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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얼굴 – 나다니엘 호손
1. 어린 소년과 큰 바위 얼굴
어느 날 오후 해질 무렵,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자기네 오두막집 문 앞에 앉아 큰
바위 얼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큰 바위 얼굴은 거기서 몇 마일이나 멀리 떨어 져 있었다. 하지만 햇빛에 비쳐서 그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런데 그 큰 바위 얼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가 있다. 그곳은 넓은 골짜기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가파른 산허리의 빽빽한 수풀에 둘러싸인 장소에 통나무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골짜기로 내려가는 비탈이나 평지의 기름진 땅 에 농사를 지으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또 다른 곳에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다. 그곳에는 높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급류를 이용해 방직 공장의 기계를 돌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 골 짜기에는 주민들도 많고, 사는 모양새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 모두 큰 바위 얼굴에 대해 어떤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 그 위대한 자연 현상에 대해 유난히 감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그 큰 바위 얼굴은 자연의 장엄한 장난으로 인해 빚어진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언덕 위에 얹어진 몇 개의 바위덩이었 다. 그 바위들이 잘 어울려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얼굴처 럼 보였던 것이다. 타이탄 같은 엄청난 거인이 절벽에 자신의 얼굴을 조각해놓은 것 처럼 보이는 것이다.
넓직한 아치 형 머리는 높이가 30미터나 되고, 갸름한 콧날에 넓은 입술... 만약 그 우람한 입술이 열려 말을 한다면 골짜기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마치 천둥소리처럼 울 릴 것 같았다. 아주 가까이 가보면, 그 거대한 얼굴의 형체는 사라지고 커다란 바위 들이 질서 없이 여기 저기 폐허처럼 포개져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점점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게 되면 그 신기한 형상이 점점 눈에 뚜렷하게 드러나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점 더 사람의 얼굴과 비슷해진다. 그리고 그 거룩한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희미해질 만큼 멀어지면 큰 바위 얼굴은 마치 안개와 구름에 싸여 정말 살아있는 얼굴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곳 아이들이 그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자라나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 얼굴 은 생긴 모습이 숭고하고 웅장한데다 표정이 다정했고, 마치 그 사랑 가운데서 온 인
류를 포옹하고도 남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그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교육이 되는 셈이었다. 이 골짜기의 토지가
기름진 것도 언제나 이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온화한 표정의 얼굴 덕분이라 고 믿는 사람들도 많았다. 구름을 찬란하게 꾸미고, 정다운 모습을 햇빛 가운데서 펼 치고 있는 그 큰 바위 얼굴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까 이야기를 시작한 부분으로 돌아가 보자. 어머니와 어린 소년은 오두막 집 문 앞에 앉아서 지금 쳐다보고 있는 큰 바위 얼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어니스트(진실한 사람)였다.
"엄마!"
아이는 말했다. 그 때, 그 타이탄 같은 얼굴은 그에게 다정한 미소를 보내주는 것만 같았다.
"저 큰 바위 얼굴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저렇게 친절한 얼굴을 보면 목 소리도 참 듣기 좋을 것 같아요. 만약 저런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난 그 사람 을 정말 너무너무 좋아할 거에요."
"옛날 사람들이 예언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언제고 저것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어떤 예언 말이에요? 엄마, 어서 그 이야기 좀 해 줘요."
어니스트는 열심히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자기 역시 어니스트보다 더 어렸을 때 자기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어니스트에게 들려주었다.
그것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이 야기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옛날에 이 골짜기에 살고 있던 아메리칸 인디언들 역시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조상들은 그 이야기를 맨 처음 들려준 것은 산골짜기를 흐르는 시냇물, 나무 끝을 스치는 바람의 속삭임이었다는 것이다. 인디언의 조상들은 이 이야기가 확 실하다고 단언했다. 그 이야기의 골자는 어느 땐가 장차 이 골짜기 근처에 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는 고상한 인물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른이 되면서 점차 얼굴이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간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옛날 식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아주 열렬한 희망 과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이 오래 된 예언을 믿고 있다. 그런, 그 동안 많은 사람들 이 이 예언을 믿고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기다려왔지만 그 소원은 아직 이루
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옛날 이야기를 그저 허황한 이야기라고 단 정하기도 했다. 아무튼, 예언이 말하는 그 위대한 인물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 엄마!"
