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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설 1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두가 부처님의 법신이요, 들리는 소리나 들리지 않는 소리나 모두가 부처님의 설법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젊은 시절에 왕궁을 버리고 출가(出家)하여 6년간 수많은 스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숱한 고행(苦行)을 하였습니다. 고행을 하시다가 마지막으로 부다가야 보리수나무 밑에 앉아서 7일간 바른 선정(禪定)에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정각을 이루시어 더디어 여래(如來) 응공(應供) 불(佛) 세존(世尊)이 되시어 그 자리에 앉으신 채로 21일간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80권이나 되는 방대한 내용으로 남김없이 설파(說破)하셨으니, 이것이 곧 화엄경(華嚴經)이며 불교의 첫 출발입니다. 그러므로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가운데 최초로 설해진 경전이며, 자신이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추호의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이신 가르침이며, 인류가 남긴 최고의 걸작(傑作)입니다. 다행히 이와 같은 위대한 가르침을 만나서 몸과 마음을 다해 공부할 수 있는 인연이 되었습니다. 이 소중한 화엄경 공부의 인연을 많은 법우(法友)님들과 함께하고자 하나하나 천착(穿鑿)하며 강설(講說)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화엄경 공부는 금세기 최고의 축제(祝祭)며, 누구에게나 인생 일세에 참으로 크나큰 행복이요, 더없는 영광입니다. 부디 이 아름답고 복된 인연에 동참하시어 인생으로 태어난 보람을 한껏 누리시기를 권선(勸善)하는 바입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2014년 1월 15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서 문 화엄경의 목차 * 화엄경의 제목 실차난타(實叉難陀) 一,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1 1, 시성정각(始成正覺) 2, 장엄 (1) 땅의 장엄 (2) 보리수의 장엄 (3) 궁전의 장엄 (4) 사자좌의 장엄 3, 세존의 불가사의한 덕(德) (1) 덕(德)의 근본 (2) 삼업(三業) 변만<1> 의업(意業) /<2> 신업(身業) /<3> 어업(語業) /<4> 비유(譬喩) (3) 위세(威勢) /( 4) 복덕(福德) / (5) 수생(受生) / (6) 상호원만(相好圓滿) (7)설법(說法) / (8) 중생교화(衆生敎化) / (9) 법신미륜(法身彌綸) / (10) 지혜(智慧) (11) 제불신변(諸佛神變) 4, 화엄회상의 대중 (1) 보살대중의 이름과 덕행 <1> 동명(同名)보살 <2> 이명(異名)보살 <3> 보살대중의 덕행 가, 자리행(自利行) /나, 이타행(利他行) /다, 지위(地位) /라, 승진과행(勝進果行) 마, 이행무애(二行無礙) (2) 잡류제신중의 이름과 덕행 <1> 집금강신 /<2> 신중신 /<3> 족행신 /<4> 도량신 /<5> 주성신 /<6> 주지신 /<7> 주산신 /<8> 주림신 /<9> 주약신 /<10> 주가신 /<11> 주하신 /<12> 주해신 /<13> 주수신 /<14> 주화신 /<15> 주풍신 /<16> 주공신 /<17> 주방신 /<18> 주야신 /<19> 주주신 (3) 팔부사왕중의 이름과 덕행 <1> 아수라왕 /<2> 가루라왕 /<3> 긴나라왕 /<4> 마후라가왕 /<5> 야차왕 /<6> 용왕 /<7> 구반다왕 /<8> 건달바왕 (4) 욕계천중의 이름과 덕행 <1> 월천자 /<2> 일천자 /<3> 삼십삼천왕 /<4> 수야마천왕 /<5> 도솔타천왕 /<6> 화락천왕 /<7> 타화자재천왕 (5) 색계천중의 이름과 덕행 <1> 대범천왕 /<2> 광음천왕 /<3> 변정천왕 /<4> 광과천왕 /<5> 대자재천왕 (제 1권 목차 끝) * 화엄경의 제목 화엄경(華嚴經)의 온전한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인도의 말로는 <마하 바이프라 붓다 간다 뷰하 수트라 (Maha大 Vaiplya方廣 Buddha佛 Ganda華 Vyuha嚴 sutra經, 摩訶 毗佛略 勃陀 建拏 驃詞 修多羅 마하 바이프라 붓다 간다 뷰하 수트라 )>라고 한다. 화엄경은 워낙 큰 경전이다 보니 제목의 뜻도 깊고 높다. 경전의 이름은 그 경전의 내용을 어느 정도 담고 있어서 전통적인 화엄교가들의 해석은 매우 소상하고 장황하다. 가능하면 전통적인 해석을 소화하여 이 시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 뜻을 간단하나마 하나하나 나름대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대(大) 대방광불화엄경에서 대(大), 즉 “크다.”라고 한 것은 무엇이 크다는 것인가? 이 글을 쓰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크고 위대하다는 뜻이다. 아니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다 같이 너무나 크고 위대하다는 뜻이다. 사람사람이 그 인생을 어떻게 살든 사는 모습에는 아무런 관계없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 삶이라는 자체만으로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답고 신기하고 위대하다는 뜻으로 “크다[大].”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허(鏡虛,1849~1912) 선사는 오대산 월정사에서 대방광불화엄경을 설법하시면서 “대방광불화엄경만 대가 아니라 대들보도 대요, 댓돌도 대요, 대가사도 대요, 세수대도 대요, 담뱃대도 대니라.”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일체가 다 크고 위대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은 곧 대방광불화엄경이고, 대방광불화엄경은 곧 이 세상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크다는 것은 작지 않다는 뜻인데 사람들은 스스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자신을 왜소한 존재, 못난 사람, 부족한 인물, 장애를 가진 사람, 죄업 덩어리, 하나님의 종 등등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고 너무나 위대하고 훌륭하고 아름답고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을 위시하여 이 세상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다 그러하다는 뜻으로 “크다[大].”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육조혜능(六祖慧能,638~713)대사는 처음 자신과 모든 사람들의 실상을 알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내 자성이 본래 청정하다는 사실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이 본래부터 생멸이 없다는 사실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이 본래부터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이 본래 아무런 동요가 없다는 사실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이 능히 일체만법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는가.”라고 하였다 알고 보면 참으로 크고 또 위대한 것이 사람이다. 사람보다 크고 위대한 존재가 또 무엇이랴. 방(方)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방(方), 즉 “바르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저나 여러분이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든 그대로가 방정하며 아름다우며 여법하며 저절로 그러하여 아무런 잘잘못이 없다는 뜻으로 “바르다[方].”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명하시면서 “큰방도 방이요, 지대방도 방이요, 질방도 방이요, 동서남북사방도 방이니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대방광불화엄경의 안목에서는 임금이나 신하나, 부자나 가난한 이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착한이나 악한이나, 주는 이나 받는 이나, 때리는 이나 맞는 이나 모두가 그대로 아름답고 방정하고 옳고 여법하고 저절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동서남북 남녀노소 시비선악, 나아가서 천지만물이 모두가 그대로 진리라는 뜻이다. 광(廣)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광(廣), 즉 “넓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 사람과 생명 생명들이 다 같이 넓고 넓어 그 끝을 찾을 수 없는 존재라는 뜻에서 “넓다[廣].”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면서 “쌀광도 광이요, 찬광도 광이요, 연장광도 광이니라.”라고 하였다. 화엄경의 눈으로 보면 저 아득한 우주와 허공과 법계도 무한히 넓지만 겨자씨도 무한히 넓고 작은 먼지도 무한히 넓고 모래알도 무한히 넓고 세포도 무한히 넓고 사람도 무한히 넓고 사람의 마음도 무한히 넓다. 