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67(2023)년1월 서울구치소 최고수 상담 및 교리 진행
< 라즈니쉬 오쇼의 반야심경 The Heart Sutra>
“붓다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 일 시 : 불기2567 (2023)년1월16일(월) 오후1:30~4:00
▷ 장 소 : 서울구치소 소법당
지도법사: 보광-조철주
동 참: 대주-이병기 포교사
*상구보리 하화중생 *
계묘년 새해
2023년1월16일(월) 서울구치소
최고수 정기 신앙상담 및 교리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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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의와
한글 반야심경 봉독을 하고,
상담 후 교리를 전하였으며,
사홍서원을 끝으로 새해 첫 상담 교리를 회향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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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내용< 라즈니쉬 오쇼의 반야심경 The Heart Sutra>116~123p
★지식의 부정 (4) 붓다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남성은 여성이며, 여성은 남성이다. 삶은 죽음이고, 죽음은 삶이다. <변증법적>
사리푸트라여, 서로 상반되는 것들은 상반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깊숙히 관통하며,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이 근원적인 통찰을 보여 주기 위해 붓다는 말한다.
형상은 무형(無形)이며, 무형은 형상이다. 현현(顯現)되지 않은 것은 현현되며,
현현된 것은 다시 현현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들은 서로 다르지 않다.
사리푸트라여, 그들은 하나이다.
이원적 대립은 표피적인 차원일 뿐이다. 깊은 속에서는 그 모두가 하나이다.
공(空)은 형상(形象)과 다르지 않고
형상은 공(空)과 다름이 없나니,
무릇 형상을 가진 모든 것은 공(空)이며,
공(空)한 것은 모두가 형상이니라.
감각, 지각, 충동, 인식 작용도
이와 같느니라.
이 삶 전체, 존재계 전체가 대립되는 양극(兩極)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표면에서만 다르게 보일 뿐이다. 이 양극들은 나의 두 손과 같다.
나는 양손을 서로 대립시킬 수 있다. 그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둘 다 나의 손이다. 내 안에서 그들은 하나이다. 117
이것이 진상(眞相)이다.
붓다는 왜 사리푸트라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이것을 이해하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진상을 알면 더 이상의 걱정은 없다. 삶은 죽음이고 죽음은 삶이다.
'존재함'은 '존재하지 않음'으로 가는 길이며, '존재하지 않음'은 '존재함'으로 가는 길이다. 이것은 똑같은 게임이다. 이때에는 두려움이 없다.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통찰이 있을 때 커다란 수용성이 솟아난다.
사리푸트라여,
여기에서 보면
일체의 법(法)이 공(空)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느니라.
그것들은 생겨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칭정하지도 않으며,
부족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느니라.
붓다는 일체의 다르마(法, dhama)가 공(空)으로 충만하다고 말한다.
이 무(無)가 모든 것의 핵심에 존재한다.
이 무(無)는 나무 안에도, 바위 안에도 별 안에도 존재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과학자들도 동의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별이 붕괴되면 블랙홀(black hole)이 되어 무(無)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무(無)는 단순히 무(無)가 아니다.
그것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너무나 충만해서 흘러넘치고 있다.
블랙홀이라는 가설은 붓다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수억 년 동안 존재하던 별도 어느 날엔가 멸(滅)해야 한다. 태어난 모든 것이 죽어야 한다. 인간은 70년 동안 생존한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는 지치고 쇠잔해져서 사라진다. 그는 본래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 118p
이 세상 모든 것이 이런 운명을 맞는다. 히말라야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이 지구와 태양도 어느 날엔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커다란 행성이 사라지면
그 행성은 어디로 가는가? 행성은 그 자체 내부에서 붕괴된다.
엄청나게 큰 덩어리가 붕괴한다.
이것은 한 늙은이가 길을 걷다가 그대로 쓰러져 죽은 경우에 비교될 수 있다.
그를 거기에 그냥 방치해 두면 그의 육체는 흙으로 분해되어 사라질 것이다.
뼈까지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는 거기에 존재했었다.
걷고, 생활하고, 사랑하고, 싸우면서 거기에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젠 모든 것이 블랙 홀 안으로 사라졌다.
별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하나의 별이 붕괴되면 그 별은 블랙홀이 된다.
왜 그것을 블랙홀이라고 부르는가?
이젠 질량을 가진 거대한 덩어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젠 순수한 공(空), 붓다가 '수나타' 라고 부른 그것만이 존재한다.
이 수나타, 이 순수한 공(空)은 엄청나게 막강하다.
그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는 즉시 그대는 공(空) 안으로 빨려들어가 붕괴되고 사라질 것이다.
장차 우주 여행을 할 때 이것은 큰 문제로 대두할 것이다.
우주에는 블랙홀이 된 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블랙홀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블랙홀은 무(無)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부재(不在)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블랙홀과 마주칠 수 있다.
만일 우주선이 블랙홀 가까이에 가서
그 인력권 안에 놓이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빨려들 것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 다음에는 우주선에 관해 아무 이야기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우주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로 갔는지,
탑승객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블랙홀이라는 개념은 붓다가 말하는 공(空)과 아주 유사하다.
모든 형상은 붕괴되어 암흑 속으로 사라진다. 119
그런 다음 오랫동안 휴식을 취하고 나면 다시 솟아오른다.
