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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히말라야 마나슬루 16일간의 기록 ♡~
2012. 8. 10 ~ 9. 1. (기록 임정희)
8/11카투만두 ⇒ 휴게소 ⇒ 고르카(1,280m→300m→1,312m, 125km)
8/12고르카 ⇒ 씨링(1,312m→980m, 284km)
8/13 씨링 ⇒ 아르갓바자르(980m→515m, 299km)
8/14 아르갓바자르 ⇒ 코시나바리(515m→745m, 312.7km)
8/15 코시나바리 ⇒ 콜라비시(745m→900m, 328.7km)
8/16 콜라비시 ⇒ 자갓 (900m→1,375m, 344km)
8/17 자갓 ⇒ 댕(1,375m→1,870, 360km)
8/18 댕 ⇒ 남롱(1,870m→2,633m, 372km)
8/19 남롱 ⇒ 사마곰바 (2,633m→3,521m, 389km)
8/21 사마곰바 ⇒ 베이스캠프 ⇒ 삼도 (3,521m→4,850m→3,883m, 396km-베이스캠프)
8/22 삼도 ⇒ 다람살라 (3,883m→4,478m, 402km)
8/23 다람살라 ⇒ 라르케라 ⇒ 빔탕 (4,478m→5,165m→3,716m, 418km)
8/24 빔탕 ⇒ 고아 (3,716m,→2,510m, 426km)
8/25 고아 ⇒ 딸(2,510m→ 1,700m, 471km)
8/26 딸 ⇒ 쌩게(1,700m→1,112m, 485km)
8/27 쌩게 ⇒ 블블레(1,112m → ,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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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0(금요일, 1일차)
대한민국 ⇒ 네팔(카투만두)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가 보다.
한참을 뒤척이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알람이 울린다. 새벽 2시 50분. 씻고 나오니 어머니께서 언제 일어나셨는지 가볍게 속을 채우고 가라며 계란밥을 해 주셨다.
옆에 앉아 나를 지켜보시는 어머님의 눈에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참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표현하지 않고 쿨 하게 웃어보였다.
6시. 박민수, 추상철, 김옥수, 이원석부대장님과 나는 이윤석 선배님이 운전하시는 봉고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먼전 도착한 대원들과 가족들이 이른 새벽부터 대만원이었고 반갑게 우리를 반겨주었다.
기념 촬영을 마친 대원은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비행기가 뜨기 전 마지막으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동안 느끼지 못한 이 느낌은 뭘까?! 남편의
음성을 듣는 순간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들의 음성을 들으니 더욱더 고조되었다.
조금은 의젓해 진듯한 아이들의 목소리 “잘 다녀오세요. 엄마, 사랑해요~!”
낮 12시 카투만두 공항 도착, 먼전 시계부터 맞춘다. 네팔은 우리나라보다 3시간 15분이 늦다.
공항에는 8월 6일에 선발대로 먼저 도착한 강정국 대장님과 철수 선배님 그리고 셀파와 포토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네팔의 전통 의식으로 갓다를 목에 둘러주며 두손 모아 “라마스떼”하며 인사를 한다.
두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탄 일행은 사원에 들러 라마제를 지내고 하루를 묵게될 그리고 트레킹이 끝나면 다시 묵게될 삼사라 호텔로 이동했다.
오찬으로 네팔 전통국수 툿빠와 우리나라 만두와 흡사한 물소고기로 만든 모모를 먹고, 저녁에는 한국음식점인 빌라에베레스트에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먹었다. 네팔에서의 하루는 조금 색달랐지만 나쁘지 않았다.
강정국 훈련대장님과 고인정 탐험대장님 등 일행은 가볍게 브리핑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
고대장님은 모든 일에 시간을 꼭 지켜 줄 것과 하루하루 일정을 마친 후 평가회를 진행할 것을 제의를 했고 모두 찬성을 했다.
2012. 8. 11(토요일, 2일차)
카투만두 ⇒ 휴게소 ⇒ 고르카(1,280m→300m→1,312m, 125km)
눈을 뜨니 5시. 본격적인 우리의 일정을 위해 준비를 서두른다. 7시 30분에 버스는 출발했고 고속도로라고는 하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 길을 버스는 내달기기 시작했다. 1시간여 달렸을까 창밖으로 하얀 정수리를 드러낸 이름 모를 흰 산이 우리를 흥분시킨다. 소음과 매연의 연속인 버스 안은 또 굉장히 무더웠다. 차안의 유일한 에어컨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바람~!
오전 10시. 얼마를 달려왔는지 카투만두가 해발 1,280m 였는데 300m 란다. 강가 옆에 위치한 휴게소(Malektu:지명)에 들러 점심으로 달밥 이라고 하는 네팔 전통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낮선 요리와 향에 부담은 갔지만 먹어보니 맛이 좋다.
6시간 남짓 버스로 이동해 도착한 곳은 우리의 첫 번째 숙영지인 고르카.
고도 1,400m에 걸맞게 발아래 구름이 걸려있고 멀리 산들이 웅장함을 자아낸다.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현지 스텝들은 텐트를 치고 식사준비 하느라 분주하다. 셀파 노르브가 루찌아라는 따뜻한 차를 대접했다. 단맛이 강한 차는 우유에 홍차를 곁들인 것이란다.
저녁 전,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고르카 타르바르라는 사원에 들러 사원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에 놀랐지만 문화적 차이니 만큼 이해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무엇 가를 사먹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호기심에 한입 얻어먹어 보았다.
우리나라 라면을 부수어 놓은 것에 감자랑 이것저것 야채를 버무려 놓은 맛 이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숙영지로 와보니 낯선 사람들이 신기한 듯 마을 주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고대장님과 명옥언니, 문자언니, 형옥언니 들이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동요와 율동을 가르쳐 주며 함께 어우러져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저녁 무렵 텐트 속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거머리다! 말로만 듣던 거머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강했다. 피가 멈추질 않는단다. 병춘언니는 언제 물렸는지도 모르게 발바닥에 피가 고여 있었다. 다들 벗어놓은 양말을 찾아 신는다.
그렇게 우리의 트레킹 첫날밤은 저물어갔다.
2012. 8. 12(일요일 3일차)
고르카 ⇒ 씨링(1,312m→980m, 284km)
밤사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 눈을 뜨니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사이로 멀리 설산이 태양에 반사되어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여 지고, 발아래 구름은 용이 승천하듯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7시 30분에 출발한 일행은 걷고 걷는다 멀리 우리나라 남해의 다랭이 논과 흡사한 농경지가 발아래 펼쳐져 있다. 오늘 걷는 이 길은 원래 버스로 이동할 길 이었는데 중간에 도로가 폭우로 인해 유실되는 바람에 걸어가는 것이란다. 이제 시작이고 처음 접하는 자연환경 탓인지 나쁘지는 않았다. 얼마나 갔을까? 작은 공동 수도시설 하나 있는 곳에서 발을 멈춘 셀파 노르브가 이곳이 우리의 두 번째 숙영지 씨링 이란다. 전혀 손질이 되어 있지 않은 듯 풀이 무성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또 텐트 8동을 친다. 11시 40분 너무 조금 걸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긴 하는데 내일을 위한 대장님의 탁월한 판단이려니 생각했다. 대원들은 작은 오렌지나무 그늘 아래에서 양말과 옷에 붙어 있는 풀씨를 떼어내는가 하면 수돗가에서 가볍게 세수를 하며 카곡백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저 멀리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보이더니 해가 사라지기도 전에 비가 온다. 텐트 안에서 따스한 차를 마시며 빗소리를 듣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축축하게 젖어 있을 카고백을 생각하니...
비가 오고 한참 만에 빨간색 카고백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포토들을 고용할 때 이곳 현지 주민들을 고용했고, 이들은 자기 마을을 지나며 집에 들러 가족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고 오느라 늦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행해 카고백도 비닐을 덮어 많은 비에 젖지는 않았다. 이들이 카고백이 젖을까 얼마나 신경을 쓰며 왔을까를 생각하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날이 찌는 듯 후덥지근하다. 어떻게 알았는지 현지 총각 한명이 하얀색 통에 음료수를 가득 담아온다. 콜라다! 음료수가 시원하라고 물을 채워 온 것 같은데 물이 더 미지근하다. 재미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우리는 음료수를 사 먹고 다른 것도 주문을 했다. 현지 스텝들이 파인주스를 타주고, 콜라를 사 마셨는데도 더위는 쉬 가시지 않는다. 저녁엔 강대장님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화장실을 개조한 샤워장에서 대원 모두 시원하게 샤워를 할 수 있었다.
6시 저녁메뉴로 된장찌개와 꽁치조림이 나왔다. 영복언니는 밥을 받자마자 덜어 놓더니 입맛에 맞는지 다시 덜어간다. 라왕의 음식 솜씨는 정말 일품 이었다. 사실 나보다 음식을 잘 하는 것 같다.
멀리 나무의 흔들림이 있어 보았더니 야생 원숭이들이 우리가 신기한 듯 쳐다본다.
