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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자기 고백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삶의 근본적 질문과 고전
과학ㆍ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분명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 주었다. 디지털 정보 기술, 생명 과학, 나노 공학, 로봇 공학은 우리가 옛날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가능케 만들었다. 더욱 안락한 생활 그리고 더욱 긴 수명에 대한 인류의 욕망을 첨단 과학ㆍ기술은 충족시켜 주고 있다. 하지만 편리한 삶이 곧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과학ㆍ기술의 유토피아가 인간을 진정으로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 과학ㆍ기술의 발전이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가? 인간 삶의 최종적인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오늘을 살고 있고, 또 무엇을 위해 이 모든 문명의 이기(利器)를 즐기고 있는가?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다소 고리타분한 질문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들은 없다. 이런 질문들은 삶의 근본적인 질문이다. 삶의 근본적인 질문은 어떤 시대에도 항상 던져지는 질문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세대가 바뀌어도 이런 질문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오늘날의 과학ㆍ기술은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 고전(古典)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보다 앞서서 이런 질문들을 마주한 채 깊은 고민을 했던 옛 선현(先賢)들의 생각이 담겨 있는 기록이 고전이다. 고전은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끔 인도하는 나침반(羅針盤)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은 이런 질문에 대한 깊은 사색(思索)과 성찰(省察)의 기록이다.
자신을 향한 고백, 『명상록』
우선 『명상록』의 형식적 특징에 관해서 알 필요가 있다. 『명상록』은 사적(私的)인 일기, 즉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사적인 감상을 자신의 세계관, 즉 스토아 철학의 기본틀 밑에서 표현하고 있는 일기이다. 따라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은 자신과의 독백(獨白) 형식이다. 흔히 등장하는 2인칭 표현 ‘그대’는 물론 독자를 뜻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마르쿠스 자신이다.
『명상록』은 애초에 책으로 계획되지도 않았다. 즉, 출판을 목적으로, 다시 말해 공중(公衆)에게 보여 줄 목적으로 씌어진 것이 아니다. ‘명상록(瞑想錄)’이라는 제목도 그리고 권수 및 절수의 표시도 마르쿠스 사후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도입된 것이다. 『명상록』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쓴 글이다. 따라서 글의 흐름은 비조직적이고 산발적이면서 단편적이다. 『명상록』은 철학 냄새는 물씬 풍기지만, 전형적인 철학 텍스트는 아니다. 철학 텍스트는 주로 논증적(論證的) 또는 논리적(論理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명상록』은 그렇지 않다. 일기는 논리적 구조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상록』은 전쟁 막사에서 쓴 일기이다. 로마 황제 또는 그와 비슷한 신분의 사람이 게르만의 숲 속 전쟁터에서 쓴 일기로 『명상록』외에도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가 전한다. 하지만 두 텍스트는 성격상 판이하게 다르다. 『갈리아 전기』는 전쟁과 정치이야기로만 점철되어 있다. 『갈리아 전기』는 일반 사회의 공중에서 카이사르 자신의 군사적ㆍ정치적 역량을 증명할 목적으로 씌어진 전쟁 기록물이다. 하지만 『명상록』은 전쟁터에서 씌어졌지만,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깊은 성찰을 자기 자신과 나누는 일기이다.
이런 점에서 『명상록』은 영성적(Spiritual) 문학 작품의 효시인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그리스도를 따라서(De imitatione Christi)』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를 따라서』가 유명해지자 『명상록』도 그제야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명상록』은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파스칼(Blaise Pascal)의 『팡세(고백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삶의 필연에 대한 질문
마르쿠스는 스토아철학을 자신의 사유의 중요한 기둥으로 수용했다. 그러므로 『명상록』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스토아사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스토아사상은 방대한 체계이기 때문에 간단히 요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르쿠스의 주요 관점, 즉 삶의 필연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할 스토아사상의 핵심은 대략 세 가지이며, 이 세 가지는 수미일관(首尾一貫)적으로 연결된다.
