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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마법
어쭙잖게 음악을 전공한 탓에 나는 30년 넘게 음악을 도구로 밥을 먹고 살았다. 때로는 그 음악이란 도구
로 인해 간간히 무대 위에서 분에 넘치는 박수갈채도 받으며 생활해 왔음을 고백한다. 영욕까지는 아닐지라
도 음악으로 인한 욕된 순간 보다는 긍지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많았고, 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의 정
체감을 확인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도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금도 믿음의 뿌리가 깊다.
딱 한번, 회상하고 싶지 않은 치욕의 순간이 있었는데 그게 이른바 업무상 공금횡령 사건이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지방음악 풍토에서 음악인들의 화합을 도모 하고 잠재력 있는 음악 꿈나무를 발굴 육성하는 일
에 나름대로 헌신했던 강원도음악협회장 시절, 그 몹쓸 수사기관의 실적달성을 위한 조사가 수개월 진행되는
동안 음악이고 뭐고, 흔히 빗대어 말하는 콩나물 대가리도 쳐다보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일로 번민
하다가 이승의 삶을 스스로 저버린 후배 음악인이 있을 정도였으니, 당시 그 일에 관계된 음악인들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 영민하고 적확한 그 사건 담당 검사의 그릇되지 않은 판결주문으로 인해 사건에 연루
됐던 나를 포함한 다수의 음악인들이 그나마 마음의 상처를 상당부분 치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뒤도
돌아다보고 싶지 않았을 업무상 공금횡령사건의 직접 동기인 음악을, 왜 그 때 냉혹하게 끊어 버리지 못하고
예까지 이어 왔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이끌리어 온 그 힘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분명히 고백하건
대, 그 힘의 원천은 아이러니하게 음악이고, 그것이 바로 음악의 마법이다.
경험에 의하면, 그러나 이 음악의 마법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있는 자에게나 없는
자에게나 음악은 같은 소재이지만 작동되어지는 마법은 서로 확연하게 다르다. 베로니카 베치의 《음악과 권
력》이란 책장을 굳이 넘기지 않아도 있는 자들에게 작동하는 음악은 교양이나 사교로, 또는 사회적 신분의
동일시로, 어떤 경우엔 권력으로, 마치 17,8세기 유럽의 귀족층에게 작용했던 그런 기능으로 마법을 부리는
가 하면, 나처럼 가진 것 없는 자에게는 오로지 위로와 평안과 치유로 다가오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중
성을 가진 마법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음악의 마법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은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있는 자들에게
작동하는 음악의 마법과 없는 나에게 작동한 음악의 마법은 분명 동음이의同音異意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지금까지 음악을 멀리하지 못하고 살아 온 필연적 동인動因인 셈이다.
내가 음악이란 마법에 걸려 삶의 도구가 되기까지 맺어 온 인연은 평범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어떤 음악적 비범함이나 타고난 음악성이 뛰어났던 것은 결코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었다. 작은 도시였지만 역사가 아주 오랜 초등학교의 리듬악대를 지원하면서 내 음
악생활은 시작됐다. 남자 아이가 나까지 세 명이었고 삼십 여 명의 여자 애들이 있었다. 한 남자 어린이는 행
진대형으로 연주할 때 앞장서서 지팡이처럼 생긴 것을 위 아래로 저어대는 드럼 메이저 역할을 했고 다른 한
친구는 하모니카를 불었다. 나는 무엇을 했을까? 아코디언・리라 벨・캐스터네츠・탬버린・트라이앵글・하모니카
・멜로디언・작은 북・심벌즈, 그리고 큰북으로 편성된 초등학교 리듬악대에서 나는 끔찍하게도 큰북을 쳤다.
그다지 큰 덩치도 아니었는데 리듬악대를 지도하던 선생님이 넌 이걸 해, 라고 하면서 북채를 쥐어 준 게 큰
북과의 인연이었다.
큰북과의 인연은 중학교에 입학해 제대로 된 브라스 밴드부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이어졌다. 일 년 남짓 큰
북을 두드리다가 2학년 초에는 비로소 목관악기인 클라리넷을 손에 잡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클라리넷과의 인연은 계속됐지만 전공을 해보라는 음악선생님의 권유에 성큼 응답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됐다.