다시 하나의 별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계속 이어진다. 죽음과 삶이 반복된다.
이것이 존재가 운행되는 방식이다.
먼저 현현(顯現)되어 있던 것이 지쳐 버리면 비현현(顯現)이 된다.
그런 다음 휴식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면 다시 현현된다.
그대는 하루 종일 일하고 지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잠 속에서 블랙홀 안으로 사라진다.
그대는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는다. 얼마 후면 의식이 사라진다.
그대는 안쪽으로 붕괴 된 것이다. 꿈조차도 없는 가장 깊은 잠이 찾아온다.
이때 그대는 블랙홀 안에 있는 것이다.
그대는 죽어 있다. 얼마 동안 그대는 죽음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그런 다음 아침이 되면 그대는 생기와 활력에 가득 차서 돌아온다.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이룬 후 맞이하는 아침은 너무나 새롭고 상쾌하다.
그대는 다시 젊어진다. 만일 깊이 잠자는 법을 안다면 그대는 계속해서 활력을 되찾고
자신을 소생시킬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모든 것에 이와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인간은 존재계 전체의 축소판이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은 존재계 전체에서 좀 더 큰 규모로 일어난다.
차이점이 있다면 규모가 다를 뿐이다.
그대는 밤마다 무(無) 안으로 사라지고, 아침마다 항상 안으로 들어온다.
형상과 무형(無形), 무형과 형상이 반복된다. 이것이 삶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사리푸트라여,
여기에서 보면 일체의 법(法)이
공(空)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느니라.
그것들은 생겨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그리고 붓다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이해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위의 경문은 파격적인 선언이다.
이 말을 하나의 통찰로서 받아들인다면 그대의 삶 전체가 뒤바뀔 수도 있다.
그것들은 생겨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이 형상들을 만들어 내는 자도 없고,
소멸시키는 자도 없다.
붓다는 조종자로서의 신, 제어자로서의 신, 창조자로서의 신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이원적 대립을 초래하는 불필요한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붓다는 모든 것이 제 스스로 일어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스스로의 자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날 뿐,
아무도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듯이 태초에 신이 빛이여 있으라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가 빛이여, 이젠 사라져라' 고 해서 빛이 사라진다는 식이 아니다.
왜 이런 일에 신을 끌어들이는가?
왜 그에게 이렇게 고약한 일을 맡긴단 말인가?
이 일을 맡고 나면 그는 영원히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빛이여 있으라. 빛이여 사라져라. 빛이여 다시 있으라…
이 인간을 존재하게 하라. 이젠 그를 죽여라.'
생각해 보라. 그가 얼마나 지겹겠는가! 붓다는 이렇게 지겨운 일에서 신을 구원했다.
이런 일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나무는 씨앗을 낳고, 씨앗은 나무를 낳고, 나무는 다시 씨앗을 낳는다.
씨앗이란 무엇인가?
씨앗은 나무의 사라짐을 뜻한다. 나무가 무형(無形)의 상태로 돌아갔다.
그대는 씨앗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다. 천여 개의 씨앗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천 그루의 나무를 주머니에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121
나무는 형태와 부피, 무게를 갖는다. 그러나 씨앗에는 아무것도 없다.
씨앗을 쪼개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대가 하나의 씨앗이 나무가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하자.
그때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씨앗을 주며 이렇게 말한다.
"봐라, 이 씨앗은 기적을 일으킨다. 이 작은 씨앗은 커다란 나무가 될 것이다.
푸른 잎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꽃이 피어날 것이며, 많은 열매가 달릴 것이다.
그리고 새들이 날아와 여기에 둥지를 틀 것이다."
이때 그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 작은 모래알 같은 물건에서 뭐가 나온다고?
나를 바보 취급하지 마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대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안다.
이런 사실에 대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작은 씨앗 하나에 나무 전체의 청사진(寫眞)이 들어 있다.
이파리의 수와 모양과 크기, 가지의 형태와 길이, 나무의 높이와 수명, 얼마나 많은 꽃이 피고 얼마 만큼의 열매가 달릴지, 그리고 이 하나의 씨앗이 얼마나 많은 씨앗을 낳을 것인지 모든 설계도가 마련되어 있다.
과학자들은 하나의 씨앗으로도 지구 전체를 푸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씨앗에는 엄청난 잠재성이 들어 있다. 한 알의 씨앗이 지구뿐만 아니라 모든 행성을 푸르게 덮을 수도 있다. 하나의 씨앗은 많은 씨앗을 낳을 것이고,
그 많은 씨앗들 하나 하나가 다시 무수한 씨앗을 낳는 식으로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알의 씨앗이 존재 전체를 푸르게 만들 수 있다.
이렇듯 무(無)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엄청난 힘이 담겨 있다.
붓다는 만물을 만들어 내는 자도 없고, 멸하는 자도 없다고 말한다.
붓다는 사원에 가서 기도할 필요도 없고, 신에게 '이렇게 해주십시오,
저렇게는 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거기엔 아무도 없다.
붓다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을 받아들여라.
만물은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만물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다.
자연상태 그대로를 따른다.
만물은 오고 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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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오쇼라즈니쉬 강의(손민규 옮김 ) 『반야심경 』 초판 2쇄; 서울:태일출판사,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