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은 내꼍에서 나와 함께 한 세월을 살아왔다. 만약 산이 없었다면 나의 인생길은 지금보다 더 고달프고 힘들었을것이다.나는 60이 넘은 지금도 매주 산을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지 않으면 그 다음 일주일을 버티기가 힘들다. 이해못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것이다. 산이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다르다 일주일 마다 산에 오르지 않으면 근육이 오그라들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기분이다. 한마디로 중독되었다. 산을 오르지 못한다면 내 인생도 끝날것이다. 나는 지금 다리에 통증을 안고 산다. 처음엔 왼 무릅이 많이 아팠지만 지금은 오른쪽 무릅, 오른쪽 종아리, 왼쪽 발목에 통증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나는 매일 소염진통제를 바르고 동전파스를 븥히고, 발목, 무릅, 손목까지 보호대를 끼고 생활한다, 나는 약 10년전 북한산을 오르다 낙상해서 소방헬기를 타고 하산한 적이 있다. 12월 말 쯤 눈이 앃인 북한산을 올랐다. 몇일동안 송년행사로 내몸은 술과 음식에 쩔어 있었다. 조금은 춥고, 눈도 쌓였지만 그날 등산을 하지 않는다면 내 몸은 견디기가 힘들었을것이다. 나는 집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등산길에 올랐다. 그즈음 나는 북한산 코스중 독바위역에서 불광사를 거쳐, 향림폭포, 기자봉, 진관봉, 향로봉, 비봉을 향하는 코스를 계속 다니고 있었다. 이 코스는 바위를 타고 다니는 코스가 많아 눈이 오면 조금은 위험한 코스였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내가 원하는 코스가 아닌 다른 코스로 가게되었다, 아마 눈도 오고, 앞서가던 다른 일행의 뒤만 쫒아 오르다 보니 길을 잘못들은것 같았다. 비봉을 올랐지만 왠지 운동이 덜 된 기분이었다. '그래 오늘을 문수봉까지 가보자' 나는 오랜만에 문수봉을 거쳐 대남문까지 가는 코스를 다시 선택해서 능선길을 걸었다. 승가봉을 지나 통천문에 다달았다. 통천문은 내가 임의로 붙힌 이름이다. 승가봉을 지나 문수봉을 오르기전 풍화작용에 의해 암반이 두개로나위어지고 그 위로 큰 돌이 지붕을 덮은것처럼 되어 있어 문의 형상을 하고 있다. 문의 프레임을 통해 문수봉을 바라보면 이쪽과 저쪽의 풍경이 달라보인다. 그리고 문을 통과해서 문수봉을 바라보면 앞쪽이 확 티면서 북한산 봉우리 들이 확 다가온다. 좌측으론 나한봉이 우측으론 문수봉이 우뚝 솟아나 지금까지와 바라본 풍경보다 웅장하게 다가온다. 특히 눈이 온 후 통천문을 통해 바라본 문수봉은 한편의 동양화였다. 눈에 쌓인 북한산 봉우리들을 바라보니 천상의 풍경을 보는듯이 너무 아름다웠다. 겨울산의 매력은 눈 덮인 봉우리들을 보는것이다. 흰색과
검은색 물감으로 뿌려 넣은듯한 산맥과 봉우리들, 그 산을 뒤덮고 있는 힌눈의 풍경은 그림과 같았다. 나는 문수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수봉을 오르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쉽고 안전한 방향, 하나는 어렵고 위험한 코스다. 안전한 방향은 청수동암문을 거쳐 가는 방법이다. 위험한 코스는 쇠줄이 걸처져있는 암반지형으로 각도가 중간에 90도도 되는 구간이다. 그러나 그 경치는 한마디로 끝내준다. 나는 북한산을 오르며 이 코스를 경험해보지 못한 산객이 있다면 북한산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험한 구간이기 때문에 등린이라면 어는정도 경험이 쌓이고, 이 코스를 처음 가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여러번 이 코스를 경함한 사람과 함께하길 추천한다. 산길은 항상 위험하다. 정신을 챙기소 발아래를 조심하며 다녀야 한다. 나는 이날 문수봉을 오르기전에 발을 헛딛어 낙상사고를 당했다. 이 길을 수십번도 더 다녔지만, 눈감고도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 자부했지만, 나의 자만심이 사고를 불렸다. 가끔씩 그 길을 다시 가보며 왜? 