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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원 ' 님이 주신 표지입니다.
여러분..소원님은 글도 잘 쓰시지만 표지도 잘 만드신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진짜 대박이지 않아요..? 분위기 봐...종인이랑 백현이 사진 적절히 매치되서 더 좋아ㅠㅠㅠㅠㅠㅠ 짝사랑의 조건 캐릭터랑 너무 잘맞는 표지예요ㅠㅠㅠ 나 로고도 너무 마음에 들어 너무너무 좋아요 사랑합니다ㅠㅠㅠㅠㅠㅠ
짝사랑의 조건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저지르는 실수는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나중을 생각 못하고 닥치는 대로 돈을 써댄 것, 부모님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뒤돌아 뼈가 시리게 후회하는 것, 시험 하루 전날에 벼락 치기를 하며 미리 준비하지 못한 걸 후회하는 일까지. 난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짝사랑을 시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짝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며,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나를 한번 더 성숙하게 만들어준다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아니라면 아무도 모른다.
상대가 나를 몰라준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일이며, 그 마음을 얻기 위해 온몸이 쓸리는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것 또한 짝사랑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럼 누군가 내게 물어본다. 짝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그럼 나는 답한다. 내가 그 모든 걸 해봤음에 확신하는 거라고.
짝사랑의 조건 첫 번째 : 지독한 순환의 반복.
사실 내가 언제부터 이 지경이 돼버린지 정확히 기억해낼 수는 없었다. 아니, 기억조차 없었다. 내 의식은 김종인을 향해서 움직이는 것이오, 그러니 김종인의 의식도 나를 향해 움직이면 좋으련만. 추격자가 있으면 도망자가 있는 것처럼 놈은 지독하게도 나를 위해 돌아보거나 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건 내가 김종인이라는 아이를 좋아한 지 8개월이 넘었을 때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친구들이 늘 말하곤 했었다. 그렇게 티를 내는데 김종인도 모르는 게 바보라고. 정말 그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놈은 지지리도 눈치 하나 없었다. 그 덕분에 좋은 부분도, 그렇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우선 첫 번째는 종인이가 날 싫어하는지 아닌지 모르니까 혼자 멋대로 과장해석을 할 수 있었고, 그건 내가 장장 8개월이라는 고독의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 야, 김종인 그냥 포기해. 8개월이나 따라다녔는데 네 이름도 모르는 거면 말 다했지. "
" 뭘 포기해?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
" 걔 1년 넘게 좋아하는 여자애 있다잖아. "
" 그게 왜? 그 여자는 여자고 나는 난데. "
" 그 여자는 김종인이 좋아하는 애고, 넌 너 혼자 김종인을 좋아하는 애지. "
" 이 시발.... "
" 뭐, 틀려? "
" 맞으니까 닥치고 있잖아 병신아.... "
" 오, 그건 혹시 너? "
" .... "
친구들은 주로 날 부를 때 비속어나, 김종인과 함께 내 이름을 붙여주곤 했다. 그건 아마 내가 지독히도 김종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겠지. 다소 묵직한 숨을 뱉어내고 휴대폰을 들어 이리저리 눌러대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아무런 연락 없는 휴대폰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정신 못 차리고 푼수 마냥 김종인 이야기만 하는 내게, 친구들은 참 의좋게도 냉담한 현실을 말해주곤 했다. 그 예를 들어 김종인이 1년 넘게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알면서도 놈이 좋다고 따라다니는 내가 바보였다.
목울대에 저릿한 고통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턱 부분이 흉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오늘도 똑같은 이유로 무너져 내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당 못할 정도로 차오르는 뿌연 액체에 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이렇게 애연한 상황에서도 김종인이 우리 반에 들어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늘도 처절하게, 잔혹하게 흐뜨러지는 내 순수한 짝사랑이었다.
짝사랑의 조건
헐, 시발 김종인. 사실 말이 좋아서 김종인이 눈치가 없는 거지, 정확히 말하면 내가 추격자 행세를 잘 한 셈이다. 이젠 놈의 머리카락만 봐도 숨는 쭈구리 행동이 일상화될 지경이었다. 벽에 붙어 놈을 관찰하는 일이 더 편하다는 건 슬프고도, 애석한 진실이었다. 그럼에도 김종인은 여전히 내 가슴께를 난도질할 작정이었다. 시발, 욕이 나올 정도로 잘생겼다. 변태라도 된 것 같이 꽤 야릇한 숨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이젠 구강구조까지 김종인에게 반했나 싶었다.