가정이 너무 빈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등학교 때 참여한 시민오케스트라 지휘자 선생님과의 인
연으로 인해, 결국 재수생이 되어 음악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작곡법 강의를 위해 서울의 두 세 곳 대학에 출강했던 그 분은, 자신의 음악적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 내
가 살던 도시에서 최초의 성인 혼성합창단과 시민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열정을 불사르고 계셨던 분이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참여한 그 오케스트라에서 그 분이 편곡한 오케스트라 총보를 파트별로 오선지에 옮겨
적었던 사보寫譜 담당자의 인연으로, 그나마 아주 저렴한 레슨비를 내고 화성학(작곡의 기본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물론 저렴한 레슨비 조건에는 일종의 옵션이 따랐는데, 그 분이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의 강사로 있으
면서 유치원 또래 아이들에게 바이엘 수준의 과정을 지도하고 틈틈이 학원 청소도 해야 하는 그런 신분으로
서의 저렴함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곳에서 일하는 1년 동안 나는 정말 신물 나게 피아노 건반을 두들겨 댈
수 있었다. 집에 피아노가 없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지도하기에는 내 피아노 수준이 너무 형편없어서 예습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사정이야 어떻든 내가 특정 악기에 몰입하여 거의 매일 네 시간 이상 사투를 벌렸던
기억은 그 때가 전부이다. 정작 음대생이 되었을 때는 피아노 연습은커녕 아예 전공과 거리가 먼 행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여학생들은 나를 거리의 철학자라고 비아냥거리며 다녔다. 지방의 조그만 대학이었기
에 내 언행이 쉽게 노출되었던 그런 환경이기도 했다. 나는 캠퍼스를 거닐 때나 거리를 배회할 때 항상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고, 그 어린 나이에 궁상맞게도 모든 사물과 현상을 관조觀照하며 다녔으므로 당시 동년배
의 여대생들이 나를 역겨운 시선으로 바라봤음이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런 시절 동안 연애도 한번 못해보고 나는 4년 내내 학교 피아노 연습실 대신 시내 중심가의 클래식 다방
에 쳐 박혀 있었고, 브람스・바그너・모차르트·베토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와 당시로선 위험천만한 쇼스타코
비치의 음반을 어렵사리 구해 긴장감 속에서 오로지 음악 듣는 일에 나를 던져버렸다. 때로는 문학하는 또래
의 청년들을 만나 암울한 시국에 대해 비분강개하며 이른바 참여 시를 써댔고, 지역 연극인들과 의기투합하
여 연극 무대에 서는 일로 무명 연기자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전공이었던 음악과의 인연은 오로지
듣는(감상) 일 외에는 거의 절연 수준이었던 셈이다.
감히 지금에 와서 대도시의 잘 조성된 음악 감상실에서 그 당시 대학생활의 상당 시간을 보낸 이들과 어찌
내 음악 감상 이력을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시절, 대전역 인근 음악다방 <모던>의 탄노이 스피커 앞에
서 수많은 시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허송세월한 듯한 그 때의 대학생활이 바로 내 삶의 원천이 돼 주었다는
사실에, 나는 지금도 음악이라는 인류의 유산 앞에 절대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공은 음악이었지만 오래 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화와 희곡으로 등단한 탓에, 그리고 성정性情이 소
심하고 예민하여 곧지 않은 것에 금방 반응하는 조급함 때문에, 그냥 넘길 일도 머릿속에 정리해 놓는 정말
못된 습관이 나에겐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 수록된 글의 상당 부분은 음악전공을 빙자하여 괜히 음악계 주
변을 서성이다가 내 못된 습관의 식재료가 된 내용 들이다. 그러하기에 학문적 가치나 학술적 깊이가 바탕
에 깔리지 않은 글이 전부이다. 말하자면 학술지에 실릴만한 무게감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거의 잡문雜文
수준이라고 보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책의 모든 글들은 내가 수 년 동안 관계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 전문 월간지 「음악저널」에 다달이 실렸던 내용 들이다. 그래서 신선도가 많이 떨어진다. 대개 3,4년
전 이야기 들이다. 유통기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러나 크게 유해하지 않다고 생각됐기에 한권의 책으로 묶
었다.
