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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교회 음악의 활성화를 위한 제언
김종헌신부
들어가는 말
이제 ‘전례 음악 강의’를 마감하게 되었다. 우선 이렇게 전례 음악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 준『사목』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매달 일정한 양으로 제한된 글을 쓰는 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이 강의가 전례 음악 봉사자들과 신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애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전례 음악 강의’를 통해 미사 전례 음악의 선곡을 위한 세 가지의 판단 기준과 전례시기에 따른 선곡 법을 제시하였으며, 미사 전례 음악을 준비할 때 전례 음악 봉사자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미사 전례 각 부분의 전례적, 봉사적 기능에 대한 해설과 함께 설명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거룩한 공의회」(이하 ‘전례 헌장’으로 표기함)를 반포한 지도 어언 40년이 흘렀다. 전례 헌장은 성교회의 음악 전통을 요약하면서 앞으로 교회 음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교회는 전례 헌장이 말하는 성음악의 정신을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그 정신에 입각하여 지금 우리 시대에 맞는 성 음악을 발전시켜 왔는지, 아니면 발전시켜 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전례 음악 강의’를 마치면서 평소에 생각해 오던 한국교회 전례 음악의 활성화에 대해 한국교회 당국에, 그리고 실제로 음악이 사용되는 본당과 전례 음악에 봉사하는 분들에게 제언을 드리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1. 교구 또는 전체 한국교회 차원
1)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산하 ‘성음악 소위원회’의 활성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첫 번째 열매는 전례 헌장이었다. 이 전례 헌장의 정신에 따라 세계교회는 전례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이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전례 음악이 큰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전례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음악이야말로 전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전례 헌장, 112장 참조). 그렇다면 우리 한국교회는 전례 음악을 통하여 얼마만큼 전례 개혁 정신을 구현하여 왔는가?
전례 음악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은 아직까지도 한국교회 음악 전반에 대한 계획이나 원칙과 정책을 수립하고 미래 한국 전례 음악의 방향을 제시해 줄 기구조차 없을 정도로 미온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교회 음악의 발전을 꾀하기보다는, 교회 음악에 관계하는 개인 각자의 열정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교회 음악을 위해 일하고 있는 성직자나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을 결집시킬 아무런 단체가 없다.
한국의 교회 음악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은 지금 한국교회의 음악의 상태를 혼돈 상태 또는 무법천지라고 말한다. 전례 성가와 비전례 노래의 혼동, 세속 음악과 다를 바 없는 악기의 사용과 생활성가의 범람, 교회의 인가를 받지 않은 각종 성가집의 양산 등으로 무질서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이와 같이 한국의 교회 음악이 혼란과 답보 상태에 있는 원인은 교회 당국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주교회의는 교회 음악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전례 음악에 관한 어떤 지침을 주는 것은 고사하고,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비전례 노래에 대한 심의나 관리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산하에 ‘성음악 소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름만 있을 뿐 위원도 구성되어 있지 않다. 성음악 소위원회가 활성화되어 각 본당 전례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노래들, 그리고 원칙 없이 교회의 허가도 받지 않고 출판되는 각종 성가집에 대한 감독의 임무를 수행하여야 하겠다. 그리고 ‘전례 음악에 관한 한국교회 지침서’ 등을 발간하여 교회 음악이 올바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더 이상의 혼돈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 지식을 갖춘 실무자를 선정해야 할 것이며, 각 교구 내에서도 이러한 작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05년 6월에 서울에서 개회된 ‘제1회 한국 천주교회 전례 음악 봉사자 대회’의 여러 분임 토의에서 나온 한결같은 요구는 교회 당국에서 작곡, 연주, 토착화, 악기사용, 선곡 등을 위한 지침서를 발행하자는 것이었다. 교회 당국은 우리 교회 음악의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전례 음악은 그것에 맞추어 발전되어 나가야 하리라 믿는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 음악이란 반드시 전례 때에 사용하는 전례 음악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음악 활동, 다시 말해서 전례 음악은 물론이고 비전례 음악(생활성가 또는 복음성가)의 창작과 연주, 작사와 전례 음악 봉사자들의 교육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2)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노래들과 출판되는 성가집에 대한 감독
전례 성가란 전례 기도문에 가락을 붙인 노래이다. 따라서 전례에서 사용하는 성가가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전례문이거나 적어도 전례 정신에 맞는 가사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전례 헌장은 모든 성가집과 그 안에 수록된 성가는 다른 전례서나 마찬가지로 지역교회와 교황청의 인준을 받도록(전례 헌장, 36-40항 참조) 가르치고 있다. 특별히 전례문에 들어 있지 않은 창작 성가와 가락은 문제가 된다. 이러한 성가는 적어도 지역 주교회의나 교구장 주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성음악 훈령」, 55항 참조).