" 아직 사귀거나 그런 거 절대 아니야, 그냥 우연히 시간 맞아서 영화만 보는 거야. "
" 오늘? 학교 끝나고 바로? "
" 끝나고 내가 걔네 반 앞에 가기로 했어. "
" 야, 여자는 관심 없으면 남자랑 영화 안 보지 않아? 그럼 김종인 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냐? "
" 종인아 종대야, 형이 알려줄게. 여자는 관심 없는 남자랑도 영화 잘 봐. "
변백현이었다. 놈은 늘 김종인하고 붙어 다니는 단짝이기도 했는데, 꼴에 정확하지도 않은 연애 상식이란 상식은 다 들고 와서 김종인만 혼란스럽게 만들어놓는 장본인이기도 했다. 변백현이 김종인에게 ' 여자는 이수혁 같은 낮은 목소리를 좋아해, 낮은 목소리. 김종인 너도 이제부터 낮은 목소리로 말하도록 노력하던가 해. ' 라고 말해 한동안 종인이가 되지도 않는 땅굴 소리를 내어 날 괴롭게 만들었던 사건은 적어도 내게만 올해 대사건이었다. 종인이의 꿀 보이스를 듣지 못한다고 상상해 봐라. 그건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으니, 물론 이것도 나한테만.
" 야, 적어도 여자는 이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이. "
" ... "
" 아무리 그 남자가 싫어도 여자가 영화를 보고 싶은 타이밍이라면 그때 딱 볼 수 있는 게 영화라고. "
" 아, 그런 거야? "
" 이제 김종인 너도 그 타이밍을 잘 노려보도록 해. "
개시발 말같지도 않은 소리, 우리 종인이한테 그딴 거지 같은 방식 알려주지 마. 우리 종인이 더러워지니까. 딱 하나 남아있는 애처로운 나뭇가지를 잡는 심정으로 종인이가 변백현이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차주면 좋으련만, 더럽게도 눈치 없는 김종인이라는 걸 보기 좋게 까먹어버린 나였다. 광대 끝까지 입꼬리를 올리며 변백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린 채, 고맙다고 말하는……더럽게도 눈치 없는 김종인.
싫다고, 죽어도 싫단 말이야. 김종인이 다른 여자랑 영화 보는 거 죽어도 싫다고. 8개월 동안 잘 따라다녔……아니, 좋아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면 그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건 진짜 끝까지 처참하게 망가지는 거잖아. 내가 좋아하는 이한테 내 마음 하나 전하지 못하고 다른 여자랑 쌩하니 가버리는 건……내가 너무 불쌍한 거 아니냐. 쭉 하고 입꼬리가 아래로 쳐졌다. 내 감정도 그렇다는 말이었다. 무언가 시원스럽지 못하고 돌덩이가 차있는 듯한 가슴께의 느낌은 착잡한 내 심정을 그대로 대변했다. 고백이라도 하면 후회라도 없다는데 이미 다른 여자와 영화를 보러 가는 마당에 무슨 고백이 있으며, 후회는 또 어딨나 이 말이었다.
'나도 영화 보고 싶은데……. '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바람 빠진 인형이 되어 제 의자 위로 엉덩이를 붙였다. 이어 책상 위에 엎드려 부끄러운 내 얼굴을 감췄다. 빛 하나 없던 터널에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건 아무런 희망 없던 8개월간의 대장정 끝을 알리는 마지막 위로 같기도 했다. 폭넓은 한숨이 심연의 아픔을 그대로 대변했다. 왜 난 매일, 짝사랑만 하다 이렇게 끝나는 건지.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날 좋아해 주는 일이 그렇게나 어려울까. 그럼 세상 사람들은 다 어떻게 저들끼리 반하고, 행복하게 사귀는지. 혹시나 나만 이러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왜, 김종인이 그만 따라다니래? "
" ……."
" 야, 진짜? 그 새끼가 너가 좋아하는 거 알았어? 뭐래? 진짜 그만 따라다니래? "
" 아니야, 오버 좀 하지마……. "
" 아, 그럼 왜 대답을 안 해? 뭐라 했냐고! "
" 영화 본대, 영화. "
" 영화 보쟤? 너보고 영화 보쟤? "
" 시발아, 나 말고 걔 말이야 걔. 김종인이 좋아하는 애. "
" ……. "
" 확인사살 안 시켜 줘도 충분히 울 것 같으니까 그만 볶아 제발. "
죄 없는 보미에게 벅차 오로는 서글픔을 이기지 못하고 냉담한 말을 뱉어나는 거지 같은 나였다. 보미가 무슨 죄인가 싶었다. 바보 같은 친구들 둔 죄? 아무것도 못하고 8개월 동안 쫓아다니기만 한 친구를 둔 죄? 아님 그냥 ○○○이랑 친구인 죄? 모든 건 정답이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감각하게 굴었나 싶었다. 8개월 동안 했던 모든 일에 회환을 느끼고 만 것이었다. 지겹도록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후회가 처음으로 내게 온 날이었다. 울음을 참는다는 게 그만 호흡 조절을 못해 괴상한 신음과 함께 새어 나왔다. 학교에서는 우연이라도 종인이를 마주할 수 있으니 죽어도 꾸미고 다니자, 라는 신조가 보기 좋게 어긋났다.