학교를 마치고 지나가는 마을 아이들도 신기한 듯 “라마스떼”를 외치며 텐트 속 우리들을 유심히 바라다본다. 추상철 기자가 영어가 되는 친구 몇몇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우리가 동물원의 동물이가 된 듯한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밤엔 뭔지 모를 불안감에 신발과 소지품들을 텐트 속에 모두 집어넣고 잠을 잤다는...
2012. 8. 13(월요일 4일차)
씨링 ⇒ 아르갓바자르(980m→515m, 299km)
5시 어김없이 이 시간이면 눈이 떠진다.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고 안개가 자욱하다.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오늘 하루가 얼마나 후덥지근할지 예측이 된다. 아침 차로는 단맛이 강한 생강차가 나왔다.
생강향이 나쁘지 않다.
7시 20분 출발해서 한참을 걷다 산비탈을 내려가니 짖은 잿빛의 큰 강이 보인다.
커다란 나무아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버스도 몇 대 보이는 걸 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버스 터미널이나 종점 같아 보인다. 원석부대장님이 노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보시더니 하나씩 맛보라며 사 주신다. 그 맛은 샤벳 느낌으로 아주 달았다. 놀라운 것은 아이스크림 통이 냉장고도 아니고 아이스박스도 아니라는 것...
옆에서는 배도 팔았다. 배의 맛은 새콤하면서도 단맛이 나는데 꼭 우리나라 작은 돌배와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먹지도 않는 것인데 어찌나 덥고 힘들었던지 맛있게 먹었다.
친절한 노르브가 10m만 가면 우리의 3번째 숙영지인 아르갓바자르에 도착하다고 말해준다.
즐비한 상점을 지나니 호텔 마나슬루라는 간판이 보인다. 물론 우리는 호텔이 아닌 풀밭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잔다.
호텔이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도무지 어디가 호텔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노르브에게 물었더니 옆에 있는 건물이란다.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건물구조다.
더워서 샤워하려고 했는데 물이 나오질 않는다. 새삼 노천에서 화장실 텐트를 옮겨 놓고 샤워하던 그곳이 그리워진다. 결국엔 몇 집 건너 다른 호텔에서 100루피를 주고 샤워를 할 수 있었다.
1시가 못 되어 도착한 우리는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라면은 스프인지 라면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다 부서져 있어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풀밭에 앉아 있으니 모기들이 기승을 부린다. 날을 만난 듯 여기 저기 옷 속으로 파고드는 모기들 크기는 또 어떠한지...
하늘이 이내 구름으로 가득 차더니 소나기가 내리는가 싶으면 이내 겆히고 무지개까지 방긋 마나슬루의 여름은 정말 변화무상다. 그러다가 또 저녁 식사 시간엔 천막 속으로 빗줄기가 스며들어 식판으로 뚝뚝. 국이 빗물이 되고 빗물이 국물이 된다.
한 텐트를 쓰는 토끼띠 미재, 병설, 미숙언니들은 마나슬루 호텔에서 맥주한잔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옆 텐트 안에서는 명옥언니와 영복언니들이 나누는 살아온 이야기며 집 이야기 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정겹게 들려온다.
옆선 고단한지 일찍 잠이 드신 고대장님의 거친 기침소리가 걱정이 되는 밤이다.
우기에 텐트를 가지고 트레킹을 한다는 것! 결코 남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밤이 깊어지자 비가 그쳤다. 잠시 텐트 밖을 나와 보니 주변이 온통 반딧불이 천지다. 예쁘다기 보다 공포감이 느껴졌다.
옛날 시골마을에도 반딧불이가 많았는데 우리나라에는 거의 사라져 간다는 것이 안타깝다.
2012. 8. 14(화요일 5일차)
아르갓바자르 ⇒ 코시나바리(515m→745m, 312.7km)
텐트 밖에서 조용한 움직임 소리가 들린다. 4시 50분을 막 넘기고 있다. 제일 먼저 화장실을 갔다. 호텔 마나슬루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열악한 화장실이며 샤워시설에 안 그러면 한참을 줄을 서야 할 듯하다.
아침에 계란국이 나왔다. 그런데 밤새 치룬 전쟁이 부족한지 문숙언니가 공격하는 모기를 잡아 보겠다고 내두른 손이 그만 뜨거운 계란국을 언니의 허벅지에 엎지르고 말았다. 이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옆에 앉아 있던 언니들도 국물이 튀었는지 뜨겁다며 아우성이다.
그나마 뜨거운 김이 한숨 나간 뒤라 심하진 않았다. 찬물로 응급처치를 하고 출발.
뱀버가 출발을 알린다. “3분전~“
오늘은 협곡을 따라 걸었다. 지대가 낮은지라 주변이 온통 폭포다. 길옆으로 떨어지는 폭포에 덥다며 옥수부대장님과 문숙언니, 미숙언니는 몸을 적시기도 했다. 부럽기는 했지만 따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는 길에 박민수 기자가 돌부리에 걸려 그만 발목을 겹질렸단다. 이제 시작인데 걱정이다.
12시 소띠콜락에 도착해 카레로 점심을 먹었다. 너무 더워 물과 주스를 많이 마신 탓인지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으나 더 걸어야 할 것을 생각해서 밥을 쓱쓱 비벼 열심히 숟가락질을 했다.
지대가 낮아서 인지 정말 덥다. 땀이 나다못해 이젠 옷을 짜면 물이 주르륵 흐를 정도이다. 모두가 힘겨워 보인다. 앞으로 1시간 반만 더 가면 된단다.
힘을 내자~! 아자 아자~!!! 2시 30분 주문을 외우고 나니 이내 4번째 숙영지인 코시나바리에 도착했다.
경치가 끝내 준다. 텐트 앞엔 협곡이 흐르고 그 너머엔 멋진 폭포가 절경을 자아낸다. 쏟아지는 물소리는 또 어떠한가... 결점이라면 씻을 곳이 없다는 것~! 짐을 풀고 물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박기자님에 이어 미란 언니가 그만 렌턴에 의지해 씻으러 가던 중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다리를 삐었단다.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또 흔하게 삐는 곳이 아닌, 반대쪽이어서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애처롭고 안타까웠다. 냉찜질을 하고 테이핑을 해 주었지만 많이 아파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청국장에 저녁을 먹고 하루의 회포를 한국에서 가지고온 소주와 현지 맥주로 가볍게 풀어본다.
나현언니와 나는 길옆에 흐르는 계곡에서 가볍게 몸을 씻고. 또 다른 언니들은 전망 좋은 정자(?)에 앉아 폭포소리를 들으며 트레킹에 쌓인 피로를 수다로 푸는 듯 보인다. 몸이 개운하다가도 이내 더워진다.
멀리 반딧불이가 어둠속을 밝힌다.
2012. 8. 15(수요일 6일차)
코시나바리 ⇒ 콜라비시(745m→900m, 328.7km)
5시 15분. 밤새 폭포소리가 요란해도 잠은 잘 잤다. 아니다 아니다 해도 몸은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어느정도 아침 준비가 끝날무렵 강대장님이 직접 순찰을 도신다 전날 워낙 환자가 많이 발생했던 터라 걱정이
되셨나 보다. 미란언니를 비롯, 고대장님 등 모두의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아무런 사고가 없길 바라며 북어국에 밥을 말아 먹고 8.15광복절을 맞이하여 고대장님과 함께 호국 영영들을 위한 묵념을하고 고대장님의 선창에 맞춰 만세 삼창을 한 후 출발 했다.
출발하고 2시간 정도를 계곡을 끼고 걸었을까? 점점 협곡의 높이가 달라진다. 발아래 협곡은 천길 낭떠러지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큰일이 날듯하다. 그런데다 산사태로 인해 도로가 유실된 곳도 많았다. 지난 설악산 훈련이 얼마나 값진 훈련이었는지 다시금 깨달으며 대원 모두는 한발 한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간밤에 발목을 삔 미란언니는 아플 것 같은데도 내색하나 하지 않고 묵묵히 잘도 걷는다. 오늘도 태양이 뜨겁게 내리쬔다. 그나마 다행인건 습도가 조금 덜 높다는 것.
오늘 점심은 맛있는 자장밥. 고대장님은 자장에 고추장, 참기름, 갖은 반찬을 넣고 비벼 드신다. 조금 짜지만 맛있단다. 돼지고기를 못 드시는 상규선배님은 그냥 고추장을 넣고 비비신다. 이렇게 매식을 맛있게 먹는데 살이 빠질까 싶다.
막간을 이용해서 향란언니 종아리 염증과 미란언니 발목 염좌 치료를 한다. 다른 대원들은 매일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그리 할 이야기가 많은지 이야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롯지 멀리 설산이 보이는데 노르브가 마나슬루의 일부분이라고 가르쳐준다. 이제 우리의 희망 그곳을 향해 또다시 전진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산행 시간이 길다. 점심 먹은 것이 부족했는지 자꾸 시장기가 돈다.