2000년부터 새 기도문에 맞추어 작곡된 많은 미사곡들(각 교구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미사곡들)은 아직도 한국 주교회의에서는 인준 받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인준되지 않은 미사곡들이 몇 년을 두고 이토록 오랫동안 사용 될 수 있는가? 한국교회는 언제까지, 얼마나 더 오랜 세월을 이런 상태로 끌고 가려하는가?
어느 교구에서는『생명의 샘』이라는 노래 모음집이 출판되었다. 이 책이 소속 교구장의 허락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담당 신부의 인사말만 있는 이런 성가집을 보면서 교회 음악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분노를 느끼게 된다. 어떻게 소정의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이렇게 개인이 또는 아무 단체나 불쑥 책을 찍어 낼 수 있는가? 더더구나 검증되지도 않은 노래들 때문에 생긴 청소년들의 영성적인 폐해는 누가 보상하는가? 어느 한 교구나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이 사용할 성가집을 출판하는 문제는 교구나 주교회의에서 결정해야 할 사항이고, 전문가들이 오랜 작업 끝에 이루어야 옳지 않겠는가?
3) 새로운 성가집 출판에 대한 요망
앞에서 이야기한 ‘성음악 소위원회’에서는 새로운 찬미가집에 대한 신자들의 요망에 대해서도 깊은 숙고를 해야 할 것이다. 현행 성가집은 1985년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발행하였다. 이 성가집은 발행 당시 각 본당마다 여러 다른 성가집을 사용하던 불편에서 벗어나 한 권의 성가집으로 통일함으로써 교회의 일치를 증대시켰고, 한국인 작곡가의 창작곡을 많이 수록하여 성가의 한국화 작업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이 성가집은 발행된 지 이미 20년이 지났으며, 발행 이후에 작곡되었거나 형행 미사 전례 중에 사용되는 많은 곡들을 전혀 수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이 성가집은 성가의 품위, 예술성의 관점에서 398곡의 권장곡과 130곡의 허용 곡으로 나누어 편찬하였는데, 그 구분의 모호함과 의도는 다분히 한국 천주교회의 보수적, 권위적 특성이 개입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것이 미사 전례를 위한 선곡에 큰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위에 지적한 문제점 외에도 이 성가집에는 성가 가사의 오류, 악보 표기상의 오류, 전례 성가의 절대적인 부족, 성가 노랫말의 시적 의미가 풍부하지 못한 점, 성경을 이용한 노랫말의 부족, 전례 성가와 비교해 찬미가 또는 신심 노래의 절대적인 양적 우위, 성체 흠숭의 노래를 영성체 노래로 분류하여 사용하게 한 점, 노랫말과 음악의 부조화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한국 교회는 새로운 성가집의 출판을 고민할 때가 온 것 같다.
성가집을 새로 출판하는 경우, 교회 당국의 심의를 거쳐 새로운 곡들이 계속해서 보급될 수 있는 성가집 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거의 20년 주기로 성가집을 새로 출판하고 있는데, 언제나 더 이상 새로운 곡이 삽입될 수 없는 편집 체제를 가졌다. 이는 교회의 신진 작곡가들이 새로운 곡들을 발표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열린 편집 체제를 가져 새로운 곡들이 교회 심의를 마치고 삽입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한국교회에서 불렀던 또는 지금 부르고 있는 성가를 모두 수집하여 그 가사에 따라 전례 성가 또는 생활성가(복음성가) 고유 번호를 부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서 각 교구나 본당은 한국교회에서 인준된 곡들 가운데 자기 공동체에 알맞은 곡을 선택해서 사용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4) 전례 음악의 절대 부족
새 전례는 미사 전례 자체의 기도문을 노래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전례문을 노래로 만든 것이 엄밀한 의미의 성가요 전례 음악이다. 현행 성가집에는 미사 통상문의 일부인 자비송, 대영광송, 거룩하시도다, 그리고 하느님의 어린 양 등의 성가는 어느 정도 작곡되어 포함되어 있지만, 미사 통상문의 다른 부분들, 곧 대화, 감사기도 등과 성수 축복 노래, 성수 예식 노래, 각종 환호송(사순시기 복음 환호송 포함), 공동 시편 등의 미사 고유문 노래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 초대문과 후속 기도가 작곡된 것도 없으며, 이에 대한 백성의 기도 응답 부분 역시 작곡되어 있지 않다.