첫째, 스토아사상은 범신론(汎神論)을 근거로 한다. 신(神)은 세계와 역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역사 안에 편재(偏在)한다. 세계 안의 모든 존재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신의 표현(表現)체들이며, 그 중에서 인간은 자신이 가진 이성적(理性的) 능력으로 인해 가장 탁월한 표현체가 된다. 신은 완벽한 이성으로 특징지어지며, 피조물 중에서 인간은 이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존재(存在)자이다.
둘째, 삶의 필연에 대한 믿음이 또한 스토아사상의 특징이다. 삶의 필연은 섭리(攝理) 혹은 운명이라는 개념으로 환원된다. 신은 이 세계를 가장 좋은 방식으로 설계하였고 또한 역사도 가장 좋은 방식으로 구성했다. 세계 안의 모든 사건들은 궁극적으로 악(惡)이 아니라 선(善)을 낳도록 그리고 선을 향해 결정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결정된 세계 및 역사의 흐름을 섭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섭리가 한 인간의 인생사(人生史)로 구현된 것을 운명(運命)이라고 한다. 인간이 겪는 그 어떤 사건도 우주적(宇宙的)ㆍ섭리적(攝理的)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악(惡)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없다.
셋째, 스토아사상은 철학적 전체주의(全體主義)이다. 인간은 섭리적으로 구성된 우주와 역사의 한 부분이다. 인간은 자신을 개별자가 아니라 이런 전체의 한 부분으로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전체의 선(善)이 곧 인간 자신의 선이다.
철학은 행복에 이르게 하는 삶의 기술
19년간의 전쟁에서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지치지 않게금 해준 것은 무엇인가? 그를 지탱해 준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의 삶 전체를 이끌어 온 힘은 로마의 군사력도 아니고 황제의 권력도 아니다. 그의 힘은 그가 심취한 철학에서 나왔을 것이다. 마르쿠스에게 철학은 단순한 하나의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그의 삶의 힘이다.
우리는 이를 『명상록』 도처에서 감지할 수 있다.
의사들이 어느 때나 그들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항상 진료 도구와 칼을 간직하고 있듯이 그대도 신의 일 또는 인간의 일을 이해하기 위하여, 또는 신과 인간을 상호 결합하는 긴밀한 유대를 염두에 두고 어떤 사소한 일일지라도 처리해낼 수 있기 위하여, 그 대비로서 항상 근본원리를 갖추도록 하라.
여기서 ‘근본원리’는 철학을 가리킨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기술(技術)이다. 그것은 의사들의 치료 기술과도 같은 것이다. 철학은 무엇이 기술인가? 삶의 기술이다. 삶의 운명에 좌절하지 않고 운명을 용감히 받아들이게끔 인도하는 기술이다. 황제의 자리 그리고 전쟁의 사역(使役)은 마르쿠스의 개별적 성향이나 이전 경험과 맞지 않는 일이지만, 이 일을 마르쿠스는 신이 자신에게 부과한 섭리적 결정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용감히 응한다. 철학은 영혼을 삶의 운명에 조응하게끔 제어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이 기술은 항상 그리고 어디서나 가지고 있어야 할 도구이다. 의사들이 항상 치료도구를 지니듯이, 따라서 철학은 일상생활과 유리되지 않는다. 철학은 삶의 “어떤 사소한 일일지라도 처리해” 내게끔 지도하는 기술이다. 일상적 삶의 사소한 일, 가령 작은 약속, 작은 의무, 건강을 챙기는 일들도 성실히 수행하게끔 인간을 제어하는 기술이다. 철학은 일상을 소홀히 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철학은 우리를 일상에 충실하도록, 하지만 매몰되지 않도록, 가르친다.
