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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정치시민넷 익산 근대문화유산 1차 투어기
좋은정치시민넷은 지난 9월 12일 익산 근대문화유산 1차 투어를 진행하였다. 시민과 함께 근대문화유산 투어를 진행한 것은 근대문화유산 조사를 통해 지역의 역사교육자료를 만들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시민넷은 그동안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방문과 김승대 전북학예연구관 초청강연회를 개최한바 있다.
이날 투어는 오후 2시에 시작하여 저녁 7시가 넘어 끝났다. 20명이 넘는 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참가하였다.
아쉽게도 투어를 진행하는 중간에 많은 비가 내려 계획한 일정을 다 소화를 하지 못했지만 피곤한 기색 없이 끝까지 함께한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역 역사에 대한 관심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익산 근대문화유산 1차 투어는 중앙동에 있는 구 이리역 철도 관사촌을 출발하여 현재 문화재단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구 익옥수리조합, 구 순천여관, 구 고려라사, 주현동 구 대교농장 주변, 구 춘포역, 구 호소카와 농장 관리인 가옥, 김성철 가옥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근대 유산이 있는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그곳에 사시거나 장사를 하시는 시민들의 관심도 높았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다 보니까 ‘뭐하는 사람들인가?’하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유심히 보고 있는 나이든 분들에게 그곳에 있는 일제건축물에 대해 물어보면 추억을 더듬어 이야기도 잘 해주신다. 그리고 방치되고 있는 건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존 했으면 한다는 아쉬운 이야기를 남긴다.
이번 행사를 진행하는 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었다. 김승대 전라북도 학예연구관이 해설사로 함께해주셨고, 김홍균 기전대 교수는 관광자원화를 위해 공간 창출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현재 신동에 살고계신 1929년생 오석고 어르신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함께 걸으며 그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귀찮을 텐데 힘든 기색 없이 춘포역에 대해 설명해주신 최중호 명예역장님과 방문객을 위해 차까지 내주신 ‘구 호소카와 농장 관리인 가옥’ 현 주인인 안 여사님에게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불쑥 찾아온 시민들에게 불평 없이 집을 보여주고 건물이 당시 어떤 용도이었는지 알려주신 건물 주인들에게도 고마움을 드리고 싶다.
그동안 익산은 고대역사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근대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았다. 지금도 익산역 주변에는 일제 강점기 역사가 남아있고 당시의 철도관사, 수리조합 건물, 학교 건물, 병원 건물, 상가 건물, 여관 건물, 농장사무실 등 많은 건축물과 가옥이 현존하고 있으며 가옥에는 현재 주민들이 살고 있다.
좋은정치시민넷 익산 근대문화유산 투어는 이번 1차로 끝내지 않고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구 이리역 철도 관사촌. 호남선 개통이 2012년 이니까 10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거리를 거닐고 있다.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구 이리역 관사촌에 남아 있는 일제 가옥
관사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오석고 어르신
구 이리역장 관사로 사용된 가옥. 현재도 주민이 살고 있다.
구 이리 철도시설분소장 관사로 쓰인 가옥 현재 주민이 살고 있다. 지붕 기와는 한번 교체되어 처음 옛 것은 알 수 없다.