어니스트는 손뼉을 치며 외쳤다.
"내가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면 얼마나 좋을까?"
어니스트의 어머니는 애정이 풍부하고 생각이 깊은 여인이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의
커다란 소망을 깨뜨리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아마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2. 황금을 긁어모은 손
그 뒤로 어니스트는 엄마가 자기에게 들려준 그 이야기를 언제나 잊지 않고 있었다.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에게서 들은 그 이야기가 떠 올랐다. 그는 자기가 태어난 그 오두막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엄마 이야기 를 잘 듣는 아이였다. 엄마가 하는 일을 자기의 조그마한 손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도와드리는 그런 아이였다.
이렇게 행복한, 그러나 가끔 생각에 잠기곤 하는 이 어린이는 점점 온순하고 겸손한 소년이 되어 갔다. 밭에서 일을 하느라 얼굴은 햇볕에 검게 그을었지만, 그의 얼굴에 는 유명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소년들보다 더 총명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어니스 트에게는 선생님이 없었다. 선생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 큰 바위 얼굴이 있을 뿐이었다.
어니스트는 하루의 일을 끝내고 나면, 몇 시간이고 그 바위를 쳐다보곤 했다. 그러 면그큰바위얼굴이자기를알아보고,따뜻한미소를띠며자기를격려하는것같 다는생각을했다.물론,그큰바위얼굴이어니스트에게만더친절하게비칠리는 없다. 하지만 어린 어니스트의 생각이 무조건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믿음이깊고순진한그의마음은그맑은심성때문에많은사람들이보지못 하는것을볼수있었다.모든사람이다누릴수있는사랑이라할지라도,그는자 기만이 유독 두터운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바로이무렵,이분지일대에어떤소문이돌기시작했다.옛날부터전해오던그 이야기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큰 바위 얼굴처럼 생긴 인물이 마침내 나타났다는 것 이었다.여러해전에이골짜기를떠난어떤젊은이가있었다.그는멀리떨어진어
떤항구로가서돈을좀벌어가게를내었다.
그의 이름은 개더골드(금화 모으기)라고 했다. 이 이름이 그의 본명인지, 아니면 그
의 능숙한 처세술과 성공에서 기인한 데서 생겨난 별명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이젊은이는빈틈없고재빠른데다,하늘이주신비상한재능-세상사람들이흔히' 재수'라고 부르는 행운 덕분에 그는 엄청나게 돈이 많은 상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의 재산은 이제 모두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는 데만도 오랜 시일이 걸릴 정도라고 했다. 이렇게 큰 부자가 되자, 그는 자기가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태어난 그 고향에 돌아가 나머지 삶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는 자기 고향으로 능숙한 목수를 보냈다. 자기 같은 백만장자가 살기에 적합 한 궁궐 같은 집을 짓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이 골짜기 일대에는 개더골드야말로 지금까지 오래 기다려왔던 예언속의인물이라는소문이돌았다.그의얼굴생김이큰바위얼굴그대로라는소 문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의 아버지가 살던 초라한 농가 터에 엄청난 건물, 마치 요술로만들어진것처럼엄청난건물이세워진것을보고사람들은그소문이거짓 없는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어니스트 역시 예언이 말하는 그 인물이 드디어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 나타났다는 생각 때문에 몹시 마음이 설레었다. 어린 마음에, 어니스트는 막대한 재산을 가진 개 더골드가곧자선의천사가되어,큰바위얼굴의미소와같이너그럽고자비롭게모 든 사람들의 생활을 돌보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늘 하듯이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얼굴이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답해주 고,따뜻하게자기를바라보아줄것이라고상상했다.그때마차바퀴구르는소리 가 들려왔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서 마차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야! 드디어 온다!"