서러운 제 감정은 점점 폭이 넓혀졌다. 고단한 울음소리도 잔인하게 번져갔다. 애초부터 책상에 고개를 파묻은 건 정말이지 신의 한수였다. 안 그러면 남자 때문에 우는 가장 초라한 모습을 반 아이들한테 꼼짝없이 다 보여줄 것 같기 때문이었다.
" 야, 일어나. "
" ……. "
" 안 일어나? 일어나라고. "
" ……아, 진짜 싫어. "
"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김종인 걔, 너가 8개월 동안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티냈는데 좋아한다는 거 모른다는 게 말이 안돼. 걔 지금 일부러 너 쌩까고 있는 거야, 존나 싸가지 없는 새끼. "
" 내가 숨어다녔으니까 모르지 당연히……. "
" 네가 무슨 일주일 숨어다녔어? 8개월 동안 김종인 이야기만 하고 쫒아다녔는데 벌써 알고도 남았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새끼는 줘도 안 가져, 어떤 애가 자꾸 쫒아다닌다고 어디서 뒷담이라도 깔지 어떻게 알아? 너만 이상한 애 되기 전에 그냥 딱 말하고 끝내버려. "
" 아, 싫다고, 오늘 김종인이 좋아하는 여자애랑 영화본다잖아. "
" 아, 그럼 넌 네가 좋아하는 새끼가 다른 여자랑 영화보면서 손잡고 있는데 계속 병신같이 스토커 역할만 할 거냐? 김종인이 진짜 너 이상한 애로 알고 있으면 어쩔 거냐고! 안 일어나? "
" 아, 좀! "
" 너 이렇게라도 말 안 하면 매일 너만 운다니까? 난 뭐 좋아하는 거 안 해봤어? 어차피 안 이뤄질 거 눈 딱 감고 고백하니까 기분이라도 후련하더라, 넌 지금 그것도 못하면 너만 스토커에 너만 실연당한 여자라니까? "
" 김종인이 나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는데 뭘 말해. "
" 말 안 할거면 내가 말해. "
" 야, 저 시발 진짜! "
성격도 참 지랄 맞지. 아니, 의좋다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지만. 자존심까지 다 굽혀가며 김종인 때문에 우는 모습, 아파하는 모습, 찌질했던 모습의 끝까지 다 본 내 친구였다. 사실 나도 알았다. 김종인이 날 모를 리가 없었다. 아무리 숨어 다녀도, 아무리 김종인이 눈치가 없어도, 아무리 몰래 제 감정을 숨겨 봐도. 8개월 동안 내 모든 시작은 놈이었고, 끝도 놈이었으니까. 그 징글 거리는 줄다리기는 계속해서 내 승리로 이뤄지고 있었다. 죽었다 깨도 종인이가 반대편 줄을 잡아 줄 기적은 없을 테니까.
씁쓸한 맛의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 내 어깨를 치며 교실 밖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보미였다. 사실 나도 알았다. 놈이 나를 알고 있을 거 라는걸. 그래서 바보처럼 부정했다. 날 이상한 애라고 낙인찍었을까 봐. 난 괜찮았다. 원래 상대방이 날 어떻게 생각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좋은 게 짝사랑 아니겠냐. 종인이가 날 배신하고, 혐오하는 게 아니라면. 달라질 마음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친구에게는 늘 다른 의미였다. 등신 같은 친구 하나가 남자 때문에 매일 울고불고 정신 못 차리는 꼴이 애석했을 테고, 다른 여자와 영화를 본다는 사실에 세상을 다 잃은 얼굴은 답답하기 그지없었을 거다.
