥 하나, 그릇 몇 벌 그리고 또 하나 있다면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죽으면 죽었지 당신 따라는 못 가겠다던 내 마누라가 고작이었다.
그렇게 악담을 하시던 어머니도 눈물 때문에 말씀 한 마디 못하셨다.
나는 어금니를 물고 등을 돌렸다.
그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고는 처음으로 고향 땅을 밟은 셈이다.
“아니 야가 왜 이래 장승처럼 뿌쩍 서 있기만 하노? 집에 빨리 가봐라. 용호 아지매가 많이 팬찮으신가 보더레이.”
거름을 진 담산 아제가 소리를 버럭 질렀을 때에야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걸음을 재촉했다.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고이 잡았다. 내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어머니가 눈을 뜨셨다.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만 계셨다. 어머니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유구무언이었다.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베개 밑을 더듬으셨다. 후들후들 떨리는 어머니 손에 잡혀 나온 것은 10년 전에 내가 담산 아제와 노름할 때 차용증서와 함께 주었던 색이 누렇게 바랜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땅문서였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10년 전의 일이 다시 한 번 빠르게 뇌리를 스쳐갔다.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순간이었다.
내 눈은 어머니가 내미는 또 다른 땅문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창근아 니도 인제 고향으로 내려오그라. 뭐니 뭐니 캐도 사람은 고향을 등져서는 살 수 없데이. 이건 항골 담산 아제네 논 열마지기데이. 니가 보내준 돈을 저금해 뒀다가 매칠 전에 찾았다. 그 동안 땅 내놓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담산네 땅을 꼭 사고 싶어서 꾹 참았능기라.”
어머니의 눈에 빛이 났다.
그것은 첫 번째의 눈빛보다도, 두 번째의 눈빛보다도 훨씬 더 빛나는 강렬한 눈빛이었다.
첫댓글 할아버지 얼굴은 모르고
아버지의 일생 몰랐던 부분도 있네요.
아버지가 살아온 그때를 다시금 그려봅니다.
어렸지만 어렴풋이 생각나는 장면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무슨생각을 하며 사셨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요.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살지 못했기때문에요.
지난 주말에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작은아버지 모두 뵙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