제3권 제13절이 명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처럼, 의료 기술과 철학의 비교는 중요하다. 의료 기술에는 이론 그 자체로서의 목적이 없다. 그것은 치료를 위한 것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치료를 위한 것이다. 철학의 본질은 바로 ‘치료 기능’에 있다. 의학이 육체의 치료 기술이라면, 철학은 영혼의 치료 기술이다. 영혼의 무엇을 치료한다는 말인가? 물론 영혼의 질병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혼의 질병인가? 마르쿠스는 이전의 전통 스토아철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요, 혼란스러움, 탐닉, 욕망, 증오, 시기, 질투, 후회, 분노, 두려움, 불안, 공포, 슬픔, 절망 등 우리 삶을 힘들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일체의 감정을 ‘정념(情念)’이라 불렀고, 이를 영혼의 질병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정념을 치료하는 기술이다. 행복은 정념에서 해방된 상태이며, 철학은 행복에 이르게 하는 기술이다. 철학은 우리의 영혼에 정념 대신 고요함과 부드러움을 불어넣는다. 철학의 힘은 치료의 힘이다. 이것은 『명상록』 전체를 관류하는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무엇이 정념의 원인인가? 마르쿠스가 볼 때 정념을 유발하는 것은 우리 바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예를 들어 늙음이나 가난 자체가 우리에게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유발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노화(老化) 그리고 언제든 들이닥칠 수 있는 가난(家難) 때문에 우리가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다. 노화나 가난을 악(惡)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의 판단 또는 그와 같은 우리 자신의 태도 때문에 우리는 불안에 떤다. 늙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만약 신이 나에게 가난을 예정해 놓았다면, 가난 역시 나에게 반드시 닥치게 되어 있다. 이것들은 결정된 것이다. 신이 섭리에 의해 나의 삶에 이것들을 결정해 놓았다면 이것들은 악이 아니다.
만약 신들이 나에 관해 그리고 내게 필연적(必然的)으로 일어날 일들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좋은 결정일 것이다. … 그러므로 나는 신들의 계획과 결정의 결과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만족해야 한다.
이것들을 나의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악(惡)으로 규정하면서 거부하는 태도나 판단이 악(惡)이다. 늙음과 가난에 대한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나의 이런 판단과 태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정념(情念)의 원인은 사물이나 사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 철학은 정념의 가짜 원인과 진짜 원인을 보여 주고 구분해 줌으로써 나로 하여금 스스로 정념을 제거하도록 도와준다.
그대에게 고통을 준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그대의 생각을 제거해버린다면, 그대는 완전한 평온 속에 있을 것이다.
우주의 부분으로 살아가기
나는 누구인가? 나를 바로 ‘나’라고 말할 수 있게끔 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을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이 한 청소년의 머릿속에 대략 그려지고 가슴 속에 어느 정도 신념화될 때, 우리는 그 청소년의 자아가 형성되었다고 흔히 말을 한다. 이런 질문을 좀 어려운 말로 ‘자아(自我)정체성 질문’이라고 부른다.
자아 정체성 질문에 대해 마르쿠스는 광활하기 그지없는 관점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 관점은 우주적(宇宙的) 관점이다. 마르쿠스는 “마치 우리 스스로가 자연인 것처럼, 전체 우주인 것처럼 생각할 것”을 가르친다. 이 말은 좁은 자아, 협소하기 짝이 없는 자아, 사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자아를 과감히 버릴 것을 뜻한다. 마르쿠스는 대자연 및 대우주와 동일시되는 자아를 구성하기를 가르친다. 개별적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이 우주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한다.
신들의 일은 섭리로 가득 차 있다. 신적 자연으로부터 또는 섭리에 의한 계획되는, 운명의 실들의 감김과 엮임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우연적인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더 나아가 필연과 우주 전체의 “잘됨‘이 존재하며, 너는 이 우주의 부분이다. 전 우주적 자연에서 일어나는 것이기만 하면 그리고 전 우주적 자연을 보존시키는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이 자연의 모든 각 부분에게 좋은 것이다. 우주는 복합 물체들의 변화에 의해서 보존되는 것만큼이나 복합 물체의 구성 요소들의 변화에 의해서도 보존된다. 바로 이런 것이 너에게 자족적인 가르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개별적 삶의 의미는 전체 우주의 맥락 내에서만 주어진다. 전체에게 선한 것이면 그 부분에게도 선하다. 악이 혀에는 쓰지만 몸 전체에 좋은 것, 즉 선한 것이면, 몸의 부분인 혀에도 좋은 것이다. 내가 겪는 사건들이 나에게는 고통스럽고 나쁜 것으로 일견 여겨질지라도, 우주 전체의 섭리적 역사를 위해서 의미가 있고 좋은 것이라면, 그것들은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부분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자신의 것으로 포용할 수 있다. 이것이 운명에 대한 체념이 아니며, 또한 도피도 아니다. 이런 사람의 자아는 우주와 동일하다. 이런 사람에는 자신의 인생사를 우주적 사건의 흐름과 역사에 일치시키고 동일화시키는 힘이 있다.