" 야, 보미야……진짜 하지마, 응? "
" 짜증나잖아! 솔직히 김종인이 먼저 착각하게 만들었으면서 왜 8개월동안 존나 남처럼 쌩까? 너가 처음에는 이렇게 숨어서 좋아했어? 걔랑 인사 했잖아. 네가 좋아하는 기색 보이니까 그 새끼가 지랄맞게 무시해서 숨은 거지. "
" ……. "
" 너 저번에 그랬잖아, 차라리 마음 편히 고백이라도 하고 끝내고 싶다고. "
" ……이미 끝났잖아, 영화 본다잖아. "
" 걔네 사귀냐고, 아직 안 사귀거든? 그 여자애가 김종인 좋아한대? 아직 모르거든? "
" ……더 싫어하면 어떡해. "
" ○○아. "
" ……. "
" 너 지금 김종인한테 고백하러 온 거 아니야, 네 마음 편하자고 온 거야. "
" ……. "
" 김종인이랑 끝났다며, 너도 그렇게 생각하면 아예 확실하게 끝내. 너 여기서 그냥 가버리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 말해줄까? 넌 혼자 합리화 하는 거야, 그래도 내 마음 들키지는 않았다고. 그러다가 김종인이랑 눈이라도 한번 마주치면 착각하게 되겠지? 또 김종인은 다른 여자랑 영화 보러 간다 할 거고, 넌 또 울고. 그러다 또 합리화하고 결국엔 계속 김종인 좋아하고. "
" ……. "
" 쟨 신경도 안 쓰는데 너만 힘들고. "
뼈저리게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그건 나도, 그리고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왜 쓸데없는 과대해석을 하며, 합리화를 하고, 또 혼자 슬퍼하고 포기한다고 난리 쳤다가 결국에는 다시 합리화하며 어쩔 수 없이 좋아하게 되기를 반복. 그건 일종이 순환이었다. 시린 귓등에 여린 실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실바람이 너무 날카로워 빨간 피라도 나올 것 같았다. 내 마음을 모두 관통당한 느낌은 참 더럽게도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뻔하고도 부질없는 짝사랑을 하고 있었구나.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고 있는 보미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후회, 반드시 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저녁 침대에 누워 내가 왜 그랬을까 수없이 발버둥 칠 거란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싫은 건 이렇게 지치고 애석한 짝사랑의 순환이 반복된다는 일이었다. 보미 말이 맞았다. 난, 놈에게 고백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편하자고 간다는 말.
김종대였다. 놈도 변백현에 이어 김종인과 늘 붙어 다니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단짝이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남자 화장실 앞에 있는 것으로 보아 김종인과 변백현도 화장실 안에 있는 게 분명했다. 김종대가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휴대폰을 하고 있는 결과론 그랬다. 괜히 8개월 동안 김종인을 따라다녔을까 싶었다.
한 번 굳힌 마음을 조각내기는 싫었다. 그럼 난 또 적으면 3개월, 혹은 또 8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 말도 못한 채 김종인이라는 늪에 허우적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막상 상황이 닥쳐오니 내가 놈을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그건 기억하기도, 기억하기에도 너무 선명한 일이었다. 이미 백 번은 곱씹어 달아 없어질 만한 그림이었다.
" 아, 존나 따뜻해 진짜. "
" ……. "
" 먹어볼래? "
" 아, 꺼져. ○○○ 넌 왜 항상 음료나 커피 먹을 때 컵이 아니라 목을 움직이냐? "
" 냄새 맡으려고. "
" 들고 먹어도 냄새는 나거든? "
" 고개 숙이고 먹어야 냄새랑 먹는 거랑 같이 할 수 있어서 개좋다고. "
" 난 개싫어. "
" 응, 상관없어. "
" 미친년아. "
보기 좋게 이목구비가 이리저리 일그러지는 보미의 얼굴에 멋지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 다시금 고개를 숙이는 나였다. 내 특이한 식습관 중에 하나는 음료 같은 물을 먹을 때, 컵을 드는 게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먹는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런 날 보고 물 못 먹고 살았냐며 왜 그렇게 불쌍하게 행동하냐고 하셨지만, 정말 말 그대로였다. 난 이렇게 먹어야 냄새도 맡고, 커피도 마시는 게 좋았으니까.
