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지 답사와 인생
ㅡ 공주 지역 답사길에서
대구에서 멀리 충남 공주로 답사를 갔다. 답사지는 ① 마곡사 ② 공주박물관 ③ 송산리 고분군 ④ 공산성 등이다.
먼저 마곡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 후삼국 시대에는 폐사가 되어 도적의 소굴이 되었다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왕명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특히 이 사찰은 불화를 그리는 유명한 화승(畵僧)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방문하여 영산전이란 현판을 내린 적이 있고, 백범 김구 선생이 젊은 시절, 일본인 살해로 투옥되었다가 탈옥한 후, 이곳 마곡사에서 출가(법명 원종)하여 머문 적이 있으며,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두 번재는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이동하여, 이 지역의 역사를 스크린한 후, 세 번째 코스인 송산리 고분군으로 갔다. 이 고분군은 문화재청 고시(21.9.17)로 명칭이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개칭되어 있었다. 이곳은 사적 제13호로, 백제 웅진시기(475~538년)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이다. 무령왕릉은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삼국시대 고분 중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왕릉이며, 이곳에서 나온 유물은 총 4,600여점에 달하며, 국보로 지정된 건만 12건에 이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공산성으로 갔다. 공산성(사적 제 12호)은 흙으로 쌓은 포곡형(包谷形)산성으로,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으로서 웅진백제(475~538)를 지킨 왕성이었으며, 조선 선조·인조 때 지금과 같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다고 한다. 성곽길 체험과 더불어 공주 시가지 조망으로 공주 지역 답사 일정을 무사히 끝마쳤다.
오늘 답사길은 참으로 뜻깊었다. 유서 깊은 도량인 마곡사와 1,50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 넘은 백제시대의 유물과 유적을 목도하면서, 인간사의 삶의 흐름이 자연으로 회귀하는 여정임이 보이기도 했다. 마곡사 경내를 거닐 때는, 붓다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었는 데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출가한 이유를 자문자답하면서 고해를 살아기는 우리의 삶을 되짚어 보기도 했다.
우리는 오늘도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제도와 가치에 순종하는 인물이 되기 위해, 그리고 이 세상이 판단하는 기준에 맞는 성공을 얻기 위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코뚜레에 꿰인 소처럼 끌려가며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이 격류에 휩쓸려 살다가, 어느 듯 나이 자루가 가득해서야 삶의 허무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알던 한 지인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평소에 건강했던 그가 의사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함을 직감하고, 그때서야 인생의 실상을 모르고 살은 자신의 삶을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살아오면서 이룬 사회적 지위와 죽자사자 모은 그 많은 재산이 자신을 구할 수 없음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는 지도 모르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이 되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을, 붓다 이전의 왕자였던 싯다르타의 부귀영화를 롤 모델로 여길 정도로 끝없는 욕망과 욕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오늘 이 유적지의 현장에서 유추되는 백제 무령왕도 유골은 고사하고 한줌의 흙조차 보이지 않는 등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이었다고 볼 수 없고, 한때는 사회적 지위도 높았고, 수십억원의 재산도 가져던 지인도 삶의 데드라인에 서자 자책과 눈물로 보내는 것을 봤을 때, 부와 명예로만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 영원한 행복이란 가능한 것이기나 한 것인가. 오늘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 도량인 마곡사에서 생각해 보건 데, 싯다르타 왕자가 부귀영화를 버리고 야반도주하여 고행의 길로 간 것도 영원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해탈하고자 함에 있었고, 그로 인해 생긴 불교라는 종교 또한 괴로운 중생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데 본래의 뜻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차피 사는 인생,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현실은 부자는 부자대로, 빈자는 빈자대로 근심 걱정과 괴로움 없이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이 유한함을 알고, 흐르는 세월이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생명을 차감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자각하면서, 재물과 명예를 갖되, 무소유의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무소유(無所有)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는 의미로, 인연에 의해 소유하였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거나 소멸하듯이, 우리는 소유한 것들을 임시적이고도 한시적으로 보관하여 사용하는 것이지,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살아 있는 동안 필요에 의해 쓰다가 죽을 때는 모두 버리고 간다는, 집착 없는 마음가짐으로 산다면, 한층 더 행복의 문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한다.
인생은 한낱 바람이기에 모든 것은 왔다가 갈 뿐임으로, 행복하게 살다가 미련 없이 떠나야 하는 것이 참삶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근심 걱정과 괴로움은 마음이 만드는 환상임으로, 생각과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쉼없이 흔들리는 마음일지라도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삶은 편안하게 흘러갈 것이리라. 살다보니 즐거움이 행복인 줄 알았는데, 괴로움 없는 삶이 행복임을 오늘 답사길에서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인생은 방랑길이라 내일은 강원도 정선(가리왕산, 동강 할미꽃 축제, 정선 스카이워크)으로 트레킹을 갈 예정이라 일찍 잠자리에 든다.
※ 24.3.22 공주 답사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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