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정씨 문헌공파의 68대손이올시다.
족보를 보면 올해 1월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작년 이맘때쯤 할아버지 댁에 놀러갔다가 할아버지방에서 찾은 족보를 보고 재미있게 우리 가문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저는 경주정씨 문헌공파의 68대손 입니다. 경주정씨의 시조는 그 유명한 신라의 육촌장 중의 한 사람인 지백호입니다.
할아버지께 시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족보에 실린 할아버지와 아빠의 이름을 보니, 왠지 제가 뼈대있는 가문의 후손인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30년만에 발행하는 족보인지라 아직 제 이름은 족보에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엄연한 경주정씨 문헌공파의 68대손이니까요.
경주 정씨의 유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여섯 촌장중 자산 진지촌장인 지백호가 유리왕 때 정씨 성을 하사 받은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현재 전해지는 30본 미만의 정씨 가문은 모두 지백호의 후손이고 이 중 경주 정씨가 큰 집이라고 합니다. 이 경주 정씨에서 여러 정씨들이 만들어졌다고 아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이종 사촌과 고종 사촌들은 동래 정씨인데, 동래 정씨도 경주 정씨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영재원에서 탐사를 갔었는데, 저희 팀 지도선생님도 정씨 성이셔서 본을 여쭤보니 나주 정씨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주 정은 동래 정씨와 마찬가지로 경주정씨에서 갈라졌다면서, 제가 경주 정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경주 정씨가 정씨의 왕이라 하셨습니다. 경주 정이라는 것이 순간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정씨에는 예외적으로 중국에서 귀화한 서산, 낭야 정씨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지난 겨울방학에 할아버지께서 족보를 보여주시며, 알려주셨던 경주 정씨 문헌공파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보았습니다. 시조와 연원 등 족보에 대한 자료들이 잘 나와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저도 회원으로 가입을 하고 68대손 정희찬 이라는 인사말씀을 남기고 나니, 아직 족보에 이름이 오르지 않아서 서운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곳에 설명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명문 거족의 지위를 지켜온 정씨는 한말과 근대에 이르는 시대의 변천 속에서도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명문의 전통과 훌륭한 조상님들의 위업을 드높이 받들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조 지백호의 후대로 내려오면서 문헌공파, 양경공파, 월성위파, 평장공파 등 크게 4파로 갈라졌습니다. 저는 이 중 문헌공파이지요. 이것 또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문헌공파는 경주정씨 내에서 큰집으로 진후의 5대손 현영은 호부상서와 태학사를 거쳐 문하시중(종1품관직)의 벼슬까지 오른 분 이십니다.
전국의 씨조를 따져보아도 경주정씨만큼 세손이 긴 씨조가 없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자랑스러운 경주정씨로 태어난 것이 매우 좋습니다. 저도 경주 정씨 문헌공파를 더욱 빛낼 만한 위대한 사람이 되야 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정희찬 기자 (무원초등학교 / 6학년)
첫댓글 정희찬 기자 69대손이네요^^
모처럼만에 글이 올라왔군요 저희도 할아버지 병자.아버지 균자.제가 종자.아들이 수자 입니다
경주 정씨 문헌공파를 더욱 빛낼만한 위대한 인물이 되세요. 화이팅!!
67대 조 . 68대 병 . 69대 균 . 70대 (종.호) . 71대 (용.수) 돌림자입니다.
앞으로 훌륭한사람 되세용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