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등을 기대고
명안
언젠가 소라는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너를 떠날 때가 되면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을 거야..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때의 나는 네가 무슨 강아지나 고양이냐며 그녀를 타박했고 소라는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뉘인 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브라운관을 응시했다. 소라의 목소리가 끊기니 집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소라는 늘 그랬다. 내가 본인이 상상했던 반응과 다른 걸 내놓으면 입을 꾹 닫아버렸다. 처음에는 그 버릇이 마음에 들지 않아 투정을 부리기 십상이었지만 이제는 그게 이성적인 소라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걸 안다. 소라는 그 말에 내가 어떤 답을 해주길 바랐을까? 사실 어떤 말을 해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거야. 머릿속은 금방 여러 잡생각들로 가득 차올랐다. 괜스레 지끈거리는 머리에 고개를 비틀어 소라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은근한 담배 냄새가 스쳤다. 소라에게는 늘 담배 냄새가 났다. 비싼 향수를 뿌려도, 좋은 향이 난다는 유명한 섬유유연제를 써도 소라에게 묻은 그 담배 냄새는 어쩐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소라와 십 년이 넘도록 함께 살 수 있던 이유는 그 냄새가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한 연기가 남기는 매캐함이 아닌, 오래된 종이가 주는 안락함. 그런 냄새가 소라에게서는 풍겼다.
‘담배 폈지?’
‘응. 베란다에서 폈는데. 냄새 나? 미안해.’
‘괜찮아, 눈치 주려고 말한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어디 가지 말고 조금 더 이러고 있자. 나는 일어서려는 소라의 팔을 붙잡고 아까보다 더 집요하게 소라의 어깨를 파고 들었다.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소라는 내 어리광을 곧잘 받아주곤 했다. 제 행동거지의 대부분을 내가 방해한다는 걸 알면서도 냉정하게 쳐내지는 못 했다. 소라는 한참동안 제 어깨에 기댄 내 머리칼을 연신 쓰다듬었다. 느릿하고 정갈한 손길이었다. 빠르지 않고 느리지도 않은 소라의 몸짓들은 모두 소라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소라가 좋았다. 살아있기에 내뱉는 숨과 숨을 쉬기에 움직이는 근육과 뼈, 근육과 뼈로 인해 지탱되는 살결, 그 모든 것들에서 소라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이성적이지만 자신을 숨기지 못 하는 소라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오래 함께였으니 소라가 나고, 내가 소라라고. 소라가 내게 숨길 수 있는 건 없다고 그리 오만한 생각을 가졌었다.
소라가 사라졌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내가 오랜만에 대학교 동기들을 만나고 온 날이었다. 몇 달만의 약속이라 들뜬 채로 나갈 준비를 하는 날 보며 소라는 오늘 예쁘다며 잘 다녀오라는 말을 했다. 이상한 점을 느낄 새도 없었다. 소라는 평소와 똑같은 소라색 티셔츠에 여름용 검은 바지를 입었고 나를 슬픈 눈이나 화난 표정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이 며칠 간 작은 말다툼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소라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 말간 얼굴을 보며 그녀가 날 떠날 거란 사실을 도통 유추할 수 없었다.
동창회 내내 나는 소라 생각뿐이었다. 소라가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할 텐데, 같은 개인적인 걱정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소라의 안부를 묻는 동기들 때문이었다. 나와 소라가 동거를 한다는 사실은 대학 내에서 상당한 이슈였으니까. 재미있는 일 없이 학교만 충실히 다니던 나와 어딜 가도 화제의 중심에 있던 소라가 함께 살 정도로 친했다는 건 신기하게 바라볼만한 사건이었다. 나는 맥주를 연신 들이켰다. 대학생이었던 그때나 십 년이 흐른 지금이나 우리에게 집중된 관심에 영 입이 썼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앉아있다간 기분이 망가져버릴 것만 같아 바쁜 일이 있다며 서둘러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소라에게 안부 전해달라는 마지막 인사말이 내게 닿았다. 급하게 들이킨 맥주의 술 냄새는 썩 기분이 좋지 못 했다.
문을 열어젖혔다. 뒤늦게 오른 술기운에 어지러워 도어락 비밀번호를 몇 번이나 틀린 뒤였다. 급하게 걸어온 탓에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걸어오는 소리에 이미 문을 열고 마중 나와 줄 소라인데 어쩐지 그 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으며 소라에게 어떤 투정을 부릴지 입술을 꾹 다물고 생각했다. 소라라면 차분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지. 마음이 아릿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겠지. 소라라면, 나의 소라라면. 내가 사랑하는 나의 소라라면.
