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문학어로서의 아랍어
아랍어는 언어의 계통적 분류상 셈어족에 속하는 언어이다.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의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약 2억여 아랍인들이 말하는 언어이다. 또한 이슬람 경전인《꾸란》의 언어로서 전 세계 12억 무슬림들의 전례어로 사용되고 있다. 웅변적이고 표현력이 뛰어난 특징을 지닌 아랍어는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학 언어로서 중요한 언어이다.
아라비아 북부에서 발견된 가장 오랜 아랍어 비문은 BC 1∼AD 6세기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비문의 아랍어는 셈어족의 어느 언어보다도 가장 <원시셈어Ursemitisch>에 근사한 언어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들 비문은 아랍 문학사상 가장 오랜 전거로서 간주된다.
아랍어는 양층언어(Diglossia) 현상의 특징을 지닌 언어로서 문어체 아랍어와 구어체 아랍어가 공용되고 있다. 문어체 아랍어의 체계가 잡힌 것은 AD 7세기 초 이슬람이 아랍에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인데 이때부터 1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문어체, 구어체 아랍어가 병존하여 오는 동안 각각의 특성을 가지면서 서서히 변화하게 되었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넓은 사용 분포를 가진 아랍어는 구어체 아랍어의 경우 언어적 변이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문어체 아랍어는 보수적 특성때문에 점진적으로 변화해왔다.
그중 문어체 아랍어가 전 아랍국가에서 통용되는 표준어이며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고전문학의 귀중한 문학적 유산을 남긴 문학어로서 오늘날까지 아랍 문학의 표현매체가 되고 있다. 또한 문어체 아랍어는 주로 문자 표기를 요하는 신문, 잡지, 저술 등과 공식적인 담화, 강의, 연설, 방송 뉴스 등 공식적인 활동에서 사용되는 언어이다.
구어체 아랍어는 일상 생활의 회화 언어로서 지역에 따라 변이형태가 각기 다른 방언들이 사용된다. 그러나 문학에서도 중세부터 구어체 아랍어로만 쓰어진 시가 발표되어 일반 대중들의 애호를 받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로 문어체 아랍어의 규칙을 지키면서 구어체 방언의 어휘, 구조, 리듬이나 감각을 살려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랍어로서 중간 아랍어(Middle Arabic)를 사용하는 작가도 있다.
1.2 아랍 문학 개관
아랍 문학은 아랍어로 쓰여진 문학(adab)이다. 본래 아라비아 반도에서 태동한 아랍 문학은 AD 622년 이슬람의 출현과 함께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나 동으로는 페르시아와 인도, 북으로는 터어키와 샴 지방, 서로는 이집트를 거쳐 북부 아프리카와 스페인의 안달루스 지방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에 걸쳐 발달된 문학이다.
아랍 문학은 이슬람의 정복과정에서 다른 이민족의 문화와 접촉하면서 문학 종교 언어 사상 등을 수용하였으며 압바스조에 와서 아랍 문학의 황금시기를 구가하게 된다.
아랍어에서 문학을 뜻하는 '아답'의 의미는 시대 변천에 따라 그 의미도 바뀌었다. 이슬람 이전 자힐리야 시대에는 <성찬에의 초대>를 뜻하였고 이슬람 초기에는 <교훈,교육>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압바스조 초기에는 베드윈의 <야만>에 대치되는 말로 <정중함, 예의·예절>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예의 범절과 행동 규범이 글로 쓰여지게 되면서 그것은 문학의 한 장르를 이루게 되었다. 그후 '아답'은 <아랍인의 시와 연대기에 관한 지식>을 나타냄으로써 일반적인 의미의 문학의 정의에 접근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아랍 문학에서 '문학'이라는 개념을 표현하는 단어는 훨씬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고대 아랍인들중에는 풍부한 표현력으로 언어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재능있는 사람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첫째는 마치 진귀한 보석을 끼워서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내는 보석 세공인처럼 단어들을 시적인 표현속에 정렬시키는(nazm) 시인, 즉 샤이르(sha'ir)들이었다. 둘째로는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여 사용하되 시인들이 사용하는 운율과는 상관없이 단어를 흐트러뜨리는(nathr) 부족의 웅변가나 연설자(khatib) 등이 있었다.
끝으로 운율에 맞추어 주술적인 의미의 단어들을 사용하지만 웅변가와는 달리 알쏭달쏭한 말만 늘어놓는 점쟁이(kahin)가 있었다. 요컨대, 고대 아랍문학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틀어서 '정렬된 것과 흐트러진 것'(manzum wa manthur) 즉, '운문과 산문'을 지칭한 셈이다.
아랍 문학 사상 최초의 시기는 이슬람 발생 이전의 자힐리야(Jahiliyya,무지) 시대이다. 고대로부터 아랍인들에게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 아니라 예술적 표현을 위한 거의 유일무이한 표현수단이었다. 고대 아랍인은 그리스인과 같이 탁월한 조형 미술품을 만들지도 않았고, 로마인들처럼 웅장한 건축물도 세우지 않았으며 주로 '말'을 통한 언어 예술인 설화, 시가, 격언 등 구전문학의 형태로 그들 스스로를 표현하였다.