개더골드가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외쳤다.
"위대한 개더골드 씨가 오셨다!"
길모퉁이를 돌아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속도를 내어 달려왔다. 그리고 마차
창 밖으로 조그마한 늙은이가 얼굴을 조금 내밀었다. 그의 얼굴 피부는 누른빛이었 다. 마치 자기의 손, 그 마이더스(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손으로 만지기만 하면 모 든것을황금으로만들었다는임금)의손으로빚어만든것같은색깔이었다.이마 는 좁고, 눈은 작고 매서웠다. 그 눈가에는 잔주름이 쭈글쭈글했다. 그렇잖아도 얇은 입술을꼭다물고있어서더욱얇아보였다.
"큰 바위 얼굴과 똑같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옛날 예언은 사실이었다. 마침내 우리에게 위대한 인물이 오셨다!"
어니스트는 어리둥절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옛날 사람이 예언한 그 얼굴과 똑같
다고믿는것을도무지이해할수없었던것이다.길가에는마침떠돌이생활을하며 멀리서부터 흘러들어온 늙은 거지 한 사람과 어린 거지들이 있었다. 이 불쌍한 거지 는 마차가 지나갈 때 손을 내밀어 슬픈 목소리로 구걸을 했다.
누런손이-이것이야말로엄청난재물을긁어모은바로그손이었다-마차창문 밖으로 쑥 나오더니 동전 몇 닢을 땅에 떨어뜨렸다. 이 인물을 개더골드라고 부르는 것도 그럴싸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자면 스캐터코퍼(동전을 뿌리는 사람)라고 불러도 좋을것같았다.하지만사람들은여전히굳은믿음으로,이사람이큰바위얼굴과 똑 같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낙심해서 고개를 돌렸다. 주름살이 쭈글쭈글하고, 영악하고 탐욕 만이가득찬그얼굴을보고싶지않았던것이다.그리고그는산허리를바라보았 다.거기에는밝고빛나는그얼굴이,주위의안개에가려져막지려는햇빛을받고 있었다. 그 얼굴 모습은 어니스트의 마음을 한없이 즐겁게 했다. 그 온후한 입술은 뭔가 그에게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반드시 온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 사람은 꼭 오고야 만다!"
다시 세월이 흘러갔다. 어니스트도 이제 소년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젊은이가 되었 다.그가그골짜기근처사람들의주의를끄는일은거의없었다.어니스트의일상 생활에는 그 골짜기 일대에 사는 다른 사람들과 유달리 다른 점이 없었던 것이다.
3. 피와 천둥의 군인 그가남과다른점이하나있기는했다.아직도하루일을마치고혼자떨어져그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명상에 잠기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부지런하고 친절했다. 또 사람이 좋은 데다 자기 일을 게을리하는 일이 없어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그큰바위얼굴이그의선생님이나마찬가지라는사실을알수없었다. 큰바위얼굴에드러나는고상한감정이이젊은이의가슴에풍성한애정을심어준 다는사실을몰랐던것이다.어니스트는다른사람보다더넓고깊은인정을갖고있 었다.그큰바위얼굴은어니스트에게책에서배우는것보다더많은지혜를주었
다.
또한 어니스트는 그 얼굴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의 부끄러운 모습을 경계할 수 있
었다.그리하여그는현재의자신의상태보다더나은상태로발전할수있었던것이 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어니스트 자신도 들판에서, 또는 모닥불 가에서, 그리고 그가 혼자서 깊이 생각에 잠기는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 는생각과감정이사람들과의만남에서생겨나는것보다더품격이높다는것을알 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가 처음으로 오래 된 예언을 말해주던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순박했다. 그는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바위 얼굴을 바라보면서 왜 그것과 똑같이 생긴, 살아있는 어느 인간의 얼굴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지 아직도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 다.
