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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현상, 그 내밀한 흐름들
2011년 10월 9일
안철수와 박경철.
그들을 볼 때마다(생각할 때마다) 나는 원초적 거부감에 휩싸인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게 오늘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추석 때 조카와 안철수 현상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그동안 주욱, 지금은 20대 중반이 되어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고 있는 조카와 나는 다방면에 걸쳐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었으며, 의견은 달라도 소통이 잘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예외였다. 안철수에 대한 내 질타에 지금 막 ‘반항기’에 접어든 사춘기소녀처럼 눈동자를 치켜뜨고는 “60억을 기부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안철수는 그런 사람이라고요! 그가 만일 정치를 한다면 정말 깨끗하게 할 거예요!”
나도 지지 않고 몇 마디 덧붙여 반론을 폈다. 그러자 조카는 “이모, 청춘콘서트 안 보셨죠? 그걸 보면 안철수가 왜 그렇게 인기가 좋은지 알게 될 걸요?” 말하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래, 그렇게 깨끗한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 할 거라고 생각되는 안철수라면 그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게 할 일이 뭔지 아니? 바로 곽노현 구명운동을 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입장이니, 그의 입에서 몇 마디만 떨어져도 파급력이 얼마나 크겠니?”
“아니 이모! 곽노현은 후보 매수한 거 맞잖아요! 선의로 준 거라면서, 왜 차용증은 받아 챙겼죠?”
그렇잖아도 곽노현사건이 터지자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해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나는 두말하지 않고, “제 2의 노무현을 만들고 있는 중이지.”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상대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며칠 전에 어느 분과 나눈 대화내용을 들려주었다. 그 분은 나도 잘 아는 분이고, 소위 운동권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가 말하기를 “2억이면 어디야? 나쁜 놈 같으니라고! 수십 년 동안 꿋꿋하게 자리 지키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다반사인데, 어디서 굴러들어온 게 물 흐리고 있어? 나쁜 새끼!” 라고 말했단다.
그 분의 그런 식의 표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노무현에 대해서도 ‘어디서 굴러 들어온 돌멩이, 잘 해보라고 뽑아 주었더니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혹은 없었다.’고.
퇴임 후 검찰조사를 받고 있던 노무현에 대해서도 ‘뭔가 구린 게 있으니까 조사를 받고 있지’ 하는 식이었다. 전교조 쪽이었다. 그 분은.
“곽노현이 받았다는 그 차용증, 증거가 있다든? 존재할 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대대적으로 언론플레이 한 거 모르겠냐?” 이런 식으로 조카와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난 후, 메이크업 된 안철수의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미칠 영향,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 짧지 않은 대화가 이어졌다.
안철수와 박경철을 생각하면 어떤 곳의 한의사가 생각난다. 그와 나는 동년배였지만, 내 호적 나이를 사실로 알고 있는 그는 내 앞에서 어른처럼 굴었다. 그와 나는 업무상 자주 함께 하게 되었는데, 약간의 온도 차에도 유난히 민감한 나를 향해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지어주는 한약 딱, 한 재면 해결되는데”
한약이든 양약이든, 병원과 약하고는 거리를 두는 나의 고집에 대해 거듭되는 질타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일하던 사무실에 난방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데다 건물 자체가 워낙이 냉랭했다. 단 한 첩의 약으로 해결을 볼 수 있다면 한 번쯤 먹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돈을 받지 않겠다는 그에게 약 값을 물었는데, 예상했던 것 보다 값이 훨씬 높아서 많이 놀랐다. 태연한 척, 표정관리에 신경 쓰면서 할인 좀 해 달라는 내 말에 수락의사를 표시하는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양복상의주머니에 준비한 돈을 집어넣었다.
그와 처음 대면하던 날, 그가 일하는 병원의 손님 접견실에서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원재료 보관실’이라는 팻말이 시야에 잡혔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허락도 없이 원재료 보관실로 들어섰다.
보관실의 원재료 거의 모두가 중국산이고, 몇 가지는 러시아 산도 있었다. ‘해당지역에서 발생하는 생산물은 해당지역 사람들에게 가장 적응이 잘 될 거’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나의 견해가 의학적 혹은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되는 건 아닌 관계로, 그 원재료들을 보며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각인된 관념은 ‘원재료 비용부담이 적을 것’이라는 거였다.