이와 같은 뜻을 화엄경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는 것이다. 불(佛)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불(佛), 즉 “부처”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부처라는 뜻이며, 이 세상 모든 생명이 다 부처라는 뜻이며, 이 세상 유정무정의 모든 존재가 다 부처라는 뜻이다. 흔히 알려져 있는 화엄경의 표현으로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고 같은 것이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면서 “등잔불도 불이요, 모닥불도 불이요, 촛불도 불이요, 화롯불도 불이요, 번갯불도 불이요, 이불도 불이요, 횃불도 불이니라.”라고 하였다. 화엄경의 안목으로 보면 착한 사람도 부처요, 악한 사람도 부처요, 주는 사람도 부처요, 받는 사람도 부처요, 동서남북 사유상하, 흑인 백인 황인,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모두가 본래로 부처라는 뜻이다. 삼라만상 산천초목 천지만물이 모두가 본래로 부처라는 뜻이다. 필자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사람이 모두 부처님이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주창하지만 실로 화엄경의 견해대로라면 만유개불(萬有皆佛)사상이라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화엄경의 가르침을 알고 모두가 부처님으로서 당당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곧 불교의 궁극적 목표며, 나아가서 모든 사람 모든 생명과 일체 만유를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서로 위하며 보호하고 아끼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다. 화(華)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화(華), 즉 “꽃”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라는 뜻이다. 뿌리도 꽃이요, 줄기도 꽃이요, 가지도 꽃이요, 잎도 꽃이요, 꽃도 꽃이요, 열매도 꽃이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존재들이 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면서 “매화도 화요, 국화도 화요, 탱화도 화요, 화병도 화요, 화살도 화요, 화엄경도 화이니라.”라고 하였다. 사람사람이 어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아니랴. 삼라만상 천지만물 모두가 어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아니랴. 엄(嚴)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엄(嚴), 즉 “장엄하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흔히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것을 “장엄”이라고 하지만 화엄경의 깨어있는 안목으로 보면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가 훌륭한 장엄이다. 팔등신의 아름다운 몸매나 천하절색의 미인이나, 곰보나 째보나 모두가 그대로 훌륭한 장엄이다. 소나무도 장엄이요, 감나무도 장엄이요, 뿌리도 장엄이요, 줄기도 장엄이요, 가지도 장엄이요, 잎도 꽃도 열매도 모두가 그대로 훌륭한 장엄이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면서 “엄마도 엄이요, 엄살도 엄이요, 엄명도 엄이요, 엄정함도 엄이요, 화엄도 엄이니라.”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할 것이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모두가 한결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다 같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굳이 방편을 빌어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장엄을 이야기 한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맑고 향기롭게 하여 진실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불심(佛心)이 가득한 보살행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經)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경(經), 즉 “진리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진리의 말씀이란 어디 종이에 써진 부처님이나 조사의 말씀만을 뜻하겠는가. 시냇물소리, 바람소리, 시장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는 소리, 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 이 모두가 진리의 말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면서 “면경도 경이요, 구경도 경이요, 풍경도 경이요, 인경도 경이요, 안경도 경이니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화엄경의 안목으로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진리의 말씀임을 들어야 할 것이다. 삼라만상과 천지만물이 모두가 그대로 진리의 가르침임을 듣고 깨달아야 하리라.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1036~1101) 거사는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지은 시에, “시냇물소리는 부처님의 광장설법이거늘산의 아름다운 모습인들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랴. 밤새 설한 팔만사천법문의 게송들을다음날 무슨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들어 보일 수 있을까?”라고 하였다. 그렇다.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만 종이가 뚫어져라쳐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과 산천초목들이모두가 설법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또 이런 선시도 있다. “나에게 한권의 경전이 있는데종이나 먹으로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펼쳐보아야 글자 하나 없다.그러나 항상 큰 광명을 놓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경전이란 바로 이러한 뜻을 지니고 있다. 경전은 종이나 먹으로 써 졌거나 인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리라. 하물며 화엄경이야 말 해 무엇 하겠는가.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漢譯) 불교의 모든 경전은 처음에 인도의 문자인 산스크리트어나 빨리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경전도 함께 들어와서 중국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공부하려는 80권 본 화엄경은 나라 때 실차난타(實叉難陀,652~710)라는 스님이 번역한 것이다. 실차난타 스님은 당시우전국(于闐國), 지금의 중국 서역 신강성의 호탄[和田]지방 출신이다. 스님은 서기695년에 화엄경의 산스크리트 본을 낙양으로 가져다가 남인도 출신인 보리유지(菩提流志,?~725스님과 인도를 구법(求法)여행하고 돌아온 의정(義淨,635~713) 스님 등과 함께 신역(新譯)화엄경 80권을 완역하였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一 제1회(會) 6품 설법 강설 : 화엄경은 일곱 곳이나 되는 장소를 옮겨가면서 아홉 번이나 법회가 열린 법문의 기록이다. 그것을 흔히 7처(處) 9회(會)의 법문이라고 한다. 제1회에는 보리도량에서 여섯 품이 설해졌다.그 법회의 회주는 보현보살이며, 내용은 여래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에 대한 법문이다. 의보란 여래가 의지할 국토와 환경과 의복 등 의지할 내용이다. 정보란 여래의 몸과 마음의 세계를 이른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설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을 설명하는 것이다. 제 1회 6품은 보현보살이 위주가 되어 설명하고 있다. 그 6품의 이름은 제1 세주묘엄품, 제2 여래현상품, 제3 보현삼매품, 제4 세계성취품, 제5 화장세계품, 제6 비로자나품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화엄경 약찬게(略纂偈)에서는 육육육사급여삼(六六六四及與三) 일십일일역부일(一十一一亦復一)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것이다. 제 1회에 보리도량에서 6품, 제 2회에 보광명전에서 6품, 제 3회에 도리천궁에서 6품, 제 4회에 야마천궁에서 4품, 제 5회에 도솔천궁에서 3품, 제 6회에 타화자재천궁에서 1품, 제 7회에 보광명전에서 11품, 제 8회에 보광명전에서 1품, 제 9회에 급고독원에서 1품이다. 