점심을 먹고 두 세 시간만 걸으면 된다더니 5시가 다 되서야 롯지에 도착했다. 모두가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오늘 힘들게 걸은 만큼 내일은 따또빠니라는 온천에서 몸을 조금 풀 수 있다고 강대장님이 선심을 쓰듯이 말해 주신다. 저녁엔 예정에 없던 미역국을 먹었다. 알고 보니 오늘 강대장님의 생일이란다. 고대장님과 병춘언니, 나현언니 그리고 나는 간소하나마 짧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간식으로 나누어준 찰떡파이를 모아 케익을 대신하고 생일 축하노래로 ‘왜 태어났니?’를 불러주었다. 그에 질세라 노르브와 치링 뱀버도 레쌈삐리리를 부르며 흥을 더했다. 원석 부대장님은 동네 마트에 있는 맥주 9병을 싹쓸이 해 왔단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네팔 절기상으로 어제부로 우기가 끝이라는데... 하늘이 아쉬움이 많이 남는가보다.
오는 길에 낙영이가 먹지 말라는 열매를 먹더니 탈이 났는지 속이 아프다고 한다. 눈도 침침하고 많이 힘들어한다. 걱정이다. 상규선배님도 같이 먹었는데 토를 해서 괜찮다하고 철수선배님과 병춘언니도 먹었다는데 별 탈이 없는데 유독 낙영이만 힘들어 한다. 이것저것 겁 없이 먹어대던 낙영이가 미련스럽게 보였다.
내일은 씻은 듯이 낳아지기를...
2012. 8. 16(목요일 7일차)
콜라비시 ⇒ 자갓 (900m→1,375m, 344km)
콜라비시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따또빠니(따뜻한 물)를 경유한 자갓이라는 곳까지 간단다. 따또빠니에서의
노천 온천이 기대되는 아침이다. 오늘 아침 사골국은 요리왕 라왕이 실수를 했는지 조금 간이 짰다.
따또빠니를 부어 마시듯 떠먹고 출발준비 완료~!
얼마쯤 왔을까 앞서 갔던 강대장님과 라왕이 서 있다. 산사태로 인해 길이 유실된 것이다. 셀파들이 분주하다. 30m 가량의 길이 사라졌고 바로 옆 협곡의 물은 우리를 집어 삼킬 듯 거세게 출렁인다. 빠지면 이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듯 거센 물살이다. 모든 대원들의 침착함과 셀파들의 도움으로 모두 무사히 건넜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했던가? 9시 즈음 기대하던 따또빠니다. 그런데... 잠시 여기가 네팔임을 잊은 내 잘못 인것 같다. 그렇다. 시설이 과히 만족할 만 하지는 않았다. 3군데의 물줄기에서 대원들은 머리를 감는가 하면 세수만 하기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했다. 나도 질세라 준비해온 옷가지 하나를 빨아 널었다.
수많은 폭포와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들. 이젠 너무 많이 봐서 인지 눈이 실증을 느끼고 지루함을 호소 할 무렵 전망 좋은 롯지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을 먹는데 전망이 예술이다. 바람 또한 그 유명한 에어콘 바람 부럽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이런 맛에 산에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호텔이 이리도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곳에서 센스장이 라왕이 끓여준 떡국을 먹고 아름다움과 시원함을 뒤로 한 채 우리의 6번째 숙영지를 향해 또다시 걷는다.
4시 15분. 16km를 걸어 도착한 자갓의 롯지는 조용하고 깨끗해서 좋다. 그동안 지나온 롯지 중 가장 깔끔한 것 같다. 알고 보니 이집 아들이 한국의 지리산 고등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한단다. 반가웠다. 마침 방학을 맞아 고향에 온 학생은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알기 쉽게 이야기 해 주었다.
씻고 나니 정신이 맑아진 기분이다. 저녁을 먹으며 영복언니가 사준 맥주를 마시니 시원하니 갈증이 완전 해소되는 기분이다.
브리핑을 하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모두가 건강하게 와준 것에 감사함을 표현했다.
이곳 롯지에선 유선 전화를 사용 할 수 있었다. 너도나도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에서 정겹고 애뜻함이 묻어난다. 나현언니는 통화가 안된다며 서운해 한다. 나도 남편과 통화를 했다. 그런데 통화를 하고 나니 그리움이 더 배가 되었다.
고대장님과 병설, 성숙, 병춘, 영복언니 등 많은 대원들은 기분이 좋은지 잠 잘 생각은 안하고 긴 밤을 즐긴다. 나는 조용히 텐트에 들어와 마음속의 가족들과 편안한 밤을 맞았다.
밤 기온이 찬가 싶더니 비가 내린다.
2012. 8. 17(금요일 8일차)
자갓 ⇒ 댕(1,375m→1,870, 360km)
자갓의 아침은 초가을처럼 서늘하다. 밤새 밀린 침낭을 덮어 올리며 잠을 잤다.
예쁜 새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4시 20분. 화장실이며 씻는 곳이 좋아서 인지 아침 준비가 빨라졌다.
오늘은 1,800m까지 올라간단다.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되는 날이다. 그런데 기대도 잠시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협곡과 옥수수 밭길. 내 기분을 감지라도 한 듯 뱀버가 옥수수 밭에 들어가더니 옥수수대 하나를 꺽어 온다. 그리고 잘라 껍질을 벗기더니 먹어보란다. 어렸을 적에 한두번 맛보던 그것이었다.
대원 일행은 재미삼아 잘근 잘근 씹으며 무료함을 달래며 길을 걸었다.
11시 30분 엑레왓띠 롯지에 도착해 감자 수제비를 점심으로 먹고 맥심 커피를 마시며 먼 산을 바라다본다.
멀리 산허리에 구름이 걸려있고, 구름사이 사람들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비탈진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인간의 위대함을 다시금 확인했다. 어제, 오늘 흰산을 전혀 보지 못했다. 조금만 더 가면 보일까? 다시 트레킹은 시작되었고 나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멀리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3일 만에 보는 눈이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조금, 아주 조금만이 눈쌓인 곳이 보여진다. 눈이 우리의 활력소처럼 오늘 산행이 재미있었다는 것으로 급전환 된다.
낮에 거머리에 물린 상규선배님의 목에서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피가 그칠 줄 모르고 흐른다. 어제는 원석부대장님이 얼굴에 거머리를 물리더니... 이놈은 조심한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놈이다.
5시 30분 7번째 숙영지 댕에 도착했다.
이곳엔 도마뱀이 많은데 도마뱀들이 개구리처럼 바위를 뛰어다니고 프랑크 햄 소세지만한 송충이가 토끼처럼 풀 위를 넘나든다. 그래서 인지 호랑나비도 비둘기만큼 큰 것 같다.
댕까지 오는 길은 방금 전에 무너진 듯 젖은 흙이 길 위에 떨어져 있고 협곡을 가로지르는 녹슬고 구멍난 다리는 대원들의 가슴을 졸이고 표정을 굳게 했다.
몇일 전 발목을 다친 미란언니는 좀 풀렸는가 잘도 걷는데, 점심을 먹은게 잘 못 됐는지 명복언니는 소화제를 찾는다. 가는 날 까지 모두 건강해야 하는데...
협곡 옆 롯지에 텐트가 쳐져 있다. 멀리 군데군데 눈이 쌓인걸 보니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엔 낙영이가 원주민들에게 가서 1000루피를 주고 옥수수를 사왔다. 간식으로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었다. 별미였다.
오늘은 대원간의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으나 서로 오해에서 온 것인 같다. 이야기가 잘 돼서 다행이다.
텐트 밖은 4발짝만 앞으로 나가면 낭떠러지 협곡이다. 밤새 안전하고 편안한 밤 보내길...
내일은 2,600m까지 간단다. 일찍 자야 내일 컨디션이 좋겠지?! 내일은 하얀 설산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2012. 8. 18(토요일 9일차)
댕 ⇒ 남롱(1,870m→2,633m, 372km)
어김없이 밤사이 비가 왔다. 이곳은 하루에 한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곳인가 보다. 몬슨시기 라지만 정말... 그래도 낮에는 안 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3시 40분. 오늘은 평소보다 1시간 빠르게 출발 한다고 했기에 일찍 눈을 떴다. 10분만 더 잘까 하다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30분정도 일찍 시작된 트레킹에 가파른 오르막길은 풀리지 않은 몸이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사고가 발생 되고 말았다. 상규선배님이 길옆 도로 유실을 막기 위해 쌓아 놓은 돌을 밟는 순간 바윗돌이 낭떠러지로 무너지고 그 바람에 함께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낭떠러지가 시작되는 곳에 커다란 나무가 있어 그것에 지탱해 협곡 아래로 떨어지진 않았지만 정말 숨 가쁜 시간 이었다. 스틱이 하나 부러지긴 했지만 다행히 선배님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셀파의 도움으로 올라오신 선배님은 “꼭 크레바스에 빠진 기분”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분위기가 숙연해 졌다.
반나절을 걸었는데 지난밤 숙영지에서 보였던 설산 아래를 이제야 돌고 있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것 같은데도 걸어도 걸어도 보여 지는 곳은 별반 다르지 않다.