책의 내용은 크게 비평과 대담으로 짜여 있다. 5년 전 내가 펴냈던 첫 비평집 《너희가 교육을 아느냐》에서
처럼, 이 책 비평문의 상당부분은 매년여름 강원도 땅에서 펼쳐지고 있는 음악축제「대관령국제음악제」에 관
한 내용이다.
한 때 대관령국제음악제추진위원이란 직함으로 활동했던 인연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척박한 강원도의 음
악토양을 나름대로 좀 비옥하게 일궈보자는 의도가 더 짙게 깔려 있다. 지금도 서울이라는 음악무대에서 바
라봤을 때 강원도는 여전히 변방이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누군가 쉰 목소리라도 질러대야 할 것 같다는
일종의 책무성에서 나온 의도적인 외침이다. 나의 그 외침이 관계기관 업무에 일부분 반영되어 개선됐거나
그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사안도 있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공허한 외침으로 메아리치고 있을 뿐
이다.
다른 내용의 비평은 비평문이라기보다 시평時評에 가깝다. 국내 음악계 저변에 깔린 현실문제의 진단서
이다. 그런데 주제를 갖고 문제에 접근하면서 가장 곤혹스럽고 안타깝게 느낀 현실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 현상이긴 하지만 고학력 음악인재들이 음악시장의 수용한계에서 오는 수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대량 실
업난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고비용으로 해외 유학을 다녀 온 상당수 젊은 음악인들의 설 자리가
마련돼 있지 못한 현실을 탓함이다. 내 입장에선 겨우「음악유학의 허실」이란 제목으로 그 안타까운 현상을
건드려보긴 했지만, 극명한 빈부의 양극화처럼 여전히 일자리가 없는 고급 음악 인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숫자보다 많다는 사실에 경악할 뿐이다.
대담 글에 등장하는 음악가들은 현역으로 활동 중인 국내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매스컴에 비교적 자주 조
명을 받고 있던 일부 젊은 연주가들이다. 변명이지만, 그 간 내가 대담 했던 지휘자들에게 던진 질문은 그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 판박이나 다름없다. 나의 지식이 빈곤하기도 했지만, 내 나름대로 일관된 주제를 갖
고 모종의 해답을 지휘자들에게서 얻고자 함이었다. 그 답을 이 책에 내 놓으려 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던진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얻기까지는 오케스트라 관련업무 이해 당사자들과의 벽을 허문 대화가 충
분히 뒤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질문에 대한 지휘자들과의 대담은 사실상 국내 교향악단이 지니고
있는 제반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과거 레너드 번스타인이나 다니엘 바렘보임 같
은 마에스트로와 대담한 비평가들의 대담집이나, 사이먼 래틀이나 마리스 얀손스처럼 현존하는 명지휘자
들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밝혀낸 톰 서비스의 저서 《마에스트로의 리허설》같은 그런 수준의 대담은 아닐지
라도, 그동안 국내 오케스트라의 구조적인 문제, 특히 공립 오케스트라의 건전한 운영방안을 조명했다는 점
에서의 의미를 말함이다. 그리고 이 의미 있는 행보는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대담을 시도했던 오케스트라 지휘자 가운데는 노먼 레브레히트의 역작 《거장신화》서문序文에서처
럼, 이미 상당한 음악권력의 권좌에 앉아 있다는 느낌을 풍기는 이도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긴 했지만, 그럴
만큼 그 지휘자는 지금껏 수많은 언론 매체와의 접촉이 있었고, 따라서 어지간한 매체의 유혹은 적당히 견제
할 줄도 아는 정치적 인 감각도 체득했다고 보인다. 이런 경우 자격지심에, 내가 관계하고 있는 저널의 힘이
그가 누리고 있는 음악권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천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지휘
자들은 의외라고 생각될 만큼 소박하거나 겸손하게 그리고 열정을 담아 진지하게 답변에 응해 주었다.
반면, 젊은 연주가들은 시대 정서에 맞게 스타의식이 강했고, 개중에는 대중 연예인 수준의 자아 정체감
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굳이 나쁜 현상은 아니다. 어차피 클래식 음악도 이미 상업화된 지 오래고, 또 본
질은 아니지만 그러한 사실을 배제하면 클래식 음악에 종사하는 음악가들의 생존의 위기감은 세끼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원초적 문제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오래 전 사양길로 접어든 음반 산업
과 클래식의 본 고장 유럽에서 점점 쇠락하는 음악시장, 그로 인해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동북아의 거대 클래
식 음악시장이, 향후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킬지에 대해서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신경을 곤두세워
야 한다.