이러는 동안 개더골드는 죽어 땅에 묻혔다. 이상한 것은, 그의 육체, 그의 영혼이나 마찬가지였던 그 많던 재산이 그의 생전에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죽을 때 쯤 그에게는 쭈글쭈글하고 누런 살갗으로 덮인, 해골이나 마찬가지인 육체만이 남았 던 것이다.
그의 황금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 거덜난 상인의 천한 얼굴과 산 위에 있는 장엄한 얼굴은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개더골드가 살아있 을 때에도 사람들은 이미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거의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는 그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골짜기에서 태어난 인물로 유명한 장군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래 전에 군대에들어가수많은전쟁터를거친끝에이제이름이잘알려진장군이된것이다. 그의 본명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다만 군대나 전쟁터에서는 그를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Old Blood And Thunder : 피와 천둥의 노인이라는 정도의 뜻)'라는 별명 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 역전의 용사도 이제 온갖 고생과 상처 때문에 몸이 허약해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들어왔던북소리나나팔소리등으로요란한군대생활에그만싫증이난것이다. 그래서그역시이제그만고향에돌아가편히쉬고싶다고발표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골짜기 사람들의 흥분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많은 사 람들이지난몇년동안한번도거들떠보지않던큰바위얼굴을다시한번오래 오래 바라보았다. 이 얼굴과 똑같이 생겼다는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장군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드디어 큰 잔치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 날도 어니스트는 골짜기 사람들과 함께 일자 리를 떠나 숲 가운데 파티가 열리고 있는 장소로 걸어갔다.
어니스트는 멀리서라도 이 유명한 손님을 보고 싶어서 발꿈치를 치켜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 큰 손님 주위는 온통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축사와 연설, 장군의 입에서 흘러나올 인사말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들으려는 듯 사람들은 식탁 주위에 몰려들고, 호위병으로 따라온 병사들은 임무를 다하느라고 총검으로 사 람들을 무지하게 밀어댔다.
원래성품이부드러운어니스트는이바람에뒤로밀려,그의얼굴을볼수없었다. 그는큰바위얼굴쪽을다시바라보았다.스스로를위로하고싶었던것이다.그바 위 얼굴은 전과 마찬가지로 성실한 표정으로, 오래 마음속에 그리워하던 그런 친구를 대하듯 다정히 그를 마주 보며 미소를 띠는 것 같았다. 이 때 그 전쟁 영웅의 얼굴과 멀리 산허리의 얼굴을 비교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완전히 도장을 찍어놓은 것 같지 않나? 똑같은 얼굴이야!"
한 사람이 기쁨에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맞아, 영락없구나! 바로 그 얼굴이야!"
다른 사람도 옆에서 맞장구쳤다. "똑같고말고!마치올드블러드앤드선더가커다란거울에자기모습을비치고있
는 것 같지 않은가!"
세 번째 사람도 이렇게 외쳤다.
"아무렴, 당연하지! 장군이야말로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인물이란 말일세." 이세사람은함께큰소리로외쳤다.그소리는마치전파처럼거기모인군중사
이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수천 명이 커다랗게 고함을 치고, 그 고함 소리는 산들을 지나수마일이나울려퍼졌다.마치큰바위얼굴이천둥같은호흡으로소리를지 른 것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장군이다! 장군이 나오셨다!"
마침내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쉿, 조용히 하라구! 이제 장군이 연설을 하신단 말이야!" 과연식사가끝나고,박수갈채속에장군의건강을기원하는축배에이어장군은
감사의 뜻을 나타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니스트는 그를 보았다. 그의 머리 위 에는 푸른 월계수 나뭇가지가 얽혀 아치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깃발 이그늘을만들며드리워져있었다.그리고숲이트인곳으로멀리큰바위얼굴도
볼수있었다.
