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길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고속도로처럼 곧장 난 길이 아니라 구비구비 돌아가는 산길이 적당할 것이다. 거기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길이 넓어지기도하고, 좁아지기도 한다.
이 글은 지금도 나의 마음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나의 모교 고려대학교와 그 속에서 내가 대학 생활 내내 몸담고 있던 고려대학교 서화회-그곳은 내 마음의 작은 고향이다-를 졸업하면서 1985년 2월 후배들이 베풀어 준 졸업생 환송회에서 행한 답사의 전문이다. 그것은 내 인생의 산길 한 구비 돌아 작은 언덕에 올라서 지나 온 발자취를 더듬으며, 나의 대학 생활을 반성하고 결산하는 의미가 있었다. 혹시 내 방 책장의 어느 틈바구니에서 잠들었다가 사라질까 저어하여 여기 그저 남겨 놓는다.
<졸업을 앞두고 >
- 이제 내 인생의 한구비를 돌다.
오늘 이 자리가 전생 어느 때 永劫(영겁)의 虛寂(허적) 속을 헤메이다 지쳐 놓쳐버린 소매자락이어도 좋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먼 훗날 바람과 구름으로 만나 폭염에 찌든 大地(대지) 위에 뿌려질 한 줄기 소낙비여도 좋습니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것이 필연의 이치임을 안다고 할지라도 別離(별리)가 주는 아쉬움은 쉽게 극복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연속되는 헤어짐 속에서 살아왔으며, 넘어졌다가 일어나 묻은 먼지를 떨어내듯 이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과 시간의 동질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럭저럭 아쉬워하며, 아쉬움을 애써 감추며, 가끔씩은 아쉬운 척해가면서 떠나매 오늘 이 앞자리에 왠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얼굴들의 가슴 속에는 여기 석별의 놀이가 무르익어 갈수록 과거는 뚜렷이 새겨지겠지만, 하나 둘 가슴에 묻혀있는 추억이 되살아나고 기억되고 또 사라지고 하면서 세월은 계속 흘러갈 것입니다.
어찌보면 떠나가는 우리들은 대학사회가 가장 급격히 변화하던 시절을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과포화 상태에 이른 대학 인구와 미처 기억할 수도 없는 카페들의 이름 속에서 막걸리 찬가는 향수병이 되었고, 하얀집에서 모처럼 선배를 만나 맥주 한 잔을 얻어 먹고 부실(部室)에 올라와 자랑하던 일도 처용이 살던 시절만큼 아득한 설화일 뿐입니다. 제기동 밝은 달아래 밤드리 노닐다가 가랑이 열댓이 모여 얽혀 자던 일도 전설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자랑할 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는 지난 세월이지만 젊음은 고독과 함께 유성처럼 스러지고 죽어라고 몽산포의 바닷 속으로 뛰어들던 일도 all night를 외치며 설악산의 밤 이슬을 맞던 일도 기억이 희미해져 갑니다. 그래서 과거는 추억이 되었다가는 다시 잠재 의식 속에서도 여위어 가는 호롱불일 뿐입니다. 집어치웁시다. 글씨 쓰던 일이며, 그림 그리던 일이며, 담배피우고 술먹고 사내와 계집을 꼬시던 지난 이야기들은 집어치웁시다.
우리들의 장난이 사치스러워지고 스스로 사치에 도취되어 진실을 외면하려 했을 때, 우리의 행위는 어두운 시대를 밝히기에는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우리는 소리치면서도 더듬거렸고 더듬거리는 목소리조차 자꾸만 안으로 기어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李太白이가 술을 마시고야 시를 쓴 이유를 모르며 술이 거나해서 아무리 졸려도 의젓한 포오즈는 취해야 하는 이유를 아직 모릅니다. 욕을 한다는 것은 자기 위안일 뿐이었고, 흥분해서 막걸리 잔을 집어던지는 것은 불안한 도피였습니다. 소리치지 않고서 이야기할 수 있으며 미친 듯 춤을 추지 않고서 어찌 기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침묵이라는 설움을 안고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대지를 적시는 어둠 속에서 침묵은 외침이어야 하며 앞산 그늘에 부딪혀 되돌아 올 수 없는 메아리라 할지라도 미친 듯 소리치는 원초의 부르짖음이어야 합니다. 비겁과 방탕은 無明(무명)속에서 스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명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관심과 안일 속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우리가 인식하며 살아왔던 삶의 영역을 되돌아 볼 때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모든 사실들은 너무나 비좁은 새장 안의 놀이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철저한 자기 만족과 도피였는지도 모릅니다. 80년대 이후 불어닥친 대학가의 격동 속에서 우리는 침묵하였으며, 그때의 침묵은 비겁이요, 나태요, 안일함이었습니다. 우리들의 행위 하나 하나가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마음껏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탈을 벗고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억지 웃음을 지어내던 탈도 觀照(관조)의 탈도 초월의 탈도 벗어던지고 좀더 일그러진 표정의 참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游於藝(유어예)라는 것은 애틋한 사란과 각고의 이그러진 형상이어야 합니다. 희열보다는 고통이 우리에게는 더욱 어울리는 자화상입니다.
