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스파이스 - 차우차우
LOVE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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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을 운명으로 바꿀 준비 됐어?

21살에 고등학교 동창회라니. 조금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참석한다 말 할 수밖에 없었던 건 ‘혹시나’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그 ‘혹시나’에 내 인생 전반을 지배당한 채 살고 있었다. 가령 재수를 해서 기어코 K대에 입학한 것도, 닮은 뒷모습에 무작정 뒤를 쫓는 것도, 매일매일 우연을 기대하며 잠에 드는 버릇 같은 것들이 그러했다. 그냥 나는 그랬다. 누군가 내게 아직도? 하고 물어보면 살다 보면 언젠가 만날 날이 오겠지, 그게 입버릇처럼 붙은 대답이었다.
지하철에 오르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마침 여유롭게 자리까지 나서 문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두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재생시켰다. 지그시 두 눈을 감으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만이 내 세상의 전부가 된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 전주 부분은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렌다. 그리고 내게 설렘이란 오직 한 사람에게로 귀결되는 의미인지라, 이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어떤 얼굴이 있었다. 아주 어쩌면 오늘 동창회에서 재회할지도 모르는.
몇 번이고 꺾였으면서도 이 기대감은 지칠 줄 모르고 피어난다. 실망할게 뻔한데도. 상념을 잠재우려 노래 볼륨을 높이며 휴대폰의 잠금 버튼을 눌렀다. 잠시 확인하지 않은 사이 이번 동창회 때문에 만들어진 단톡방에 백 개가 넘는 카톡이 와 있었다. 이제 곧 만날 거면서 왜들 이런데? 의아함에 막 단톡방을 누르려던 순간, 정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응, 정아야.”
- 너 어디야? 아니 그보다 아, 이걸 어떻게 말하지. 있잖아.
정아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횡설수설한다.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동창회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 너한테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 했는데 어차피 알게 될 거 내가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막 정차한 지하철역에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벌써 퇴근 시간인가? 온갖 냄새가 섞여 들고 숨이 턱턱 막혔다. 원래 이 시간엔 절대 지하철을 타지 않는데. 들떴던 기분이 삽시간에 가라앉는다. 설상가상 몰려 든 사람들의 소음에 묻혀 휴대폰 너머 정아의 목소리가 끊겨 들렸다. 더 이상의 통화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아야, 나 지하철이라 소리가 잘 안 들려. 전화 말고 카톡으로,”
- 여주야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차분하게 가라앉은 정아의 목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동시에 등줄기로 소름이 끼쳤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렇게 분위기를 잡고 해야 할 말이 뭐가 있지?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이 삽시간에 뇌리를 스쳤다.
- 도경수가,
“……”
- 죽었어.
온 몸이 싸늘하게 식었다. 심장이 지나치게 느리게 뛰었다. 머릿속이 텅텅 비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얼마 만에 타인의 입에서 도경수의 이름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들려오는 이름 하나로도 이렇게 반가운데. 도경수가, 뭐라고?
- 동창회 취소하고, 장례식장에서 모이기로 했어.
장례식장이라니? 그러니까 도경수가, 뭐라고?
- 너 괜찮아?
“……”
- 빨리 대답 좀,
힘없이 추락한 휴대폰이 배터리까지 분리된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무릎에 올려 두었던 가방이 떨어지건 말건 정신없이 몸을 일으켜 바닥을 기다시피 몸을 숙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치 사이를 기며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과 배터리를 주우려 안간힘을 썼다. 하나, 둘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피해 길을 내어 준다. 그대로 지하철 바닥에 주저앉아 휴대폰과 배터리를 양손에 든 채로 다급하게 배터리를 끼워 넣고 전원버튼을 꾹 눌렀다. 머릿속에 온통 한 가지 생각만이 들어찼다. 다시 정아에게 전화를 해 물어야 한다.
그러니까. 도경수가. 죽었다고?