그것뿐인가? 지금 도처에서 클래식 음악을 위협하는 여러 현상들이 계속 발현하고 있다. 오랫동안 국내 유
력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역임했던 저널리스트 조우석은, 그가 쓴 책의 제목을《굿바이 클래식》이라고 붙일 만
큼 쇠락하는 클래식의 기운을 직설적으로 예견하고 있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곳곳에서 당장 클래식이 종말
을 맞을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지만, 수긍이 가는 부분도 못지않다. 비단
조우석이 지적하고 있는 일련의 종말론적 현상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의 인접예술이라고 할 만한 여러 장
르의 음악이 다양하게 분화하여 클래식으로의 접근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분위기도 이미 여러 해 전에
형성되었다. 뮤지컬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뮤지컬은 우선 어렵지 않은 음악이다. 듣고 보는 재미마저 있다. 오페라와는 격이 다르지만 오페라에서 느
낄 수 없는 또 다른 그 무엇이 있다. 요즘 표현으로 힐링이 된다. 뮤지컬 애호가들이 대체로 그렇게 표현한다.
게다가 뮤지컬 시장은 국내 오페라 시장과는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다. 두터운 수요자 층이 성장
세를 부채질 하고 있다. 클래식 시장의 주 수요자 층이 2,30십대 여성들임에 비해 뮤지컬은 비교적 지지층이
폭 넓다.
이렇듯 수요가 급증하니까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커져가는 시장의 수급을 원활히 하려다
보니 원자재의 재빠른 공급이 촉발되었다. 그 원자재란 다름 아닌 가수歌手의 생산이다. 요즈음 가창력의 잠
재력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의 로망인 바로 그 뮤지컬 가수를 말함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로인해 국내 음악대학 가운데 경쟁력을 잃은 여러 대학의 성악과는 이미 폐과되었거나
실용음악과란 명칭으로 전과轉科돼 버렸고, 아예 성악과를 뮤지컬과로 바꾼 대학도 소수지만 생겨났다. 그
것만이 아니다. 음악대학의 가장 근본적 전공학과인 작곡과가 수 년 동안 지원자 미달로 폐과된 대학이 여럿
있고, 피아노과도 신디사이저나 미디어 음악과로 체질을 바꾼 대학이 속속 눈에 띈다. 이러한 현상은 순수한
클래식 음악 수요의 지각변동이 십 수 년 전부터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시민의 문화 향수권을 위해 자치단체 마다 앞 다투어 창단한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은, 시민들
이나 학생들의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극 정성으로 연주회를 열어도 매번 오는 이들이 그 얼굴
에 그 얼굴이다. 얼굴이 바뀔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되기 힘든 이유는, 우선 연주되는 음악을 대부분의 사람들
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듣고 있는 시간이 무척 따분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케스트라이나 합창단의
연주를 듣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미술작품이듯 사전 지식이 있으면 훨씬 수월하
게 듣게 마련인 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간혹 지휘자가 나와서 해설음악회라고 한 말씀한다. 그
때부터 오히려 졸리기 시작한다. 공부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이름은 들어봤는데 그
들의 음악은 거의 들어 본 바가 없다. 아니 들어 볼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 따라서 너무 생경하다. 억지로
라도 가까이 하자니 시간이 큰 걸림돌이다.
그렇다. 시간이다. 음악은 시간이다.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뮤지컬과 다르게 클래식 음악은 접근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시간을 받쳐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클래식 음악을 받아드리기엔 분명 무
리수가 있다. 그래서 단계가 필요하다. 그 단계가 공교육에서부터 시작되면 대체로 자연스럽다. 그런데 교
육적 입장에선 시각의 차이가 크다. 이미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서 과거처럼 슈베르트의 청량한 가곡이
나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같은 선율을 찾아 부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오히려 서태지의 노래가 실려 있
고, 아이돌 그룹의 케이 팝 히트곡이 당연한 듯 그려져 있다. 이러한 현상도 어쩌면 클래식 음악의 퇴조를 예
견하는 장치인지도 모른다.
