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동안 한 교회에서 반주를
안영미 집사(반주자)
피아노가 좋아서 배우기 시작한 것이 6살 때였다. 아파서 학교에 못 갔던 날도 피아노 학원은 빠지지 않을 정도로 피아노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는 피아노를 전공해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과 목표가 아니라, 찬미가를 칠 수 있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목표였었다.
처음으로 교회에서 반주(伴奏)를 한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반주가 풍금이 전부였던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반주를 하던 초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퇴계원교회에 반주자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와 함께 출석한 안식일이 한여름의 안식일이었다. 교회는 텅 비어 있었고 교인들은 산위에서 야외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 뒤 다시 퇴계원교회를 방문하여 반주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느 집사님이 “ㅇㅇㅇ장 부르겠습니다.” 하는 요청에 전주(前奏)를 치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페달을 밟는 발이 덜덜덜 떨리고 무슨 곡인지도 모르게 전주를 했다. 다행히 전도사님 부부가 크게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제대로 박자를 잡아서 반주를 마쳤다. 그렇게 시작한 반주가 1983년도였다.
집이 멀었던 관계로 학교(서울삼육)에서 곧장 교회로 와서 화, 금요일 예배 반주를 하였다. 어떤 날 집에서(진접읍 장현) 퇴계원교회를 올 때, 교통체증 때문에 중간에서 내려서 박병철 집사님께 전화를 걸어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날이 많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상황이 힘들고 다른 친구들처럼 힘들지 않고 재미있게 학교 교회 다니며 자유롭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아니면 반주를 할 사람이 없었기에,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14살(중학교 1학년)부터 퇴계원교회 반주를 하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엄마(이혜숙 집사)한테 들은 이야기다. “첫째, 반주자는 30분전에 가서 미리 앉아 있어야 한다.” “둘째, 반주자는 교회의 꽃이다. 항상 웃고 밝은 얼굴로 반주해라.”하셨다. 내 나이 45세가 된 지금도 가끔씩 듣는다. “웃으면서~~” 라고!!
31년 동안 한 교회에서 반주를 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엄마의 기도의 힘이 나를 있게 하였다. 내 아이들 또한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간구, 감사의 마음이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주님 안에서 자라는 것을 새삼 많이 느낀다.
퇴계원교회에서 착하고 신실하고 성실한 신랑인 ‘태해봉’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누구보다도 큰사위를 사랑하고 아끼시는 우리 엄마의 든든한 사위이자 나의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고 복주시고 돌봐주시는 은혜를 내가 받은 달란트로 하나님께 보답해 드리고자 한다. 지금까지 함께하여 주신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