여러 경로를 통해 문학(글쓰기)활동에다, 그 밖에도 다방면으로 활동의 폭이 꽤나 넓은 그는, 한의원 또한 하루가 다르게 번창해 나아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거물급 정치인들도 몇 명 드나들고 있었으며, 전국각지에서 입소문을 타고 찾아온다고 했다. 떠도는 소문에도 ‘돈을 갈퀴로 긁고 있다’였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금전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자주 내게 얘기해 주었다. 지역 행사에 빠지지 않고 후원금을 내는 것도 그의 입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활자를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한의원의 열렬한 팬(여성 환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그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기도 했다. 저렴하다고 볼 수 없는 약값(진료비)에도 불구하고, 심리학 석사과정을 밟았던 그의 이력이 환자들을 불러들이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게 내 결론이다. 세상 모든 일들에는 항상 양면성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심리학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어쨌든 그러한 그를 대할 때마다 나는 순간순간 상념에 빠져들었다. 더불어 똑같이 의료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몇 몇 사람들과 그를 나란히 놓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공.사적으로 교류가 있었던, 이른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인의협)소속의 의사들.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인도주의 기치로 내걸고, 의술보다 인술을 선택한 사람들의 모습 말이다. 틈틈이 농민의료나 산업의료 부분의 일환으로 자비 들여서 문제가 되는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역학조사를 하는 것뿐만 아니었다.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었고, 지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에 의한 - 부당함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고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고뇌와 갈등들, 때때로 회의와 좌절의 순간들을 맛보면서 그들은 최선을 다하려 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해고당한 노동자들이나 그에 준하는 처지의 사람들에 대한 무료진료를 역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복직이 되었거나, 누군가의 소개로 형편이 괜찮은데도 무료진료를 바라고 찾아온다던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유형의 일들이 얼키고설키는 등등.
나와 같이 활동하던 친구의 남편인 한의사 분의 경우, 누군가 보약을 지으러 찾아가면 된통 혼을 내주며 돌려 보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부분이 큰 수술을 받고 난 후거나, 몸이 허약해졌다고 판단되어 보약을 지으려 하는 경우일 때였다. ‘몸이 허약한- 즉, 신체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보약으로 지어지는 한약재의 성분을 흡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담만 줄 뿐이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부연하여 강조하기를, “밥이 보약이다! 보약 먹을 돈과 정성이 있다면, 잡곡과 각종 채소들을 골고루 찾아 먹으라.”고.
(아, 그는 어쩌면 ‘갈퀴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해 버리는 거였다!)
그 밖에도 좀 더 나은 사회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대안적 고민을 했던 시간과 열정들. 기타 등등의 이유로 시도했다가 좌절된 여러 사안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지치지 않고 수많은 일들을 해냈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로 자리매김 되어 있는 노동자 농민들이 처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질병에 관한 연구와 병행한 현장답사와 탐문. 그 결과가 특히, 노동자들의 직업병판정기준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단지 치료행위, 그에 따른 선행을 베푸는 지점을 넘어서서 원인규명과 대책을 세우는 것에 공헌한 그들의 숨은 노력과 역할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해 낼 수 있을까? 적어도 인의협에 소속된, 내가 알고 있는 그 분들은 어디에서 연구용역을 받아 그런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의 관심과 노력과 의지로 현장을 찾아 다녔고, 사람들과 섞여 마주치고 부비며 그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위에서 예를 든 한의사 또한 그 나름의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걸 부인하진 않겠다. 그의 스타일과 방법으로 어려움에 처한 여러 사람들을 돕고, 여기저기 기부도 많이 한다는 것에. 그럴만한 ‘능력’을 보유한 그가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주변의 적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두터운 존경과 신망,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그에 대해 나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신뢰감이나 존경심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와 함께 했던 공적부분에 대해서는 거론할 필요가 없겠으며, 다만 두 가지 정도 단편적인 예를 들겠다.
맨 처음 그는, ‘내가 지어주는 한약 딱, 한 재이면 해결 보는 건데 저렇게 고집을 부린다.’ 라고 했었다. 그래서 작심하고 거금을 털어 그가 지어주는 한약 한 재를 먹었고, 복용하는 동안 그는 수시로 내게 ‘효과가 있는가?’ 물었다.