一,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1 강설 : 세주묘엄품이란 이 세상의 주인들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품목이다. 그런데 세상은 무엇이고 세상의 주인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아름답게 장엄하였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선게(禪偈)에 구류동거일법계 자라장리살진주(九類同居一法界 紫羅帳裏撒珍珠)라는 말이 있다.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과 생명들과 온갖 천지만물과 삼라만상들이 모두가 같은 법계에 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들을 아름다운 비단위에 뿌려놓은 듯하다.”라고 하였다.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모두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존귀하고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무슨 분별이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은 지금 이대로 모두가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그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품에 등장하는 세상의 주인들은 우주만유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다 열거하여 세상의 주인이라고 표현하였다. 1, 시성정각(始成正覺) 如是我聞하니라 이와 같은 사실을 저가 들었습니다. 강설 : 불교의 모든 경전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결집된 경전이든 그것은 모두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설법한 것을 아난존자가 듣고 결집하고 편찬한 것으로 약속되어 있다. 화엄경도역시 아난존자가 들은 대로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저 아난이보고 들었습니다.”라고 서두를 써 나가고 있다. 스스로 설법한 것도 아니고 단지 부처님과보살들로부터 들은 그대로를 전해줄 뿐이라는 것을 말함으로 청중들과 독자들을 믿게 한 것이다.이것으로서 믿음이 성취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如是]”이란 앞으로 설해질 80권이나 되는 화엄경전의 전부를 뜻한다. 그 모든화엄경을 아난존자인 저는 불보살님들로부터 들었다는 것을 밝혔다. 설법의 내용은 아니지만경전이 설해지게 된 정황들을 앞뒤와 사이사이에 삽입하는 것은 경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경전을 편찬한 사람이 서술한 것인데 그를 ‘경가(經家)의 서술’이라고 한다. 一時에 佛이 在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하시니라 어느 날 부처님께서 마갈제국(摩竭提國) 아란야(阿蘭若) 법(法) 보리도량(菩提道場)에 계실 때였습니다. 강설 :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신간과 장소를 밝혔다. 이로서 하나의 경전이 성립되는데 반드시 필요한 주인공과 시간과 장소가 성취되었다. 제 1회 6품의 경전이 역시 이곳에서 설해졌다. 마갈제국이란 부처님이출가하여 6년간이나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많은 종교의 스승들을 참례하시다가 깨닫기 직전에 마지막으로머무신 나라다. ‘독해(毒害)가 없는 나라’, 또는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가득한 나라’라는 뜻이다. 아란야란 ‘고요한 곳, 시끄러움이 없는 곳’이란 뜻이다. 법(法)이란 부처님이 증득하신 진리를 뜻한다. 보리도량이란 깨달음의 장소다. 부처님이 이곳에서 깨달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모두가 깨달음에 맞춰서 지어진 이름들이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처처가 보리도량이지만 미혹한 사람에게는 그곳만 보리도량이고 나머지는 모두가 번뇌도량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순례자들은 그곳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다. 始成正覺하시니라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셨습니다. 강설 : 불교의 출발은 부처님이 정각을 이룸으로부터 시작된다. 2천 6백여 년 전 납월 8일 날 35세 된한 청년이 오래고도 모진 고행 끝에 비로소 정각을 이루었다. 깨달음에는 본각(本覺)이 있고 시각(始覺)이 있다. 부처님이 이제 비로소 정각을 이루었다[始覺]고는 하지만 그 진정한 깨달음은 그가 본래로 가지고 있었던것[本覺]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값이 수천억이나 나가는 보물을 본래로 지니고 있으면서 오랫동안 모르고있다가 어느 날 어떤 계기에 문득 알게 된 것과 같다. 부처님이 그렇듯이 사람사람 모두는 누구나 본래로지니고 있는 깨달음[本覺]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주창하는 것이다. 불교공부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러한깨달음에 대한 사실을 믿고 이해하고 실천해서 직접 체험하는 일이다. 불교에는 여러 가지의 기념일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납월 8일인 부처님 성도재일이다. 탄생일인4원 초파일보다 성도재일을 더욱 크게 기념하면서 정각의 의미를 활짝 드날릴 때 불교가 바로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二, 장엄(莊嚴) 1, 땅의장엄 其地가 堅固하야 金剛所成이니라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강설 : 역시 경전을 결집하고 편찬한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안 것을 서술한 것이다. 불교인들은 인도의 부다가야를 참배하기를 좋아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셨던 곳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그 땅이 온통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었다고 하였으나 순례자들은 한 사람도 다이아몬드를 발견하지 못한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척박한 모래와 자갈들뿐이다. 왜 그럴까. 부처님이 거짓말을 했을까. 아니다. 그것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진실임에는 틀림없다.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는 부다가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모두 모두 다이아몬드 이루어져있다. 아니다. 수억만 광년 저 멀리에 있는 이름 없는 그 어느 별들에도 모두가 다이아몬드로 이뤄져 있다. 이것이 깨달은 사람의 안목이다. 화엄경을 공부하려면 그동안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 그대로 자신이 깨달았다고가정하고 읽어야 한다. 이것이 화엄경 공부의 비결이며 힌트다. 上妙寶輪과 及衆寶華와 淸淨摩尼로 以爲嚴飾하고 諸色相海가 無邊顯現하니라 가장 아름다운 보륜(寶輪)과 여러 가지 보배로운 꽃과 청정한 마니로 빈틈없이 꾸며져 있었으며,온갖 색상의 바다가 끝없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강설 :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그 땅과 그 장소의 정황을 그리고 있다. 깨닫고 나니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였다. 얼마나 아름답고 값지게 보였으면 이렇게 표현했을까.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에는 2천 6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그대로 척박한 모래와 자갈들뿐인데. 摩尼爲幢하야 常放光明하고 恒出妙音하며 마니로 된 깃대에서는 항상 광명을 놓고 끊임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습니다. 강설 : 부처님의 깨달음을 나타내는 깃대가 높이 솟아있고 그 위에는 깃발이 펄럭인다. 그 깃대는 마니라는 값진 보석으로 만들어 졌으며 깃대에서는 항상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춘다.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미묘하여 음악인 듯 설법인 듯 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존재의 실상에 눈을 뜬 사람의 눈과 귀는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언제나 이와 같으리라. 衆寶羅網과 妙香華纓이 周帀垂布하며 摩尼寶王이 變現自在하며 여러 가지 보석으로 된 그물과 미묘한 향기가 나는 꽃다발들이 두루 두루 드리워져 있었고, 으뜸가는 마니보석이 자유자재하게 변화하며 나타났습니다. 강설 : 불교경전에는 그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 그물은 모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무수한 보석으로 만들어져있다. 