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퇴계원교회 60년사
동트는 퇴계원교회(1953~1960년)
(1) 퇴계원 교회의 시작
1953년 11월 10일 화요일,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퇴계원리 산 65번지에 소재한 수리중인 퇴계원교회에서 역사적인 첫예배가 시작되었다.
퇴계원교회의 설립 배경은 1953년 1월부터 삼육신학원 학생이었던 최성훈 학생전도사가 장로교에서 개종한 김야곱씨와 함께 주을래(현재 별내역ㆍ삼육대학교역 E마트 근처) 마을에 살던 김옥순(교적 4번)씨 가정에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전도를 시작하였다. 4월 중순부터 만7개월 동안 퇴계원에 사는 김순덕 여의사(女醫師) 가정에서 약 5명으로 집회를 시작하였다. 1953년 8월 22일 안식일에, 삼안리 분교에서 임영기, 라경숙, 홍태순, 임복순, 홍반, 김보배, 김옥순, 김간난, 김야곱, 박한갑, 김인식, 윤금순 성도가 침례를 받았다(최성훈 목사 일기에서).
최성훈 학생전도사는 1953년 8월 2일 일요일 한여름에, 삼육신학원 제14회를 41세의 나이로 졸업하였다. 최성훈 전도사는 1913년 황해도 출신으로, 1940년 최태현 목사에게 침례 받고 재림교회에 입교하였다. 1942년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 북한지역에서 비밀리에 문서전도 활동, 시조사와 위생병원에서 근무하였고, 평남 장매리 교회 자급 목회를 하며 10여명에게 침례를 주었다.
1946년 11월 제1차 순안청년 수양회에서 단기신학을 마치고 북한지역 공산주의 치하에서 비밀리에 전도하였다. 1948년 3월 북한대회로부터 정식사역자로 인준을 받고 함경남도 북청교회를 섬겨 80명의 신자로 부흥하였다. 1950년 10월 흥남에서 피난선을 타고 월남하였고, 1951년 군용화물선 L.S.D를 타고 부산에서 제주도로 피난하여, 임시 피난교회 대회로부터 제주 북쪽 함덕교회 임시전도사로 발령받아 약 4개월간 교회를 돌보았다.
1951년 가을 6.25 이후에, 최성훈 전도사는 수복된 서울로 입성하였다. 그는 삼육신학원에 전쟁 후 처음 29명의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1953년 8월에 졸업하였다. 이때에 같이 졸업한 분들은 고문경, 김선억, 유형환, 이기돈, 주상규, 임운경, 임운서 등 26명이었다. 최성훈 학생전도사는 대학에 재학 중에도 삼안리와 퇴계원을 중심으로 교회 개척활동에 열심 하였다. 그리하여 졸업 후 9월 4일에 중한대회로부터 퇴계원교회(퇴계원 분교라고 부름) 전도사로 발령을 받았다.
최성훈 전도사는 9월 8일 저녁에 위통(胃痛)이 발병하여 9월 16일까지 대학 기숙사에서 고통을 받다가 16일에 병원에 입원하였다. 9월 20일 중식 후에 퇴원하고, 21일에 주을래, 삼안리, 퇴계원을 방문하였다. 윤금순 댁에서 다시 발병하여 유숙하던 중 22일 화요일 예배에 참석하였다. 이후에도 최성훈 전도사는 대학과 삼안리와 퇴계원을 오가며, 김순덕 여의사(女醫師)의 일제식 넓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다. 10월 9일 금요일에는 약 20여명의 성도가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될 정도로 교회가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