지나치다 싶은 추위는 가시지 않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제아무리 명의라도 오진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오진했었나보다’ 하며 그냥 지나치려 했었다. 그러나 시베리아벌판처럼 느껴지는 사무실에서 겁에 질린 모양으로 새파랗게 떨고 있는 나를 향해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내가 그 때 말했잖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그까짓 한두 재 가지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니까?”
처음 듣는 말이었다. 분명 그는 ‘내가 지어주는 한 약 딱, 한 재면 해결 본다.’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 바꿈에 대해 따지고 들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파악은 이미 종결되어 있었으므로. 다만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한 그의 표정을 무시하는 게 민망해서, “그럼 도대체 몇 재를 더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어요?” 하고 질러봤다.
“그야 알 수 없지. 나을 때까지 먹는 수밖에. 아, 내가 지난번 약 지을 때 얘기 했잖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그 후로도 그는 추위에 떨고 있는 나를 향해 몇 번인가 같은 말을 했고,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다음엔 레퍼토리가 또다시 바뀌었다.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음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그런 거지 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건 선천적인 거야 짜샤! 다산하신 우리 부모님 덕택이란 말야.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죄다. 작업공정이 제대로 안 이루어졌거나, 원재료 미달로 형성된 거란 말야 짜샤!’)
또 한 가지, 내가 그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회의도중이던 아니면 일관계로 함께 차에 동승했을 때나, 그의 아내에게 전화가 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부러, 야한 농담을 유도해서 킬킬거렸다. 마치 ‘이거 봐, 우리는 이렇게 사이좋은 잉꼬부부란 말야.’라고,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분명 상대방 쪽에서가 아닌, 그가 ‘유도’하는 쪽이었다. 자리를 피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전화를 받았으니, 그의 아내 목소리가 그대로 내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회의 도중이던 차에 동승했을 때건. 어디에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면 그는 사무실 바깥이나 차 바깥으로 나가는 정도를 넘어서서 어디론가 아예 사라질 때가 종종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극비’를 요하는 전화이기에.
기다리다 못해 찾아 나서면 그는 영영 보이지 않았다. 찾다가 지쳐 근처에서 한참을 서성이면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그가 보였다.
자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서야 할 것 같다.
안철수와 박경철. 그들이 분명 ‘좋은 사람들’인 건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조카의 입에서 대뜸 터져 나온, 안철수의 이름 옆에 따라 붙은 60억. 60억을 사회에 환원했다던가? 아니면 기부였던가?
시골의사 박경철이 책을 냈다고도 하고, 안철수가 어찌어찌했다고도 했지만.
그들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정도 피라미들에게 관심씩이나 가져야 할 정도로 나의 정신세계가 그렇게 한가롭지 못한 탓이다. (내가 그들을 가리켜 ‘피라미 운운’하는 거에 대해 오해 마시라. 나의 잣대는 명성이나 지명도, 또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거창한 ‘지식창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몇 개월 전, 안철수님께서 그럴 듯한 무슨 말씀인가 했다고. 인터넷에서 마구 퍼 날라질 때 알아봤다. ‘아, 뭔가 있구나! 대선출마 포석인가?’
그랬더니만,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사태가 터지고 느닷없이, 그 ‘야들번들’한 이미지의 철수 씨가 등장했다. (‘이미지는 그 자신의 내면(인격)을 반영한다.’ 는 게 철통같은 나의 믿음이므로.)
어디 안철수만이 좋은 사람이던가? 지금 당장 주변을 둘러보라. 이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좋은’이라는 마크가 ‘의로움’이나 ‘바름’과 동일시되는 착각은 금물이라는 걸 지적하고 싶다. 좋은 사람이란 의롭지 못한 일에도, 아니 오히려 그런 일에 더 쉽게 빠져든다는 걸.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여러 가지 직책을 맡았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검찰청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이면 어떤가?!