구 이리 철도시설분소장 관사 내부. 처마에 아직도 일본식 분양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구 익옥수리조합 건물. 익산시 평화동 소재, 익산시 등록문화재 제181호 , 1930년 건축, 지상2층 벽돌조. 현재는 익산문화재단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익산 주변의 수리조합 역사를 보면 1907년 군산 미제지(米提池) 수원을 이용하여 ‘옥구서부수리조합’이 창립, 우리나라 수리조합 설치의 효시. 1909년 2월 황등호를 수원으로 ‘임익수리조합’을 창립, 1909년 12월 만경강 상류 동상리에서 제상리 주변 수원으로 ‘임익남부수리조합’ 창립, 탑천강 하류에서 군산 및 옥구군 회현면, 옥산면에 이르는 도수로를 개설하여 ‘임옥수리조합’ 창립, 익산 목천동, 오산면 목천리와 남전리 그리고 신지리에서 군산시 대야면 광교리까지 도수로를 내고 ‘ 임익수리조합’ 익산사무소를 두었다. 1910년 11월 춘포면 대장촌에 ‘전익수리조합’을 설립, 1920년 2월 대아저수지 설계를 계기로 임옥수리조합과 임익남부수리조합을 합병하여 ‘익옥수리조합’을 발족하였다. 참고자료 - 익산문화원에서 발간(2010.12.30.)한 『익산의 근대문화유산』
구 순천여관 가옥. 일제 때 나로또(명문) 여관 건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2층 목조건물로 현재 주민이 살고 있다. 마당에는 작은 정원이 있으며 건물 뒷 편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밖에서 본 구 순천여관. 이곳은 평화주거환경개선 사업지구 안에 있다. 사업이 시작되면 수용되어 없어질 운명이다. 기전대 김홍균 교수는 익산 근대문화유산 벨트 조성사업을 한다면 구 순천여관과 주변 주차장 등이 최적지라고 이야기 한다.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할 때 보존 되어야 할 중요한 역사 자료라 할 수 있다.
중앙동 소재 구 고려라사 건물. 일본식 상가 건물로 당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의 의복점 건물. 건물 벽면에 五, 堂, 本자가 새겨져 있다. 五는 의복점이라는 뜻이고 堂, 本자는 가게 주인의 이름을 뚯한다고 한다.
구 삼산의원. 익산 중앙동 소재, 익산시 등록문화재 제180호, 1922년도 건축 벽돌조 지상2층, 현대와 와서 음식점으로 사용되었나 지금은 용도없이 방치되어 있다. 1922년에 익산군 익산면 이리에 김병수(1898~1951)가 개원한 병원, 익산에서 가장 오래된 병원이다. 당시 익산면 이리에는 8개 의원이 있었는데 4개는 일본인이 운영한 의원이고 나머지는 한국인이 운영한 의원이다. 김병수는 김제군 백구면 유강리 출신이나 익산면에 살았다. 군산 영명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1년을 앞두고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익산에 전달하고 궐기대회 선봉이 되어 행진하다가 일경에 잡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3개월 복역하였다. 출옥 후 1921년 의전을 졸업하고 군산 야소교병원을 거쳐 다음해인 1922년 익산에 삼산의원을 개원하였다. 삼산은 그의 호였다. 참고자료 - 익산문화원에서 발간(2010.12.30.)한 『익산의 근대문화유산』
구 일본인 대교농장 사무실. 익산 주현동 소재, 익산시 등록문화재 제209호,1907년 건축
일본인 부호인 대교여시의 농장이 있었던 곳으로 대교농장 사무실과 쌀 창고가 있었으며 지금도 사무실과 부속건물 및 서쪽의 석축담이 그대로 남아있다. 대교여시는 일본인으로 1907년 9월에 맨 먼저 이리에 농장을 세운 사람이다. 1912년 토지조사령을 내려지고 일인들은 농지나 미개간지를 강제로 불하 받는 방법으로 농지를 점유하였다. 이들은 호남평야의 농지매입에 열을 올렸다. 옥구의 웅본농장(1903)을 비롯하여 호소카와농장(1904)과 대교농장(1907) 등이 1,000정보 이상을 소유한 거대지주가 되어 있었다. 대교농장의 남아있는 터는 해방이후 이리화교협회에서 인수하였다. 참고자료 - 익산문화원에서 발간(2010.12.30.)한 『익산의 근대문화유산』
대교농장 사무실 옆 일본식 가옥. 농장 부속건물로 추측되며 현재 주민이 살고 있다.
구 일본인 대교농장 사무실 앞 건축물(남부시장 뒷편). 대교농장 관리자 사무실 및 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른편에 붙어 있는 건물은 대교농장 노동자 숙소로 사용되었다.