내가 여기서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미끄러진길은 위험한 길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산길이었는데, 그날을 다시 생각해보면 어떤분이 길 중앙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분을 피해가려고 살짝 옆을 밟았다. 그 순간 나는 자세를 못잡고 약 2~3미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겨울이라 낙엽과 눈이 쌓여 비탈을 길로 착각한 것이다. 떨어지고 나서 보니 큰 바위가 내 눈앞에 있었다. 조금만 더 내려갔으면 머리통이 깨질수 있었을것 같았다. 내가 떨어진 자리에선 2~3명이 산객들이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도 깜짝 놀라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를 연발했다. 발목이 금새 부풀어 올랐다. 발목이 돌아가고 복숭아뼤가 아작나고 조인트가 부셔졌다. 나는 끙끙앓기 시작했다. 발목이 돌아가자 열이 펄펄나며 추위가 찾아왔다. 주변 산객들이 119에 전화를 걸었다. 10분정도 경과 되었을까, 한 여성 구조자가 나타났다. 어디서 그렇게 빨리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괜찮으세요." 그러면서 자기 배낭에서 두꺼운 옷을 꺼내 나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주변 산악구조대에 연락을 취했다. 약 10분 정도 지나자 대여섯명의 구조대가 도착했다. 내 상태를 살피고 등산화를 풀어야하는데 발목이 돌아가 등산화를 잘라 발목을 꺼내야 할것 같다고 했다. 발을 꺼낸 후 부목을 대고 나를 업어 헬기가 구조할 수 있는 장소로 운반했다. 헬기가 도착하자 밧줄과 함께 구조자가 내려와 나를 밧줄에 안전하게 묶어 헬기에 태웠다. 거기까지 걸린시간이 30분 정돌까 나는 신속한 구조에 너무 감사했다. 헬기는 10분쯤을 날아 한강에 있는 선착장에 도칙했다. 동네와 가까운 병원이 어디인지 물어 목동이대병원을 가자고 했다. 엠블런스가 대기하고 있다. 나를 이대병원으로 옮기고자 했으나 병실이 없어 부민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가끔 산행을 하다보면 헬기가 뜨는 모습을 본다. "누가 저 헬기를 타는거야 조심하지 않고" 그 헬기에 내가 탈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금 이자리를 빌어 산악구조대와 119소방대원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신속하고 안전하게 나를 병원에 데려다준 구조대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약 1주일간 병원에 있었고, 발목과 정강이에 철심을 박았다. 퇴원 후에도 집에서 약 한달간은 외출을 못하고 자리보전을 했다. 철심을 빼고 물리치료를 받고 조금씩 조금씩 다리가 좋아졌다. 다시 산이 너무 그리워졌다. 나는 동네에 있는 개화산을 트레이닝 삼아 올랐다. 개화산은 해발128m 정도 되는 낮은 산이고 집에서 한 2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 산이어서 연습을 하기엔 제격인 산이었다. 나는 지금도 시간이 많이 없을 때는 가끔 개화산을 찾아 운동을 하고 있다. 사고가 난 후 6개월 정도 지나 나는 다시 북한산을 찾았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불광역에서 출발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매주 다니고 있다. 북한산을 부담없이 오를수 있다면 왠만은 산을 전부 오를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리가 안아픈데가 없다. 발목, 무릎, 종아리, 대퇴부까지 그럼에도 나는 쉴 수가 없다. 기어서라도 갈 수 있다면 기어서라도 오를것이다. 만약 오르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내가 올랐던 북한산을 추억하며 생을 마감하려 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북한산. 그 산이 오늘도 나를 부르고 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