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원로 중에 100세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거나 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한 분은 ‘103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작년에 10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김병기 화백님이십니다.
김병기 화백님은 98세 때인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김병기: 감각의 분할>이라는 회고전을 열었습니다. 그때 여러 언론에 그분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그 내용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당시 98세의 김병기 화백님에게 82세인 제자 정상화 화백님이 스승을 찾아 뵙고 환담을 했습니다. 그때 김병기 화백님은 정 화백님에게 “자네는 참 좋은 나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병기 화백님은 “나는 첫 전시회를 70세에 열었고, 80세에 파리에 나가 있었으며, 80대에 중요한 일이 많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백수를 맞았을 때도 김병기 화백님은 개인전을 열었고 106세에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올해 103세이신 김형석 교수님이 7년 전 96세일 때, 한 방송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2년을 더 일하고, 98세 되는 해에 사랑하는 짝을 찾아보겠다.”라고. 농담처럼 들을 수 있으나 말씀하시는 김 교수님의 표정은 진지하셨습니다. 김 교수님은 오래전에 사별하시고 홀로 계셨는데 당시 말씀으로 “지금은 일 때문에 사랑을 못 하니까 일을 마친 뒤에 사랑을 하고 싶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활동을 하시기 때문에 98세부터 시작할 사랑을 미루신 것 같습니다. 지난 5월에도 경기대 수원 캠퍼스에서 ‘103년의 삶 무엇으로 살았는가’라는 제목으로 토크 콘서트를 여셨습니다. 평소에 김 교수님은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80세(75세라고도 말씀하심)로 잡으며 다시 인생을 출발해도 60세부터 하겠다고 하십니다. 60세 이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나 삶의 보람을 몰랐다는 것이지요.
두 분의 공통점은 ‘일’이었습니다. 김병기 화백님은 “나이, 나이 하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지금 일할 수 있다는 겁니다.”라고 하셨으며, 김형석 교수님도 “일을 사랑하는 것이 건강의 조건이며 오래 살고 싶지는 않으나 오래 일하고 싶다.”라고 하셨습니다. 두 분이 말씀하시는 일이란 단순히 생산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 것이고, 생계 수단으로써의 일도 아닐 것입니다. 일을 통해 자신의 존엄을 찾음과 동시에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를 중시하는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젊어야 ‘혁신’을 할 수 있다는 일반론을 뛰어넘어 고령자들이 품격 있고 의미 있는 문화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더 멋져질 수 있다.”는 미국 영화배우 슈워제네거의 말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