구 일본인 대교농장 사무실 앞 건축물(남부시장 뒷편) 2층 내부 모습
구 일본인 대교농장 사무실 앞 건축물(남부시장 뒷편) 2층 내부 모습
구 대교농장 석축과 표지석(명치 49년 7월 쌓은 것으로 되어 있음). 명치는 44년에 끝나는데 왜 명치49년이라 했는지는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음. 명치49년이면 대정5년(1916년)이라고 볼 수 있음. 일본은 연호를 명치(명치1년은 고종5년 1868년), 대정(대정1년은 1912년) , 소화(소화1년은 1926년), 평성(평성1년은 1989년)을 사용하였다.
춘포역사. 익산시 등록문화재 제210호. 1914년 건립되어 대장역으로 명명되었고 1996년 춘포역으로 개칭되었다. 대장이라는 뜻은 넓은 뜰을 의미한다.
춘포역은 현존하는 역사 중 가장 오래된 역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역사라 할 수 있다. 춘포역을 보면서 아쉬었던 점은 새롭게 전라선을 공사하면서 남아있던 기존의 철로를 다 철거했다는 것이다. 폐 철로에 대한 활용 대책없이 전부 철거를 했다는 것은 익산시 입장에서 보면 막대한 손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춘포역 안 설명자료
춘포역 뒷편으로 지나는 전라선. 수십 km에 이어져 있는 교각은 새로운 볼거리다. 역 뒤에 있었던 기존 철로는 철거되고 부지만 남아 있다.
익산 춘포 구일본인 농장 가옥. 익산시 등록문화재 제211호 1940년대 건축, 지상2층 목조
호소카와 모리다치 농장의 농업 기술자였던 일본인 에토가 1940년 경에 건축하였다. 건물내부는 한국인이 살면서 개조를 하였으며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옆에 2층으로 올라가는 직선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계단 옆에는 복도가 있다. 호소카와 농장터는 옛 구주 구마모토번 번주의 4남이었던 호소카와 모리다치 후작이 만든 농장이다. 1993년~1994년 일본 총리를 지냈고 1993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그의 손자다.
조선일보 기사(1993.12.10.)를 보면 호소카와 농장은 호남평야 2백40여개 일본인 농장 중 이와사키, 노쿠라 농장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호소카와는 을사조약이 맺어지기도 전인 1904년 다른 일본 족벌들과 마찬가지로 러일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직원들을 보내 3백만여 평을 매입하여 ‘넓은 들’이라는 뜻의 ‘대장촌 농장’을 세웠다고 한다. 호소카와는 일제가 패망한 45년까지 매년 수확의 반을 소작료로 거둬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 갔다. 이 지역 증언자들에 따르면 당시 지역 주민의 3분의 2인 1천명 이상이 호소카와 농장에서 소작을 했다고 한다. 참고자료 - 익산문화원에서 발간(2010.12.30.)한 『익산의 근대문화유산』
호소카와 농장가옥 현 주인인 안 여사님이 투어단에게 차를 대접해 주시고 있다. 이 건물을 산지는 30년이 되었고 그동안 임대를 내 주었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3년 전부터 직접살고 계신다. 신 여사님이 소유하기 전에는 한약방으로 사용되다가 개인이 매입하여 개인 주택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신 여사님은 한약방을 한 사람이 돈을 엄청나가 많이 벌어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가옥은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
익산 춘포 김성철 가옥. 일제강점기 건축, 지상1층 목조기와.
김성철 가옥은 원래 호소카와농장 주임관사다. 원래 어느 부유한 일본인이 홀로 사는 어머니를 위해 지어주었으나 주인이 사망한 뒤 호소카와 농장에서 임차하여 주임관사로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 주인인 김성철(2004년 사망)은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호소카와 농장의 직원이었으며 해방 후 신한공사가 농장을 인수했을 때 농장장을 지냈다. 익옥수리조합장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건축물 대장에는 1941년 사용승인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자료 - 익산문화원에서 발간(2010.12.30.)한 『익산의 근대문화유산』
투어단이 집주인(며느리)과 가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촬영 : 윤대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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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익한 일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