안철수가 정면으로 등장(띄워진)한 건 바로 곽노현사태 와중이었다. 나는 그 ‘시점’을 대단히 중요하며 핵심 포인트라고 본다. 만일 안철수가 ‘좋은 사람’을 뛰어 넘어, 곤두박질쳐진 우리사회의 불합리 부당, 거꾸로 돌려진 시계를 바로 잡을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의지를 가지고 정계입문의 뜻을 두었다면 당장 곽노현사태를 직시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곽노현사태는 곽노현 개인에게 닥친 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성과 지성의 명분으로 우리 사회의 흐름을 바꾸려던 시도에 대한 좌절(꺽임)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러나 안철수의 등장은 정 반대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데 톡톡하게 역할과 소임을 다 했다. 증명되지 않은 ‘후보매수 대가로 2억 상납’이 공작 화된 여론에 휩쓸려 난장판이 되었던 시점에서, ‘깨끗하고 청렴한 안철수’가 세팅되어 무제한으로 방대하게 유포되었다. 일사불란하게, 대대적 선전포고가 진행되더니만, 정식으로 후보출정을 하지도 않는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께서 박원순과 후보단일화에 합의했단다. 조연으로 등장한 박경철은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에 둘러 싸여 ‘감격시대연기’ 몰입도 서슴지 않았다.
이 상황 연출의 필요성을 설명하자면,
안철수는 곽노현처럼 상대 후보를 돈을 주고 매수하지 않았다! 인 것이다.
고로 곽노현은 상대 후보를 돈으로 매수한 '범죄자'로 낙인 찍는 것이었다.
다양한 장르의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주식투자 견문을 넓혀주는 저서를 출판해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하다는 박경철. 꼭 BBK사건을 예로 들 건 없다 해도. 주가 조작사기꾼들에 대해서는 침묵했지만, 지혜롭지 못해 실패하는 개미투자자들의 안목을 넓혀주고 싶어 한 그의 ‘욕망’을 어떻게 나무랄 수 있단 말인가? 정치인 중에 ‘원칙과 소신’이 돋보이는 박근혜가 인상 깊다는 그를 탓할 이유 또한 없다.
안철수와 박경철을 논하면서, 정말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취득하고 보유한 것들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지 않았던 것, 미처 취득하지 못했던 것까지도 샅샅이 훑어 끄집어 내어 세상에 내놓는 행위야 말로 그 어떤 무엇보다 위대하며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멀리 갈 것 까지 없다. 전태일은 뭐, 태어날 때부터. 아니면 노동자로써의 비참한 현실을 마주한 순간에 당장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노동현장 현실을 알리려 준비했던가? 수없는 고뇌와 좌절의 과정들을 거치며, 그렇게라도 해서 노동자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고 실행에 옮겼다. (전태일 평전 참조)
부정한 정권을 반대하는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을 들락거리던 조영래 변호사.
그로 인한 수배생활도중에도 쉬지 않고 비참한 노동현장답사와 (전태일이 그토록 가슴 아파했던) 나이 어린 노동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런 다음에야 전태일의 감성으로 ‘전태일 평전’을 일구었다. 원고 복사본을 외국으로 밀반출해서 출판해야만 했던, 그 참혹한 유신정권하에서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을 탄생시켰다.
그 후에 변호사가 된 조영래는 아예, ‘공익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권력도 돈도 빽도 갖추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변호했으며, 독재정권과 기득권 기업가들의 만행과 연결되는 -이루 다 열거하기도 벅찬 - 사건들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무려 3년간을 끌었던, 망원동 수재민 사건을 무보수로 변론하면서 그는 토목학, 수리역학, 수문학, 콘크리트 기술 등등에 관해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을 독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려, 5만여 권이라 했던가?)
그의 그런 열정 덕분에 망원동 수재는 천재가 아닌, 인재였음이 증명되어 주민들의 보상이 이루어졌다. 또한 세상 모두가 기피했던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에서의 끈질긴 그의 인내와 노력은 그 어떤 돈의 액수로도 환산될 수 없는, 박애주의와 정의를 향한 신념이자 도전이었다.
그의 그러한 엄청난 노력이나 희생들이 과연 돈으로 환산될 수 있을까? 환산된다면 몇 백, 몇 천조로라도 단정 지어 질 수 있을 것인가?! 낮은 곳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정의롭고 바른 세상에 대한 식혀지지 않는 그칠 줄 모르는 염원으로 인한 실천 행위들. 조영래 역시도 어찌어찌하다보니 거기까지 이른 것일 게다.
그리고, 그리고 노무현이 있‘었’다. 우리의, 우리 민족의 역사에 말이다.
똥꼬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지질지질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를 겨우 마친 사람. 천신 각고 끝에 사법고시 패스했고, 판사노릇 하는 게 따분해 변호사로 나섰다.