흉가 같은 빈 롯지의 풀밭에서 볶음밥에 열무와 비슷한 겉절이를 곁들여 점심을 즐긴다. 언니들은 도착하자마자 누가 아줌마 아니랄까봐 젖은 옷가지들부터 널기 바쁘다. 금새 텅빈 빨래줄이 알록달록 크리스마스 추리처럼 화려하다.
원석 부대장님이 배가 아프시단다. 지난밤 자정까지 네팔의 전통주 락시를 드셨다는데 그것이 문제일까?!
얼굴이 상기된 것이 걱정이 된다.
점심을 먹고 시작된 트레킹은 마치 밀림 속을 걷는 듯 아름드리나무가 빼곡하고 나무마다 3, 4가지 이상의
이름 모를 이끼들이 꽃이 되어 동화 속의 어떤 길을 걷는 듯 했다. 드물게는 엄지 손가락만한 도토리도 바닥에 떨어져 있고, 곳곳에 독초인 천남성 열매가 빨간 열매로 누군가를 유혹 하듯 열려있다.
가파른 계단, 가파른 오름길, 오늘 트레킹은 높아진 고도 때문인지 오름길 때문인지 힘이 들었다. 그나마 산행 시간이 짧아 다행이다. 늘 맨 앞에서 앞장서던 원석부대장님이 맨 마지막으로 올라오셨다. 많이 힘이 드신가보다. 커더란 덩치에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못내 안쓰럽다. 오늘만 아프고 내일은 안 아팠으면...
남자부터 여자대원에 이르기까지 계곡물에서 알탕을 하고 왔다. 물이 차가워 소름이 돋는데도 모두가 좋단다.
여자들이 씻을 때엔 남자들이 망을 봐 주기도 했다. 추워도 땀을 닦아내니 개운하다.
저녁시간 꽁치찌개에 밥을 먹고 나니 쿡 라왕이 케익을 들고 등장한다. 강대장님이 형옥언니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라왕에게 특별히 주문을 했단다. 빵 위에 형옥 언니의 이름까지... 완전 감동과 부러움의 도가니다.
케익 컷팅을 하고 맛을 보니 부족한 재료로 만들었다고 하기엔 너무 훌륭한 맛이 났다. 사실 내가 만든 쿠키보다 맛이 더 좋았다.
케익을 먹으며 오늘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내일부터 고산증에 대비하여 체력관리에 신경을 쓰라고 강대장님이 당부를 하신다. 나는 조금 겁이 나기도 했지만 우선 부딪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텐트에 들어오기 전 힘들어 하시던 원석부대장님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추워하시더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내일은 밝은 모습으로 뵈었으면 좋겠다.
여기 저기 텐트 안에서 아스피린 이야기들이다. 고소에 대한 불안감이 큰가보다. 내일 가벼운 몸 일으키려면 일찍 자야겠다.
아직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 밤사이 기적이 일어날까?!
2012. 8. 19(일요일, 10일차)
남롱 ⇒ 사마곰바 (2,633m→3,521m, 389km)
일요일이다. 반이나 올라 왔을까 싶은데 10일차란다. 2,600고지를 넘었는데 아직 몸에 별다른 증상은 없다. 앞으로도 쭉~ 이 느낌 그대로 였으면 좋겠다. 밤사이 비가 안 올까려나 했는데 새벽녘에 여지없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마르지 않은 빨래가 더 젖을까봐 얼른 나가 걷어왔다. 비를 맞은 몸으로 침낭에 들어가려니 눅눅하고 찝찝한 것이 개운치가 않았다.
5시 벌써 언니들은 출발 준비 소리가 바쁘다. 사골국물에 아침밥을 말아먹고 또 다시 출발이다.
앓아누웠던 원석 선배님은 다행히 밥한 그릇을 다 비웠단다.
고소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걸어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어제부터 길 주변에 사과나무가 즐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꽃 사과라 불리는 크기의 작은 사과들 사실 일반 사람들은 먹지도 않을 그런 사과들인데 우리는 그 사과를 보며 침을 삼키고 있다. 재미있다.
2시간 남짓 걸었을까? 고대장님이 두통과 어지러움 증을 호소한다. 현재고도 3,000을 조금 넘는 지점.
출발 전 타이레놀을 복용 했다는데 큰일이다.
올라 갈 수 록 주변의 집들과 아이들의 옷이며 사람들의 표정에서 뭐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네팔보다 티벳의 정취가 느껴진다.
무언가 의식을 치르는지 아주 시끄러운 어느 사원이 바라다 뵈는 롯지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카레에 밥 비벼먹고 젖은 어깨에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즐기고 있는데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언니들은 눕던 자리 정리하고, 배낭에 커버를 씌운 후 우산을 받쳐 든다. 1시 10분 뱀버가 “3분전“을 외친다.
우산을 들고 가던 대원들은 귀찮은지 우산을 하나 둘 접어 넣고 그냥 비를 맞고 걷는다. 사실 스틱에 우산은 무리였다. 나는 우산대신 우비를 입었는데, 우중 산행은 우산을 써도 우비를 입어도 효과적이지 않은 것 을 몸소 깨달았다. 비에는 젖지는 않았으나 비옷을 입으니 후덥지근해 땀이 완전 장렬이었다.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해서 인지 고도가 높아져 기온이 낮아져서 인지 나현언니가 손이 시리단다. 고소에 두통을 호소하던 고대장님도 자꾸만 걸음이 늦어져 병춘언니와 고대장님이 맨 마지막으로 9번째 숙영지인 사마곰바에 4시 30분에 도착했다. 오늘은 17km를 걸어왔다.
3,521m 고지. 성숙언니와 형옥언니를 비롯 몇몇 언니들이 약간의 어지럼증을 호소할 뿐 고소에 대한 건강상태는 대체적으로 양호한 것 같다. 원석 부대장님만 빼고...
내일은 6시 출발이란다.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오는데 8시간 산행을 해야 하고 고도가 높기 때문에 체력 테스트 & 체력 관리 차원에서 다녀온단다. 힘든 사람은 안가고 쉬어도 무방하다는데 모두 그럴 수는 없다는 표정이다. 내일이 걱정이 되는지 모두 일찍 잠을 청한다.
2012. 8. 20(월요일, 11일차)
사마곰바 (3,521m)
몇시인지 모르나 눈이 떠졌다. 잠시 멎었던 비가 텐트를 다시 적신다. 밝아지면 비가 그치겠지 기대하며 눈을 다시 감았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병춘언니가 아침을 준비한다. 4시란다.
되도록 찬 것을 몸에 접하지 말라는 강대장님 말에 세수는 물티슈로 대신하고 가볍게 썬크림을 발랐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고민이 된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대충 얇은 바지에 오버트라우져 바지를 걸치고 나갔더니 강대장님과 낙영이가 나를 보고 NO GOOD~!이란다. 옷 갈아입기를 여러차례... 고산 경험이 없으니 참 어렵다.
비가 그치지 않자 운영진에서 회의를 한다. 결론은 오늘 하루는 휴식이란다~! 형옥, 미란, 문자언니들은 오늘 쉬기로 마음 먹었 다는데 다행이라며 좋아한다. 사실 셀파들이 우리 줌마들은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건 무리라며 반대를 해 왔던 터였다. 강대장님이 오늘은 푹 쉬며 사원과 동네 이곳저곳 문화탐방을 하고 내일 박차를 가하자고 하신다.
아침을 먹고 고인정 대장님과 옥수부대장님을 따라 근처 매점에 들렀다. 2층 건물 내부에는 화덕이 있고, 화덕 위에는 주전자 4개를 얻을 수 있는 있는 구멍이 나 있고 주전자에서는 뜨거운 김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화덕 위 천장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야크고기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간밤에 낙영이가 얻어먹고 왔다는 그 고기인가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야크티를 주문했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한 모금 마셔보니 약간은 느끼한 듯 하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소금을 조금 넣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고대장님은 고소하다며 잘도 드셨다. 옥수 부대장님은 못 드시겠다며 컵을 이내 내려놓는다. 상규 선배님은 맛있는 야크 티를 3잔이나 마시고 왔다고 자랑을 했는데 입맛이 참 독특하신 것 같다. 라왕이 따라와 야크티를 많이 먹게 되면 설사를 하게 된다고 설명해 주신다. 야크 우유의 지방성분만을 모아 만든 것이기 때문이란다. 천정에 매달려 훈제가 된 야크 고기도 맛보았다. 우리나라 육회와 비슷하면서도 비릿한 맛이 강해서 화덕에 구워 먹으니 기름이 좌르르 흐르는 것이 더 고소했다. 네팔에서는 고기를 불에 직접 굽는 것은 하지 않는단다.
뒤늦게 따라온 성숙언니는 다른 나라에서 온 트레커가 주문해서 먹고 있는 음식을 보더니 호기심이 생겼는지 양해를 구해 한 모금 얻어먹는다. 우리나라 해물 라면 맛인데 맛있다면서 하나 시켜 먹어보겠다고 한다.
매점 창밖을 내다보니 멀리 하얗게 눈 덮인 마나슬루 아랫부분ㅇl 안개 사이로 조금씩 보여 진다.