인생은 신의 연극
인생은 무엇인가? 마르쿠스에 의하면 인생은 하나의 연극(演劇)이다. 연극의 무대는 이 우주 전체다. ‘나’ 즉 자아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등장인물이다. 한 사람의 인생사는 이미 신이 쓴 각본으로 씌어져 있다. 내가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될 온갖 사건들은 각본에 의해 예고ㆍ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비극이라 부르는 사건은 이미 예고ㆍ결정된 것이기에 내가 절망할 필요도,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회적 직업과 역할로 인생을 살 것인지도 우주적 연출가인 신이 결정한다. 그것이 황제의 역할이든, 노예의 역할이든, 내게 맡겨진 역할과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배우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역할 이탈을 자제하면서 자기 역할을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충실히 소화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주어진 배역에 완전히 일치시키는 연기를 보여 주는 사람이 좋은 배우이듯이, 신에 의해 주어진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완전히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의 인생이 ‘좋은’ 인생, 즉 행복한 인생이다. 반대로 주어진 배역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을 하는 자는 나쁜 배우이다. 이런 사람은 연극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다. 배우는 연출가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配役)에 대해 불평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불평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여, 그대는 지금껏 거대한 우주라는 도시의 시민이었다. 그대가 이 도시의 시민이었던 기간이 5년이건 50년이건 무슨 상관인가. 이 도시의 법칙이 명하는 것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불평을 하겠는가? 폭군이나 어떤 부당한 판결에 의해 이 도시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인가. 마치 희극배우를 고용했던 연출가가 그 배우를 해고하듯이.
산(山)처럼 생각하기, 우주처럼 생각하기
현대인들은 작은 것에 탐닉하고, 작은 것에 분노한다. 현대인들은 일상생활과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받음 자체에 집착함으로써 스스로 그것을 더 큰 상처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마르쿠스가 말하듯이 넓은 시야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취한다면, 사실 상처로 느낄 만한 것은 별로 없다. 그리고 분노할 일도, 좌절할 일도 별로 없다. 우리가 쉽게 상처받고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고, 작은 일에도 좌절하는 것은 우리의 자아가 좁쌀만큼 좁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스스로 확대시킬 것을 권한다.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말이다. 전체 자연과 우주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고대 인디언들은 “산처럼 생각할 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마르쿠스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는 “자연처럼, 전체 우주처럼 생각할 것”을 가르친다. 말하자면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기운이 우리의 자아를 가득 채울 것을 그는 가르친다. 산처럼, 우주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분노하지도 절망하지도 상처받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은 작은 것에 탐닉하지도 욕망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만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은 그리스도교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 이후 유렵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명상록』을 종교적 영성 훈련용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스토아철학의 모든 것이 기독교로 수용될 수는 없었다. 어떤 것은 수용되었고, 또 어떤 것은 수용이 되지 않았을까?
예컨대 섭리적 세계관 및 역사관은 수용되었으나 범신론적 사고는 수용되지 않았다.