그러면 이들, 장군과 큰 바위 얼굴 사이에는 사람들의 증언처럼 정말 닮은 구석이
있었을까? 어니스트는 그런 것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수많은 전투와 갖은 풍상에 찌든 그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정력이 넘쳐흐르고, 강철같은 의지 가드러나있었다.그러나선량한지혜와깊고도넓고,따뜻한자애심은찾을수없 었다.큰바위얼굴은준엄한표정이었지만그바탕에분명히더온화한빛이있어서 그 표정을 녹여내고 있었다.
"예언이 말하는 그 인물이 아니다."
어니스트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며 혼자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4.돈과칼보다강한혀
다시 평온한 세월이 계속 흘러갔다. 어니스트는 아직도 자기가 태어난 그 골짜기에
살고 있었다. 그도 이제는 중년의 나이였다. 그리고 별로 대단치는 않지만 그의 존재 는차츰사람들사이에알려지게되었다.물론그는지금도생계를위해일을하는, 과거 그대로 순박한 마음을 지닌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동안 많은 것을 생각하고 또 느껴왔다. 생애의 가장 좋은 시절 대부 분을,인류를위해뭔가훌륭한일을해보겠다는거룩한희망으로지닌채살아왔던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일종의 전도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의 맑고 높은 순 박한사상은,소리없이그의덕행으로나타나곤했다.하지만그것은또그의설교 를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그가 토해내는 진리는 듣는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었다.그리고그설교를통해새로운생활을해나갈수있는계기를만들곤 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바로 자기 이웃 사람이요 가까운 친구인 어니스트가 뭔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어니스트 자신은 꿈 에도그런생각을해본적이없었다.그러나그의입에서는아직까지그어느누구 도말해보지못한깊은사상이마치속삭이는시냇물처럼한결같은힘으로,술술흘 러나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냉정을 되찾고 나자 사람들은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장군의 험상궂은 인상과 산 위에 있는 자비로운 얼굴과는 비슷한 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번에는또다시어떤저명한정치가의넓은어깨위에큰바위얼굴과똑같은얼굴 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심지어 신문에까지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는 기사들 이 실렸다.
이정치가는개더골드씨나올드블러드앤드선더씨와마찬가지로이골짜기에서 태어났다.그러나그역시일찍이이고장을떠나법률과정치업무를해왔다.부자 의재산과군인의칼대신그는오직한개의혀를가졌을뿐이었다.그러나이혀는 앞의 두 가지를 합친 것보다 더 강력했다.
그는 웅변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무엇을 말하든 간에 청중들은 그의 말을 믿지않을수없었다.그의말을들으면틀린것도옳다고여기고,정당한것도잘못 되었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맘을 먹기만 하면,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 도 자욱한 안개를 일으켜, 대자연의 햇빛을 무색하게 할 수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의 웅변은 때로는 천둥과도 같이 으르렁대며, 때로는 한없이 달콤한 음악처럼 사 람의 귀에 속삭였다. 그것은 사나운 질풍처럼 휘몰아치는가 하면, 평화로운 노래이기 도했다.물론이건사실이아니지만,그의심장은그의혀에들어있는것처럼느껴 질 정도였다. 그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자신의말재주를이용해상상할수있는모든성공을거두었다.그의혀가말 하는 소리는 각 나라의 정부와 여러 왕들의 조정에까지 울려퍼지게 되었다. 그이 목 소리가 방방곡곡에 울려퍼지고, 온 세계에 그의 명성이 떨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내 그의 웅변은 국민들로 하여금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도록 설복시키는 데까지 이 르렀다.
이보다앞서그의이름이세상에알려지기시작했을때,그의추종자들은그와큰 바위 얼굴이 비슷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신사는 올드 스토니 피즈(Old Stony Phiz : 늙은 바위 얼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동료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 려고온갖노력을다하고있을때,그는자기고향인이골짜기를방문하려고나섰 다.
주 경계선에서부터 기마 행렬이 그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빠짐없이 일을 쉬고 길가 에 모여,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하였다. 어니스트도 그 사람들 가운데 있었다.
