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이야기
영조의 딸 화평옹주 화안옹주
화완옹주는 격변하는 정쟁의 한가운데서
유일하게 자신의 발자취를 남긴 왕의 딸이었죠.
영조대왕과 영빈이씨의 1남3녀 중 3녀로 사도세자랑 친동기이다
영조대왕은 화평옹주와 화완옹주를 다른 왕자와 오주들보다 유난스레 아꼈다.
그중 화평옹주는 심성이 곱고 너그러워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영조는 그런 화평옹주를 너무나 아낀 나머지 조선 경국대전에 나온 법상 혼인을 하면 궐 밖으로 출궁을 해야 하는데 부마와 함께 궐 안에서 살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화평옹주가 일찍 죽었다(방년 22세)
이때부터 영조가 안 그래도 사도세자를 구박을 했었는데 심각하게 사도세자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한중록에서 화평옹주가 죽자 혜경궁 홍씨가 매우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화평옹주와 달리 화완옹주는 애교가 많아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오만방자하고 질투심 많은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를 매우 싫어하여 나중엔 영조에게 사도세자를 죽이라고 부추기기도 하였다.
정조의 왕비가 되는 효의왕후 김씨 역시 화완옹주로부터 엄청난 괴롭힘을 받았다고 한다.
영조의 계비와 후궁 문숙의와 같이 영조를 부추켜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자 화완옹주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그 때의 정치는 화완옹주의 치마폭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것을 후회하며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를 세손으로 삼고 정조는 죽을 위기를 여러 차례 맞았으나 끝내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오른 정조는 아버지를 죽게 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화완옹주의 양자 정후겸을 유배시킨 뒤 사사하고 화완옹주는 궐 밖으로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영조의 딸중 화협옹주는 영빈이씨의 소생으로 사도세자 화평옹주 화안옹주랑 친동기이다. 그런데 영조가 이 딸을 유난히도 싫어했다...그래서 사도세자에게 답을 들으면 그 귀가 더러워 졌다고 씻고는 물을 화협옹주 쪽으로 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