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내가 당첨이라니."
이 날이 오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이 이벤트로 말할 것 같으면 앨범 발매 기념으로 진행하는 이벤트인데 추첨을 통해 멤버당 1명의 당첨자와 일일 데이트를 하는 이벤트였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은 데다 먼저 멤버 태엽의 이벤트에 당첨돼 다녀온 친한 언니의 후기 덕분에 더욱 간절했었다.
왜냐하면 둘은 지금 실제 연인으로 발전됐으니까….
이 기쁜 소식을 당장 알리기 위해 미선은 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미친, 나 당첨됐어!"
[헐, 진짜? 야, 축하한다. 드디어 너도 데이트를 하는구나.]
"아, 너무 떨리는데 어떡하지? 언니, 나 옷 뭐 입고 가지?"
[야, 야. 진정해라, 진정.]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들뜬 목소리에 괜히 덩달아 기분이 들뜨는 지원이다.
아직 일주일도 넘게 남았는데 벌써 옷 코디부터 데이트 시뮬레이션까지 열심히 돌려대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언니는 무슨 데이트 했다 그랬지?"
[난 향수 공방이랑 한강 공원이랑 카페랑….]
또 신나서 썰을 풀기 시작하는 지원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쇼핑몰 어플로 옷을 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언니한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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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안 올 것 같던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용수가 선택한 데이트 장소는 바로 놀이공원이었다.
설레는 마음과 들뜨는 마음이 안에서 뒤죽박죽 엉켜있는 기분이었다.
놀이공원 자체가 오랜만이기도 하지만 오늘 데이트가 촬영되어 유튜브에 컨텐츠로 업로드가 된다는 사실이 미선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팬들의 얼굴은 모자이크가 되거나 거의 나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미선아!"
시간이 얼마나지났을까.
등 뒤쪽에서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인사를 하지? 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두근대는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천천히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몸을 돌렸다.
"안녕! 뭐야,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입고 왔어? 오래 기다렸어?"
"아, 안녕…! 나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우리 미선이를 기다리게 만들었네, 내가. 대신 내가 오늘 재밌게 놀아줄게. 가자."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용수가 앞장 서 매표소로 들어갔다.
나란히 입장 팔찌를 받으며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밖에서 보이던 것보다 훨씬 넓은 내부에 입이 떡 벌어졌다.
뭐 타고 싶은 거 있어? 우리 머리띠도 쓸까?
신난 건지 긴장한 건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서 용수가 질문을 쏟아부었다.
미선이 뭐라 대답하려 입을 떼려는 순간 용수가 미선의 손을 덥석 잡고서 소품샵으로 들어섰다.
"미선! 나 이거 어때? 잘 어울려? 나 이거 할까?"
"용수야, 우리 이거 하면 안 돼?"
미선이 가리킨 손가락 끝을 따라가자 토끼와 여우 머리띠가 눈에 들어왔다.
"닉이랑 주디네! 미선이가 주디 할래? 내가 닉 할게."
미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닉 머리띠를 손목에 감고 주디 머리띠를 미선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씌웠다.
괜히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자 용수가 귀엽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미선의 머리까지 정리해 준 후 용수도 머리띠를 쓰고 미선을 바라봤다.
"어때? 나 괜찮아? 우리 사진 찍을래?"
"어, 완전 잘 어울려!"
"너도 귀엽다. 우리 얼른 사진 찍고 기구 타러 가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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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심히 놀이기구도 타고 맛있는 간식들도 먹으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기다릴 때는 정말 더럽게도 안 가던 시간이 어쩜 이렇게 빨리 흐르는지 누가 조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미선아, 오늘 하루 어땠어?"
"너무 재밌었어. 근데 이제 끝난다니까 아쉽다…. 시간이 너무 빠른 것 같아."
"그러게. 다시 오늘 아침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도 덕분에 행복했어, 용수야. 고마워."
"…여기 잠깐만 앉아 있을래? 내가 가서 음료수나 물 좀 사올게."
"얼른 다녀와!"
슬슬 촬영도 마무리가 되는 듯 스태프 분들도 하나둘씩 철수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꿈만 같은 하루였다.
그토록 꿈에 그리고 바라던 용수와의 놀이공원 데이트를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정말 행복했다.
오늘 하루를 다시 회상하며 기다리자 커피를 손에 든 용수가 걸어왔다.
커피를 내밀며 주머니에서 꼼지락 꼼지락 작은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냥, 오늘을 기념하라고 쓴 편지야. 이따 집에 가서 봐야 돼, 꼭."