말굽 소리도 요란하게 기마 행렬이 달려왔다. 먼지가 어찌나 요란하게 일어나는지, 어니스트는그올드스토니피즈의얼굴을볼수없었다.악대가감격적인음악을연 주하는 소리가 커다랗게 메아리쳐 골짜기 구석마다, 이 유명한 손님을 환영하는 소리
로가득찼다.그러나역시가장멋있는모습은멀리솟은절벽이그음악을메아리 로 울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자를 벗어 위로 던지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뜨거운 열기가 사람들의 마 음에서 마음으로 통하였다. 어니스트도 가슴에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그도 모자를 위로 던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영웅 만세! 올드 스토니 피즈 만세!"
그러나 어니스트는 아직 그 사람을 보지는 못하였다.
"왔다!"
어니스트 가까이 서 있던 사람들이 외쳤다. "저기저기좀보라구,올드스토니피즈말이야.저산위의노인과비교해봐.마
치 쌍둥이 같지 않아?"
화려한 행렬 한가운데로 네 마리 흰 말이 끄는 뚜껑 없는 사륜 마차가 달려왔다. 그
마차에는 유명한 정치가 올드 스토니 피즈가 모자를 벗어 들고 앉아 있었다.
"어때? 정말 대단하지!"
어니스트의 옆에 서 있던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큰 바위 얼굴이 이제야 비로소 자기 짝을 만났다. 솔직히 말하여, 마차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며미소를띠고있는그얼굴의모습을처음보았을때,어니스트도산위에 있는 얼굴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훤하게 벗어진 이마나 그밖에 얼굴 생김생김 이 참으로 당당하고 힘차게 보였다. 마치 타이탄과 경쟁하려고 만들어진 전형적인 모 습 같았다.
그러나 정치가의 얼굴에는 장엄함이나 위풍, 신과 같은 위대한 사랑의 표정이 나타 나있지않았다.산중턱의그얼굴은그러한위대한표정으로빛나게있으며그것이 그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물질에 정신적인, 영적인 표정을 부어주고 있었다. 이 정치가에는 그것이 원래부터 없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원래 있다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놀랄만한 품성을 타고난 이 정치가의 눈자위에는 지치고도 우울한 빛이 서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니스트의 옆 사람은 팔꿈치로 그를 쿡쿡 찌르며 대답을 재촉했다.
"어때? 어떤 것 같아? 이 사람이야말로 저 산 중턱의 노인과 똑같지 않냐구?" "아니야!"
어니스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전혀, 조금도 닮지 않았어."
"그래? 그렇다면, 저 큰 바위 얼굴이 좀 안됐구먼."
옆 사람은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올드 스토니 피즈를 위하여 환호성을 올렸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아주 낙심해서 우울하게 그 곳을 떠났다. 예언을 실현시킬 수 있
었던 사람이 그렇게 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보여서 그는 그게 슬펐다.
5. 노인이 된 어니스트
세월은 덧없이 계속 흘러갔다. 이제 어니스트의 머리에도 하얀 서리가 내렸다. 이마
에는 점잖게 주름살이 생기고, 두 뺨에도 고랑이 파였다. 그는 정말 늙은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냥 나이만 먹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무성한 백발보다 풍부하게 지혜로운 생각이 들어 있었다. 이마와 뺨의주름살역시그동안인생의항로를여행하며겪은시련을통해얻은지혜가깃 들여 있는 것이다. 어니스트는 이제 이름 없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는 명예를 찾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쫓아다니는 그 명예는 그를 찾아왔다. 그가 살고 있는 그 산골짜기를 넘어 그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어니스트가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을 그 무렵,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섭리로 새 로운시인이한사람이세상에나타났다.그역시이골짜기에서태어난사람이었 다.그러나그고장을멀리떠나,일생의태반을시끄러운도시속에서살면서도거 기서 꿈같이 아름다운 음률을 쏟아 놓고 있었다.