한 마디로 말해 현행 성가집에는 미사 전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곡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예를 들어 영성체 노래의 경우 총 61곡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곡이 성체를 흠숭 또는 찬미하는 노래이기에, 미사 전례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곡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행 성가집은 미사 전례를 위한 음악을 수록한 성가집이라기보다는 신심(예를 들면, 성모 신심, 성체 신심, 성인 공경 신심)을 위한 찬미가 모음집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하겠다.
작곡가들은 전례 기도문을 이용한 작곡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겠다. 여기에는 미사 전례 이외의 전례를 위한 음악, 곧 시간 전례와 일곱 성사 거행 때 사용할 성가를 함께 포함시켜야 한다. 위의 예를 보아서 알겠지만 전례 음악을 다른 어떤 찬미가들보다 더 시급히 만들어야 하겠다.
5) 전례 성가와 비전례 노래의 혼동 그리고 비전례 노래의 남용
전례 음악이란 말 그대로 전례(미사 전례, 시간 전례, 일곱 성사의 거행)때에 사용하는 음악이다. 따라서 전례 음악을 모은『가톨릭 성가』에서 우리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가톨릭 성가』는 전례, 그것도 주로 미사 전례를 위한 노래를 모아 놓은 성가집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이러한 단순한 사실들을 잊어버리고,『가톨릭 성가』에서 사회생활 또는 종교생활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노래를 찾고자 애쓴다. 그러나 선곡이 잘못된 몇몇 음악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노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가집에는 미사 전례를 위한 음악들만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활에서 느끼는 종교 감정을 노래하고자 그들이 찾아낸 것이 이른바 생활성가라는 비전례 노래인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 음악의 양상을 보면서 트렌토 공의회(1542~1563년)에서 거론 되었던 당시 교회 음악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교회 음악의 세속화, 과도한 반음계와 악기의 사용, 가수들의 빈약한 발음이나 창법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시험 단계에도 오르지 못한 음악, 선율이 진부하고 흔한, 아니면 지루한 노래나 음악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전례를 무시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상업 방송에나 적합한 음악으로는 우리 자신을 세속해서 초월하게 하여 하느님께 초대할 수 없으며, 또한 하느님과의 통교를 표현할 수 없다. 음악가인 미국 밀워키 대교구의 렘버트 위클랜드(Rembert Weakland) 대주교는 “교회의 전례는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작품을 실험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곧, 교회의 전례는 창작성가의 발표 회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연주를 위한 전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트렌토 공의회 당시와 같이 교회 음악의 순수성을 간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속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가치를 음악에서 추구해야겠다는 것이다.
교회 당국은 현재 한국의 청소년 미사에서 불리고 있는 이른바 생활성가(액션성가 포함)를 미사 전례에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려 주어야 한다. 비전례 노래는 전례 때가 아닌 신심행사((Pia exercitia)나 모임(성서 연구나 기도 모임, 성령 기도회, 축제 행사 등)에 사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생활성가를 전례 안에서 부르는 것은 문제가 된다. 이를 고집하는 생활성가 관계자들이 있는 한 교회 당국은 이에 대한 지침을 내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례를 거행할 때, 찬미의 주체는 그 전례에 참석한 회중이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생활성가는 거의 대부분이 연주용이기에 가수들이나 겨우 노래할 수 있는 높은 음역을 사용한다. 그래서 미사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거의 입을 다물고 가수만 노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례 안에서 음악 봉사자의 기능은 공동체의 기도를 도와주는 것이지 즐기는 것에 있지 않다. 한 마디로 전례는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성가는 조용한 가운데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생활성가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전례 헌장 118항에서 말하는 종교적 ‘대중 성가’란 표현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례 헌장에는 “예규의 규범과 규정에 따라, 거룩한 신심행사들에서 그리고 바로 전례 행위 안에서 신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대중 성가를 적극 장려하여야 한다.” 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모국어로 된 찬미가(Hymn)를 말하는 것이지 세속 음악인 대중가요 형식의 음악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권에서는 이를 ‘vernacular hymnody'라고 번역하여 자국어로 된 찬미가임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6) 가사에 대한 심의
전례 성가가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노래를 위해 전례 기도문이나 전례 정신에 맞는 가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례 정신에 맞는 가사란 가톨릭 교리에 부합해야 하며, 주로 성경과 전례문을 인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전례헌장, 121항 참조).