노무현 역시도 처음엔 잘 먹고 잘 사는 변호사로 살았다. 회계방면에 능숙한 변호사의 앞길은 트여 있었을 것이다. 명성도 얻고 돈도 잘 벌고.
그러다가 우연찮게 시국사건 변론을 맡았고, 또 우연찮게 그 험난한 길로 접어들었다. 그의 지난한 인생역정(정치역정)이야 아는 사람들 많으니까 생략하겠다. 다만, 사람들 모두가 피해가는 길로 접어들어 묵묵히 길을 걸으며 그가 감내 감당했던 고뇌와 좌절들에 대하여.
단지 자기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추구, 도모한다(했다)는 이유로 당해야만 했던 그 숱한 모함과 야유와 음해. 어림잡기도 어려운 그 야만의 화살들에 굴하지 않고 홀로 정면으로 부디 쳤던 그 수많은 시간들을 어찌 돈으로 환산해 낼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한 인간 노무현에 대한 학살이었지만, 실제로는 노무현이 추구했던 ‘가치’에 대한 매장이 목표였던.
자 여기서 다시,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얘기해 보겠다.
한 마디로 안철수의 등장은 박원순을 위한 ‘쑈’였다고, 나는 그렇게 본다. 서울시장 후보로써 인기도(아주 자연스럽게 여론조사)를 확인한 다음, 그 인기몰이를 박원순에게 인계한 것이다.
한나라당에선 나경원을 후보로 내 놓았지만, 그러나 박원순이 된다 해도 한나라당은 애통해 할 게 없다. 어차피 한나라당은 젊은이들에게 매국노세력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는 추세에 있다. 다만 차세대 주자로 예정되어 있는 안희정 이광재 김두관(김두관은 그 스스로가 밝혔듯이, 당선을 위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었지만 민주당이 그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등이 소속 된 민주당의 지역당화는 한날당이 간절하게 염원하고 있는 바다. 애초부터 같은 종자였던 종필당(자유선진당)처럼. 민주당도 철저하게 지역 당화 되어 중앙정치 무대에 충성하고 아부하는 세력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 위의 세 사람(안희정, 김두관,이광재 같은 정치인)이 중앙정치무대로 진출하기 전. 아니, 방해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설령 앞으로 박원순이 민주당에 입당을 한다 해도 별 의미는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속마음은 민주당‘원’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략적 차원에서 민주당과 윈윈상태가 될 수는 있어도 말이다.
한날당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노무현세력이다. 아니, ‘노무현 정신’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정책방향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해도, 그들 세 사람(안희정,이광재,김두관)이 지니고 있는.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상식’이라 여기는 것들이 사람들 저마다의 일상생활에서 녹아나고 습관화 되는 사회. 그 상식과 그에 따른 원칙이 일상생활의 근본이 되어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고 추구했던 ‘노무현 가치’ 파괴가 곧 한날당의 현재와, 그리고 미래의 목표이며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여기서 잠시 정치행위가 이루어지는 정가흐름의 근본에 대해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촘스키가 지적했듯이, CIA로 대표되는 ‘보이지 않는 손’은 다가올 미래의 세계역사 40년 치를 미리 써(설정해) 놓는다. 여러 돌발변수들이 등장해 다소 애초의 계획들이 수정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목표는 항상 동일하다. 미국(통 털어 다국적기업 혹은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부합되는 결과를 얻어내거나 유도하는 것.
70년 대 초, 연방제 남북통일과 자주국방 등을 정책으로 내걸었던 김대중을 길들이는데 CIA는 상당히 오랫동안 공을 들였으며, 그 과정을 통해 김대중은 친미가 되었다. 박정희에 의해 도쿄에서 납치되어 수장될 뻔 한 김대중을 헬기를 급파(?)해서 구해 준 게 미국이었고, 내란음모의 누명을 쓰고 전두환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김대중을 구원(?)해 준 건 미국이었다.
미국이 그렇게 ‘길들여’놓은 김대중은, 매국노기득권세력들이 싸지른 뒤처리를 앞에 놓고 아주 요긴하게 써 먹었다. 이미 국제금융사기단(IMF)의 마수에 걸려버린 이 나라살림은, 김대중 아니라 김대중 할애비라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국가 기간산업들이 이등분 삼등분으로 분할되어 매각 민영화되고, 내 능력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한 수많은 경제적 주권이나 이권들이 다국적기업이나 국내의 매국대기업들의 수중으로 넘어가 버렸다.