9시 대원들은 곰바레이크를 향해 길을 나섰다. 비가 내려 길은 질척거리고 인적이 드믄 터라 풀이 무성했다.
곰바사원을 끼고 돌아 오르기를 1시간정도 걸었을까? 눈앞에 잿빛 빙하와 그 아래 에머랄드 빛 호수가 한 눈에 펼쳐졌다. 호수에는 빙하도 떠 있었다. 모두들 탄성을 지른다.
그야말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관인 듯하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엔 향란언니 상규 선배님과 야생화 촬영 삼매경에 빠져본다.
내려와서 점심으로 김밥과 장떡, 계란을 먹었다. 김밥은 라왕이 우리가 오늘 베이스캠프에 다녀오는 길에 행동식으로 먹으라고 새벽에 싸 놓은 것이고, 장떡은 센스장이 라왕이 비가 온다고 부친 것이란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오랜만에 텐트 안에서 여유를 부려본다. 텐트 룸메이트인 고인정 대장님, 병춘언니와 침낭속에 누워 그동안 서로 살아온 이야기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많은 걸 배웠다. 또 오랜만에 낮잠도 잤다. 얼마를 잤을까 저녁식사 시간이란다. 저녁 메뉴는 뱀버가 멀리 삼도까지 가서 끌고 온 산양이란다. 방금 전까지 뛰어다니던 산양이 불고기와 수육이 되어 식탁위에 올려 져 있다. 고기를 안 먹는 영복 언니는 징그럽다며 아예 텐트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예상 외로 고기는 냄새하나 나지 않았고 고기의 육질은 연하고 국물 맛도 시원하니 끝내주었다.
박민수 기자는 벌써 힘이 솟는다며 두 주먹을 불끈 져 보이고, 추기자는 밤에 어쩌냐고 되물어 모두가 웃음을 자아냈다. 오늘 하루도 내내 비요일 이었다.
2012. 8. 21(화요일, 12일차)
사마곰바 ⇒ 베이스캠프 ⇒ 삼도 (3,521m→4,850m→3,883m, 396km-베이스캠프)
오늘은 8~9시간 산행 예정이란다.
어둠속에서도 발아래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새벽이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오늘은 베이스캠프까지 전진이다.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밤 기온이 차가웠는지 텐트 속이 젖어있고, 침낭까지 눅눅하다. 밤새 따또바니를 담은 수통을 끓어 안고 잠을 자서인지 그나마 몸은 개운하다.
출발 전 강대장님이 잠시 브리핑을 제안한다. 오늘은 8~9시간 산행에 베이스캠프까지 전진. 못 갈 것 사람은 손을 들라고 말하신다. 둘러보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모두 꼭 가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표정이다.
아침을 먹고 나니 약을 챙겨먹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나도 그 틈에 끼어 타이레놀 한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상쾌한 이 기분으로 하루가 지속되길 바라며 상규 선배님의 구호에 맞추어 간단하게 몸을 풀고 출발한다.
멀리 마나슬루 산허리에 걸려있는 구름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 보인다.
오늘 점심이라며 라왕이 챙겨준 주먹밥에 계란과 사과를 배낭에 넣으며 대충 오늘 하루 일정을 짐작해 본다.
잠시 내게 최면을 걸었다. “ 넌 할 수 있어” 라고...
출발하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햇살도 방긋, 파란 하늘을 얼마 만에 보는 건지... 모든 대원들도 마음이 들떠있는 듯 여기저기 설산을 배경으로 카메라에 자신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기를 2시간. 가스다. 점점 산 아래로 가스가 내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짓게 깔려버렸다. 멀리 눈사태 소리와 폭포 소리만이 주변에 계곡이 흐르고 있음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 급기야 계곡 앞에 다다른 셀파가 물이 많고 물살도 세서 더 이상 갈 수 없다며 내려가야 한단다.
천길 낭떠러지 가파른 비탈길에 숨이 턱까지 차올라 스틱을 찍어 몸을 힘껏 밀어 올리며 힘들게 힘들게 오른길이지만 오늘 처음으로 앞장 서 길을 안내하던 셀파 파상이 외치는 “다운”이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대원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자 뒤 따라 오던 강대장님이 주변을 살펴보더니 파상에게 넘어갈 길을 찾아 보라고 말한다.
고소를 호소하던 고인정 대장님과 성숙언니 미숙언니, 손이 시리다며 힘들어하던 나현 언니 그리고 발목이 여전히 불편한 미란언니는 초입에서 포기를 하고 내려 갔지만 나머지 대원들은 대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은 터라
내려가야 한다는 말에 많이 실망을 한 듯하다.
한참을 오르락내리락 분주하던 셀파들이 길을 찾았다. 여전히 물살이 세고 위험해 보였지만 셀파 노르브와 파상, 치링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모든 대원들은 계곡을 건널 수 있었다. 1시간여 동안 칼날 처럼 날카로운 능선길을 오르니 베이스캠프임을 알리는 돌무더기가 보였다. 감격의 순간이다. 문자언니와 영복언니는 눈물을 쏟아낸다. 나도 코끝이 찡해오고 문득 가족들이 생각이 났다.
사실 베이스캠프는 일반 트레커들은 올라오지 않고 마나슬루 등반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만 오르는 곳이란다. 그래서 일까 한동안 베이스캠프는 우리 줌마들의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다. 비가 오고 안개가 껴서 비록 돌무더기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베이스캠프까지 올라왔다는 감격의 순간은 평생 잊지 못 할 것 같다.
배낭을 노르브에게 맞긴 문자언니가 추위에 떨고있다. 그것을 본 병춘언니는 배낭에서 여벌로 가지고 온 옷 하나를 꺼내며 정을 나눈다. 고도로 인해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는지 손이 저리고 시리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기념 촬영을 마치고 하산을 서두른다. 내려오는 길엔 안개가 조금씩 걷혀 주변에 계곡이며 빙하가 조금씩 보였다. 그리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파른 우리의 하산 길도 보였다. 올라올 때에는 몰랐는데 정말 위험 천만한 길이다.
힘겹게 올라 온 우리들을 잘 가라고 인사라도 하듯이 주변에 에델바이스라 불리는 솜다래 꽃 군락이며 수많은 이름모를 꽃들이 우리를 심심치 않게 해 주었다. 중간쯤 내려오니 어제 갔던 곰바레이크와 크레바스를 쩍 벌리고 있는 웅장한 빙하가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베이스캠프까지 오르는 길은 5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내려오는 길은 2시간 반이 소요됐다.
모두들 이 길을 어떻게 올라갔냐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뒤돌아 본다.
워낙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내려와서 인지 많은 대원이 무릎 통증을 호소한다. 걱정이다 오늘 트레킹이 여기에서 끝이 아니거늘... 11번째 숙영지를 위해서 3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다행히 길은 완만한 평지다. 걷고, 걷고, 걷는다. 일 열을 지었던 대열이 하나 둘씩 나뉜다.
베이스캠프 가는 길에 체력을 모두 소진해서 인지 대원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다음 목적지가 눈에 보이는 데도 가도 가도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치친 걸음 옮기는데 쿡 보이들이 주스 주전자를 들고 서 있다. 따라주는 주스를 마시며 다 왔는가 생각 했는데 아직도 1시간을 더 가야한단다.
저녁 6시 드디어 11번째 숙영지인 삼도에 도착했다. 텐트 한동 한동을 돌며 대원들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대원들이 두통과 무기력을 호소한다. 영복언니는 말할 기운도 없단다. 강해 보이던 옥수 부대장님도 힘드셨는지 아스피린을 찾으신다.
아마도 도착 전 롯지 부근에서 내린 비가 대원들의 체력을 더 떨어뜨린 것 같다.
한 고비를 넘기고 텐트 안에 앉아 이렇게 하루를 정리하고 앉아 있노라니 힘들면서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맛이 내가 산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치링이 저녁을 먹으라며 휘슬을 불어댄다.
2012. 8. 22(수요일, 13일차)
삼도 ⇒ 다람살라 (3,883m→4,478m, 402km)
5시 40분. 출발시간이 9시라 하여 일어나는 시간도 조금 늦췄다. 텐트 밖이 환하다. 늘 풀밭 위에 텐트를 쳤는데 오늘따라 고약한 냄새가 내 코를 찌른다.
오랜만의 여유가 뭔지 모를 허전함으로 남는 이유는... 머리가 약간 띵 한 것이 기분이 과히 좋지가 않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오늘 트레킹 시간은 약 3시간 30분 정도란다. 배낭 속에 다음 숙영지에 도착 하자마자 널어놓을 젖은 옷을 넣었다. 배낭의 무게가 묵근 하다. 어제의 힘든 산행에 비해 모든 대원들의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다행이다.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걸어 올라와 경기차 좋은 언덕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멀리 간밤을 보낸 12일차 숙영지 삼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고산증으로 힘들어하는 고대장님을 빼고는 모두가 방긋 방긋 컨디션이 Good 이다. 간식을 나누어 먹고 사진 촬영도 하고 모두 여유 있어 보인다.