회화繪畵와는 다르게 음악은 아주 분명하게 계층 간의 색깔을 구분하여 갈라놓는다. 엄밀하게 보면 그림
쪽도 재화에 가치를 두고 투자하고 수집하는 일부 계층이 있긴 하지만 클래식 음악과는 근본이 다르다. 본
디 클래식 음악은 귀족음악이었으므로 오늘 날에도 그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국내 클래식
수요자 층의 계층별 분포를 보면 이른바 콘서트 고어와 오디오 마니아로 크게 양분해 볼 수 있다.
콘서트 고어는, 일군의 팬클럽을 형성하거나 또는 개별적으로 특정 연주가의 음악회에 단골로 입장하는
경우와 지명도 높은 정상급 연주가들의 내한 연주회에 생업을 포기하고라도 티켓을 구매하는 열혈 클래식
팬들을 일컬음이다. 그 팬들의 핵심 수요층이 주로 2,30십대 여성들로 이루어진다고 몇몇 티켓 예매 사이
트에서 분석해 놓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는 대개 고가의 음향 장비와 수천 장 이상의 음반을 소장한 음반 수집가 겸 오디오 마
니아가 바로 그들인데, 콘서트 고어 쪽 보다는 훨씬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사실상 중산층 그 이
상의 재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대부분 후자 쪽의 마니아는 고소득 자영업
자이거나 전문직 종사자(우리 사회의 표현방식으로 의사 변호사의 직업군)들이 주류를 이룬다. 같은 맥락에
서 그림 수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현상은 클래식 음악이 일단 금전적으로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음
을 입증하고 있고, 직업 계층 간의 암묵적인 저지선이 설치 돼 있기 때문에 쉽게 친화력을 갖게 되기 어렵다
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물론 이런 두 그룹 외에 파악되기 힘든 은둔형 클래식 마니아들이 어쩌면 압도적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외형적인 이러한 요인을 배제하고라도 클래식 음악은 고매한 예술성을 덧입혀 예술음악이 표현
돼 왔고, 상업적이고 대중적임을 위장하려고 순수음악이라고 차별화했다. 또 음악 본질과는 거리가 먼 내용
이지만 제사장의 엄숙함과 경건미를 표방하기 위해 무대 위의 복장을 검은색으로 제복화했고, 공개된 연주
회장에서의 일체의 소음은 원천 봉쇄되어 지기도 한다. 사실상 이런 분위기의 음악회에 적응하려면 초심자
들은 대단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하품은 기본이고, 음악회장에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회의감이 치밀어 오
른다. 여기엔 특별한 처방이 없다. 클래식 음악과 친숙해 지기를 포기하거나 앞서 언급했듯이 단계적인 시간
의 투자가 최선책이다.
정석은 아니지만, 피아노 소품으로 시작해서 조금 확장된 규모의 실내악, 한국가곡과 리이트, 오페라 아리
아, 관현악곡, 교향곡 등으로 점층적인 단계를 밟아 듣게 되면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스스로 클래식 음
악 마니아가 돼 가고 있게 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시간의 투자를 아까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급한 한두 가지 사례들을 모범적으로 실천했다고 해서 진정 클래식 음악이 우리들에게
무한한 기쁨과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음악은 반사적反射的이다. 청각예술이기에 매우 민감
하다.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 격렬한 반응이 우리 몸 내부에서 일어난다. 하드 록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안
온한 기분을 유지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평온한 음악이 들어오면 우리 몸은 나른함을 가져 온
다. 비장한 음악을 들으면 주체할 수 없는 비애감에 빠져 든다. 또한 정제된 음악을 들으면 평상심을 갖고 평
화를 꿈꾼다. 그러므로 소리는 정직하다. 그 정직함이 우리 뇌에 전달될 때 이것이 불순한 소리인가, 그렇지
않은 소리인가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판별하게 된다.
적절한 사례인지 모르겠지만, 미술과 음악 두 분야에 모두 문외한인 한 사람이 그림 감상을 하게 됐을 때,
어떤 화가의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인지 못 그린 그림인지에 대한 판별은 대개 구분하기 어렵다. 감상에 필요
한 기본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 따르기 때문이다. 모티프·색감·질감·구도·원근감·채도 등을 인식할 수 있는
기본적 안목이 요구된다.