"뭐야…. 이런 거 줄 줄 알았으면 나도 미리 준비하는 건데…."
"넌 맨날 나한테 편지 써 주잖아. 그냥 써 주고 싶었어."
미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편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괜히 부끄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꼭 답장해줘야 돼, 라며 웃는 용수다.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옆에서 빨개진 두 귀로 커피만 홀짝이는 용수 때문에 꾹꾹 눌러 참아냈다.
시간이 늦은 탓에 매니저님이 차로 바래다 주겠다며 차 문을 열어주셨다.
평소 스케줄에서 마주쳤을 땐 굉장히 단호해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좋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차에 올라 용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집이 어디예요? 백미러로 빼꼼히 눈을 맞춰오는 매니저님께 집 위치를 대충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부드럽게 출발시키셨다.
야외에서와는 달리 좁은 차 안에 붙어 앉아 있자니 왠지 모를 적막이 흘렀다.
꽤 어색하다고 느끼던 찰나 무릎 위 가방에 올려져 있는 미선의 손 위로 용수의 손이 포개졌다.
깜짝 놀라 용수를 쳐다보니 매니저의 눈치를 보며 입에 조용히 검지를 갖다댄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손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너네 싸웠어? 왜 말을 안 해."
"아니에요. 피곤해서 그래요. 그치, 미선?"
"어, 응…."
다행히 매니저가 흘깃흘깃 보는 백미러에는 마주잡은 두 손이 비춰지진 않는 듯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집 근처에 차가 도착했다.
"매니저님, 여기 내려주세요. 차가 들어가기 좀 복잡해서…."
"그래도 돼요? 그래도 밤이 너무 늦었는데."
"제가 데려다 주고 올게요. 저 오늘 일일 남자친구잖아요."
용수의 말에 두 볼이 확 빨개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별 의심은 없는 듯 흔쾌히 수락하신 덕에 또 이렇게 용수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
헤어지기 싫어 자꾸만 느려지는 발걸음에 용수가 웃음을 띄웠다.
"미선아."
"응?"
"답장 해 줄 거지?"
"당연하지.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야."
"기다리고 있을게."
순식간의 일이었다.
골목의 코너를 돌아 매니저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용수가 재빠르게 미선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뗐다.
너무 놀라 발걸음을 멈추고 용수를 바라보자 머쓱하게 웃어대는 모습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넋이 나간 미선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곤 팔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서로의 심장 소리가 쿵 쿵 쿵 하며 귓가에 맴돌았다.
"들어가서 편지 읽고 답장해 줘."
"…응."
"꼭이야."
미선의 머리를 쓰다듬은 용수가 매니저의 클락션 소리에 미선을 빠르게 품에서 떼어냈다.
그럼 나 이제 갈게, 다음에 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 용수가 다시 코너를 돌아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직도 진정이 안 되는 가슴을 부여잡고 빠르게 집으로 올라간 미선은 짐을 내려놓자마자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미선! 나야, 용수!』
급하게 적은 듯 하면서도 또박또박 적힌 글씨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편지 덕분에 오늘 하루가 다시 새록새록 하나씩 떠올라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에 적힌 문장이 다시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
『꼭 연락해. 010….』
이거 진짠가? 실환가?
고민할 새도 없이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하나하나 휴대폰에 입력해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평범한 신호음이 이렇게 긴장되는 소리였나?
괜히 손톱만 물어뜯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여보세요?]
"용, 용수야…?"
[바로 전화해 줬네. 안 할 줄 알았는데.]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이게 진짜, 진짜 꿈이 아닌 거지?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하자 전화기 너머로 푸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너, 너 이래도 돼? 혼나지 않아?"
[그래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뭔데…?"
[이게 전화로 할 말은 아닌데 아까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못했어. 나… 네가 좋아, 미선아. 일일 남자친구 말고 그냥 남자친구 해도 돼?]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어버버 거리는 장면들을 보면 답답해하곤 했었다.
왜 저렇게 답답하게 굴까, 하며 화를 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랬다.
사람이 정말 놀라면 눈물이 나는구나.
오늘은 정말 꿈만 같은 하루였다.
용수와 놀이공원 데이트를 한 것도 모자라 이런 고백까지 직접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애써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겨우 삼켜낸 후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도 돼?
용수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응, 하며 짧게 대답을 하자 네가 대답 안 해서 싫은 줄 알았잖아~ 라는 작은 투정이 들려왔다.
미선의 웃음소리에 한결 마음이 놓이는 듯 용수가 말했다.
"사랑해, 미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