그 무수한 보석들은 서로 서로 비춰주고 서로서로 그 빛을 받아드린다. 삼라만상 모든 존재는 그 그물의 다이아몬드가 서로서로 비추듯이 법계적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물에는 미묘한 향기가 나는 꽃다발들이 두루 두루 드리워져 있고 여기저기 커다란 마니보석들은 자유자재로 변화를 나타내 보인다. 인도의 땅이나 한국의 땅이나 지금 보통 사람들의 눈앞에 있는 현상 그대로건만 깨달음의 눈을 가지 사람에게는 그 모두가 이와 같이 보이는 것이다. 雨無盡寶와 及衆妙華하야 分散於地하니라 무궁무진한 보석들과 여러 가지 미묘한 꽃들이 소낙비가 내리듯이 그 땅에 흩뿌렸습니다. 강설 : 하늘에서는 무궁무진한 보석들과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마치 장마철 소낙비가 내리듯이 그 땅에 흩뿌려 쌓인다. 선게(禪偈)에 “백억이나 되는 살아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술에 취하여 봄바람에 춤을 춘다.”라고 하였다. 마치 맹인이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정상적인 밝은 눈을 가지고 이 아름다운 봄날의 만발한 꽃 천지를 보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寶樹가 行列하야 枝葉光茂하니라 보석으로 된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데 가지와 잎들은 무성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강설 : 길거리의 늘어서 있는 가로수들도 모두모두 보석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가로수들의 가지들과 잎들도 한없이 무성하여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서 대단히 총명하고 영리한데 다만 그동안 맹인으로 살다가 35년 만에 비로소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을 표현하였는데 오직 언어의 한계와 표현의 한계가 한스러울 뿐이다. 佛神力故로 令此道場一切莊嚴으로 於中影現하니라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이 도량의 일체 장엄들이 그 가운데서 영상으로 나타나게 하였습니다. 강설 :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니 그 땅이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더라.”라는 것으로부터 여기까지는 땅의 장엄을 밝힌 내용이다. 미혹의 세월을 보내다가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바라본 그 나라 그 국토의 모습이다. 부처님의 위신력이란 곧 깨달음의 힘이다. 깨달음의 안목이다. 오로지 깨달음을 통하여 도량의 장엄은 그토록 아름답게 보인 것이다. 오로지 깨달은 사람의 마음의 힘으로 그와 같이 영상으로 나타나 있다고 하였다. 진실로 실재하는 것이 있을까. 미혹한 사람의 마음에 나타난 것들도 실은 모두가 영상일 뿐이다. 어차피 모두가 영상이건만 누구에게는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고 누구에게는 그토록 척박한 환경과다 썩어버린 세상으로 보이는가. 이 누구의 무슨 조화일까? 2, 보리수의 장엄 其菩提樹가 高顯殊特하니라 그 보리수는 높이 솟아 아주 특별하였습니다. 강설 : 보리수의 장엄도 역시 “여래의 위신력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깨달음의 힘으로 영상처럼 나타난 보리수의 장엄을 밝혔다. 뮐러(1794~1827)라는 독일의 시인이 있다. 그의 시에 “보리수”라는 시가 있어서 한 구절 소개한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세존은 6년의 고행 끝에 이 보리수나무 밑에서 영원한 안식, 진정한 열반을 찾은 것이다. 매일 매일 수천수만 명씩 참배하러 오는 순례자들은 얼마나 안식을 얻어 가는가? 金剛爲身하며 瑠璃爲幹하며 衆雜妙寶로 以爲枝條하며 寶葉扶疏하야 垂陰如雲하며 寶華雜色으로 分枝布影하며 復以摩尼로 而爲其果하야 含暉發焰하야 與華間列하니라 다이아몬드로 몸통이 되고 유리로 줄기가 되었으며, 온갖 아름다운 보석들로가지가 되어있었습니다. 또 보석으로 된 잎은 무성하여 그늘을 드리운 것이 마치구름과 같았습니다. 보석으로 된 꽃들은 온갖 색깔들로 가지마다 널리 분포하여있었습니다. 또 마니보석으로 그 열매가 되어 빛을 머금고 불꽃을 발하며 꽃과 꽃 사이에 나열하여 있었습니다. 강설 : 부처님이 6년의 고행 끝에 마지막으로 선정에 들었던 그 보리수나무는 2천 6백여 년을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다. 그래서 수많은 불교의 순례자들은 오늘도 부처님의 깨달음을 그리며 구름처럼 몰려와서 천배 만 배 절을 올린다. 수만리를 멀다하지 않고 거기까지 왔다. 나무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염불을 외며 보리수와 대탑을 하염없이 돌고 또 돈다. 그곳에는 밤도 없고 낮도 없다. 먹고 마시거나 쉬는 일도 없다. 혹자는 굳이 그곳에서 삭발을 하며 자신의 신심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 감동은 실로 다이아몬드로 보리수나무의 몸통이 되어있고 유리로 줄기가 되어있으며, 온갖 아름다운 보석들로 가지가 되어있었다. 또 보석으로 된 잎은 무성하여 그늘을 드리운 것이 마치 구름과 같고, 보석으로 된 꽃들은 온갖 색깔들로 가지마다 널리 분포하여 있었다. 또 마니보석으로 그 열매가 되어 빛을 머금고 불꽃을 발하며 꽃과 꽃 사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35년 만에 눈을 뜬 싯다르타의 감동이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다만 말이 부족하고 표현력이 딸릴 뿐이다. 其樹周圓에 咸放光明하며 於光明中에 雨摩尼寶하며 摩尼寶內에 有諸菩薩호대 其衆如雲하야 俱時出現하니라 그 보리수의 주위에서는 돌아가면서 모두 광명을 놓고, 그 광명 안에서는마니보석이 비 오듯이 쏟아지며, 마니보석 안에서는 수많은 보살들이 있었으며, 그 보살대중들은 구름이 몰려오듯이 함께 출현하였습니다. 강설 : 보리수나무란 깨달음의 나무다. 보리수나무도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뒤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는 필발라수(畢鉢羅樹)다. 이처럼 깨닫고 나니 나무 이름마저 바뀌었다. 무슨 변화인들 없겠는가. 진도 1천도로 천지가 진동하였다. 그것도 6종 18상으로 진동하였다. 나무 주위에서 엄청난 광명이 눈이 부시도록 발산하고 그 광명에서는 마니보석이 장마철 소나기가 내리듯이 쏟아진다. 또한 그 마니보석 안에서는 무수한 보살들이 있어서 여름날 하늘에서 구름이 일어나듯 솟아나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의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인 것을. 又以如來威神力故로 其菩提樹가 恒出妙音하야 說種種法호대 無有盡極하니라 이 또한 여래의 위신력으로써 그 보리수가 항상 미묘한 소리를 내어 가지가지 법을 설하는데 끝도 없고 다함도 없었습니다. 강설 : 여래의 위신력이란 무엇인가. 싯다르타 태자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의 눈과 부처님의 귀를 가졌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눈을 갖고 세상을 보라. 부처님의 귀를 갖고 세상을 들으라. 무엇이 어떻게 보이고 무슨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가. 멀쩡한 보리수나무에서 미묘하고 아름다운 소리로 가지가지 법을 연설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끝도 없이 들릴 것이다. 어디 보리수나무뿐이겠는가. 삼라만상과 천지만물과 두두 물물에서 다 그렇게 들릴 것이다. 3, 궁전의 장엄 如來所處宮殿樓閣이 廣博嚴麗하야 充徧十方이어든 衆色摩尼之所集成이니라 여래가 거처하시는 궁전의 누각은 아주 넓고 장엄하고 화려하여 시방세계에 두루 두루 하였습니다. 가지가지 색깔로 빛나는 마니보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강설 :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 시에 이런 글이 있다. “하늘을 이불삼고땅을 자리삼고 산을 베개로 삼으며달을 촛불로 삼고 구름을 병풍으로 삼고바다를 술통으로 삼아 크게 취하여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릴까 걱정되노라.”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하였을 때는 집도 절도 없을 때이다. 한갓 커다란 나무 밑 차디찬 바위위에다 주변에 있는 잡초들을 뜯어다 깔고 있을 때이다. 그러나 이 몸이 있는 한 누구나 거처하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다리 밑이거나 길거리이거나 논두렁이라도 상관없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의 마음에 어디에 있은들 그곳이 궁전이 아니겠는가. 온 시방세계가 모두모두 내가 사는 궁전이리라. 種種寶華로 以爲莊嚴하며 諸莊嚴具가 流光如雲하야 從宮殿間으로 箤影成幢하니라 가지가지 보석 꽃으로 장엄되어 있으며 또 여러 가지 장엄구들은 광명을 쏟아내는 것이 마치 구름이 일듯하고 궁전과 궁전 사이로부터 그림자들이 모여 깃대를 이루었습니다. 강설 : 그 궁전은 가지가지 보석 꽃으로 장엄되어 있고, 갖가지 장엄구들은 얼마나 찬란하고 화려한지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한 궁전이 한두 채가 아니다. 궁전과 궁전사이에 그림자가 생겨서마치 큰 깃대를 이룬듯하다. 