따라서 미사에 사용할 노래를 심의할 때에는 노래의 음악성 또는 예술성만 따지지 말고 먼저 그 가사가 전례에 사용하기에 합당한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적합하지 않은 가사를 가진 노래들은 『가톨릭 성가』에도 있지만 이른바 생활성가에는 부지기수이다. 많은 곡들이 전례의 공동체성을 무시한 채 개인의 느낌, 감정, 체험을 표현하는 ‘I - My - Me' 구조의 음악들로 이루어져 있다.
7) 사목자 - 신학생 - 수도자들에 대한 전례 음악 교육의 강화
전례는 하느님께 드리는 인간 최고의 예배 행위이며, 전례 안에서 음악은 장식적이며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 불가결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례 헌장 7항은 ‘전례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교회의 공적 예배’라고 가르치고 있다. 전례는 인간적인 차원의 모임이 아니며, 전례 안에서 불리는 노래 역시 우리 자신을 격려하고 우리 자신을 위해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가임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 사목을 담당하는 젊은 사제나 수녀들은 청소년 시기에 생활성가를 부르면서 신앙생활을 한 세대이다 보니 청소년과 청년 미사에서는 생활성가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가톨릭 성가』에 있는 전통적인 성가들을 너무 모르며, 라틴어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수도자도 있다. 그러다보니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지 못하고, 이 성가를 부를 줄 모르니 성가집에 있는 성가들을 성가답게 부르지 못한다. 수녀원에서도 전례 음악에 대한 기본 상식과 선곡의 원칙, 그리고 성가 부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가를 성가답게 맛을 내려면 그레고리오 성가를 많이 불러보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아울러 사목자는 전례 음악 봉사자들의 열정을 이해하고 그들이 올바르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항상 도와줄 수 있어야겠다. 자극적인 말은 피하고 레지오 마리에에 들어가서 훈화하듯이 성가대의 연습 시간에도 잠깐 들러 영성적인 훈화를 들려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에게 봉사에 대한 자부심과 기쁨을 느끼도록 해주자.
8) 전례 음악 봉사자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의 제공
신자 작곡가, 지휘자, 반주자에 대한 전례 교육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교회 음악 봉사자들은 일반 대학에서 일반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전례와 전례 음악에 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신학교의 전례와 전례 음악 강의를 수강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하고, 만약 신학교의 규정상 불가능하다면 방학을 이용하여 단기간 연수회를 마련해 줄 수 있어야 하겠다.
현재 몇몇 교구에서는 전례 음악을 전공한 사제들이 전례와 전례 음악을 가르치는 연구소들을 열어 단기 과정(1년 또는 2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본당 성가대원들이나 지휘자 또는 반주자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런 기회마저 가지지 못하는 음악 봉사자들을 위해 교회에서 단기간의 교육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면 좋겠다. 아울러 교구에서는 이들 연구소(음악원 등)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이런 교구의 기관들은 범 교구적인 연대를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교육 과정도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9) 작곡가들과 작사가들의 양성과 후원
한국 가톨릭교회에는 성음악을 위해 활동하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도 결성되어 있지 않다. 1980년대 말에 서울의 평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사단법인 한국 가톨릭 음악인 협회’를 결성하였지만 이 단체는 교회의 인준을 받지 않은 단체이다. 한국교회는 기성 작곡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여 예술성과 전례성을 가진 곡들의 창작을 지원해 주고, 전례 음악 창작 발표회나 장학금 등으로 재능 있는 신진 작곡가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는데 투자를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적인 성가 역시 부족한 형편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표현하는 곡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서양 음악 어법을 그대로 사용하여 서양 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을 주는 곡에서 탈피하여, 작곡가들은 민족 정서를 잘 표현하는 곡들을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하느님 백성이 쉽게 부를 수 있는 곡들이 많이 작곡되어야 한다.