위키리스크가 증명해주듯이, 한국, 심지어 북한을 비롯하여 세계 어느 곳에도 CIA나 세포(첩자)들이 활동하지 않는 곳은 없다. 베트남전쟁 패배 이후로 미국은, 고강도 전쟁보다는 저강도전쟁이 더 유리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진로를 바꾸었다. 이 지구상에 어디든, 세포들을 심어 놓고 동원해서 민심을 교란하는 것. 여론을 조성(조작)하고, 가짜 정보를 흘리고 가짜와 진짜를 혼합해 유포한다. 진짜가 가짜처럼 보이게 하고,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도록 한다.
87년, 북한의 지령으로 대한항공 KAL기를 폭파했다는 김현희 사건 때도 미국개입흔적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애초 예정에 없던 임시착륙을 단행하여 한국의 외교부 관리들을 내려놓게 하는 데는 미 공군의 역할이 있었고, 대통령선거 개표작업에는 CIA데이터 조작 팀이 파견되었다.
미국이 노무현 이라는 ‘이단아’가 정권을 잡도록 ‘허용’한 것 또한 전략적 차원이었다. 그들의 바램대로 노무현이 집권하던 내내, 막대한 권력과 돈줄을 거머쥐고 있던 매국노세력들은 총 단결했으며, 노무현을 희망으로 내 걸었던 국민들은 산산이 부서졌다. (당연하게, 물 밑에선 CIA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노무현과 비슷한 사고에 비슷한 코스를 밟고 있던 곽노현은 노무현이 당했던 방법으로 똑 같이 당하고 있다. 서울대출신에다 미국유학까지 다녀온 그가 낮은 곳으로 임해서 펼친 수많은 노고를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으랴.
모두가 선망하는 엘리트코스를 밟고도 겨우 통신대 교수로 자리를 잡았고, 한편으로는 삼성그룹 비리와 관련된 법률자문에다 인권과 관련된 수많은 행위들은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았다. ‘노무현 정신’이 그러하듯, 만져볼 수도 보여 줄 수도 없는 박애주의와 사회정의를 향한 신념과 노력, 실천행위들. 그 가치들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돈으로 환산되는 거라면, 안철수처럼 억, 소리 나게 기부나 해서 널리널리 유포하여 알려 주련 만은. 청춘콘서트 같은 곳에 출연해 달라 조르기라도 했으련 만은.
어찌되었든 존재하지도 않는 ‘차용증’이 존재하는 것처럼 언플되고, 신선하고 산뜻하게 세팅된 안철수에다, 조 출연한 박경철의 '감격시대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거기에 또 자기들과 안철수는 별개라고 떠벌리고 엄살떠는 -강남좌파 운운-매국언론들의 지원사격이 근사하게 피날레를 장식해 주었다.
무엇을 위해? 완벽하게 ‘곽노현=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에다, 비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배출이~쥐!
또 한 가지 현상, 바로 문재인의 등장이다.
오랫동안, 무르익을 때를 기다린 흔적들. 열화와 같은 대중들의 부름에 옷 이기는 척, 등장한 문재인.
난 그가 독신인 줄 알았다! 장안의 화제가 된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는. 그렇다고 내가 그 책을 읽어봤냐고? 내가? 천만에!
노무현 홈피에서 올려 진 누군가의 독후감에서 ‘그가 애처가’라고 표현한 걸 발견한 거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같은 홈피에 올려진, 그의 아내가 노래를 부르고 그가 환호하며 박수치는 사진발견.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 문재인.
참여정부시절, 노무현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그에 대해서 내가 그토록 무지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그냥, 그의 이미지에서 풍겨져오는 ‘느낌’이 내게 접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무현의 퇴임 후, 홈피를 들락거리며 고향에서 방문객을 맞이하거나 그 밖에 잡다한 활동사진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걸 감상할 때도 그랬다. 사진에 그가 등장하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 괜히 주는 거 없이 밉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는 거지 뭐’
내가 문재인을 주목하기 시작한 건, 그가 노무현의 서거소식을 발표하는 순간의 얼굴을 TV를 통해 대면했을 때부터였다. 그렇다고 새삼스레 그의 이력을 뒤져 본다거나 알아보는 짓 따위의 짓을 했다는 건 아니다. 빤하지 않겠나? 공개된 이력이란 건 어디까지나 ‘공개하고 싶은 것’만이 공개되었을 터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노무현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입장이다. 자살을 의심할 수 있는 정황증거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러나 나는 그 증거들보다도 우선은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에 대하여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걸 확신한다.