온 우주와 삼라만상의 모든 진리를 깨달은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진리의 눈으로 찬탄하고 있다. 無邊菩薩과 道場衆會가 咸集其所하야 以能出現諸佛光明하며 不思議音摩尼寶王으로 而爲其網하니라 그리고 끝도 없는 보살들과 도량에 있는 대중들은 모두 모두 그곳에 모여 모든 부처님의 광명을 나타내 보이며 불가사의한 소리를 내었으며, 또 마니보석으로 그 궁전의 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강설 :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시니 끝도 없이 많은 보살들과 무수한 대중들이 그곳에 모여 들었다. 왜 아니겠는가. 서푼어치만 공부를 하고 포교당을 열어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데 하물며 삼계의 대 도사요 사생의자비하신 어버이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큰 깨달음을 이루셨는데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여오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모여야 깨달음의 덕화인 제불광명을 나타내 보인다. 제불광명이란 모든 깨달은 이들이 설하는 진리의 가르침이다. 如來自在神通之力으로 所有境界가 皆從中出하며 一切衆生의 居處屋宅이 皆於此中에 現其影像하니라 여래의 자재하신 신통력으로 모든 경계가 그 그물로부터 나왔습니다. 일체중생들이 살고 있는 집들까지 모두 그곳에서 영상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강설 :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여래의 궁전인 그 궁전에는 또한 상상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내는 마니보석으로 된 그물이 둘러져 있다. 또한 일체중생들이 사는 집들까지도 그 궁전에서 영상으로 나타난다. 여래에게서 일체중생은 당신이 사랑하고 애착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역시 깨달음의 눈을 연 여래의 신비한 힘에서 나온 것이다. 又以諸佛神力所加로 一念之間에 悉包法界하니라 또한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가피를 내려한순간에 온 법계를 다 에워쌌습니다. 강설 : 부처님이 계시는 궁전은 궁전 스스로의 궁전이 아니다. 모두가 부처님의 가피력, 즉 깨달음의 힘으로 된 바다. 세상사람 모두가 그들이 사는 집은 모두가 그들의 능력으로 이뤄진 것이다. 청정한 산간에서 큰 기와집에 사는 것은 자신의 복력은 아니더라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또한 부처님과의 인연의 힘이며 가피력이다. 위에서 설명한 궁전이 이 세상 어딘가에 실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이 황량한 광야에 살더라도 그가 마음으로 누리는 지혜의 힘과 복덕의 힘에 의한 것이다. 그르므로 그 궁전들이 사실은 아니더라도 진실임에는 틀림없다. 설사 황금으로 1천 평이나 되는 집을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살더라도 고통과 번민과 투쟁으로 세월을 보낸다면 그곳은 곧 가시넝쿨로 뒤엉킨 지옥일 것이기 때문이다. 4, 사자좌의 장엄 其獅子座가 高廣妙好하니라 그 사자좌는 높고 넓으며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강설 : 부처님을 사람가운데 사자라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앉으신 자리가 곧 사자좌다. 부처님이 6년의 고행 끝에 마지막 7일 동안 선정에 들기 위해서 앉았던 자리를 가리키는데 무지몽매한 이 중생의 안목으로 볼 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표현이다. 필자도 1993년경에 부다가야 부처님이 앉으셨던 그 자리에 가 보았다. 커다란 나무 밑에 금강보좌(金剛寶座)라고 불리는 바위가 하나 있다. 부처님은 그 바위위에다 풀을 뜯어서 깔고 앉으셨다고 한다. 그것이 무슨 대단한 사자좌인가. 하지만 설사 모래자갈밭에 그냥 앉으셨더라도 역시 이렇게 표현하였을 것이다. 열쇠는 곧 깨달음에 있다. 맹인이 35년 만에 드디어 눈을 뜨고 보니 온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고, 그렇게 훌륭할 수가 없고, 그렇게 존귀할 수가 없었다. 이 이 감동 이 충격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깔고 앉으셨던 풀도 이름 모를 잡초가 그날 이후로 길상초(吉祥草)로 승격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화엄경은 자신이 깨달았다는 환상 속에서 읽어야 맛이 더욱 진하게 우러난다. 摩尼爲臺하며 蓮華爲網하며 淸淨妙寶로 以爲其輪하며 衆色雜華로而作瓔珞하며 堂榭樓閣 階砌戶牖의 凡諸物像이 備體莊嚴하며 寶樹枝果가 周廻間列하니라 그 사자좌는 마니보석으로 받침대가 되어있으며, 연꽃으로 그물이 되어있으며, 청정하고 미묘한 보석으로 그 둘레가 되어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색깔로 된 갖가지 꽃들은 영락으로 되어있고 당우와 정자와 누각과 섬돌과 문호와 온갖 물상들은 격식을 갖추어서 장엄하였습니다. 보석으로 된 나무들은 가지와 열매가 무성하여 두루두루 돌아가며 사이마다 펼쳐져있었습니다. 강설 : 부처님이 계신 곳은 그 땅도, 그 보리수도, 그 궁전도, 그 사자좌도, 모두 모두 다이아몬드와 금은보화와 마니보석으로 꾸며져 있다. 세속에서 아무리 화려하게 꾸민다 하더라도 이와 같을 수는 없다. 실로 화려함의 극치요, 사치의 극치다. 그러나 실은 모래나 자갈밭에 평범한 나무 한그루요, 차디찬 바위위에 잡초를 뜯어 깔고 앉았을 뿐이다. 부처님은 평소 제자들에게 떨어진 누더기도 깊고 또 기워가며 검소하게 살라고 하셨다. 금은보화는 절대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심지어 꽃도 향도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물며 당신 스스로이겠는가. 단지 존재의 실상을 깨닫고 그 깨달음에 의한 안목으로 보는 삶의 환희와 감동과 존귀함과 영원성과 열락과 청정성을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이리라. 실상의 눈으로 볼 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모래알 하나, 그 무엇인들 존귀하고 소중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우수마발(牛溲馬勃) 까지도 또한 그러하리라. 摩尼光雲이 互相照耀하며 十方諸佛이 化現珠王에 一切菩薩의 髻中妙寶가 悉放光明하야 而來瑩燭하니라 마니보석의 광명 구름은 서로서로 밝게 비추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화현한 큰 구슬에는 많은 보살들이 있고, 그 보살들의 상투위에 있는 아름다운 보석들이 모두 다 광명을 놓아서 밝고 찬란하게 비추었습니다. 강설 : 그 사자좌는 마니보석으로 받침대가 되어있는데 그 마니보석에서 뿜어내는 그 빛은 서로 서로 비춰주기 때문에 그 밝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눈부시다. 또 그 마니보석에는 큰 구슬들이 여기저기 박혀있는데 그 구슬에는 시방의 부처님들이 화현하여 있다. 또 화현한 부처님을 둘러싼 모든 보살들의 상투에는 또 다른 아름다운 보석들이 다 같이 광명을 놓아 찬란하게 비추고 있다. 그 사자좌는 온통 불보살들로 둘러싸여 있고 찬란한 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눈이 부시다. 지금도 부다가야에는 부처님의 성도를 기념하는 큰 탑이 세워져있다. 그 탑 옆에는 큰 보리수나무가 있고, 보리수나무 옆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그것이 부처님이 7일간 선정에 들었던 금강보좌다. 멀리서 온 순례자들은 그 도시를 밤에 도착하면 피곤함을 무릅쓰고 곧바로 그곳에 와서 참배부터 한다. 그리고는 밤을 세워가면서 기도를 올리며 절을 하고 탑 주위를 하염없이 돈다. 몇날 며칠을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도 그 감동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쏟는 이가 부지기수다. 필자는 그 광경을 그리며 지금도 환희와 감동의 눈물이 난다. 이 마음을 어찌 불보살의 화현이나 찬란한 광명이나 다이아몬드나 금은보화나 마니보석으로 대신할 수 있으랴. 평범한 중생의 마음으로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큰 깨달음으로 진리의 눈을 뜨고 이 화엄경을 편찬하는 경가(經家)의 안목으로야 어떻겠는가. 復以諸佛威神所持로 演說如來廣大境界하시니 妙音이 遐暢하야 無處不及이러라 또한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여래의 광대한 경계를 연설하시니 미묘한 음성이 멀리 퍼져서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강설 : 사좌자란 무엇인가. 진리의 가르침, 법을 설하는 자리다. 그래서 사자좌에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야 올라갈 수 있다. 어떤 스님은 평생을 수행을 잘 하고도 단 한 번도 그 자리에 올라가지 않았다. 법을 아는 사람이 두렵기 때문이며, 스스로가 부끄러워서다. 춘원이광수(1892~1950) 선생은 법을 청하는 청법가를 지어서 오늘날까지 법회 때마다 노래 부른다. “덕 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감로법을 주소서 /옛 인연을 잊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사자좌를 표현하는 마지막 부분에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하여 깨달은 사람의 경계를 한껏 연설하시어 모든 사람 모든 생명들의 존재의 실상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영원히 부처님으로 살게 하자는 것이다. 