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
때는 신라제52대 효공왕 시절이었다.
진성여왕의 후임으로 효공왕이 즉위하였다.
진성여왕시절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최치원이 있었다.
그는 진성여왕 때 신임을 받아 시무10여조를 건의하였으나
그의 개혁은 중앙귀족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진성여왕은 그를 귀히 여겨 6두품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아찬으로 임명하였다.
그로 몇 년후 진성여왕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효공왕이 왕위에 올랐다.
“나는 전국 각지로 유랑을 다닐까 하오. 가기전에 한가지 부탁이 있소.”
최치원이 함께 수학하였던 동무에게 이야기 하였다.
“아니 갑자기 관직에서 물러나더니 거기에 유랑이라니?”
“나를 알아주던 진성여왕이 왕위에서 물러났으니 나도 관직에서
물러남이 바람직하지”
“그런 소리마시게”
“글을 하나 써 주기 바라오. 내가 쓰면 모두가 나인줄 알터이니
이렇게 자네한테 부탁하는구려”
“그게 무슨 말씀이오?”
“그래도 진성여왕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이 힘쓰지 않았소.
때를 잘 못 만나 다 쓰러져 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 역부족이라
그것들이 실행이 안되었을 뿐이지 말이오.
무너져가는 나라를 진성여왕이 조금 더 더디게 했을뿐 이 신라는 무너질 것이오.
그리고 김씨왕조의 힘도 이젠 바닥이 났소. 벌써 박씨들이 요직을 두루 차지하였소.
박씨왕조가 재집권을 하게 되면 화살은 진성여왕으로 향하게 되어 있소.
아주 폄하를 할 것이 뻔하오. 그러니 진성여왕의 나라를 위하던 마음이 잊혀지지 않게끔
후세에 길이길이 남을 만한 글을 써주시오. 부탁하오”
“아찬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지요. 줄거리라도 잡아주시고 떠나시오”
“진성여왕의 아들인 양패를 등장인물로 넣어주시고 허구의 인물로 거타지, 거타지 어떻소?
거타지라는 이름으로 영웅을 만들어 양패가 나라를 걱정하는 내용으로 했으면 좋겠소”
“알겠소이다. 한번 지어보리라. 유랑 잘 다니시고 몸조심하시구려”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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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이었습니다.
진성여왕의 아들 양패가 당나라 사신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백제의 해적이 서해 바다를 막고 있다고 하니 활을 잘 쏘는 사람 50명을 뽑도록 하시오”
양패가 신하들에게 말했다.
신하들은 궁사 50명을 뽑아 배에 태웠다.
항해를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도 해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 모양이구나”
양패가 웃으며 말했다.
배가 골대도(骨大島)에 닿았을 때 바람과 파도가 크게 일어나 배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거기서 10여일을 머물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구나. 멀쩡하던 하늘이 노했나. 일관을 불러 점을 치게 하거라”
“이 섬에 신령한 연못이 있으니 그곳에 제사를 지내면 바람과 파도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일관의 말했다.
양패는 그 말을 듣고 제사를 지냈다.
그 날밤이었다 양패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한사람을 이곳에 남겨 두면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했다.
양패는 신하들에게
“누구를 남겨두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자 한 신하가 말했다.
“마땅히 나무조각 50개를 만들어서 우리 무리의 이름을 쓰고 물에 담가 제일 먼저 물에 가라앉는 나무조각의 주인이 이 섬에 남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활 쏘는 사람 50명이 제 이름을 나무조각에 적고는 일제히 연못에 던졌다.
가장 먼저 가라앉는 나무조각이 거타지의 것이었다.
“그럼 거타지만 이 섬에 남고 나머지는 출발하도록 하자”
양패가 말했다.
거타지를 남기고 배에 올라타니 몰아치던 비바람이 잠잠해지더니
순풍이 불어 안전하게 배가 나아갔다.
혼자 섬에 남겨져 깊은 시름에 빠져 있던 거타지 앞에 노인이 나타나
“나는 서해 바다의 신인데 이 곳에 요술을 부리는 못된 귀신이 살고 있어서 해가 뜰 때면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를 외우면서 이 못을 세 바퀴 돈단다. 그러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 위로 떠올라 귀신이 내 자손의 간을 모조리 빼어 먹는다. 이제 우리 부부와 딸하나만 남아 있는데 내일 아침이면 반드시 올 것이니, 청컨대 그대가 그 귀신을 쏘아 주시오”
“활 쏘는 일이라면 내 장기이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 노인이 흡족해하며 사라졌다.
동이 트기를 기다리며 거타지가 숨어서 엎드려 있는데,
과연 귀신이 나타나더니 연못을 돌면서 주문을 외웠다.
이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귀신을 맞히니 바로 늙은 여우로
변하여 땅에 떨어져 죽었다.
노인이 나와 사례하기를
“그대가 나를 살렸으니, 받아만 준다면 내 딸을 아내로 주겠소.”
“주신다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노인은 흐뭇해하며 그의 딸을 꽃송이로 변화시켜 품속에 넣어 주며 말했다.
“자네를 보내주겠다. 내 딸이니 이 꽃을 받아 주머니에 잘 간직하고 목적지에 닿거든 주머니에서 꺼내도록 하시오”
그리고 두 용에게 명하여 거타지를 데리고 양패가 타고 있는 배를 뒤쫓아가도록 하였다.
당나라 국경에 들어갔을 때 당나라 백성들이 신라의 배를 용 두 마리가 업고 오는 것을 보고는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신라의 사신이 비상한 사람일 것이라고 여긴 황제는 잔치를 베풀고 금과 비단을 선물하여 보냈다. 거타지는 고국으로 돌아와 주머니에서 꽃송이를 꺼내니 여인으로 변신하여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였다.(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