완만한 듯한 오르막길을 걷고 걷는다. 이틀 전 부터 옥수수 밭은 보이지 않고 주변에 야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보인다. 그만큼 고도가 높다는 증거이다. 야크들은 낮은 지대에서는 살 수가 없다고 강대장님이 말해 주신 것이 생각이 난다. 잠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야크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
구름이 밀려오고 안개비가 이내 굵은 빗줄기로 변했다. 우산을 받쳐 들고 걷자니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스틱을 찍어 몸을 밀어 올려도 몸이 무겁긴 마찬가지다. 빗줄기 사이로 멀리 롯지가 눈에 들어온다. 희망이다.
12시 30분 모두가 11번째 숙영지인 다람살라에 도착했는데 조랑말과 포토는 아직 이다.
비를 맞으며 짐을 기다리자니 몸이 점점 차가워짐을 느낀다. 노르브와 뱀버의 재량으로 잠시 빈 롯지에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비를 피하는 동안 셀파와 포토들은 텐트를 친다.
완성된 텐트에 들어가 보니 주변이 온통 말의 배설물들이다. 물론 너무 많이 봐와서 똥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 세상에 어느 아줌마가 똥 침대에서 잠을 자 보았겠는가?!
질척하게 젖어 있는 카고백을 텐트에 부려 놓고 강대장님 텐트에 넘어가 따뜻한 커피한잔을 얻어먹었다.
은은한 커피향이 너무 좋았다. 미재언니와 찰스 상규선배님은 라왕이 특별히 만들어 준 건빵 간식을 먹으며 나른한 오후를 즐겼다.
저녁을 먹고 텐트에 들어가 보니 바닥이 온통 물이다. 출렁 출렁 물이 고여 물침대를 연상케 했다.
노르브가 와서 물을 빼주고 갔지만 찬기는 가시질 않는다. 저녁을 일찍 먹어서 인지 밤이 길다. 병춘언니와 고대장님 셋은 또다시 수다를 떨며 어두운 밤을 맞이했다.
저녁 7시쯤 낙영이가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대원들의 텐트는 모두 불이 꺼져 있다.
밤참으로 라면을 먹으란다. 버섯과 매운 고추를 넣어 끓인 라면은 꼬들꼬들 한 것이 아주 맛이 좋았다.
고대장님 병춘언니 강대장님 상규선배 그리고 박기자와 추기자는 내일 아침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맛있는 라면 파티를 벌였다.
2012. 8. 23(목요일, 14일차)
다람살라⇒ 라르케라 ⇒ 빔탕 (4,478m→5,165m→3,716m, 418km)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몹쓸 잡념과 쏟아지는 비는 나의 눈을 감지 못하게 했다.
밤새 렌턴 불을 밝혀 책을 보다 다시 잠을 청해보길 수십 번 책 한권을 거의 다 읽고서야 약 한 알 먹고
1시간 남짓 잠을 잘 수 있었나 보다.
3시 30분 어둠 컴컴한 밤하늘에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듯 어렴풋이 코앞의 산이 실루엣처럼 보여 진다.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출발 준비를 하는 중간 중간 텐트 밖을 내다보았다.
눈 덮인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새 비와 우박 같이 느껴지는 것에 또 어디서 눈사태가 일어나는지 뭔가 무너지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되어 기도 아닌 기도를 했는데...
다른 대원도 오늘 트레킹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기도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단다.
6시. 날씨가 꽤 쌀쌀하다. 왠지 모를 중압감에 준비운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대충 마치고 출발을 한다.
멀리 설산이 고소에 지친 고대장님의 활력소가 된 듯 아침부터 신이 나 계신다. 끝까지 컨디션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어 본다.
힘겨운 걸음걸음을 옮기는 데 눈앞에 멋진 쪽빛 호수가 보인다. 얼마나 푸르고 아름답던지 말문이 막힐 정도다. 아담한 호수엔 설산이 그대로 들어 차 있다. 마음 같아선 뛰어 들어가 수영이라도 한번 해 보고 싶었으나 물을 만지러 내려갈 힘도 없다. 아쉽지만 먼발치에서 카메라 렌즈 속에 푸르름 만을 담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 모두들 이리저리 카메라를 드리우느라 정신이 없다.
물빛만 보아도 그동안 오르면서 힘들었던 것이 씻은 듯 다 사라질 것 같이 보인다.
멀리 병춘 언니가 고대장님과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도 함께 해야 하는데 자꾸만 멋진 절경과 예쁜 꽃들의 유혹에 앞으로 자꾸만 나아가진다.
병춘언니는 정말 체력이 대단한 것 같다. 본인의 페이스도 있는데 묵묵히 고대장님 뒤를 따르며 힘겨워 하는 고대장님과 함께하며 힘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나를 비롯 다른 대원들은 자기 몸 하나 가누기 힘들어 어쩔줄 몰라 하는데 묵묵히 고대장님의 뒤를 따른다.
명옥언니와 영복언니도 힘겨운 듯 아무 말 없이 걷고 있다. 정말 대단한 언니들이다. 나도 저 언니들 나이에 저렇게 산을 오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지만 자신이 없다.
숨이 찬다. 멀리 고지인가 싶어 참고 올라와 보면 더 가야한단다.
멀게만 느껴지는 최고점 도대체 어디일까?를 생각하며 체념한 듯 올라오니 그곳이 보였다.
어느새 고지는 안개가 가득 차 돌무더기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모두가 환호하고 또 한곳에선 울음 바다가 되었다.
10시 40분. 자동차도, 자전거도 허락하지 않는 험하고 긴 길을 우리는 얼마를 걸어왔던가. 비와 더위에 힘들어 한 날이 몇일이던가? 더럽게 느껴졌던 동물들의 배설물이 그냥 흙과 돌로 보일 즈음 우리는 드디어
14일 만에 우리의 최고 목표지점 라르케르 5,160m위에 서 있었다.
뒤 늦게 올라온 고대장님은 아이 낳는 것 보다 힘든 여정 이었다며 감격의 눈물을 쏟나낸다. 옆에서 위로하던 성숙언니도 함께 얼싸안고 대성통곡을 한다.
대원들은 정상에서 한참을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해 주며 기뻐했다.
라왕이 싸준 주먹밥을 먹는데 또 비다. 추워지기 시작하자 비를 맞으며 하산 길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은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오는 길보다는 덜 가팔랐지만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몇 몇 언니들은 고산증 때문에 두통을 호소하는 터라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비가 내려 비탈길은 더 미끄럽고 지반도 약했다.
향란언니는 기다리는 것이 지루했는지 길 아닌 길을 내려가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했다. 그 또한 고소증상에서 오는 행동이 아닌가 싶은 것이 앞서 가던 영복언니는 하품을 하다 그만 뒹굴기도 했단고 하는 후담이 있었다. 지금도 언니는 자기가 넘어진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것, 명옥언니와 병설언니도 내려오는 길에 졸다가 그만 넘어져 큰일 날 뻔 했다고도 이야기 해 주었다.
하산길은 정말 지루하고 짜증이 날 정도로 길었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천천히 걸어 내려오시는 고대장님도 잠이 온다 하신다. 간식으로 잠이 깨도록 유도를 해 보았다. 많이 힘드신가 보다. 우리는 잰 걸음을 재촉했다.
멋진 롯지가 눈에 보인다. 깨끗하고 화려했다. 병춘언니는 저런 롯지에서 하루만 자 봤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사실 나도 같은 마음 이었다. 하지만 그럴리 만무함을...
강이 흐르는 넓은 평지에 텐트가 쳐져 있었다. 앞 뒤로 멋진 설경이 펼쳐졌다. 조금 감상을 하면 좋으련만 비 맞은 몸이 이내 얼어붙어 그럴 겨를 없이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저녁에 원석 부대장님이 모든 대원이 아무 탈 없이 완등을 해 준 것을 축하한다며 맥주를 샀다 그런데 어쩜 추워서 인지 너무 힘들어서 인지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맥주를 마다하기는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그만큼 대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고 힘들다는 증거인 것 같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멀리 마나슬루를 바라보며 대원들은 지는 밤을 아쉬워했다.
2012. 8. 24(금요일, 15일차)
빔탕 ⇒ 고아 (3,716m,→2,510m, 426km)
밤새 비가 내리고 아침이 되면 의례 그쳐 있다. 밖에서 풍경이 좋다며 떠드는 소리에 나와 보니 멀리
마나슬루가 구름 벨트를 허리에 차고 있다. 뒤편 설산은 더욱 절경이다.
5시 반에 눈을 뜬 오늘은 8시에 출발을 한다기에 여유가 있다. 언니들은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나는 반도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벌써 배낭을 메고 있는 일이 다반사. 나는 언제나 아침 준비하는 것이 힘들다.
화장실에 들렀다 구덩이를 판 이동식 화장실은 한강이 되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용변을 봐서 그런 것이 아닌 평지에 물이 많아 생긴 웅덩이인 것이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한다. 와~우~!