한편, 생활성가 작곡을 계도하고 장려해 주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생활 성가를 제대로 연구하여 생활 성가 작곡가들에게 이론적 뒷받침을 해주고 생활 성가를 보급시킬 수 있는 이론가들의 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좋은 음악은 먼저 좋은 가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볼 때, 한국교회 가사 문학의 절대적 빈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에 성가 가사만을 전문적으로 쓰는 시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좋은 가사가 있어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 가사 공모전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10)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한 전례 음악 교육
한국에서 활동 중인 주요 합창단(국립합창단, 각 도시의 시립 합창단 등)의 단원들 90%이상이 개신교 신자임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어떻게 이토록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음악에 종사할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이 음악을 전공하게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필자는 개신교 예배 때에 부르는 찬송가의 선율이나 화성이 무척 쉽다는 것에 주목한다. 개신교 중고등부 학생들 역시 예배 때에 성가대를 구성하여 노래하는데, 그들이 부르는 찬송가는 가톨릭 성가와 비교해 볼 때, 선율이 쉽고 역동적이며 기본 화성을 주로 사용한다. 따라서 개신교 중고등부 학생들은 찬송가를 쉽게 4부로 연습해서 예배 때에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합창 음악의 매력은 학생들이 음악을 전공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가톨릭 성가는 화성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4성부 한 곡을 노래하려면 너무나 오랜 시간을 연습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이 노래 부르기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음악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힘들다는 생각만 들게 한다. 이제 우리 교회도 중고등부 학생들이 성가를 부르며 음악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4부로 쉽게 편성된 성가집을 가지게 해주자.
2. 본당 차원
1) 전례와 전례 음악에 대한 사목자들의 올바른 인식 필요
“좋은 전례는 신자들의 신앙심을 키우지만 나쁜(준비 안 된) 전례는 신자들의 신앙심을 약화시키거나 파괴시킨다.” 라는 미국 주교회의 문헌 Music in Catholic Worship 7항의 지적은 좋은 전례 음악은 신자들의 신앙심을 키우지만 나쁜 전례 음악은 신자들의 신앙심을 약화시키거나 파멸시킨다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례 안에서의 음악의 역할은 그만큼 중대하기 때문이다.
사제는 미사를 거룩하게 정성껏 그리고 제대로 드려야 한다. 변칙적인 미사 거행과 비전례적인 노래는 지양하고, 경문이나 예식 자체가 노래를 요구할 때에는 실제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 평일미사 때에도 환호송은 반드시 노래로 부르면 제 박자대로 부르는가? 아직도 입당 노래, 봉헌 노래, 영성체 노래, 퇴장 노래라는 ‘4Hymn syndrome'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목소리로 부르는 찬미가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요소라면 악기 소리가 노래를 덮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과 함께 미사를 지내는 많은 젊은 사제들은 청소년들이 미사를 지루하게 느끼는 이유를 단순히 음악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미사 때 생활 성가와 액션송을 부르고 기타 반주를 하면 이 문제는 금방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오히려 이런 노래들은 선율의 진행이나 리듬, 박자, 성역이 전통적인 성가보다 훨씬 더 어렵다.
2) 성가대와 전례 음악 봉사자들의 양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 그나마 한국교회 음악의 명맥을 이어오던 성가대는 거의 와해되었으며, 이것이 한국교회 음악의 쇠퇴와 혼란의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신자들 모두가 함께 불러야 한다는 해석을 성가대의 폐지로까지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전례 헌장은 성음악의 귀중한 유산을 보존하고 육성하려면 작은 성당에도 성가대를 설립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 교회에는 전례 음악 봉사자들, 지휘자, 반주자, 성가대원의 양성이 절실하다. 성가대는 일반 신심단체가 아니라 음악으로 전례 공동체에 봉사하는 단체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들 전례 음악 봉사자들의 음악적 자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지휘자나 반주자들에게 적절한 보수와 함께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성가대를 위해서도 후원이 필요할 것이다. 미사 때 사용할 악보를 복사하는 비용까지 성당에서 부담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주일학교 교사들이 교사 학교를 수료해야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듯이, 성가대원들 역시 전례 음악을 배우는 기관에서 기본 과정이나마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은 어떨까?
한편, 어린이 미사 때에 초등부 학생이, 청소년 미사 때에는 중고등부 학생이 반주를 한다는 것은 장려할 수 없는 일이다. 미사 전례의 분위기를 이끌고 가는 막중한 임무는 음악을 전공한 어른들이 맡아주어야 한다. 가끔은 기타 코드 몇 개 아는 것을 가지고 미사 중에 반주하는 학생들도 보는데 이것 역시 문제가 있다.