그는또장엄한송가(頌歌)로그큰바위얼굴을찬미한일도있었다.마치그큰 바위얼굴의웅대한입으로직접읊조려도부끄럽지않을만큼장엄한시였다.이천 재의 재능은 이를테면 하늘로부터 받아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산을읊으면,모든사람들은그산허리에한층더장엄함이깃들고,그산꼭대 기에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아름다운 호수를 노래하면, 하늘이 그호수에미소를던져영원한빛을호수위에던지는것같았다.망망대해를노래하 면바다의그깊고넓은,무시무시한마음조차그의노래에감동해뛰노는것같았 다.
이시인이그행복한눈으로이세상을축복하면서이세상은과거와다른,더훌륭 한모습을가지게되었다.조물주는자신이직접창조한이세계의마지막완성을위 해가장최고의솜씨를발휘해그를이세상에내려보냈던것이었다.그시인이와서 해석을 하고 조물주의 창조를 완성시키기 전까지는 천지는 아직 완전하게 창조된 것
이 아니었으리라.
마침내 어니스트도 이 시인의 시를 손에 구해서 읽게 되었다. 그는 늘 하루의 노동
이끝난뒤,자기집문앞에놓인긴의자에앉아서,그시들을읽었다.그자리는 오랫동안 그가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왔던 바로 그곳이었다. 지금 자 기의 영혼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는 그 시들을 읽으면서, 그는 눈을 들어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큰 바위 얼굴 역시 인자하게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 장엄한 벗이여!"
그는 큰 바위 얼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 시인이야말로 당신을 닮을 자격이 있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 얼굴은 뭔가 미소를 짓는 것 같았으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한편,이시인역시무척멀리떨어져있었지만,어니스트의소문을듣고있었다.뿐
만 아니라, 그의 인격을 흠모하여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지혜와 스스로의 고상한 생 활의 순수함이 일치하는 이 사람을 몹시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여름 아침 그는 기차를 탔다. 그리고 며칠 후 어니스트의 집에서 과히 멀지 않은 역에서 내렸다. 전에 개더골드의 저택이었던 호텔이 가까이 있었지만, 그 는가방을든채어니스트의집을찾아가서,거기서하룻밤묵게해달라고청할생각 이었다.
문 앞에 가까이 가자 점잖은 노인이 책을 한 손에 들고 읽고 있었다. 노인은 책갈피 에손가락을끼운채큰바위얼굴을쳐다보고또책을들여다보고하는것이었다. 시인은 그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죄송하지만 댁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겠습 니까?"
"네, 그렇게 하시지요."
노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바위 얼굴이 저렇게 다정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아직 본 일이 없
그 노인, 즉 어니스트 옆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시인은 그 전에도 가
있고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어니스 트처럼 자유 자재로 사상과 감정이 우러나오고, 소박한 말솜씨로 위대한 진리를 쉽게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저 큰 습니다." 시인은 장재치
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어니스트는, 그 큰 바위 얼굴도 함께 몸을 앞으로
내밀고그이야기에귀를기울이는것같았다.그는진지하게시인의빛나는눈을바 라보았다.
"손님은 비범한 재주를 가지셨군요.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말씀해주십시오." 어니스트는 물었다. 시인은 어니스트가 읽고 있던 책을 가리켰다. "이책을읽으셨지요?그러면저를아실것입니다.제가바로이책을쓴사람입니
다."
6.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는다시한번전보다더진지하게시인의모습을살폈다.그리고나서큰
바위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손님을 바라보았 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빛이 떠올랐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 었다.
"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
시인은 물어 보았다.
"저는 평생 동안, 예언이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읽으면
서 이 시를 쓴 분이야말로 그 예언을 실현하는 분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니스트는 대답하였다. 시인은 얼굴에 약간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주인께서는 제가 저 큰 바위 얼굴과 닮았기를 기대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보
니 개더골드나,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나, 올드 스토니 피즈와 마찬가지로, 저에게도 역시실망하신것이지요?맞습니다.저는그정도밖에안됩니다.저역시저보다먼 저 나타난 세 사람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실망을 안겨드렸을 뿐입니다. 정말 부끄럽고 슬픈 이야기지만, 저는 저기 저 인자하고 장엄한 얼굴에 비교할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 담긴 생각이 신성하지 않단 말씀입니까?"
