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단장의 고장 그리고 독산
칠보단장(칠보단장)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여러 가지 패물로 몸을 꾸민다는 뜻이지만, 청산ㆍ청성 을 일컬어 칠보단장의 고장이라고 혹자는 말하고 있다. 물론 어감만 같을 뿐 의미는 전혀 다르다. 청산ㆍ청성의 경우 칠보단장(七洑單場)은 한자에서 보듯이 물을 가두는 7개의 보와 단하나의 장터를 의미하는 것이다. 7개의 보는 보청천이 청산ㆍ청성을 지나면서 토사유출의 방지와 주변 농경지에 물을 댈 수 있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보청천을 가로막은 수중보를 의미한다. 칠보는 청산면의 보청천 상류인 예실리의 예실보를 시작으로 봉황보, 집맞보, 새들보, 장사래보, 산계보 등 청산에서 청성으로 흐르는 보청천 주변의 마을과 관련이 있는 보의 이름들이 그 위치의 특색에 맞게 지어져 있으며 청성면의 안이미보가 7번째 마지막 보가 된다.
또 단장이란 청산ㆍ청성을 통틀어 유일한 1개의 장터를 의미하는데 청산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청산장은 인근의 영동장과 맞먹을 정도로 큰 장이 섰었지만, 이렇다할 산업시설이 없는 지역이다 보니 세월의 변천에 따라 인구가 점차 줄어듦과 함께 장터의 규모도 예전같지 않다. 마침 방문한 날이 청산장이 서는 날이라 장 구?나선 김에 40년 넘게 청산장을 오가며 장사를 하고 있는 장똘뱅이 고진욱할머니(72세)를 만나서 청산장 얘기를 들어보았다.
“내가 영동장과 무주장, 안성장, 무풍장, 청산장. 이렇게 5개 장을 40년 넘게 다니며 장사를 하고 있슈. 23세에 영동에 시집와서 이듬해부턴가 장사를 시작했으니까 40년이 되얏지유. 10년전만 하더라도 청산장은 이러지 않았는데, 갈수록 사람이 웂어지네...” 말꼬리를 흐리는 할머니는 장사가 안 되서라기보다 그때가 그리운 모양이다. “시골살이를 접고 객지로 떠나는 사람이 많지 들어와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적다보니 별일이 다 생겼슈. 청산에 공동목욕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그만 문 닫어버린거쥬. 그 바람에 청산사람들은 영동꺼지 나가서 목욕을 하고 와야허는디...” 도시생활이야 목욕탕 하나 없어졌다 해도 아쉬울 것 없겠지만, 시골살이에 일주일에 한번정도 때 벗기러 가는 것도 시골에서는 일인 것이다. 이젠 그마저도 자신들이 사는 고장에서는 해결 하지 못하고 보니 이 고장사람들로서는 여간 서운하지 않은 모양인가보다. 할머니는 청산에서 살지도 않고 청산사람도 아니지만, 40년 넘게 장보러 청산을 다니다 보니 이곳사람들의 애환도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청산의 목욕탕이 문을 닫게 된 동기는 인구의 감소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옥천군에서는 농촌복지를 실현하기 위하여 마을회관을 건립하면서 노인건강센터를 각 마을마다 설치하기 시작 했는데 그곳에 간이목욕탕과 찜질방 등의 시설을 하여 농촌사람들의 생활의 질 향상에 일조하고자 하는 정책이 추진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현상유지에 급급했던 목욕탕마저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사람이 많건 적건 장날은 장날이다. 농번기에 지방자치선거까지 겹쳐서 온 장터가 파리 날리는 신세가 되고 있지만, 평소는 제법 활기 있는 장이 선다는 할머니의 말씀이시다.
각설하고 칠보단장 중 칠보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 가보자. 청산ㆍ청성의 젓줄 보청천의 칠보 중 5번째 보, ‘장사래보’는 장위리에 위치하고 있는 수중보를 일컫는다. 이 장사래보 언저리. 즉 보 위의 가로지르는 쪽으로 중간쯤에 혹처럼 튀어나온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청성면에서 청산방면으로 천변길을 따라 가다보면 중간쯤 길에 마주치게 되는 이 언덕은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내려온다.
이 언덕의 이름은 독산이다. 높이는 20m 정도이며 전체적으로 작아보이긴 하지만 경치가 좋은 산과 같다. 설화인 즉, 이 산과 속리산 법주사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옛날 큰 홍수가 나서 속리산의 일부가 이곳으로 떠내려 왔는데, 법주사 승려들이 자기들 산이라며 한동안 매년 지세를 받아갔다. 그런데 새로 부임해온 이곳 현감(縣監)은 지세를 주는 대신 오히려 산을 옮겨가라고 한 후 그것을 옮겨가지 못한 법주사로부터 보관료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짤막하지만 현감의 재치 있는 대응이 돋보이는 유머스런 설화이다. 이 설화가 있음으로 해서 독산은 보청천의 풍경을 이루는 자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독특한 정서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지역문화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 또한 부여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보니 장사래보 인근의 풍광은 독산이 있으므로 해서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물과 물 가장자리의 습지와 모래사장만이 어우러지는 풍경과는 사뭇 다른 조화로움이 그곳에 있었다. 청산의 예실을 지나 청산과 청성을 휘돌아 곧장 내려오던 물줄기는 독산에 가로막혀 물길을 돌려나가는 변화의 멋이 더욱 아름다운 보청천의 풍광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자료: 청산면사무소에서)
첫댓글 그 독산은 옛날에 홍수가 나서 어느 소, 돼지등과 함께 떠내려오다가 어느 한맺힌 여인이 소리를 쳐 더 떠내려 가지 않고 그 곳에 멈추워 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