아울러 본당 사목자들은 전례 음악 봉사자들에게 영성적, 전례적인 교육을 시킬 의무가 있고, 피정의 기회도 자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교회 음악가, 성가대원, 특히 어린이들에게 진정한 전례 교육을 실시하여야한다” (전례 헌장, 115항). 본당 성가대에서 잡음이 이는 것 역시 사목자들이 이들을 영성적으로 돌보는 일에 소홀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신자들의 자각
전례 헌장은 베드로 1서 2장 9절을 인용하면서 신자들이 전례에 완전히, 의식적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회중들이 전례에서 노래할 때 그들은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며,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다. 신앙을 표현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신앙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교회 전례 안에서 공동으로 부르는 노래는 구성원들 사이의 유대를 만들어 주고, 공동체의 일치를 보증하며, 세례의 물에 근거한 목적의 단일성을 표현해 주는 수단이다. 신자들이 전례 안에서 함께 노래 부를 때 그들은 서로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곧 각 개인은 공동체의 노래에 자신의 목소리를 합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과 함께 노래하도록 권함으로써 서로 도움이 되는 것이다. 노래로 기도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한 마음, 한 몸으로 즐거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부활 신앙으로 형성됨을 선언하는 것이며, 거룩한 신자임을 나타내는 고백인 것이다. 신자들이 전례 안에서 노래할 때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노래하고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으로 부르는 노래가 진정한 기도가 되려면 하느님과 다른 이들의 친교에 진실로 참여하는 신자들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곧 하느님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러나와야 한다.
3. 교회 음악에 관여하는 음악가들 차원
1) 성소와 사명감
교회 음악 봉사자들은 지속적인 창작활동과 연주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신앙을 표현하도록 돕는 성소를 받았음을 인식해야 한다. 개신교 신자 음악가들과 같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발휘한다는 예술 사도들이 필요하다. 전통 교회 음악을 하는 사람이건 이른바 생활성가를 하는 사람이건 음악 봉사자들은 교회 음악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음악을 만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아울러 자신들의 음악이 전례적이며 사목적인지 늘 살펴야 한다.
2) 음악 봉사자들의 화합
음악은 하모니(harmony), 곧 조화인데, 교회 음악 봉사자들에게서는 전혀 이런 면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평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의식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나타내고자 노력하는 듯한 교회 음악가들의 독선은 교회의 독이다. 교회와 성직자를 욕하고 다른 신자 음악가들을 하찮게 평하는 음악가들의 음악은 비록 선율이 아름답고 훌륭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다른 사람이 기도할 수 있게 하는 음악은 되지 못할 것이다. 참된 겸손으로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과 찬미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또 전통 교회 음악가들과 생활 성가 작곡가들은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생활성가를 작곡하는 사람들은 먼저 무엇이 전례이고 전례 음악인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전례와 전례 음악은 하느님을 위한 것이지 인간적 모임이나 인간을 위한 음악이 아닌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또 왜 그레고리오 성가가 아직도 신자들이 심금을 울리며 기도하는 최고의 음악이라고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전통 성가 작곡가들은 왜 현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작곡한 전통 성가풍의 노래를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며 노래 부르기를 기피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가는 말
여기에 제언이라고 제시한 것들을 비난이나 책임 떠넘기기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적은 제언들은 어쩌면 필자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며, 평소에 생각해 오던 것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전례 헌장이 반포된 지 이미 40여 년이 흘렀다. 다른 나라 지역교회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교회 음악의 혼돈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아직도 교회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성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열정에만 기대고 있는 형편이라고 생각한다. 본당 차원에서 봉사하면서 전례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한국교회의 이러한 음악적인 상황 때문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전례 성가와 비전례 노래와의 혼동, 그리고 비전례 노래를 전례에서 사용하는 문제, 무분별한 음악과 성가집의 출판, 악기의 사용 문제 등에 대해 지침을 요구하고 있지만 교회 당국은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다. 신자들은 어느 한 전례 음악학자의 이론보다 교회의 확실한 입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 한국교회 음악의 발전을 위한 계획과 원칙을 제시해 줌으로써, 교회 음악에 애정을 가진 많은 전례 음악 봉사자들이 기쁘고 보람된 마음으로 찬미 공동체를 위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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