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 교육리그의 수동식 전광판 앞에 선 안태경의 태양에 그을린 모습. 혹독한 시즌을 보내고 소중한 것을 얻은 1년이었습니다. ⓒ민기자닷컴 |
시즌 성적은 형편이 없었습니다.
루키리그에서 총 6경기에 구원 등판해 4.1이닝 동안 5안타에 볼넷이 무려 13개, 삼진 5개로 12실점에 9자책으로 평균자책점은 18.69였습니다. 어디에 내놓기도 낯 뜨거운 성적표.
시즌 초반 부진하자 등판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나친 스트레스와 중압감으로 몸까지 불고 최악의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안태경(20· 텍사스 레인저스 마이너)은 포기하지 않았고, 텍사스 구단도 안태경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구단의 배려로 날아간 도미니칸 공화국 섬나라에서 안태경은 희망과 자신감과 제구력을 되찾았습니다.
나흘 전에 귀국해 부산에서 다시 훈련을 시작한 레인저스의 기대주 안태경의 힘겨웠던 2010시즌 이야기입니다.
-나흘 전에 귀국했다면 상당히 늦었다. 시즌은 진즉에 끝났는데.
▶시즌이 끝나고 9월에 일시 귀국했다가 10월 중순에 다시 도미니카로 갔다. 일본, 마이애미를 거쳐 도미니카의 레인저스 교육 리그에 참가했다. 참 멀더라. 매일 경기가 있었고 2,3일에 한 번씩 등판해 매번 1이닝 씩 총 10경기를 뛰었다.
-윈터리그가 아니라 교육리그인가.
▶자체적인 교육 리그가 있어서 50명 정도의 레인저스 마이너 선수들이 참가했다. 거의 다 도미니카 선수였고, 나와 미국 선수 4명이 있었다. 올 시즌 구속은 많이 올라왔는데 제구가 안돼서 고생을 많이 했다. 시즌 막판에 조이스 팅글러 감독님이 도미니카에 가서 계속 경기를 하면서 감각을 다듬을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가게 됐다. 마이너 여러 레벨의 선수들이 모였다.
-가서 많은 경기에 뛰었는데 내용은 어땠나. 좋아졌나.
▶시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10경기 중에 한 경기에서 2점을 내줬고, 나머지 경기에서는 실점을 하지 않았다. 안타 4개를 맞고 삼진 14개를 잡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볼넷이 2개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정규 시즌은 제구가 엉망이었는데.
▶올해 스피드는 정말 많이 올라왔다. 최고 구속이 97마일(156km)까지 나오기도 했고 꾸준히 95마일을 찍었다. 그런데 몸은 아주 좋고 가벼웠는데 제구가 되질 않았다. 작년에 계속 아팠고 올해는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시즌 초반에 흔들리자 압박감은 더욱 심해지고 '이번 경기는 잘 해야 한다.' '이렇게 못하면 잘릴 수도 있다.' 뭐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드니까 오히려 집중을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도미니카 가서는 제구력이 갑자기 좋아졌나.
▶갑자기는 아니고 정규 시즌 한 달 쯤 남기고 라이언 오말리 투수 코치님과 투구 동작의 수정을 시작했다. 그때 이미 도미니카에 간다는 결정이 났고, 그래서 힘만 들어가고 욕심이 잔뜩 담긴 투구 동작을 간결하게 교정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일찍 고치지 못했는지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는 어렵고 두렵고 선뜻 바꾸질 못했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동의대에서 한 달 넘게 운동하면서 이상범 감독님도 많은 지도를 해주셨다. 투구 동작을 훨씬 깔끔하고 힘을 많이 빼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바꿨다. 그랬더니 제구력이 확실히 좋아졌다.
-구속은 느려진 것 아닌가.
▶전혀 아니었다. 이번에 도미니카에서도 최고 96마일(155km)까지 나왔다. 도미니카에서는 오로지 야구에만 모든 것을 걸었다. 시골의 외딴 곳 숲속에 지어진 야구장과 숙소에서 야구만 했다. 차도 없고 말도 안통하고 외출도 없었다. 그러면서 정말 야구 외에도 소중한 것들을 배웠다.
-느낌 점이 많았나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감을 다시 얻은 것이고 그리고 야구를 부담 없이 즐기는 법을 배웠다. 도미니카 친구들을 정말 야구를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더라. 그 친구들도 돈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는데도 늘 즐겁게 하더라. 그날 잘 안 됐어도 그 중에 잘 된 것을 찾아내고 항상 긍정적이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내겐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정규 시즌에는 성적도 엉망이고 기회도 없었으니 많이 힘들었을 텐데.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 친구들은 더 높은 레벨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후배들까지 같은 레벨에서 잘 하는데 나는 뭔가 싶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조바심도 생기고 더욱 급해지고. 그런 것들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서 시즌은 더욱 힘들어지기만 했었다.
-포기하고픈 때는 없었나. 어떻게 극복을 했나.
▶시즌을 2개월 반 정도 남기고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경기에 잘 나가지 않으니까 운동만 심하게 하고 또 먹기도 많이 먹고 하다 보니 몸무게가 100kg이 넘었었다. 결심을 하고 몸무게를 빼기 시작했다. 운동도 필요한 것만 하고 불필요한 근육도 빼고 살도 빼고 하면서 한 달 만에 86kg까지 몸무게를 뺐다. 그 후에 90kg가 되면서 컨디션이 정말 좋아졌다. 그전까지는 93마일 정도가 최고였는데 몸을 빼고 나서 97마일이 나왔다. 그러면서 팀에서도 도미니카 교육리그 참가를 결정한 것 같다.
-처음에 구단도 그렇고 기대가 컸는데 지난 2년은 실망이다. 내년 각오가 남다를 텐데.
▶이젠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어떻게 하겠다기보다는 제구력만 잘 잡히고 안정적으로 하면 잘 올라갈 것 같다. 좋은 공을 가지고도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이젠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레벨의 목표를 잡는 것보다는 좋아진 투구 밸런스와 던지는 느낌을 잘 지키겠다. 이젠 빨리 가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것에 긍정적으로 적응하면서 더욱 열심히 해보겠다.
-겨울 훈련과 내년 계획은.
▶작년처럼 동의대에서 열심히 운동할 것이다. 어쩌면 2월 초에 도미니카로 다시 가서 한달 정도 준비를 하고 스프링 캠프에 갈지도 모르겠다. 구단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직 확정은 아니다.
혹독한 시즌을 보낸 안태경은 차분해진 느낌입니다. 마지막에 도미니카에 가서 반전을 이룬 것은 그에겐 큰 전환점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년간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습니다. 과연 그것이 커다란 도약을 위한 시련이었는지, 내년 시즌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