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클린의 눈물, 이 눈물의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영국의 천재 첼리스트 Jaqueline Du Pre. '자클린의 눈물' 이란 첼로곡은 100년도 넘은 과거에 프랑스의 오페레타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가 작곡해 놓고 미발표곡으로 묻혀 있던 악보를 한 세기가 흘러 독일의 첼리스트 Werner Thomas가 찿아내 스스로 연주해 보았답니다. 미발표 곡이라 제목조차 없던 곡에 영국의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의 이름이 헌정되어진것은 그녀의 짧은 삶이 너무 극적이였고 슬펏기 때문입니다. 어릴때부터 배운 첼로 기법은 커가며 무한한 창조력과 활력으로 영국에서 이미 유명해 졌고 20세때 미국 공연에서는 그때까지 별로 인기가 없었던 Edward Elga의 첼로곡을 본인의 테크닉과 해석으로 잘 알려지게 했답니다. '영국의 붉은 장미' 라고 불리우던 22세때에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유대계 아르헨티나인 Daniel Barenboim 과 만나 부모와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난지 6개월만에 결혼합니다. 둘은 합심해 더욱 왕성한 연주 활동을 하며 그후 주빈 메타, 아이작 펄먼, 핑커드 주커만과 런던에서 5명이 모여 슈베르트의 'Trout' 을 연주하게 되지요. 유튜브에 Trout Quintet Schubert 를 찿으시면 보실수 있어요. 4악장은 귀에 많이 익으실 겁니다. 기억하시는 Three Tenners 공연에 버금가는 자리였던것 같읍니다. 그당시 연주자들은 모두 나이가 들어서도 굳건한 연주자, 지휘자로 남아 있읍니다. 그 자리의 첼로연주자만 빼고요. 자클린은 어느날 공연도중 첼로의 활을 떨어 뜨려 황급히 주어들어 연주를 마쳤으나 그 후로도 종종 그런일이 일어나 늘 완벽을 추구하는 남편 다니엘은 그런 자클린을 못 마땅히 여기고 심하게 나무라기 일수였답니다. 그런 현상은 당연히 실수가 아니였고 병의 시작이였으며 병명은 다발성 뇌척수 경화증으로 밝혀지며 그러한 아내의곁을 남편인 다니엘은 지켜주지 않고 연주를 핑계로 밖으로 나돌기만 했으며 결국 오케스트라의 피아노 연주자인 엘레나 바쉬키로바와 염분을 피우고 급기야는 자클린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그녀는 87년 늦가을 마지막 잎세를 쳐다보며 숨 거둘 때까지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읍니다. 병이 깊어지고 세상과 이별할때에도 다니앨은 그녀 곁에 없었고요. 비정한 남편은 그야말로 무덤에 흙이 마르기도 전인 다음해에 엘레나와 결혼 했읍니다. 온 몸이 경직되어 '눈물' 조차 흘릴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연주를 들으며 어떻게 하면 그 삶을 이겨나갈 수 있을지를 묻곤 했답니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제 8순을 넘기고 그 역시 혈관성 류마티즘에 결려 활동을 중단했으며 그의 음악적 재능과 성공이면에 첫 아내를 이용하고 버린 비정한 남편의 그림자가 늘 따라다니고 있지요.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100여년 전의 악보를 연주해본 첼리스트 Werner Thomas는 제목을 'Jaqueline's tears' 라고 붙였읍니다. 마치 그녀가 73년에 연주를 중단하고 14년동안 혼자 투병하며 흘리고 싶었던 눈물을 이제야 다 울 수 있게 말입니다. Jacques Offenbach는 프랑스의 오페레타의 창시자였고 Can Can music 은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온 곡 입니다. 그 작곡가가 100년후에 자클린의 눈물을 예언했는지, 이 곡을 만들고 미 발표곡으로 제목조차 없이 보관해 놓고 또 다른 혜안을 가진 첼리스트에게 발견된 건 참 우연이기엔 오묘함이 있읍니다. 작곡가의 음역이 상상할 수 없이 넓음을 깊이 느낍니다. 그녀가 연주하던 첼로는 후일 Yo Yo Ma가 구입했다는데 정작 요요 마의 그 곡 연주는 찿을 수가 없네요.그럼 여러분, 이제 유튜브에서 '자클린의 눈물'을 찿아들어 보실까요? 많은 연주자들이 연주해서 일일히 올리지 못했읍니다.
아마 연주 처음에 '" 아 이 곡!" 하시겠지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덕분에 잘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교양수준이 올라간 느낌이에요.ㅎㅎ 첼로연주 잘 들었습니다.
역시 강물님 👍
잭클린의 눈물은 처음 들어 보는데도 굉장히 익숙하게 들리네요, 잔잔히 흘리는 눈물이 느껴집니다,, 슬픈 감성이 우리와 비슷한거 같아요,, 덕분에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