현관문 뒤 열린 세상은 고요했다. 거실 형광등은 환하게 켜져 있으면서도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거실에 짐과 옷을 하나씩 풀어 내리면서 소라의 이름을 불렀다. 좁아터진 집이라 어디 숨을 곳도 없을 텐데 소라는 아무리 목청껏 소리를 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점점 찾을 곳이 없어질수록 내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발걸음은 빨라지고 입술은 마르고 술기운 때문인지 눈물도 비죽 흘러나왔다. 나는 거실 바닥에 옷과 같이 나뒹굴고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려 패턴도, 화면도, 잘 눌러지지 않았다. 떨리는 오른 손을 왼손으로 부여잡고 겨우 누른 소라의 번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딱딱한 기계음의 안내는 날 서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서 집 주변 여기저기를 미친 듯 뛰어다녔다. 소라는 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며칠 동안 텔레비전 앞 소파에 기대앉았다. 소라가 있었을 때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던, 그 자리 그대로. 소라는 떠났다. 떠난 게 맞았다. 집 주변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돌아온 날에는 도통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숨을 쉬고 먹고 마시는 것뿐이었다. 이상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멍하니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왜 눈물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나온 결론은 소라를 여전히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세상이 떠나갈 듯 울어버리면 다시 소라가 돌아왔을 때 속상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소라는 차가워 보이지만 마음이 여린 아이라서 부어있는 내 눈을 보면 분명 함께 슬퍼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울컥 눈물이 삐져나올 때면 그 생각을 쥐어 잡으며 버텼다.
그 뒤로 나는 점차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구역질이 나 양껏 먹을 수 없던 음식도 먹고 싶은 것이 생겼고 먼지만 굴러다니던 집을 청소할 수 있는 힘이 났다. 그 옛날 소라가 했던 말처럼 정말 아무 것도 남겨 놓지 않은 소라 덕분이었다. 함께 옷을 넣어 놓은 옷장에도, 커플로 맞춘 세면도구가 가득했던 욕실도, 다용도실도, 그 어디에도 소라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십 년을 함께 살았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날 수 있다니 싶어 신기하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떠날 준비를 했던 건 아닐까. 너는 언제부터 나를.
나는 괜찮았다. 소라가 떠난 지 벌써 다섯 달이 지났다. 이별의 아픔은 시간이 약이고 나는 그 가설을 믿었다. 옛 연인에게 얽매일 만큼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깊은 잠에서 눈을 뜨고 문득 베란다를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도록 손이 닿지 않았던 베란다. 베란다는 소라만의 공간이었다. 베란다가 마음에 든다는 소라 때문에 이 집으로 이사 왔고,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나 때문에 늘 소라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웠다. 베란다에서 혹시라도 소라의 흔적을 찾게 된다면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미처 손을 댈 수 없었는데. 이제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소라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자신이 있다.
물을 담뿍 먹은 청소 행주를 손에 들고 베란다 손잡이를 잡았다. 자신은 있었지만 막상 소라의 공간에 들어간다 생각하니 섣불리 문을 열기는 어려웠다. 이곳에 소라의 흔적이 있으면 꼼짝 없이 그 기억에 먹혀버릴 게 분명해 손이 떨렸다. 심장이 뛰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소라가 사라졌던 그 날과 똑같은 증상이었다. 아아, 나는 여전히 소라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발끝부터 비집고 올라오는 비참함에 식은땀이 흘렀다. 베란다 손잡이에서 손을 놓고 뒷걸음질을 치고는 다시 소파 앞에 주저 않았다. 용기가 부족했구나. 자만이었어. 나는, 나는 도저히.
그 순간 바닥을 짚고 있던 손에 둔탁한 무언가가 걸렸다. 소파 밑에 있던 작은 공간에 물건이 있는 듯 했다. 정신이 없어서 여기까지는 살펴보지 못 했구나. 몸을 납작 엎드려 소파 밑을 살펴보니 납작한 작은 상자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꺼낸 네모난 상자.
‘이건, 보헴 시가잖아’
소라가 대학생 때부터 줄곧 피워오던 담배였다. 십 몇 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담배. 몸에 좋지도 않은 걸 왜 그렇게 피느냐고 타박을 줘도 빙긋 웃으며 늘 곁에 두던 담배였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담배를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바보. 깔끔하게 다 치워버렸으면서 담배를 안 가져가는 게 말이 돼? 담배 곽에는 단 한 개비의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있었다. 얇고도 긴 담배에서는 소라에게서 풍기는 향이 났다. 진짜 바보 같아.
나는 담배 곽을 손에 쥐고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었다. 아까까지는 그렇게도 열리지 않던 문이 왜이리 쉽게 열리는 지. 문을 열자마자 날리는 먼지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마냥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너른 풍경이 반짝 빛났기 때문이다. 베란다에 놓아두었던 낡은 슬리퍼를 신고 난간으로 걸어간다. 난간에 팔을 기대고 소라의 담배 곽에 남아있던 담배에 불을 붙인다. 순식간에 목이 매워진다. 매캐한 연기가 천천히 일렁이며 올라간다. 아픈 목구멍에 연신 기침을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흘러가는 연기를 보며 그제서 야 눈물이 났다. 어디에서 이런 눈물이 나오는지도 모를 만큼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지독하리만치 아픈 이 담배가 소라와 꼭 닮아서. 담배에서조차 소라를 찾을 수 있는 게 분해서. 떠나고 나서조차 사소한 것 하나에 저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소라를 아직도 사랑해서. 그렇게, 그렇게 소리 내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