그 당시 전개되는 상황으로 보건대 설령, 그가 자살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해도. 그 분의 성품상, 자살을 감행한다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여야 했다. 그 시절 그 때의 상황은 절대로, 그가 자살을 감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노무현의 서거와 문재인.
그 지점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TV하고는 담을 쌓고 있던 내가, 하루 종일 TV화면에서 얼굴을 떼지 않았다. 특히 화면에 문재인이 비추어질 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지난봄이던가? 그가 본격적으로 바깥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후였다. 어느 개인 사이트였던 것 같다. 문재인 찬양을 목적한 것 까지는 그 개인의 취향이니, 트집 잡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 글의 앞 뒤 내용이 도대체 이해불가였다. 서두에선 분명, 문재인이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을 처음 찾아간 시점은- 노무현이 부림사건을 맡으며 인권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러고는 한 참을 문재인 찬양이 주를 이루더니만 ‘만일 노무현이 문재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기 혼자 호위호식하는 변호사로 살았을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물론 그 사이트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가는 곳마다 여기저기서 프로젝트화 된 문재인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여튼, 지난번 문재인은 어떤 인터뷰에서 안철수와 조국교수와 함께 정치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국내외의 정치적 상황전개에 있어 자국민의 의지대로 향방이 모아진다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라는 거다. 지난 번 미국대선에서 오바마가 당선될 당시, 국내의 자칭 진보적 사관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까지 나서서 오바마에 열광하는 현상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에 대해서 절대로 그 어떤 ‘기대’ 또한 금물이다. 매파(공화당)이던 비둘기파(민주당)이던, 방법은 좀 다를지 몰라도 그들은 철저하게 CIA로 대표되는 집단의 바램에 부응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건 단지 나의 ‘주장’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매파는 눈에 확 뜨이도록 노골적인 만행을, 비둘기파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교묘하고 더 더러운 음모와 술수로- 짐짓 유화적인 척 위장하며 뒤에서는 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는 게 다를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국내의 정치상황은 장 단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결과를 원하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박근혜든, 문재인, 안철수든. 미국의 입장은 한결 같다. 자국의 이익에서 벗어나는 정치인이 들어서는 걸 바라지 않는 것.
현재의 -미국에 대한 한국 민들의 인식수준으로는 대선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후보들 중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마찬가지의 결과일 것이라는 거다. 괜스레 정치판에서 서로 권력을 차지하려 자리다툼에 열중하는 정치인들. 그들이 하늘(미국)의 의도를 거스르지 않는 한 누가 되든지, 미국은 크게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노무현 류의 정치인들을 배제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본질을 파악하고 대처하려는 국민들이 많아져야만 CIA의 마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특정지역 (영남)패권주의나 서울대출신 중심의 권력형성을 버리고, 모든 국민들이 나서서 동서화합과 남북통일의 염원을 향해 달려가 줄 때만이 이 민족의 평화와 번영의 길로 들어 들어설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추신: 지난 번 안철수의 경우처럼, 바로 오늘 나는 조영래변호사에 대한 정보보충(그가 망원동 수재민 변호 때 독파했다는 책의 분량)에 정확성을 꾀하기 위해 인터넷 에서 검색을 시도했다.
아, 그런데! 나는 너무나 놀라서 가슴이 벌렁거린다!
안철수의, 그야말로 화려빵빠르한 생애 전개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백과사전에 말이다.
조영래가 세상을 뜬 게 1990년인데, 백과사전 등재 문서 최종 수정 날짜가 2011년9월 5일로 기록 되어 있다. 전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었는가 모르겠지만, 지금 수록된 내용은 너무나 초라하다.
올 해 9월 5일의 최종 수정이 만일, 업테이트가 목적이었다면 저 정도로 초라하진 않았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아, 정말 안철수의 -좀 과장해서- 거의 장편소설에 가까운 서술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내가 목적했던 건 아예 찾아볼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