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형이 칼날에 손을 다치니 퇴계 선생이 (형을) 안고 울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 형은 손을 다쳐도 울지 않는데 네가 왜 우느냐?”
대답하기를,
“형이 비록 울지 않지만, 피가 저와 같이 흐르는데 어떻게 손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퇴계 선생이 여덟 살 때의 일입니다. 둘째 형 해(瀣, 1496-1550)가 칼에 베어 손에서 피가 났습니다.
어린 퇴계 선생은 형 해의 손을 잡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어머니가 기이하게 여겨 물으셨습니다.
“손을 다친 형은 울지 않는데 네가 왜 우느냐?”
이에 퇴계 선생은 양 볼에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훔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형은 저보다 나이가 많아 울지는 않습니다만, 피가 이렇게 흐르는데 어떻게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형의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자신의 옷깃으로 감싸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형의 손가락에서 흐르던 피는 멈추었습니다.
퇴계 선생의 옷자락에는 형의 피가 묻어 얼룩이 져 있었습니다.
형은 어린 아우의 착한 마음에 감동을 받아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두 형제의 아름다운 행동을 지켜보던 어머니의 눈에도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머니는 두 아들을 가슴에 꼭 안아주었습니다.
문득 제 세상으로 떠난 남편이 그리워졌습니다.
“여보, 당신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기들이 이렇게 착하게 자라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곱고 바르게 자라도록 늘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세요.”
훗날, 위대한 인물로 성장한 퇴계는 어릴 때부터 이처럼 남의 아픔과 입장을 헤아려 살피는 착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인품과 훌륭한 학문은 후세 사람들에게 큰 감명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어려움을 살피는 착한 마음을 퇴계 선생은 어려서부터 지녔으며 이를 실천했던 것입니다.
仲兄, 刃傷手, 先生抱泣. 母夫人曰, 汝兄, 則傷手不泣, 汝何泣耶. 對曰, 兄雖不泣, 豈有血流如彼, 而手不痛乎.
출처 : ≪퇴계집(退溪集)≫(李滉, 1501-1570)
* ≪퇴계집(退溪集)≫ : 조선 전기의 대유(大儒) 퇴계 이황(李滉)의 문 집으로, 목판본이다. 원집(原集) 49권, 별집(別集) 1권, 외집(外集) 1권, 속집(續集) 8권, 연보(年譜) 3권, 언행록(言行錄) 6권. 1598년(선조 31) 간행했다. 내용은 시(詩)·교(敎)·소(疏)·차(箚) 및 제문(祭文)과 행장(行狀) 등의 27항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가운데 〈도산십이곡발(陶山十二曲跋)〉이라는 발문(跋文)이 있는데, 이는 자신이 《도산십이곡》을 짓게 된 연유와 조선의 가요를 평한 글로, 퇴계의 문학관(文學觀)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이황(1501-1570),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이다. 이름은 황(滉)이며 자는 경호(景浩)이고 호는 도옹(陶翁), 퇴계(退溪)이다.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등 주리론적 사상을 형성하여 주자 성리학을 심화․발전시켰으며 이는 영남학파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도산 서원을 설립,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힘썼다. 작품에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저서에 《퇴계전서(退溪全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