" 변백현 나 만 원어치 사도 돼? "
" 나 진짜 돈 없어, 내일 살게. "
" 개소리야, 네가 먼저 내기하자고 지껄였어 "
" 아, 시발 돈이 없는 걸 어떡해 그럼. "
" 야, 김종인 일단 담아. 백현이가 다 살테니까 걱정 말래. "
" 아니, 돈이 없다고 시발 돈이! "
한적했던 매점 앞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음에 너나 할 것 없이 인상을 찌푸리고 시선을 옮겼다. 아마 저들끼리의 작은 내기를 한 모양인지 돈이 없다며 난리치는 한 남자를 잡고 해맑게 웃고 있는 한 놈과, 잡혀있는 놈. 그리고 매점 이곳저곳을 보면서 살 과자를 물색하는 다른 놈까지 전부 세 놈이었다. 겨우 세 명에 의해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건 타고난 재능인 듯싶었다. 원초부터 남의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커피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 냄새 좋다, 향긋하다. 맛있다, 달콤하다……. '
" ……. "
" ……. "
" 존나 귀엽게도 먹네. "
" ……. "
번쩍하고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건 냉담한 현실로 돌아왔음에 그런 것이라 정의했다. 말랑거리던 심장도 어느새 단단하게 굳어져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하면 심장소리가 자잘하게 뛰기 시작했다. 가쁜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긴장의 끈을 감출 수 없어 두 손을 꽉 쥐어 잡기도 했다. 미끈거리는 손의 느낌이 내 상황이 얼마나 촉박한지 설명해주는 듯했다. 불안해진 눈동자는 제 자리를 잃어 분산될 뿐이었다. 내 옆에서 날 바라보고 있던 보미도, 김종대도 지금 모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는 저 문과 나만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열렸다. 그건 내가 처음 매점에서 종인이를 보았을 때와 같은 시끄러운 소음이었다.
두 눈을 똑바로 보고 내 마음을 말하고 싶었는데 사실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럼 정말이지 말이 독하게 나오지 못할 것 같아 똑바로 정면만 주시했다. 그러니 김종인이라는 명찰이 보이는 거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백할 기회였다. 원래 저지르고 보면 후회는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질긴 고통의 끈을 끊고 싶어 무거운 입을 열었다. 끊자, 후회 따위는 없게. 날 좋아하지 않는 그에게 더 이상 쓸데없는 합리화와 의미 부여는 하지 말자. 아래입술을 한번 깨물고 놈의 명찰 앞에 두 발을 세우고 섰다. 이 명찰만 보고 말하는 거다. 이 명찰만.
" 나, 나 사실 너 엄청 많이 좋아했어. 그래서 8개월 동안 몰래 따라다니고 그랬었는데 결국에 넌 내가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아서 그거 말하려고 온 거야. "
" ……. "
" 네가 다른 사람 좋아하는 것도 알아, 그냥 내 마음 편하자고 이러는 거야. 신경쓰지 마. "
" ……야. "
" 근데 진짜 고백하고 나니까 마음이 엄청 후련하다, 아무튼 내가 너 엄청 많이 좋아했다고. 물론 지금도 그건 맞지만 이제 아닐 거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
" 야. "
" 내가 지금 네 눈 못볼 거 같아서 일단은 그냥 가는데 다음에 마주치면 그냥 원래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 안녕. "
" 야. "
" 아니, 못본 척 하……응? "
"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
" ……. "
" 뭔 소린데. "
" 나 좋아하는 사람 그런 거 없는데. "
" ……. "
왜 제 눈앞에 김종인 교복을 입고 있는 게 이 새끼인 것이며, 종인이는 뒤에서 날 저렇게 쳐다보는 건지. 그리고 이 거지같은 상황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내가 왜, 변백현 이 새끼를 좋아하는 게 돼버린 건지.
대체 난 언제쯤 김종인에게서 벗어날 수 있나요. 이렇게 돼버리면, 내 마음이 편하지가 않은데. 똑같은 순환의 반복인데. 이렇게 되면 난 평생 김종인한테 빠져나올 수가 없는데.
짝사랑의 첫 번째 조건 : 짝사랑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러분 짝사랑의 조건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리고...흑흑 혹시 맨인더박스랑 짝사랑의 조건 표지 만들어 주실 금손분들 안 계시나요ㅠㅠㅠㅠㅠㅠㅠㅠ? 카페에서는 제 '리지여덕' 카테고리에 '표지코치 변백현' 에 올려주시면 됩니다ㅠㅠㅠ 그리고 블로그는 yaaraa12@naver.com 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당...여러분...흑흑...부탁드릴게요...똥손 리덕 좀 구해주세요....제가 절할게요..진짜 울면서 받을게요...진짜..진짜로...진짜 거짓말안하고...제가..흑...
그리고 짝사랑의 조건은 제 실화가 약간 들어가있어요! 저도..차일 거 알면서 눈 딱 감고 고백한 적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감정이입...그리고 짝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이 공감하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짝사랑 화이팅..!
정주행 가요!! 세상에 여주야ㅋㅋㅋㅋㅋ어떻게..ㅋㅋㅋㅋㅋㅋㅋ
정주행이요<3
설마 백현이한테 잘못 말한건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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