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세
1973년 994명, 1977년 742명, 1981년 776명, 1986년 1,176명, 1990년 2,261명, 1995년 1,478명. [역대 신부] 초대 이종효(李宗孝) 글레멘스(1973. 2~11),
2대 봉희만(奉喜萬) 안토니오(1973. 11~1977. 5), 3대 김창훈(金昌勳) 바오로(1977. 5~1980. 7), 4대 전용선(田溶先) 요한(1980. 7~1983. 5), 5대 차원석(車元錫) 토마스(1983. 5~ 1984. 8), 6대 박인선(朴仁善) 도미니코(1984. 8~1988. 9),
7대 이재돈(李載敦) 세례자 요한(1988. 9~1990. 9), 8대 김경희(金慶熙) 바오로(1990. 9~1992. 2), 9대 이상헌(李相憲) 요셉(1992. 2~1995. 9), 10대 황철안(黃哲顔) 알로이시오(1995. 9~1999.9).11대 김성길 (金城吉)마르띠노(1999.9~2002.9) 교육관 설립을 하였습니다
[설립과 변모]
행정 구역상 파주군 임진면 선유리에 속하는 군사 기지였던 문산 지역의 교세가 점차
신장되자, 이 지역을 사목 관할하던 일산(一山) 본당의 2대 주임 양기섭(梁基涉, 베드로)신부는 1962년 10월 509평의 대지를 매입한 후 곧 문산 공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문산 공소는 10여 년 동안 일산 본당의 역대 주임 신부들이 격주로 방문하여 성사 집행 및 미사를 봉헌하였는데, 일산 본당의 6대 주임 김택암(金澤岩, 베드로) 신부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1973년 2월 10일 마침내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이때 법원리(法院里) 본당 관할의 적성(積城) 공소와 장파리(長坡里) 공소까지 인계받아 관할하게 되었다. 법원리 본당의 주임 이종효 신부가 문산 본당 초대 주임을
겸임하였으나 1973년 11월 22일자로 봉희만 신부가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5월에는 일산 본당 관할의 금촌(金村), 와동(瓦洞) 공소가 다시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본당 승격 후에도 공소 건물을 계속 성당으로 사용하였으나 봉희만 신부 재임 때인
1975년 11월에 교구 지원을 받아 성당 및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그 후 3대 김창훈 신부 재임시인 1978년 8월 18일 관할 금촌 공소가 첫 번째 자 본당으로 분리됨에 따라
와동 공소를 새 본당으로 이관시켰다.
이듬해 3월에는 교구에서 마련해 준 현 성당 소재지의 부지 528평에 성당 신축 공사를 착공하였으나 재정상 어려움이 많아 서울 시내 19개 본당의 도움으로 1980년 5월 31일 성당을 완공하여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듬해 4월에는 장파리 공소 건물의 수리 및 본당 부속 시설 공사를 하기도 하였다.
본당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성탄절과 부활절에 구역별 미사를 실시하는 등 신자들의 유대 강화에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신심 단체의 활성화를 위해 본당 사목 협의회를 중심으로 각종 평신도 단체들을 조직하여 본당 신자들의 참여를 유도하였다.
그 동안 본당 분할에 따라 한때 신자수가 격감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교세가 꾸준히 증가하였고, 1996년 11월 21일에는 적성 공소가 두 번째 자 본당으로 분리 설립되었다.
그 결과 현재 본당에는 사목 협의회를 중심으로 레지오 마리애 1개 꾸리아에 14개 쁘레시디움을 비롯하여 구역·반장회, 선종봉사회, 성가대, 울뜨레야, 자모회.성가대.사랑나눔회.신자들의 봉사 및 친교 단체 등 여러 단체들이 있다.
2015년10월
제적세대 932세대.총신자 2,144명 남자 959명 여자 1,185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