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저널리즘 혁명’
경향신문, 2001.06.19 19:31
미국 공공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의 권위자인 위스콘신대학 루이스 프리드랜드 교수가 최근 한국을 다녀갔다. 공공저널리즘은 80년대 말부터 미국의 지역 소규모 신문들을 중심으로 조용하게 시작됐지만 이제는 미국 주류언론에서도 그 모델을 수용할 정도가 됐다.
독자의 감소 등 신문산업의 위기, 언론이 정치적·상업적 목적을 위한 설득의 도구로 전락한 민주주의의 위기 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시민의 의제를 발굴하여 지면과 방송시간을 시민에게 보다 많이 할애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다.
우리 사회가 사주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시장정상화 등 구조적인 측면의 언론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그런지 프리드랜드 교수의 방한에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은 것 같다. 하긴 공공저널리즘이라는 것이 기존의 언론 관행과 기득권을 포기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니 쉽사리 환영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국의 공공저널리즘 운동은 우리 언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공저널리즘 운동에서 채택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은 민주주의 과정에서 다양성을 반영하고 시민의 토론과 참여를 이끄는 장으로서 언론의 기능을 재정립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언론이 시민 속으로 파고들어가 시민의 이야기를 공적(公的)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 시민의 의제를 정치인에게 전달한다는 부분이다.
우리 언론은 과연 시민들의 의견과 주장을 지면과 화면에 적극 반영하는 변화를 모색할 수는 없는가? 우리 언론은 아직까지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사회현상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이라는 ‘전통적’ 기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신문에서 독자투고나 인터넷에 올라온 몇몇 시민의 글을 제외하고는 일반시민들의 주장과 토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의견란은 전문가의 주장으로, 1면·종합면·정치면은 틀에 박힌 듯이 정치인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정치부 기자라고 해서 청와대와 정당을 출입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의견과 주장을 정치인들에게 전하는 언론개혁이면 어떨까?
이제는 ‘저명성’에만 매달려 공공문제에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일반 시민들이 토론할 줄 모르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수준이 떨어지고, 글솜씨와 식견이 수준이하라 신문에 글을 실을 수 없다는 편견은 버려야 할 것이다. 전문가만이 공공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일반 시민이 패널로 참여하여 실제 삶과 관련한 이슈를 다룬 TV 토론프로그램이 속속 시청하기 좋은 시간대로 옮겨가고 또한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본다. 시민들의 삶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의제를 다루는 정치, 정치인과 전문가들만의 정치에 식상해 있는 시민들은 그동안 침묵하고, 외면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무명의 시민들도 우리 주위의 안전, 복지, 교육, 건강, 실업 등의 문제에 나름대로 의견이 있으며, 그 의견을 표현하고 나눌 공간을 원한다는 점에 우리 언론이 주목했으면 좋겠다. 제도화된 시민교육의 부재, 정치권력의 중앙집중화, 지역이기주의 등을 들어 우리 사회에서의 공공저널리즘의 적합성을 폄하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와 비슷한 일반 사람들’의 고민과 의제를 공적인 장소에서 확인하고 시민사회 참여를 학습할 기회를 시민들에게 제공하지 못한 언론의 문제도 인식하고 언론개혁의 논의에서 공공저널리즘 운동을 다시 한번 검토해주기 바란다.
〈양승찬·숙명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