즉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다. 6, 세존의 불가사의한 덕(德) (1) 덕(德)의 근본 爾時에 世尊이 處于此座하사 於一切法에 成最正覺하시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사자좌에 앉아서 일체의 법에서 가장바른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강설 : 세존은 보리도량 보리수나무 밑에 있는 사자좌에 앉아서 모든 곳 모든 존재와 모든 사건[一切法]에 대하여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 부처님은 만행만덕을 소유하신 분인데 그 까닭은 바로 여기에서 밝힌 모든 존재와 모든 사건에 대하여 가장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일체 모든 것을 꿰뚫어 아는 지혜를 가지셨고,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없으며, 온갖 힘을 소유하셨기 때문에 십력(十力)이라고도 부르며, 대자대비하시기 때문에 사생(四生)의 자부(慈父)라고도 부른다. 뿐만 아니라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등등 열 가지 이름으로 그 덕행을 표현하기도 한다. 부처님의 지혜와 덕행과 자비에 대해서는 아무리 오랫동안 무수한 말로 칭송한다하더라도 그 끝이 없다. 그 까닭과 그 원인은 일체의 법에서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2) 삼업(三業) 변만 <1> 의업(意業) 智入三世하야 悉皆平等하시며지혜는 과거 현재 미래에 다 들어가서낱낱이 모두 평등하였습니다. 강설 :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의 마음의 능력[意業]을 간단하게 밝힌 내용이다. 진정으로 정각을 성취한 사람은 그 지혜가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모든 시간에 미치지 않는 데가 없으며, 또한 그 지혜가 동서남북 사유상하 그 어디에도 미치지 않는 데가 없어서 모든 시간 모든 공간에 평등하게 작용한다. 언제의 일을 모르며 무슨 일을 모르겠는가. 그러므로 우주공간에 관한 천문이나, 존재의 근본에 관한 물질의 실상이나, 모든 사건 모든 사고에 대한 그 원인들 까지도 낱낱이 밝게 꿰뚫어 안다. <2> 신업(身業) 其身이 充滿一切世間하시니라그 몸은 일체세간에 충만하였습니다. 강설 :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의 몸의 능력[身業]을 간단하게 밝힌 내용이다.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의 몸은 물질의 몸인 색신(色身)이기도 하지만 이미 지혜의 몸이며, 법의 몸이다. 그래서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몸은 법계에 충만하여 일체 중생들의 앞에 두루두루 나타난다. 인연을 따라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나 항상 깨달음의 자리인 보리수나무 밑의 사자좌를 떠나지 않았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몸은 중생세간에도 나타나지만 온갖 국토에도 다 나타나며 깨달음의 세계에도 역시 빠짐없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른 깨달을 얻은 사람의 몸의 능력이다. <3> 어업(語業) 其音이 普順十方國土하시니라그 음성은 시방국토에 두루두루 순응하였습니다. 강설 :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분의 언어의 능력[語業]을 간단히 밝혔다. 시방국토에 두루두루 순응한다는 것은 사람이 아닌 다른 종류의 중생들의 소리에도 순응하고,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춰서 알맞게 설법하고, 한 마디 말씀으로 시방세계에 두루두루 들리게도 하는 것이다. 마치 매화 한 송이가 피면 시방에 봄이 온 것을 알린 것과 같은 것이며, 국화 한 송이가 피면 천지에 가을이 온 것을 알린 것과 같은 것이다.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의 어업(語業)의 능력은 이와 같다. <4> 비유(譬喩) 譬如虛空이 具含衆像호대 於諸境界에 無所分別하고 又如虛空이 普徧一切호대 於諸國土에 平等隨入하시니라 비유컨대 마치 허공은 온갖 물상들을 모두 품고 있지만 모든 경계에 대해서 차별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허공은 온갖 세상에 두루 하면서 그 모든 국토에 평등하게 따라 들어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강설 :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분의 몸과 말과 마음의 능력을 함께 비유로서 밝혔다. 그러나 부처님의 삼업을 어찌 비유로서 밝힐 수 있겠는가? 그러나 허공을 비유로 들면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비유는 오히려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여 부처님을 비방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래서 비유는 실재하는 것의 모든 뜻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고 한다. 경전에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부처님의 지혜는 넓고 크기가 허공과 같아서 일체 중생들의 마음에 두루 펼쳐져 있다.” 그래서 유감스럽지만 하는 수 없이 허공에 비유한 것이다. 허공은 평등하다. 차별이 없다. 모든 사물에 다 들어가 있다. 허공에도 허공은 있지만 물속에도 있고, 불 속에도 있고, 나무나 바위나 철 속에도 있다. 그래서 차별 없이 평등하게 모든 것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 허공이다. 부처님의 몸과 말과 마음의 능력도 또한 그러하다. (3) 위세(威勢)身恒徧坐一切道場하사 菩薩衆中에 威光赫奕이 如日輪出하야 照明世界하시니라 몸은 항상 일체도량에 두루 앉아 계시면서 보살대중 가운데에 그 위광이 혁혁한 것이 마치 태양이 떠서 온 세계를 밝게 비추는 것과 같았습니다. 강설 :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의 위엄과 그 기세가 어떠한가를 밝혔다. 천지 사이와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고 하였으나 사람 가운데 가장 우수한 사람인 보살은 그 뛰어남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그런 보살대중들 가운데서 부처님은 그 위엄과 기세가 마치 천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솟은 듯하다. 그러한 모습으로 일체세계와 일체 도량에 다 두루하여 빠짐없이 계신다. 화장세계품의 이야기가 그 내용이다. 또 경문에, “이 법회에서 부처님이 앉아계시는 것을 보듯이 일체 먼지 속에도 또한 이와 같더라.”라고 하였다. (4) 복덕(福德) 三世所行衆福大海가 悉已淸淨하시니라 과거 현재 미래에 수행하신 여러 가지 복덕의 바다는 모두 다 이미 청정하셨습니다. 강설 :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의 복덕은 왜 이토록 뛰어나는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부처님의 덕행을 모두 모두 배우고 익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갖 번뇌와 망상은 다 사라지고 오로지 복덕만 드러났다. 마치 태양이 높이 솟으면 검은 먹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밝고 밝은 대명천지만 드러난 것과 같다. 불법을 공부하는 일이란 단장(斷障)과 성덕(成德)이다. 어두운 번뇌와 망상을 제거하고 청정한 복덕과 지혜를 성숙하여 가는 일이다. (5) 수생(受生) 而恒示生諸佛國土하시니라 한상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남을 보이십니다. 강설 : 물고기는 물속에서 태어나고 소와 말은 마구간에서 태어나듯이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은 언제나 부처님의 국토에서 태어난다. 모든 생명들은 업을 따라 태어나기도 하고, 인연을 따라 태어나기도 하지만불보살들은 언제나 원력을 따라 태어난다. 그러므로 같은 사바국토라도 보통 사람들은 업토(業土)에 태어난 것이 되고, 불보살들은 불국토에 태어난 것이 된다. 따라서 가난한 집에 태어나든 부잣집에 태어나든 누구를 원망하랴. 모두가 자기 자신의 업이며 인연인 것을. (6) 상호원만(相好圓滿) 無邊色相과 圓滿光明이 徧周法界하사대 等無差別하시니라 끝없는 색상과 원만한 광명은 법계에 두루 미치어 차별 없이 평등하였습니다. 강설 :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은 저절로 32상과 80종호로 장엄하게 된다. 왜냐하면 바른 깨달음이란 곧 진리를 깨달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모든 것이 진리에 부합한다. 상호까지도 진리에 부합한다. 진리는 곧 빛이므로 원만한 광명이 전 세계에 차별 없이 두루 미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의 모습이 곧 그 사람의 삶인 것이며, 동물이나 식물들도 역시 그 모습이 곧 동물과 식물의 삶인 것과 같다. 또한 사용자의 모습을 한 사람은 곧 사용자이고, 노동자의 모습을 한 사람은 곧 노동자며, 노숙자의 모습을 한 사람은 곧 노숙자이다. 