텐트도 마찬가지로 물바다이고 메트리스도 물을 먹었는지 묵근하다. 이젠 따뜻한 방이 그리워진다.
아침밥을 먹고 난 대원들의 표정이 밝다. 이제 힘든 일정이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인 것 같다.
내려오는 내내 마나슬루가 보였다. 구름에 가려 조금 뿐 이었지만 나쁘지 않다. 조금이라도 더 추억 속에 담아보려는 듯 카메라를 들이댄다. 길옆 나무 위에서 야생 원숭이들이 조심스럽게 우리를 바라다 본다.
밀림이다. 이끼가 낀 나무와 돌들 사이를 걸으며 수다를 떨며 내려오던 미재 언니가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오뚜기 처럼 넘어졌다 일어난 언니는 나 때문 이라며 하소연 한다. 그 광경을 목격한 언니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미재 언니만 재미있단다.
숲길에서 잠시 쉬는데 병춘언니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산삼이란다. 강대장님이 노르브에게 산삼이라고 설명을 해 주시니 주변을 둘러보던 노르브가 한 움큼 뽑아온다. 신기했다. 잎과 꽃 모양은 똑같은데 뿌리 모양은 조금 달랐다. 맛을 보니 우리나라 산삼과 흡사했다. 나도 한 뿌리 얻어 씹으며 내려왔다. 왠지 모를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상규 선배님은 오가피도 발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몸에 좋은 약재로 쓰이는 것들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네팔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다. 점심은 통나무를 잘라 만든 멋진 롯지에서 네팔 전통 음식인 달밥을 먹었다. 트레킹 시작 전 호텔에서 만난 대전에서 온 트레커들은 먹지 못하는 고소가 와서 고생을 했다는데 나는 전혀 그런 걸 모르겠다.
산을 올라올 때와는 다르게 내려가는 길의 롯지 풍경은 사뭇 다르다 좀 더 깔끔하다고 해야 하나, 이제 막 지은 건물들도 많은데 모두가 예쁘게 색칠이 되어 이고, 모양도 깔끔하다. 물론 그 롯지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협곡과 폭포가 만나는 지점. 여러개의 폭포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이고 전망 좋은 롯지 건물 옆 잔디밭에 우리의 텐트는 쳐지고 우리는 또 씻을 만한 물길을 찾아 나선다. 남자들이 먼저 씻고 와서 여자들에게 안내를 해 준다. 나현 언니가 함께 가자고 하는데 내려오는 길에 배낭에 눌린 허리가 속을 썩이는 바람에 나는 텐트에서 쉬기로 했다.
노르브가 풀밭에 거머리가 많다며 주의 하라고 말해준다. 이제 찬기가 가시니 거머리를 걱정해야 한단다.
쉰내 나는 빨래를 널어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 걷는 소리가 분주하다. 비가 온단다. 정말 빨래와 비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저녁 메뉴는 닭백숙이다. 15마리의 닭을 잡았단다. 마늘과 상규선배님이 한국에서 가지고온 약재를 넣고 푹
삶아낸 고기는 쫄깃쫄깃하고 구수했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나는 닭죽을 두 그릇이나 먹었는데 나현언니는 속이 좋지 않다며 한 그릇도 채 먹지 못하고, 영복 언니는 흰쌀밥만 먹는다. 힘을 내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제대로 먹지 못하는 언니들 안쓰럽다.
밤에는 허리가 아파 양말도 못 벗는 나를 위해 낙영이가 마사지를 해 주었다. 어찌나 열심히 주무르던지 옆에서 지켜보던 병춘 언니가 땀이 날 정도였단다. 낙영이 손끝이 어찌나 야무진지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 같다.
한 가닥의 태양이 그리운 요즘이다. 잠이 오질 않는다 책이나 몇장 읽다 자야겠다.
2012. 8. 25(토요일, 16일차)
고아 ⇒ 딸(2,510m→ 1,700m, 471km)
5시 30분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이맘때면 그냥 눈이 떠진다. 여명은 밝았으나 밤새 내린 비는 오늘도 여전하다. 이젠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체념이랄까? 그냥 감기나 걸리지 않도록 비에 최대한 젖지 않도록 준비 하는 것이 나의 최선이다.
카고백이 축축하게 젖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여유 있는 마음이 들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이젠 현지인이 다 된 듯 머리를 감은지가 언제인지도 이젠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머리가 가렵지 않다. ㅎ ㅎ
머리카락도 체념한 건가?!
시작부터 비를 맞으며 트레킹을 시작 했기에 스패츠를 했는데 빗줄기가 잦아드는 것 같아 스패츠를 접어 넣었다. 길 중간 중간이 비로 인해 유실된 곳 몇 군데 빼고는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임도처럼 길이 넓고 좋다.
허리만 아프지 않다면 뛰어 다녀도 될 듯하다. 그러고 보니 고소 때문에 고생하던 고대장님이며 형옥언니 등 많은 대원들이 컨디션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발목을 다친 미란언니만 약간의 고통을 호소할 뿐이다.
길이 좋다고 생각했더니 이제부터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와 합류되는 곳이란다. 그래서 인가 깨끗하기까지 한 것 같다. 고아의 한 롯지에서 하얀 국물의 라면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나른한 오후를 땀에 젖은 신발을 말리며 1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땡볕을 쏘이며 길을 걸었다. 벙거지 모자의 챙이 오늘처럼 작아 보이기는 처음이다.
한참을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길 위로 막바로 떨어지는 폭포를 만났다. 주위에 서 있는데도 떨어지는 폭포로 인한 찬바람이 굉장하다. 그만큼 폭포의 낙수가 양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두가 망설이고 서 있는데 병춘언니가 성큼 성큼 앞장서 걸어간다.
모두가 씩씩하게 물살을 헤치고 물길을 넘어가는 병춘언니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뒤 따르던 나현언니와 미재언니는 도중에 되돌아온다. 물의 깊이가 너무 깊어 신발이 물에 다 젖고 물살이 세서 건널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아래에 숨겨져 있던 우회도로를 찾아 안전하게 건너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언니는 정말 대단하다. 이번 산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협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산 아래 멋진 폭포가 내 눈을 자극한다. 그 아래에서 몸을 맞기면 정말 훌륭한 찜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들과 이런 곳에서 샤워하면 시원하겠다고 말하며 걸어오는데 우리의 14번째 숙영지에 도착했단다.
작은 롯지 잔디밭에 텐트를 치다 멈춘다. 희소식이다. 오늘은 텐트가 아닌 이곳 롯지에서 잠을 잘 것 이란다. 대박! 모도가 환호성이다. 롯지에 방을 배정받고 고인정 대장님과 병춘언니 셋은 시원하게 목을 축이자며 내려왔다.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는데 나현, 명옥, 향란언니가 합석을 했다.
우리는 서로 서로를 격려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캄캄한 밤이 되자 비가 오더니 세찬 바람이 분다. 게다가 번개까지 친다. 어쩌면 이런 밤이 올 것을 예측을 했던 것이었을까? 이런 바람 속에 텐트에서 잠을 잤다면 아마도 겁에 질려 한숨도 못 잤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롯지의 잔디밭이 작아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잠을 자지만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다.
이제 오늘과 내일만 지나면 짧고도 긴 트레킹은 끝난다. 내일은 어떤 하루, 어떤 날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내일만큼은 하루 종일 맑은 날 이기를 바란다면... 내 욕심일까?!
2012. 8. 26(일요일, 17일차)
딸 ⇒ 쌩게(1,700m→1,112m, 485km)
그렇게 세차던 풍우가 눈을 뜨니 그치고 고요하다. 간만의 침대에서의 잠자리 여서일까? 찌뿌등 하던 몸이 그나마 좀 개운한 듯하다.
4시 40분 멀리 폭포와 물보라가 희뿌연 창문사이로 눈에 들어온다. 여기 저기 대원들의 움직임 소리가 느껴진다. 고대장님은 머리가 아프다며 채비를 미루신다. 아침 인사차 들렀던 미재언니가 라왕에게 가서 특별한 생강차를 만들어 왔다. 단숨에 들이키신 고대장님 좋아졌다 하신다.
미역국에 밥 말아먹고 7시 30분 출발준비 완료. 이에 맞춰 울리는 치링의 휘슬 소리 “3분뎐”
아침 하늘빛이 환상이다.
내일은 2시간만 걸으면 된다하니 오늘이 마지막 트레킹인가? 출발부터 발걸음과 마음이 감회가 새롭다.
한 시간 남짓 걷다. 잠시 쉬는 시간, 내리 쬐는 아침 햇살이 너무 좋다.
하늘빛은 가을 하늘처럼 푸르고 높다. 멀리 걸어온 길 뒤로 설산이 빼꼼히 상투처럼 보여진다.
협곡을 따라 3시간을 내려 왔나 보다. 지면으로 뜨거운 지열과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빛이 반사되어 몸에 땀이 더한다. 따가운 햇살이지만 싫지는 않다.