어니스트는 시집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시인은 다시 말했다.
"그 시에는 신의 뜻을 전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울리는 노래가 희미하
게 메아리치는 정도는 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친애하는 어니스트 씨! 그러나 나의 생활은 나의 사상과 일치하지 못합니다. 나 역시 큰 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꿈이었을 뿐입니다. 나는 보잘것없고 천박한 현실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실 제로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좀더솔직하게말씀드리면나의작품들이말하는것,자연속에나혹은인생속에
그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장엄함이나 아름다움, 지고지선한 가치에 대해 나 스스 로 확신하지 못하는 일조차 있습니다. 그러니 순수한 선(善)과 진(眞)을 찾는 당신이 어찌나에게서저큰바위얼굴을찾을수있겠습니까?"
시인의 대답은 서글펐다.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어니스트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오래 전부터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어니스트는 밖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시인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팔장을끼고그곳으로걸어갔다.그곳은나지막한산에둘러싸인작은공터였 다. 뒤에는 잿빛 절벽이 솟아 있고, 그 앞으로 무성한 담쟁이덩굴이 울퉁불퉁한 벼랑 으로부터 줄기줄기 뻗어내려와 울퉁불퉁한 바위를 비단 휘장처럼 뒤덮고 있었다.
그 공토의 약간 높은 곳에 푸른 나뭇잎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가 있었다. 한 사 람이 들어가 자기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몸짓으로 이야기할만한 정도의 공간이었다. 어니스트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이 연단에 올라가 따뜻하고 다정한 웃음을 띠며 사 람들을 둘러보았다.
설 사람은 서고, 앉을 사람은 앉고, 기댈 사람은 기대고 서서 저마다 편한 자세로 그렇게 모여 있었다. 서산에 기우는 해가 그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햇빛이 잘 통하지 않는, 고목이 울창한 어두운 숲에도 석양의 밝은 빛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또다른쪽에는그큰바위얼굴이언제나변함없는유쾌하고장엄하면서도인자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어니스트는 자기의 마음속 생각을 청중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은 자신 의 사상과 일치되어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은 자기의 일상 생활과 조화되어 있어 현실성과 깊이가 있었다. 이 설교자가 하는 말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생명의 부르짖음이었다. 그 속에 착한 행위와 신성한 사랑으로 된 그의 일생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아름답고 순결한 진주가 그의 소중한 생명수에 녹아 들어간 것 같았다.
시인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어니스트의 인간과 품격이 자기가 쓴 그 어 느 시보다 더 고상하고 우아하다고 느꼈다. 그는 눈물어린 눈으로 그 존엄한 사람을 우러러보았다. 온화하고 다정하고 생각이 깊은 얼굴에 백발이 흩어진 그 모습... 그것 이야말로 예언자와 성자다운 모습이라고 시인은 혼자 생각하였다.
저 멀리,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의 황금빛 속에 큰 바위 얼굴이 뚜렷하게 드러나 보 였다. 그 주위를 둘러싼 흰 구름은 어니스트의 이마를 덮고 있는 백발처럼 보였다. 그 광대하고 자비로운 모습은 온 세상을 감싸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어니스트의 얼굴은 그가 말하고자 했던 생각에 일치되어, 자비심이 섞인 장엄한 표정을 지었다. 시인은 참을 수 없는 충동으로 팔을 높이 쳐들고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야말로 저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니스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지혜로운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언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말을 다한 어니스트는 시인의 팔을 잡고 천 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직도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큰 바위 얼 굴 같은 용모를 가지고 빨리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는 것이었다.
첫댓글 앙니
ㅋㅋㅋ 이런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