스님의 모습을 한 사람은 곧 스님이고, 세속인의 모습을 한 사람은 곧 세속인이다. (7) 설법(說法) 演一切法하사대 如布大雲하시니라 일체법을 연설하시는 것이 마치 큰 구름이 펼쳐지듯 하였습니다. 강설 : 부처님의 설법 속에는 없는 이야기가 없다. 특히 화엄경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세속의 일이나 출세간의 일이나, 중생의 일이나 부처님의 일이나,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훈과 길을 가르치고 있다. 법의 구름이 일어 법의 비를 내리는 것은 일체 의혹을 끊고 번뇌와 망상을 제거하고자 한 것이다. 화엄경에 “비로자나 부처님이 서원의 힘으로 일체 국토 중에서 최상의 법륜을 항상 굴린다.”라고 하였다. 화엄경의 법문이 “중중하고 첩첩한 것은 마치 드넓은 허공에서 구름이 뭉개 뭉개 일어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법문이라는 비로 중생들의 뜨거운 고뇌의 열기를 식혀주기 때문에 구름이나 비로 비유하고 있다. (8) 중생교화(衆生敎化) 一一毛端에 悉能容受一切世界하사대 而無障礙하야 各現無量神通之力하사 敎化調伏一切衆生하시니라 낱낱 털끝에서 일체세계를 다 능히 수용해도 장애가 없으며, 각각 한량없는 신통의 힘을 나타내어 일체중생들을 교화하고 조복하셨습니다. 강설 :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나면 그 깨달음으로 일체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 깨달은 사람의 의무다. 그 의무에 의하여 부처님이 일체중생을 자유자재하게 교화하는 작용을 밝혔다. 화엄경은 다른 경전과 그 차원이 다르다. 중생을 교화하는 일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자신의 낱낱 털끝에서 일체세계 일체중생을 한꺼번에 다 수용한다. 그렇게 해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 또 한 말씀 한 구절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한량없는 신통을 앞앞이 다 나타내어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방법이다. 법성게의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라는 사사무애의 이치대로 중생교화도 역시 그와 같은 이치로 하는 것이다. (9) 법신미륜(法身彌綸) 身徧十方하사대 而無來往하시니라 법신은 시방에 두루 미치나 오고감이 없었습니다. 강설 :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의 몸은 그대로가 법신이다. 법으로써 몸을 삼기 때문이다. 법신은 시방에 두루 하다. 시방에 두루 하지만 오고 감이 없다. 법은 산천초목과 삼라만상에 다 꽉 차있다. 아니다. 삼라만상과 산천초목이 그대로가 법이며 법신이다. 그래서 동파거사는 “산천초목이 어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몸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른데 다시 어디를 가며 어디로 오겠는가. (10) 지혜(智慧) 智入諸相하사 了法空寂하시니라 지혜는 모든 형상에 다 들어가서 법의 공적함을 밝게 알았습니다. 강설 : 지혜가 모든 형상에 다 들어간다는 것은 바른 깨달음의 안목으로 모든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안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의 실상이란 곧 제법공상(諸法空相)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에 “법의 공적함을 밝게 알았다.”라고 한 것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그 본질이 공적하다는 것은 세존이 터득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견이다. (11) 제불신변(諸佛神變) 三世諸佛의 所有神變을 於光明中에 靡不咸覩하사 一切佛土不思議劫의 所有莊嚴을 悉令顯現케하시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신통변화를 광명 속에서 남김없이 다 보았으며, 일체국토의 불가사의한 겁의 장엄들을 모두 다 나타나게 하였습니다. 강설 : 삼세제불의 신통변화란 바른 깨달음의 내용이다. 그 내용들을 진리의 가르침이라는 밝은 광명, 즉 화엄경에서 우리는 다 보고, 다 느끼고,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 국토와 저 국토에서 오랜 세월동안 무수한 도인들이 이렇게 설명하고 저렇게 해석하면서 그 깊고 오묘한 뜻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확실하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감동할 수 있는 삼세제불의 신통광명이란 종이와 먹으로 된 화엄경이며, 또한 화엄경에서 가르치는 진리의 내용들이다. * 화엄회상(華嚴會上)의 대중 1, 보살대중의 이름과 덕행 (1) 동명보살 有十佛世界微塵數菩薩摩訶薩의 所共圍遶하니라 열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보살마하살들이 다 함께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강설 : 부처님의 법회가 원만하게 이뤄지려면 법문을 들을 청중들이 동참하여야 한다. 그것을 청중이 성취[衆成就]되었다라고 한다. 다른 경전에는 1천 2백 50명 정도 모이는 것이 일반적인 예다. 화엄경은 워낙 대경이기 때문에 시작부터가 “열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보살들이 모여들었다.”라고 하였다. 그야말로 구름이 모여오듯이 모여들었다. 대중들이 모이는 이유에 대해서 청량소(淸涼疏)에서 밝힌 것을 소개하면 이렇다. 1, 형상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소리가 있으면 메아리가 있듯이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는 반드시 제자들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2, 누구에게나 보좌하는 사람이 있어야 주인공이 원만하게 되기 때문이다. 3, 여래를 지키고 보호하여야하기 때문이다. 4, 장엄의 역할도 있다. 만약 여래 혼자라면 그 모양새가 너무 외롭기 때문이다. 5, 여래를 찬탄하는 노래와 꽃과 깃발 등으로 공양하여야하기 때문이다. 6, 이 경전의 가르침을 펴도록 질문하여 발기하는 역할을 위해서다. 7, 설법을 듣고 깨달음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其名曰普賢菩薩摩訶薩과 普德最勝燈光照菩薩摩訶薩과 普光師子幢菩薩摩訶薩과 普寶焰妙光菩薩摩訶薩과 普音功德海幢菩薩摩訶薩과 普智光照如來境菩薩摩訶薩과 普寶髻華幢菩薩摩訶薩과 普覺悅意聲菩薩摩訶薩과 普淸淨無盡福光菩薩摩訶薩과普光明相菩薩摩訶薩이니라 그들의 이름은 보현(普賢) 보살마하살과 보덕최승등광조(普德最勝燈光照) 보살마하살과 보광사자당(普光獅子幢) 보살마하살과 보보염묘광(普寶焰妙光) 보살마하살과 보음공덕해당(普音功德海幢) 보살마하살과 보지광조여래경(普智光照如來境) 보살마하살과 보보계화당(普寶髻華幢) 보살마하살과 보각열의성(普覺悅意聲) 보살마하살과 보청정무진복광(普淸淨無盡福光) 보살마하살과 보광명상(普光明相) 보살마하살이었습니다. 강설 : 화엄회상의 청법대중에는 모두 40종류의 대중이 있다. 먼저 보살대중으로서 20명이 소개되는데 이것을 만행중(萬行衆) 또는 동생중(同生衆)이라하고 집급강신(執金剛神)부터 39중을 이생중(異生中)이라한다. 다시 보살대중 20명중에도열 명의 동명(同名)보살이 있고, 또 열 명의 이명(異名)보살이 있다. 동명보살의 특징은 보현(普賢) 보살을 위시하여 모두 보(普)라는 글자가 앞에 놓여있는 점이다. 그래서 열 명의 동명 보살이라 한다. 보(普)란 넓다는 뜻이다.무엇이 넓은가. 먼저 화엄경이 넓고, 다음은 화엄경에서 밝히려는 세계가 넓고, 아울러 우리들의 인생이 넓고 크다는 점이다. 부연하면 우주법계도 넓고, 천지만물 삼라만상도 넓고, 미세한 먼지도 넓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도 넓다. 이러한 모든 것의 존재원리와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길을 밝히려고 보(普)라는 보살이 가장 먼저 등장하였을 것이다. 성인들에게 무슨 이름이 필요하겠는가만 중생들을 제도하는 방편으로 천 가지 이름 만 가지 이름이 있게 되었다. 장자에도 “지극한 사람에게는 자기라는 것이 없으며, 신인에게는 공이 없으며, 성인에게는 이름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 등장하는 많고 많은 이름들은 모두가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의 이름이라고 알아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법회청중을 통해서 앞으로 설해질 법문의 내용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법회청중을 깊이 살펴서 설법의 내용과 경전의 규모를 미리 그려보는 것도 중요한 공부다. (2) 이명보살 海月光大明菩薩摩訶薩과 雲音海光無垢藏菩薩摩訶薩과 功德寶髻智生菩薩摩訶薩과 功德自在王大光菩薩摩訶薩과 善勇猛蓮華髻菩薩摩訶薩과 普智雲日幢菩薩摩訶薩과 大精進金剛臍菩薩摩訶薩과 香焰光幢菩薩摩訶薩과 大明德深美音菩薩摩訶薩과大福光智生菩薩摩訶薩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有十佛世界微塵數하니라 해월광대명(海月光大明) 보살마하살과 운음해광무구장(雲音海光無垢藏) 보살마하살과 공덕보계지생(功德寶髻智生) 보살마하살과 공덕자재왕대광(功德自在王大光) 보살마하살과 선용맹연화계(善勇猛蓮華髻) 보살마하살과 보지운일당(普智雲日幢) 보살마하살과 대정진금강제(大精進金剛臍) 보살마하살과 향염광당(香焰光幢) 보살마하살과 대명덕심미음(大明德深美音)보살마하살과 대복광지생(大福光智生) 보살마하살이었습니다. 