우리의 철학, 우리 자신의 사상, 우리 고유의 삶의 양식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자유와 낭만이 숨쉬는 곳, 차디찬 지성의 샘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곳, 예리한 감성의 칼날이 찬연히 빛을 내뿜는 곳, 도도한 직관과 뜨거운 열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곳, 따스한 情(정)과 和氣(화기)의 동남풍이 항상 불어오는 곳, 그러한 곳이 서화회입니다. 동그랗게 맞잡은 손과 손에서 느껴오는 인간의 정이 감미롭고 파문처럼 번져나가는 그러한 곳이 서화회입니다. 人生無常(인생무상), 萬物流轉(만물유전)이 진리일진대 흐르는 세월 속에서 망각한 우리들의 참모습을 되찾으려할 때 성급히 변화를 재촉하는 일은 당돌하기 짝이 없고 고집스럽게 불변에 집착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렇다고 시세의 흐름에 자신을 대던져 버리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모든 것을 망각하며 살면서도 가끔씩 아주 가끔씩은 느껴보았습니다. 한 자루의 붓에 먹물을 그득히 품고 있는 동안 우리가 차지한 공간은 비록 좁아도 우주 전체가 그대로 내 집인양 만족했고 쪼개진 시간 속에서도 자유는 聖(성)스러웠으며, 억만겁 세월을 소유한 듯 여유로웠습니다. 그래서 빈 주머니에 텁텁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도 無所有(무소유)의 원형을 발견하였고, 그때는 탐욕도, 권세도, 명예도, 이데올로기도, 투쟁도, 때로는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 無何有之鄕(무하유지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화회의 참된 가치는 예술성도, 여하한 이념도 우뚝 초월한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씨와 그림 그것은 개인으로 볼 때는 목적 그 자체가 되어야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진정한 서화인은 書, 畵에 목적을 두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목적만 알고 수단을 모를 때 우리는 고루와 아집의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없으며 목적을 무시하고 수단만 강조할 때 무관심과 안일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영원히 서화회의 핵심이요 주체가 될 서화인은 철저한 자신감과 무한한 포용력을 가진 그러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위가 부서져 모래가 되고, 모래가 씻기어 진흙이 되고, 진흙이 뭉치어 바위가 되고..... 우리들은 바람이 되었다가 구름 되어 떠 있다가 빗물이 되어 호수로 모이고, 호수 아래 흙이 되어 쌓이다가 그 위를 물고기 되어 노닐다가 떠나갑니다. 안암의 언덕이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라면 석탑의 다락방은 언제나 푸근한 고향집이 될 것입니다. 서화회는 지나온 세월 속에 우리 삶의 한 부분이었고, 앞으로도 그 일부로 남아 있으리라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떠나가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먼저 스쳐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지나쳐올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우리가 떠나는 이 자리는 여러분이 묵은 때를 씻어내고 새로이 몸을 단장하는 첫 번째의 과정입니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지나쳐간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은 망각하게 되는 것이며, 떠나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지금의 석별은 묵은 허물을 벗고 새로운 삶의 場 속으로 출발하기 위한 준비 운동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움트는 새싹과 함께 새로운 식구들을 맞아들일 때 우리도 여러분 곁을 떠나 새 식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는 헤어짐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여기 모인 모든 식구들의 관계가 새로운 인연의 줄로 엮어지는 의미있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만남은 결별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좀더 끈끈한 정의 새끼줄로 우리 모두의 몸뚱아리를 이어매는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떠나는 우리들이 어머니의 품을 떠난 아이처럼 타향살이의 시름 속에서 달을 쳐다볼 때 여러분들은 여기 자유로운 들판을 쏘다니며 望月(망월)을 돌리십시오, 우리들이 그리움에 못잊어 내친 걸음으로 달려오면 여러분들도 조촐한 잔치를 베풀어 놓고 우리들을 맞이해 주십시오, 함께 어우러져 부르는 강강수월래의 노래 소리가 듣기 좋고 맞잡은 손에서 전해오는 가슴 속 이야기들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못잊을 세월 속에서 봄을 기다리고 봄에 피는 꽃 한 송이를 바라보면서 자유와 진실과 지칠 줄 모르는 우리들의 마당놀이.
이제 떠나매 할 이야기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말도 다하지 못한 가슴 속 꼭두빛 이야기는 우리들의 인연의 줄이 닿고 있는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맑고 향그런 꽃으로 피어나라고 손모아 기도합니다.
1985.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