발걸음이 너무 빨라 뒤에서는 뛰다시피 한다. “올라올 때에는 힘들어서 못 봤지만 내려갈 때 만큼은 구경을 하면서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고 나현 언니가 작게 하소연 하는데, 나도 그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병춘언니, 고대장님, 미재 언니 뒤를 따라 경치를 즐감하며 속도를 늦추어 걸어왔다.
올라올 때와는 많이 다른 주택과 사람들 그리고 풍경, 비록 깨끗하지는 않았으나 올라올 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라마스떼” 외치며 두 손 모아 인사하던 천진낭만한 그 아이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자갓이다. 올라올 때에도 자갓 이라는 롯지가 있었는데 똑같은 지명을 말해주는 치링에게 나는 못 믿겠다는 듯 다시 되물었다. 자갓 맞단다. 이곳 롯지에서 점심을 기다리는 동안 늘 그랬듯이 빨래 줄은 어느새 알록달록 오색 등산복이 즐비하게 걸려 있고, 신발에 양말도 오랜만의 일광욕을 즐기는 듯 바람타고 냄새가 흠~~
오늘 점심은 자장밥. 오늘부터 다이어트 하기로 했는데...
밥맛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너무 맛있게 먹었다.
고기를 못 먹는 상규선배님을 위해 라왕은 자장에 고기를 뺀 특별한 자장을 만들어 주셨다. 선배님은 자장을 몇 년 만에 먹어보는지 모른다며 맛있게 비벼 드신다. 상규선배님의 얼굴이 환하다. 라왕은 요리 솜씨도 좋으면서 친절하기까지 하다.
옥수부대장님이 뱀버에게 30분 후에 출발 할 것이라고 하자 말이 전해지기 무섭게 대원들은 벌써 배나을 챙긴다. 정말 착실한 줌마다.
땀에 젖은 양말과 등산화를 햇볕에 잠시 동안 널어 놓았는데 벌써 뽀송뽀송해졌다. 발가락이 방긋 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1시 30분 거센 폭포가 흐르는 곳을 막 지날 무렵, 저런 곳에서 묵게 되면 저 물에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할 수 있어 좋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바로 옆에 위치한 롯지가 우리의 16번째 이자 마지막 숙영지 쌩게 란다.
반가웠다. 롯지에 물은 계곡물을 연결해서 쓰는 수도 시설인데도 불구하고 물이 나오질 않는다. 바로 옆에서 폭포수가 한없이 흘러내리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세면도구를 들고 걸어오며 점찍어 놓은 폭포로 갔다.
나현언니는 위에서 병춘언니와 고대장님, 문자언니는 아래쪽에서 미재언니와 나는 중간 쯤해서 자리를 잡았다.
폭포는 깨끗한 물인 듯 한데도 바위에 이끼가 많이 끼어있다. 나는 자리를 옮기다 그만 미끄러졌다.
아차 싶었다. 미재언니가 나를 잡아주었는데 깜짝 놀랐단다. 주위에 있는 언니도 놀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도 그럴것이 물살이 정말 세다. 남자들은 저 위쪽 물에서 씻는다. 협곡 너머에 사는 사람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내려다본다. 물이 차지 않아 나오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하늘은 검게 변하고 비가 내린다. 이젠 그러려니 하는 여유가 생겼다.
오늘도 텐트 아닌 방에서 잔다는게 꿈만 같다. 물론 강대장님과 찰스 선배님은 텐트에서 잠을 잔다. 진정한 산악인이다.
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다린다. 오늘밤 줌마대원과 셀파 그리고 포토들의 파티가 계획되어 있다.
저녁을 기다리는 동안 브리핑을 한다. 강대장님은 이제 마지막에 치달았으니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서 정리해 9월 10일까지 정리한 것을 넘겨줄 것을 지시를 했다. 생각지도 않았다는 듯 언니들이 우왕 자왕 한다. 아마도 경험이 없어서 인 것 같다.
저녁은 원석부대장님이 극찬을 하던 닭 볶음탕이다. 나와 나현 언니는 고기보다 감자를 더 맛있게 먹었다.
저녁상이 치워지자 셀파와 포토들이 들어온다. 목욕을 한 듯 짐을 짊어지고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른 포스다.
모두가 하나 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레쌈삐리리~, 레쌈삐리리~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추억을 쌓았다. 같은 롯지에서 묵게된 이스라엘 트레커 친구들도 우리의 분위가 맘에 들었는지 들어와 함께 흥을 돋군다.
나는 그동안 대원들을 위해 애써주신 옥수 선배님과 찰스 선배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고대장님의 아이디어가 참으로 참신하고 좋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트레킹 마지막 밤인 오늘도 비가 내린다. 양철 지붕에 노크하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2012. 8. 27(월요일, 18일차)
쌩게 ⇒ 블블레(1,700m → , km)
간밤의 여운은 끝이 났는데 잠이 오질 않아 시계만 보다 밤을 보냈다. 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떠있고 창문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명이 밝아오고 대원들은 짐을 챙긴다. 포토들은 진작에 일어나 우리의 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듯 밖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병설언니와 미란언니가 고대장님께 아침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다들 지난밤에 무리를 한듯 한데도 말짱하다.
센스장이 라왕, 북어국에 밥 말아먹고 해장하란다.
출발 전 문숙언니는 의료에 관한 자료 조사에 여념이 없고, 추기자는 그동안 촬영한 동영상을 점검하느라 바쁘다.
“삼분뎐”
2시간 반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기에 보온병만 채우고 출발했다.
뜨거운 태양 볕 아래 또다시 줄지어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줄여간다.
계곡물이 범람해 등산화가 젖을 듯 한 길을 만나자 치링과 뱀버가 바빠진다. 기다리다 못한 미재언니는 신발을 벗어들고 건넌다. 문숙언니와 나는 낙영이가 번쩍 들어 안아 물을 건너 주었다. 고대장님은 안기지 않겠다며 발버둥을 치다 결국엔 안기고 만다. 그 사이 다른 대원들은 치링과 뱀버의 도움으로 무사히 건넜다.
물길이 길이 되고 또 가다보면 폭포. 이번엔 모두들 미재언니를 따라 신발을 벗어든다.
2시간 남짓 걸어가면 된다더니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날씨는 후덥지근해서 인지 갈증은 더해진다.
산행시간이 짧다 하여 모두들 물을 여유있게 준비하지 않을 것을 후회한다.
성숙언니가 콜라를 사줬다. 한국에선 그리 즐겨먹지 않는 콜라인데 아주 시원하고 맛이 좋았다.
지친 걸음 옮기는데 길옆으로 버스가 지나간다. 고대장님과 상규선배 그리고 병춘언니와 나는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야크며 염소들이 역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저들은 아마도 트레킹 시즌에 팔게 될 동물들로 추정해 본다. 걷고 걷다보니 마을이 저 아래로 보인다. 갈림길이 있는 곳 땅바닥에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다. 우리를 그곳으로 내려오라고 표시해 둔 앞서간 셀파들의 배려이다.
빠르긴 빨랐다. 이내 우리가 타고 갈 차로 생각 드는 버스가 3대 서 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우리의 종착점에 도착했다. 이제 15박 16일의 트레킹 일정이 마무리 되어가는 순간이다. 그런데 시원함 보다는 뭔지 모를 아쉬움과 씁씁함에 만감이 교차한다.
12시 점심으로 라면에 누룽지를 먹고, 현지스텝과 대원들이 함께 기념 촬영을 하며 블블레를 끝으로 우리의 트레킹은 끝이났다.
미숙언니는 카고백에 남아있는 의료품이며 비타민 그리고 메트리스까지 꺼내 포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문자언니는 중간 중간 옷을 셀파들에게 벗어준 것도 모자라
남은 것도 건네주고, 다른 언니들도 물통이며 남은 간식들을 셀파들에게 건네주며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시했다.
3대의 버스에 옮겨 탄 일행은 비포장 가파른 길을 조마조마 가슴 졸이며 내려왔다. 나는 아찔한 길을 내달리는 버스가 불안해 손잡이를 부여잡고 왔는데 그 와중에도 형옥 언니는 꾸벅 꾸벅 잘도 잔다.
버스는 1시간 남짓 비포장 길을 내달렸는데 사실 이 길은 우리가 더 걸어야 할 길 이었다고 강대장님이 말해준다. 더 걸어야 했었다고 생각하니 우리는 포카라로 향했다~!
6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낮선 도시 포카라에 도착한 일행은 한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렇게 포카라를 끝으로 21일의 일정 중에 15박 16일 간의 계획되었던 마나슬루 트레킹을 모두 마쳤다.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게 산행을 해준 모든 대원들이 정말 대단하다 못해 위대하게 느껴진다.
16일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린 비와 거머리, 모기와의 싸움, 또 후덥지근한 날씨 이렇듯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매일 걸어야 하는 12~17km의 산행거리, 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공포 고산증에도 당당하게 맞서 이겨낸 우리 경기도 줌마탐험대원들 이들이 해 낸 것이다.
마나슬루 라운드 크레킹 완주. 5,160m를 가다~!
우리들은 평생 잊지 못할 인생의 획 하나를 네팔 마나슬루에서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