그중에서도 대개 6세기 이후에 아라비아 반도 중부에서 북부에 걸쳐 거주하던 많은 유목민 시인들이 지은 시가가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아랍어 문학작품으로 이미 이들 시가는 절묘한 경지에 다다른 것들이었다. 아랍 문학은 이러한 시가를 원천으로 하여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문학중의 하나로서 발전해 나갔다.
자힐리야 시대에 이어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570∼632)의 출현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시기에 나온 이슬람 경전 {꾸란(al-Qur'an)}은 종교 경전으로서 뿐 아니라 아랍어로 쓰여진 산문의 전형으로서 아랍 문학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끼친 기념비적인 문학 유산이다.
7세기 중반부터 8세기 중반까지 계속된 우마이야 왕조시대에는 자힐리야 시대 못지 않은 훌륭한 시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히자즈 지방에서는 사막에서의 순정을 시로 읊은 자밀 부싸이나(Jamil Buthayna)같은 시인이 나타났다. 이 시대는 아랍 문학이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나 시리아와 이라크 등 광대한 지역으로 확산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말기에는 유명한 산문 작가인 이븐 알 무깟파아(Ibn al-Muqaffa',724-759)가 {칼릴라와 딤나(Kalila wa Dimna)} 같은 동물을 등장시킨 인도의 우화집을 아랍어로 번역하여 소개하였는데 그것은 일반인들의 도덕적 소양을 기르기 위함이었다.
8세기 중반부터 1258년까지 500여년간 계속된 압바스 왕조는 문학사상 흔히 황금시대(750∼1055)와 은시대(1055∼1258)의 두 시대로 구분된다. 황금시대에는 그리스나 페르시아·인도 등의 고전이 활발하게 아랍어로 번역되는 등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이라크의 바스라와 쿠파가 문화 활동의 중심지가 되어 많은 사상가와 문인을 낳았고 아랍어 문법학파가 이곳으로부터 생겨났다.
아랍 문학사상 산문의 대가인 알 자히즈(al-Jahiz, 767∼869), 새로운 시풍을 개척한 알 무타납비(al-Mutanabbi, 906∼965), 아부 누와스(Abu Nuwas, 756∼810) 등이 바스라와 쿠파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8세기 초 이래 아랍에 정복되었던 스페인의 이베리아반도에서는 동부 아랍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적인 문학세계가 발전되었는데 이를 안달루시아 문학이라고 한다. 10세기 경에 이르러 가장 전성기를 이루었다.
은시대에 아랍·이슬람 세계는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수많은 지방정권이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지방군주의 보호를 받아 문학 활동이 번창하여 문학 활동의 중심이 동쪽으로 사마르칸트·부카라, 서쪽으로는 코르도바·세비야까지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다. 이 시대에는 기교적인 면에서 산문의 극치라고 일컬어지는 {마까마 Maqama}라는 문학 장르가 유행하였고 바스라의 알 하리리(al-Hariri, 1054∼1122)가 특히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번창하던 아랍 문학은 13세기경부터 침체기에 들어가 19세기 중엽까지 오랜 휴면(休眠)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에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고전이 편찬, 완성되었고 아랍 사회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이슬람 역사 사상가 이븐 칼둔(Ibn Khaldun, 1332∼1406)이 나타나기도 했다.
1798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이후 서구 문학의 자극과 민족적 각성에 의해 이집트와 레바논을 중심으로 아랍 문학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에 {마까마}나 전통 시가와 같은 고전적인 문학 장르의 부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으며 소설 등의 새로운 문학 장르와 문예사조로서 낭만주의가 유럽으로부터 들어왔다. 특히,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 1883∼1931)을 비롯한 상당수의 낭만주의 경향의 아랍 작가들이 미국이나 남미에 이주하여 <이주문학>이라는 독자적인 문단을 형성하였다.
이후 1919년의 이집트 혁명과 1차세계 대전을 전후로 아랍 문학에는 민족분위기 속에서 농민 또는 하층계급 서민들의 생활을 묘사한 사실주의 경향이 대두하였다. 또 1950년대에는 정치적 격변과 사회적 혼란에 따라 참여문학의 특성이 나타나게 된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주제로 삼는 팔레스타인 문학은 이른바 제3세계 문학의 실체와 실천적인 특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민족문학으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1988년에는 이집트의 소설가 나기브 마흐푸즈(Naguib Mahfuz)가 아랍 문단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아랍 문학이 그 보편적인 문학성을 인정받고 세계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아랍 문학은 22개 개별 국가들로 구성된 민족 공동체로서 인도 문학이나 중국 문학처럼 한 문명권 전체의 공용어인 문어체 아랍어로 쓰여진 문명권 문학으로서 국가와 민족 단위를 뛰어넘는 세계문학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