반면, 음악은 입장이 좀 다르다. 그 문외한의 귀는 전문가의 귀만큼 예민하거나 전문적 분석 능력이 없어도,
대개의(그 음악이 현대어법의 작품이거나 수준이 몹시 난해한 음악을 제외하고) 경우, 무대 위의 연주가가
잘하는 연주인지 못하는 연주인지를 판별해 낼 수 있다. 그 음악의 화성적 구조가 어떻고 주제가 어떻게 전개
되는지, 재현부는 어디서부터이고 카덴차가 어딘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귀로 듣고 즉각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 느낌이 오는 순간, 그의 마음에 무언가 찡하며 전해져 오는 게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제 그 무엇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답은 음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음
악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음악을 사용하는 사람은 곧 수요자와 공급자로 나누어진다. 물론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그런데 간혹 공급자가 갑의 행세를 하려는 경우가 목격되기 때문에 문제다. 오래 전 시대에
묵인되었던 몹쓸 관행이다. 무대 위의 공급자가 존중받고 또 권위를 누리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한한 권좌처럼 행세하려는 공급자들이 있기에 수요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따라서 정상급 연주가든 무명의 연주가든 수요자(청중.관객)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배려와 관계형성이 지속되
어야 건전한 음악시장이 형성된다는 점을 소홀히 생각해서 안 된다.
음악은 양방향이다. 양방향은 주고받음이다. 좀 직설적 표현을 빌리면 거래去來이다. 클래식 음악도 엄연
한 거래 관계이다. 거래엔 일정한 질서가 있다. 연주가들과 청중들은 은연중에 그 질서를 주고받는 관계를
맺는다. 아니 맺고 있다. 그 질서 속에는 도덕성도 있고 예의도 있다. 일종의 상도덕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
기 때문에 공급자와 수요자의 입장이 갑과 을의 관계로 형성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청중들이 어느 날 전혀
예기치 않게, 연주가들 곁을 떠나 버리면, 혹은 그들이 음악에서 맛을 잃으면, 그들의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
게 하거나 돌아선 발걸음을 되돌리기는 매우 힘들어 진다.
합당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지난 2014년 말, 국내 클래식 음악계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던 일련의 사
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와의 진흙탕 속의 진검승부 사건이고,
또 하나는 국가 브랜드격인 국립오페라단 한예진 단장의 부적합한 임용 사례이다. 전문분야의 내부 문제라고
슬쩍 덮고 넘어가기에 울화가 치밀어 오름은, 그들이 곧 국내 클래식 음악계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연주가
중의 한 사람이기 이전에 분명히 음악시장의 거래 관계에서 봤을 때 공급자란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했
을 때 소비자(수요자) 입장에서는 부도덕하거나 부적절한 그들에게서 공급되는 상품(음악)을 신뢰하지 못하
게 되는 결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품을 공급받으려는 소비자는 신뢰할 수 없는 그들이 공급하는
상품에서 점차 마음이 떠나게 마련이다. 그들의 음악에서 진정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의 입이 간사하듯 듣는 귀도 마찬가지다. 클래식 음악에 식상하면 청각은 언제나 자율 청취권을 행사
하게 된다. 인간의 청각이 클래식 음악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클래식 음악이기에 느끼게 되는 그런 진정성 있는 음악을 위
해 무대 위의 모든 연주가들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그 성찰의 결과는 자신을 위한 것이자 곧 청
중을 위한 것이 되어 진다.
이제 포디움 위의 지휘자나 무대 위에 선 여러 장르의 연주가들은 그들이 누리고 있는 무대 위의 권좌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려야 한다. 음악은 분명 무한無限한 것이지만 인간의 삶까지 무한한 것은 아
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이 유한有限한 동안 무한한 음악의 영속성을 위해 이 땅의 많은 연주가들은 음악과
의 치열한 사투를 끊임없이 벌려한 한다. 그 치열한 사투의 결과를 나는 승리라고 일컫지 않는다. 정말 진정
성 있는 치열한 성찰의 결과가 청중의 가슴에 비수匕首처럼 꽂힐 때 일어나는 반응, 바로 감동感動인 것이다.
그렇다. 감동은 클래식 음악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해답이며 음악의 마법이 우리 인간에게 베푸는 최고의 매
직 쇼인 것이다.
2015년 3월
카페지기 이영진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