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동단의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구만리(九萬里)는 호미곶의 서쪽 굽이진 자락에 위치하며 장곡봉수대(獐谷烽遂臺)가 있었던 봉화봉 북쪽에 있는 반농반어 형태의 마을이다. 고대 농경사회의 보리농사 흔적이 전해지고 있는 구만들(田)은 포항시 유물산포지로 지정돼 있으며 다양한 마을이름과 교석초의 전설이 있다.
◆ 정족(鼎足. 솥발이溪)
400여 년 전, 망씨 부인이 일으킨 마을로 농촌 부엌에 있는 솥(鼎)같이 생긴 지형의 발짬(足)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정족’으로 불리어 온다. 망씨의 후손들은 없으나 골목매기 동제를 지내고 있다.
◆ 웅굴계
솥발이계 북쪽해안에 항상 마르지 않는 큰 우물이 있어 사투리로 웅굴계라 하였는데 우물 근처에 옛 사람들이 사용했던 주춧돌과 기왓장이 발견되고 있다.
◆ 큰계
웅굴계 북쪽 해안마을로 계곡 및 구릉의 차가 크므로 큰 계(溪)라 불렀다. 앞 바다에는 검둥바위 등 암초가 많아 갈매기들의 군락지이며 풍랑이 심하여 해난사고가 잦았다. 교석초(橋石礁)는 갑신정변(1884년)을 일으킨 김옥균이 조정으로 부터 능지처참된 왼팔이 버려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 영일벌내(甫川)
1590년 경, 망씨 할머니가 개척한 마을로 봉화봉에서 흘러내리는 보천 서편어귀에 형성된 마을이다. 대보리와 경계지역을 이루며 그 후 골짜기의 이름을 따서 ‘갈마천’이라고도 하며 대보항 북방파제가 있다.
일제강점기 1912년 영일군 동해면 구만동, 1942년 창주면이 구룡포읍으로 승격할 때 구룡포읍에 편입. 1945년 구룡포읍 대보출장소(대보리, 강사리, 구만리 3개 법정리) 관할, 1986년 면 승격에 따라 영일군 대보면 구만 1리로 개칭, 1995년 영일군, 포항시 통합으로 포항시 남구에 속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정어리 기름공장이 많았다고 하며 1974년 호당 평균소득 6십 5만원, 1978년 2백 1만원의 기록이 있다. 1924년 건립한 사립보명학원이 있었으며 1939년 개교한 대보초등학교의 전신이다.
매년 (음)11월 초순, 김해 김 씨 터주, 망 씨 골매기 소나무 신체에 동제를 지낸다. 갈마천 제당(681번지)과 약 300년 수령의 당산목은 포항시 민속신앙유적 ①(남구 002나-6)로 지정되어 있다. 3년마다 음력 동짓달 진일을 택해 어선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 일명 ‘교석초 다리굿’을 한다.
◆ 까꾸리계(鉤浦溪)
큰계 서편에 있는 어업중심지로 방파제와 어항이 있다. 이 마을에는 풍파가 심하면 해안가에 고기(청어)가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까꾸리(鉤구: 갈고리의 방언)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1908년 교석초 주변에서 침몰된 일본 동경수산강습소 실습선 쾌응환호의 조난기념비(快應丸遭難紀念碑)가 있는데 8.15 해방이후 철거, 방치하던 것을 일본 유족보존회에서 언덕 낭시 끝에 재 건립하였으며 해안도로 개설 때 위치를 바꿔 현존, 마을에서 관리하고 있다.
◆ 앞구만․부느리계(芬月浦)
까꾸리계의 서편 영일만 안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앞구만에서 보는 서쪽의 낙조(落潮)와 영일만 굽이진 바다, 쓸쓸하고 험악한 바위에 좌우 송림이 밀착하고 기암절벽한 창파포구(滄波浦口)에 명월휘요(明月輝曜)하여 분기(芬氣)의 경치가 장관이라 하여 ‘분월포’라 불렀다.
◆ 신동
198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큰 마을 남쪽에 새집들이 들어서 새마을이라는 뜻에서 ‘신동’이라 한다.
◆ 섭슬끝․구만리․큰리
범꼬리 부위 지형이 굽이친 곳, 거북이가 많이 서식하던 곳이라 하여 구만(龜滿), 구릉지가 많다는 구만(丘滿) 등의 다양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
정유재란(1452년)때 수양대군이 영의정인 황보인과 그의 식솔들을 극형으로 다스리자 충복인 단양(丹良)이 황보인의 어린 손자(瑞)를 독속에 넣어 도망하여 이곳에 이르러 보니 앞에는 바다라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그만’에서 비롯되었다는 뜻도 있다.
“섭슬끝의 처녀가 시집갈 때 까지 백미 3말 못 먹고 간다는 곳”이라는 목장보슬말(牧場涉瑟末)의 유래가 있어 ‘섭슬골’이라고도 했다.
일제강점기 1912년 영일군 동해면 구만동, 1942년 창주면이 구룡포읍으로 승격할 때 구룡포읍에 편입. 1945년 구룡포읍 대보출장소(대보리, 강사리, 구만리 3개 법정리) 관할, 1986년 면 승격에 따라 영일군 대보면 구만 2리로 개칭, 1995년 영일군, 포항시 통합으로 포항시 남구에 속한다.
매년 (음력)10월 10일, 이 씨 할매 터전, 김 씨 할배 골목에 제사를 지내는데 시작년도는 1890년이다. 189-1번지에 있는 제당은 포항시 민속신앙유적 ②(남구005 마-1)로 지정되어 있다.
봉화봉에는 고려시대∼조선시대에 청하면 산의 봉화대와 맞보게 만들어진 봉화대의 거석(단)이 있었으나 1965년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흔적을 찾아 볼수가 없다. 고대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농경사회가 시작돼 보리농사가 많은 곳으로 포항시 유물산포지에 지정되어 있으며 지금도 전국 문학인들의 ‘보리누름’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출처= 대보향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