흔히 “학문의 목적은 진리 발견”이라고 말한다. 철학도 하나의 학문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철학의 목적 역시 진리 발견”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이렇게 말을 할까? 마르쿠스는 철학에 대해 진리 발견의 기능을 인정할 것인가?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철학이 진리 발견의 기능을 갖는 것은 분명하지만 진리 발견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철학의 진리 발견 기능은 치료적 기능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
자연과학적 법칙을 신념으로 삼는 사람은 우리의 삶과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일어난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근대적 세계관의 산물인 자연과학적 법칙은 세계의 사건들 안에 어떤 목적을 설정하지 않는다.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연에 기인한다.
☆ 우리는 흔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Meditation)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원제목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의 타 에이스 헤아우톤(TA EIS HEAUTON, 자신에게 이야기 한 일)이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읽은 책으로 내가 살아오는데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다. 그리스도교를 가장 심하게 박해한 황제로 몇 백만에 이르는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 오현제(五賢帝 Five Good Emperors) / 로마 제국의 최고 융성기를 주재했던 다섯 황제.
네르바(96~98 재위), 트라야누스(98~117 재위), 하드리아누스(117~138 재위),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가 그들이다. 이들의 재위 계승은 혈통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네르바는 도미티아누스의 암살자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입양된 후계자들인데 선임자들과 아무 관계가 없거나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먼 친척관계 정도에 불과했다. 마지막의 두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흔히 안토니누스 일가라고 부르며 이 호칭은 때로 두 사람뿐만 아니라 공동 황제 루키우스 베루스(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입양된 후계자)와 콤모두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까지 포함하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오현제 시대의 로마 제국은 북부 브리타니아에서 다키아까지, 아라비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영토 확장을 이룩했다. 제국은 굳건해졌고 방어태세가 완벽했으며 상당한 통일성을 지닌 속주 행정제도가 제국 전역을 포괄했다. 속국들이 하나하나 속주로 재편되었고 이탈리아의 행정제도도 많은 면에서 속주와 동일하게 편성되어갔다. 이 모든 과정과 더불어 제국의 백성들도 언어와 문화면에서 로마화했다. 오현제 시대는 내정이 안정되고 선정이 베풀어진 것으로 유명하지만 취약점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 권력이 완전하게 황제의 수중에 집중되었다. 아우구스투스가 확립해 놓은 '이원집정제'는 1세기에 이미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그 당시 형식은 남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고의적으로 무시되었다. 그리하여 원로원은 더 이상 통치도구가 아니라 황제 휘하의 귀족집단으로 전락했고 주로 선거에 의해 콰이스토르(재무관) 자격을 얻은 사람들이 아니라 황제에 의해 곧바로 귀족지위를 얻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아우구스투스가 행정관들의 몫으로 남겨둔 제한된 행정 분야는 더욱 협소해졌고 그들의 관할권은 점차 황제가 임명한 그리스 관리들의 수중에 넘어가는 추세를 보였다. 황제 휘하에 행정부서가 완전하게 조직되어 국가관료기구로 인정받게 된 것은 주로 하드리아누스의 작품이었다. 그는 장관직책을 자유민들 수중에서 빼앗아 에퀴테스(기사계급) 출신의 행정관들에게 맡겼다.
이 모든 변화는 불가피할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이로운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친 권력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가져왔다. 이같은 폐해는 강력한 군주들이 중앙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잘 드러나지 않기는 했지만 심지어는 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치세 때에도 제국 전체의 힘이 약해졌고 그에 상응해 제국정부 자체에 대한 압력이 갈수록 가중되는 조짐이 나타났다. 초기적인 몰락의 징후를 보인 현상들로는 특히 제국 중심지구의 갈수록 심해지는 인구감소, 끊임없는 재정난, 속주 지방행정의 부패성, 모든 계층이 이제는 갈수록 짐만 되어 가고 있는 지방행정관직을 맡기 꺼리는 것 등이 있었다. 180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고 난 이후 로마 제국은 급속하게 내전의 혼란에 빠져 들어갔으며 193년 콤모두스가 암살되고 결국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승리를 거둘 때까지 내전이 계속되었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Marcus Cocceius Nerva)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Marcus Ulpius Traianus)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Publius Aelius Trajanus Hadrianus)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
한국브리태니커,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