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 2022. 8. 17. 기사 인용]
보험(Insurance)은 어렵습니다. IT(정보기술)는 정보에 대한 접근을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줍니다. 따라서 IT와 보험의 결합은 필연적입니다. 생로병사와 직결된 금융상품인 보험이 혁신한다면, 사람의 삶도 달라질 것입니다. 디지털 보험사는 다가올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신한금융그룹은 지난 6월 BNP파리바카디프손해보험을 인수하고 이 회사를 디지털 손보사인 '신한EZ손해보험'으로 탈바꿈시켰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달 5일 신한EZ손해보험의 출범식에 직접 참여해 격려사를 할 정도로 손해보험업에 대한 열의가 크다.
그러나 신한금융은 손보 포트폴리오를 신한EZ손해보험에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말 한화그룹에 한화손해보험 인수를 타진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왜 신한금융은 신한EZ손해보험을 키우기도 전에 또다른 손보사를 인수하려고 하는 것일까?
디지털 보험사, 아직 한국에선 고행의 길…교보라이프플래닛 전철 밟을라
디지털 보험업이 아직 국내에서는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로 분석된다. 디지털 보험사의 대표적인 벤치마킹 모델로는 중국의 중안보험이 주로 거론된다. 2013년 설립된 중국 최초 인터넷보험사인 중안보험은 2017년 기준 직원수 약 2500명, 연간 수입보험료 약 8.5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거둬 일찍이 본궤도에 올랐다.
주력상품으로 반품운송보험, 알리페이계정안전보험, 항공기지연착보험 등을 내세워 전자상거래, 인터넷 사업자·소비자들의 수요를 이끌었다. 여기에 더해 헬스케어 사업으로 저변을 넓혔다. 인터넷 업체 텐센트와는 혈당 데이터를 분석해 보험료를 조절하는 건강보험 '탕샤오베이'를 선보였다. 중안인터넷병원을 설립해 경력 5년차 이상 의사들에게 24시간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1.5시간 이내에 약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펼쳤다.
지난해 영국 보안업체 컴페리테크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96개국 중 생체정보 수집과 활용에서 1위에 올랐다. 이러한 환경은 디지털 보험사가 시장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뤄젠룽 동양생명 전 대표가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중국은 8.8억명의 얼굴 데이터를 활용함으로써 보험 가입, 보험금 청구 등에 필요한 자필서명을 완전 대체했다. 얼굴 데이터는 2018년 6월까지 17.5억회가 사용됐고 보험을 비롯한 200여 분야에 응용됐다.
반면 한국은 의료법에 따른 제약과 공공의료데이터 활용 제한 등이 엄격해 디지털 보험사가 뚜렷한 차별점을 가지지 못한다. 약 배달 서비스는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상태다. 헬스케어 서비스는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는 걸음 수 측정, 식이요법 관리 수준에 그친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이 아직도 국내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이 회사는 중안보험과 똑같이 2013년에 설립됐지만, 2013년부터 2021년까지 9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누적된 적자 규모만 1000억원을 넘는다. 카카오페이, 토스 등 플랫폼들과 협력해 암보험, 연금저축보험 등을 판매해 활로를 찾고자 했지만 이제는 이들 플랫폼이 직접 보험업에 진출하고 있다.
적자가 누적되면 결손금 규모가 커지는 만큼 자본확충이 꾸준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재무구조가 취약해 후순위채권과 신종자본증권 등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렵다. 교보라이프플래닛 지분 100%를 가진 교보생명이 유상증자로 교보라이프플래닛을 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투입한 자금만 2000억원 규모가 넘는다.
신한금융으로서도 신한EZ손해보험이 자생력을 갖추기 전까진 일정기간 투자를 집행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EZ손해보험은 자동차 잔여 할부금 상환 신용보험, 운전자보험 등을 마수걸이 상품으로 내거는 식으로 초기 집객 전략을 짰다. 그러나 카디프보험 시절부터 B2B(기업대기업) 시장을 주로 공략해온 터라 신한EZ손해보험의 B2C(기업대소비자) 시장 공략은 인지도 확보 단계부터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 안착하지 못할 경우에는 교보라이프플래닛처럼 신한EZ손해보험 또한 신한금융의 '오래된 숙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블로터>에 "(신한EZ손해보험에 대한) 자본과 자본확충 관련된 부분은 지금 계속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손보사 없어 '리딩금융' 싸움 불리…승계 얽힌 한화손보까지 접근한 이유
그동안 신한금융그룹은 손보 포트폴리오가 없어, KB손해보험(전 LIG손해보험)을 보유한 KB금융그룹과의 1위 싸움에서 불리함을 겪어왔다. 카디프손보 시절 올 1분기 기준 자본총계가 592억원에 불과할 만큼 규모가 작다. KB손보의 자본총계는 2분기 기준 2조6912원이다. 이른바 1등 금융그룹을 뜻하는 '리딩금융'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양 그룹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런 배경이 한화그룹의 승계구도가 얽힌 한화손해보험까지 신한금융이 접근한 이유로 해석된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그룹 주력사업인 석유화학·태양광 부문을,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이 금융 부문,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가 호텔·레저·유통 사업을 각각 맡아 승계하는 구도로 짜이고 있다.
현재 한화그룹 금융 계열사의 지배구조는 총수일가(100%)→한화에너지(9.70%)→㈜한화(96.77%)→한화건설(25.09%)→한화생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한화생명이 한화손해보험 지분 51.36%를 쥐고, 한화손보가 캐롯손해보험 지분 56.6%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한화그룹의 지주사격인 ㈜한화가 자회사인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하는 식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본격화하고 있다.
신한금융이 한화손보 인수를 타진한 것은 이러한 승계작업이 진전되기 전이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블로터>에 "한화그룹의 축은 총 3개로 아들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업종들이 하나씩 다 있는 상황"이라며 "아들들이 나눠 가진 다음에 팔면 몰라도, 넘겨주기 전에 하나씩 떼서 판다는 건 후계 구도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신한금융은 한화손보를 철저히 보험업황에 입각해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한화 금융사의 정점은 한화생명이다. 한화생명은 명실상부한 업계 '빅3' 생보사로 꼽힌다. 또 생보업계는 최근 재해보험, 상해보험 등에 자동차사고부상치료비(속칭 자부치) 특약을 탑재하는 등 손보업계의 상품이라 여겨진 운전자보험 시장에 간접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화생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적 옵션을 겨냥한 인수 타진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한화손보는 2019년 609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금융당국의 경영관리 대상으로 지정됐었지만 올 상반기에는 1635억원의 순이익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하면서 저평가 딱지를 떼고자 하는 상황이다. 신한금융이 이러한 '자존심'과 승계라는 특수성을 상쇄할 만큼 더 높은 거래가를 제시하지 않으면 한화손보 인수는 쉽지 않을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손보 인수가 최종 불발될 경우 신한금융의 요구치를 충족할만한 매물로는 2019년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인수한 롯데손해보험이 꼽힌다. 롯데손보는 디지털 보험 상품의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어 신한EZ손해보험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손보사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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