* * *
택시를 잡아타기 위해 어딘지도 모르는 역에서 무작정 내렸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낯선 지하철역의 출구를 찾아 헤맸다. 눈물이 나지도, 정신이 나가지도, 가슴이 미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꿈결처럼 얼떨떨했다. 그리곤 가슴에 돌을 얹어 놓은 것 마냥 묵직한 무게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신발,”
신발 한 짝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은 건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막 한 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양말만 신은 휑한 왼쪽 발이 시야에 들어 온 순간 거짓말처럼 현실감각이 살아났다. 이 상태로 몇 분을 걸었을 텐데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어이없음에 터져 나오던 웃음이 이내 눈물로 변질된다. 단정한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색 슬랙스 차림을 하고 온 건 혹시나 오늘 동창회에 도경수가 온다면 고등학교 때와는 정반대로 달라진 차분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내가 네 덕분에 이렇게나 변했다고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며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런데 그게 장례식장에 어울리는 복장이었다니.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옛 기억에 무너져 내렸다. 눈물로 아롱진 세상이 뿌옇게 번져 시야를 방해했다. 당장 택시를 잡아야 하는데. 거기에 내가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도경수가 있는데. 나를 지탱하던 내 세상이 사라졌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천 길 낭떠러지인데 내가 어딜 갈 수 있을까?
일단은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두 눈으로 도경수의 죽음을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마음껏 무너져 온전히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을.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둑한 골목이었다. 무작정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내디디며 도경수의 얼굴을 떠올리고 두 걸음 내디디며 그 체취를 기억하고 세 걸음 내디디며 떠나던 날 그 뒷모습의 잔상을 떠올렸다. 걷는 걸음걸음이 온통 도경수로 얼룩져 그걸 지워내려 눈물을 흘릴 때, 골목의 제일 끝에 우두커니 서 있는 빨간색 공중전화 하나가 불쑥 시야에 들어왔다.
인적 하나 없는 골목 끝에 공중전화라니?
‘따르릉! 따르릉!’
의아함을 품은 그 순간 공중전화로 요란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몸이 떨릴 정도로 깜짝 놀라 살짝 뒷걸음질까지 쳤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일에 멍청히 뿌연 두 눈을 비비며 뭔가에 이끌리듯 공중전화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따위를 고민하며 두리번두리번 뒤를 돌아보았을 때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자의 모습에 조금 전보다 더 화들짝 놀라 악! 하고 작은 비명까지 내질렀다. 비명을 지른 입을 다급히 틀어막으며 경계하는 빛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한 손에 휴대폰을 든 채로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는 이내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펼쳐 자신의 귀에 가져다 댔다. 그건 전화를 받으라는 제스처였다. 여전히 남자를 경계한 채로 나는 조심스럽게 빨간색 공중전화 안으로 들어갔다. 후, 후 심호흡을 하고는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집어 들어 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안녕?”
그러니까 이건 어딘가 좀 이상했다. 분명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맞는데 나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같기도 하고. 순간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마냥 번쩍 정신이 들어 그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 건 그 남자다. 갑자기 골목에 나타난 그 남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든 채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나? 미친놈? 머릿속에 위험 신호가 반짝였다. 당장 수화기를 내려놓고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도경수.”
낯선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이름에 그대로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어떻게 그 이름을 알지?
“살리고 싶지?”
“당신 정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되는 거야.”
“이봐요!”
더 이상 참지 못해 수화기를 내려놓은 채로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대신에 넌 내가 내리는 미션들을 수행해야 돼. 최종 미션은 도경수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는 것.”
“대체 이게 무슨,”
“성공한다면 도경수는 살고, 실패한다면 변함없이 죽겠지.”
정말 미친놈인가보다. 완전 개또라이. 하나도 이해 할 수 없는 말들을 제 정신인양 늘어놓는데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
“인연을 운명으로 바꿀 준비 됐어?”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 무슨 일 나기 전에 도망치려 막 걸음을 떼려던 차였다.
“네가 준비가 안 됐어도 내가 바쁜 몸인지라.”
거짓말처럼 온 몸에 힘이 빠지며 의식이 흐릿해져 가기 시작했다.
“아! 깨어나면 너무 놀라지마! 특별 서비스 컷을 준비했으니까.”
아, 경수야. 내가 너 때문에 너무 슬퍼서 결국 정신 줄을 놔 버린 모양이다.
정주행시작해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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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줄거리만 들어보고 처음 읽어요!!!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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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주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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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