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라메, 매듭을 나누며
김수현
곡선으로 휘어진 나뭇가지에 면로프를 한 올 한 올 걸어 매듭을 엮는다. 월행잉 인테리어 소품으로 이만한 것도 없다. 이사 온 지 벌써 일 년이 다되어 간다. 벽은 휑하고 베란다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옷상자가 여기저기 놓여있다. 코로나 19 팬데믹 현상 속에 혹독하게 버티고 있는 사업장을 신경 쓰느라 늘 심적 여유가 없었다. 그로 인한 피로감에 새 보금자리의 짐 정리는 늘 저만치 밀려나고 말았다.
휴일을 맞아 밀려있던 짐 정리를 끝내고 소파에 앉았다. 뉴스를 보기 위해 리모컨을 드는 순간 TV 너머로 보이는 휑한 타일 벽이 심하게 눈에 거슬린다. 무언가 온기를 불어넣어야만 할 것 같다. 베란다 한쪽 귀퉁이에 비스듬히 세워진 곡선의 나뭇가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뭇가지를 들어 바닥을 쿡쿡 내리쳐 본다. 추장이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비장한 각오로 사냥을 떠나자는 신호를 보내듯이, 나뭇가지를 든 이상 나 또한 추장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사냥에 실패하면 부족들 허기를 달랠 수 없기에 차마 돌아오지 못하는 추장만큼이나 거실 타일 벽을 더 이상 차갑고 휑하게 내버려 둘 순 없다. 곡선의 나뭇가지는 이사를 오기 전 구매해 두었다. 주인이 찾지 않는 동안 나뭇가지는 베란다에서 햇빛과 차가운 온도를 견뎌내며 저 스스로 단단하고 견고하게 말라 있었다. 여느 공예에 비해 마크라메 준비물은 비교적 단출하다. 면로프, 가위, 나무 봉만 있으면 그만이다.
마크라메(macramé)는 서양 매듭 공예다. 13세기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고 아랍어로 ‘베를 짜는 사람’이라는 뜻의 ‘migramah’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크라메의 시초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어떤 이들은 17세기 무렵 아랍인들이 낙타 안장을 매듭공예로 만들어 사용하면서 그 시초가 되었다고도 한다. 떡볶이 골목을 지나다 보면 간판에 원조집, 내가 원조, 원조 1호 집 등 재미난 문구로 최초의 집이었다는 것을 저마다 강조한다. 마크라메 또한 그 어원의 대치는 커피의 역사에서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kaldi)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이슬람 사제 오마르(Omar)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서로 비슷해 보인다. 어원을 정의하고서라도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합이 클수록 실의 굵기는 굵어진다. 인생으로 대입해 본다면 그 굵기가 48합은 유년기와 같고 60합은 청소년기와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또 90합은 청년기와 같고 120합은 중년기와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물론 120합 이상도 있지만 그 굵기는 매우 굵고 견고하여 대작을 만들 때 사용하려 아껴두고 있다. 내 나이 일흔이 넘어서야 인생을 단단한 그 줄에 대입하여 거론할 수 있지 않을까. 매듭을 엮기 위해 줄 하나를 선택했다. 120합의 줄은 중년기와 같다는 느낌을 준다. 기하학적 모양의 패턴으로 한 땀 한 땀 매듭을 엮기 시작했다. 한 모양을 고집하며 과하게 매듭을 지은 탓에 줄 하나가 짧아졌다. 청년기에서 중년기로 넘어갈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저승사자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올 정도로 모질게 아팠다. 매듭 줄을 잇듯 끊어질 듯한 생명줄을 연장받을 수 있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의 ‘손에 쥔 밧줄이 미끄러질 것 같다면 매듭을 묶고 매달려라’라는 명언처럼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 까닭에 신도 끈질긴 근성에 못 이겨 생명 매듭 줄을 다시 이어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정도 스스로 몸을 추스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의 가치관도 바뀌었다.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소유보다는 무소유가 이해되었고, 죽음이 두렵기보다는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일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 들었다.
마크라메의 짧아진 한 줄을 복원하기 위해 하고자 했던 패턴을 포기했다. 덕분에 도드라져 팽배해졌던 마크라메의 짧은 줄은 나의 생명줄처럼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평매듭, 종달새 머리매듭, 감아매기 매듭법을 적용해 가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간다. 사색의 면로프 줄에도 쉼 없이 마찰이 가해진다. 그 결정체로 성찰의 보풀들이 먼지처럼 흩날린다.
기대여명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호스피스 병동으로 꽃꽂이 봉사를 나가게 되었다. 강의실에 참석하지 못한 환우를 위해 병실을 순회하던 중 한 중년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성은 시한부 환우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침대에 기대고 앉아 힘겹게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왜 그리 힘들게 뜨개질을 하세요.”하고 물었을 때 그 여성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채 생생하다. “뜨개를 하면서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었어요. 저를 위한 것보다는 제 작품을 받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볼 때 기쁨은 배가 되었지요. 이젠 어느 정도 베푼 것 같아 마지막 가는 길에 목을 따뜻하게 둘러 줄 제 목도리 하나를 짜는 중이랍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있었던 그 여성, 힘없이 마구 떨리는 탓에 제 코를 못 찾는 코바늘 든 손이 숭고해 보였다. 그 숭고한 여린 손을 나도 모르게 감싸 안았다. 더는 그 여성을 볼 순 없었지만, 그녀가 한 말은 내 심장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나누는 삶은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여성은 비단 물질적인 것만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심성이 고와 매사에 마음을 다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고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옛 생각으로 공예품이 완성되어 갈 즈음 마크라메의 향방도 이미 정해졌다. 아무래도 차가운 거실 타일 벽은 당분간 그대로 놔둬야 할 것 같다.
창문 밖으로 하얀 눈이 내리더니 모바일폰 카톡 창에도 눈이 내린다. 올해 들어 내리는 첫눈이다. 코로나 19로 모든 사람들이 지쳐 있을 때 내리는 눈은 토닥토닥 위로와도 같게 느껴진다. ‘카톡’ 하고 들어온 메시지 하나가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한다. 마크라메를 배우고 싶어 하는 선생님이 사업장으로 방문하겠노라고. 운 좋게도 나눔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설렘을 마음이라는 봉에 나눔 매듭법을 엮어 멋들어지게 걸어놓으련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걸작품이 될 수 있도록.
제 8회 경북일보청송객주문학대전 수필부문 장려상
첫댓글 눈 내리는 날, 친구와 마크라메 배우러 들렀던 때가 떠오르네요.
융숭한 대접에 마크라메 기초를 가르쳐주던 그 친절함. 덕분에, 친구와 먼 길 다녀오면서 많이 행복했습니다!
비우는 삶을 본받으며, 모든것에 감사하며~♡
그날의 기억이 소록소록 떠오르네요.^^
열정이 남달랐던 원데이 수강생님들...
어찌나 빨리 배우시던지요.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나는 무슨 여자가 뜨개질. 바느질. 수놓기~
이런 건 완전 꽝입니다~ㅋ
이렇게 수필을 잘 쓰는 사람이 또 뜨개질까지 잘 하는지~
정말 부럽네요^^
나아진 선생님은 모습 자체가 여성 여성 하시지요. 너무 예쁘고 귀여우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