이러한 이들이 상수가 되어 열 세계 미진수와 같이 많았습니다. 강설 : 열 명의 다른 이름인 이명(異名) 보살이다. 부처님을 보좌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도량과 부처님을 장엄도 하고 부처님께 여러 가지로 공양도 올리고 때로는 법을 청하기도 하는 등등의 역할을 하는 청법대중으로서는 참으로 많고 많은 대중들이 있다. 보살들뿐만 아니라 온갖 세상이 모두 동원이 되는 실로 우주법계가 모두 화엄경의 대중들이다. (3) 보살대중의 덕행 <1> 자리행(自利行) 此諸菩薩이 往昔에 皆與毘盧遮那如來로 共集善根하야 修菩薩行하시니 皆從如來善根海生이니라 이 모든 보살들은 지난날 비로자나여래와 같이 함께 선근을 모아서 보살행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여래의 선근바다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강설 : 청중의 덕행을 밝혔다. 보살의 수승한 덕을 찬탄하는 데 두 가지 방면을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자리(自利)의 측면이고, 또 하나는 이타(利他)의 측면이다. 먼저 자리면을 들었다. 보살은 왜 보살이 되는가. 보살이 되어서도 무슨 인연으로 이 화엄회상에 법회청중으로 동참하게 되었는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와 같이 화엄보살대중에 동참한다면 참으로 큰 영광이며 성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 여래와 함께 선근을 모으고 보살행을 닦은 인연공덕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여래의 선근바다로부터 태어난 영광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화엄경을 이렇게 공부하는 인연공덕으로 세세생생 화엄경을 또다시 공부하게 되고 끝내 화엄의 이치를 깨달아 만 중생에게 큰 광명이 되리라. 諸波羅蜜이 悉已圓滿하며 慧眼明徹하야 等觀三世하며 於諸三昧에 具足淸淨하시니라 모든 바라밀이 다 이미 원만하며 혜안이 명철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평등하게 관찰하며 모든 삼매를 구족하게 청정하였습니다. 강설 : 여래와 함께 선근을 모으고 보살행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시와 인욕과 지계 등 무수한 바라밀을 모두 다 원만히 성취하고 지혜의 눈이 명철하여져서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보고 모든 삼매를 훌륭하게 구족하는 일들이 곧 여래와 함께 선근을 모으는 것이라 한다. <2> 이타행(利他行) 辯才如海하야 廣大無盡하며 具佛功德하야 尊嚴可敬하며 知衆生根하야 如應化伏하시니라 변재가 바다와 같아서 끝없이 광대하며, 부처님의 공덕을 갖춰서 그 존엄함이 가히 공경할만하며, 중생들의 근기를 알아서 알맞게 교화하고 조복하십니다. 강설 : 보살들의 수승한 덕을 찬탄하는데 이타의 측면을 밝혔다. 불교에서는 무엇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가? 부처님은 무엇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셨는가? 먼저 깨달음의 지혜로 사람이 갖출 수 있는 공덕인 지혜와 자비와 실천력을 완벽하게 갖추어서 무종교인이나 이교도들까지도 그 존엄함을 공경해 마지않는 인품이 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사람들의 수준과 근기와 성품과 욕망들을 잘 살펴서 바다와 같은 변재로 교화하고 조복하는 일이다. 불교가 사회에 대하여, 인류에 대하여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법회에 동참한 보살대중들의 수승한 덕은 이와 같다. <3> 지위(地位) 入法界藏하야 智無差別하니라 법계장(法界藏)에 들어가서 지혜가 차별이 없으십니다. 강설 : 화엄경에 장(藏)자가 자주 등장한다. “갈무리하다. 감춰져 있다. 새겨져 있다. 내재되어 있다.”라는 등의 뜻을 갖는다. 불성론(佛性論)에는 법계장에 대하여 “밖으로는 일체의 염정(染淨)등 유위법을 지니고 있는 것을 법계라 하고, 안으로 일체의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성품의 덕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 장(藏)이다.”라고 하였다. 앞에서 소개한 보살들은 이와 같이 밖으로는 일체의 염정등 유위법을 지니고 있고, 안으로 일체의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성품의 덕을 함유하고 있어서 그 지혜가 차별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 證佛解脫의 甚深廣大하니라 부처님 해탈의 심심하고 광대함을 증득하였습니다. 강설 : 불교를 공부하는 목적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으나 가장 뚜렷하고 확실한 명제는 해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온갖 고통과 문제, 그리고 생사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말하나 여기에서의 해탈은 보살의 작용이 자유자재하여 일념에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불사를 건립하는 것이다. 법회에 모인 보살대중들의 수승한 덕을 설명하면서 그들도 부처님이 증득하신 지극히 깊고 광대한 해탈을 증득하였다고 하였다. 경전에는 모든 부처님의 10종의 무애해탈을 설명하였다. “1, 일체제불이 한 먼지에서 무수한 제불이 세상에 나오심을 나타내며, 2, 일체제불이 한 먼지에서 무수한 제불이 법륜을 굴리는 것을 나타내며, 3, 일체제불이 한 먼지에서 무수한 제불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함을 나타내며, 4, 제불의 국토를 나타내며, 5, 보살의 수기를 나타내며, 6,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제불을 나타내며, 7, 과거 미래 현재의 세계종을 나타내며, 8, 과거 미래 현재의 신통을 나타내며, 9,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중생을 나타내며, 10, 과거미래 현재의 일체불사를 나타낸다.” 이것이 심심하고 광대한 부처님의 해탈이다. 일반적인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해탈이다. 能隨方便하야 入於一地하야 而以一切호대 願海所持로 恒與智俱하야 盡未來際하시니라 능히 방편을 따라서 한 지위에 들어가서 일체지위를 함께 하되 원력의 유지하는 바로서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항상 지혜와 함께 하였습니다. 강설 : 보살대중들의 수승한 덕 중에서 한 지위에서의 공덕에 들어가면 일체지위의 공덕을 다 포섭하게 되는 뜻을 밝혔다. 초발심시병전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 법성게의 글이 있다. 처음 발심한 그 지위에 구경각의 공덕을 다 갖춘다는 뜻이다. 화엄의 도리는 언제나 무엇이나 일즉일체(一卽一切)다. 즉 일념에 모든 시간이 다 포함되고, 한 먼지에 시방세계가다 포함되고,한 작용에 일체의 작용이 다 포함된다. 이것은 억지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법계존재의 존재원리이기 때문이다. <4> 승진과행(勝進果行) 了達諸佛의 希有廣大秘密之境하며 善知一切佛의 平等法하며 已踐如來의 普光明地하며 入於無量三昧海門하시니라 제불의 희유하고 광대하고 비밀한 경계를 다 통달하며, 일체 부처님의 평등한 법을 잘 알며, 여래의 넓은 광명의 경지를 이미 다 밟으며, 한량없는 삼매 바다의 문에 들어갔습니다. 강설 : 보살대중들의 수승한 덕은 끝이 없다. “제불의 희유하고 광대하고 비밀한 경계를 다 통달하였다.”고 하였다. 비밀한 경계에는삼밀(三密)이라고 하여 신밀(身密)과 구밀(口密)과 의밀(意密)이 있다. 낱낱이 다 설명하는 것은 번잡하므로 생략한다. 부처님의 비밀한 경지는 등각보살도 모르며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알 수 있는 경지다. 이와 같은 비밀한 경지를 화엄회상에 동참한 보살대중들이 모두 통달하고 있다고 찬탄하였다. 부처님의 평등한 법이란 부처님과 부처님만 평등한 것으로서 체성이 평등하여 법신이 하나이다. 지혜가 평등하며 덕에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다. 깨달으신 법이 평등하다. 곧 제일의제다. 보살들은 이러한 점을 잘 안다. 보살들은 또한 여래의 넓은 광명의 경지를 이미 다 밟았으며, 해인삼매와 화엄삼매 등 바다와 같이 넓은 부처님의 삼매 문에 들어갔다. 동도(同道)라야 가지(可知)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을 설법하려는 법석에 모인 대표적인 보살들의 덕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 수준이 부처님의 경지와 동등할 것이다. 於一切處에 皆隨現身하야 世法所行에 悉同其事하고 總持廣大하야集衆法海하고 辯才善巧로 轉不退輪하시니라 일체처에 다 따라 그 몸을 나타내어 세상의 법을 행함에 그 일을 모두 같이 하며, 총지가 광대하여 온갖 법을 모으며, 변재가 뛰어나서 물러서지 않는 법륜을 굴리십니다. 강설 : 보살들의 삼업(三業)의 능력과 그 작용을 밝혔다. 몸으로는 사섭법(四攝法)중에 동사섭이 가장 으뜸이므로 동사로서 중생을 섭수함을 밝혔다. 마음으로는 모든 법을 다 지니고 기억하는 힘이 광대하여 온갖 법의 바다를 다 모음을 밝혔다. 입으로는 뛰어난 변재가 있어야 사람들이 법문을 한번만 들어도 다시는 물러서지 않음을 밝혔다. 보살대중들의 덕이 이와 같다. <5> 이행무애(二行無礙) 一切如來의 功德大海가 咸入其身하고 一切諸佛의 所在國土에 皆隨願往하고已曾供養一切諸佛하야 無邊際劫에 歡喜無倦하고 一切如來의 得菩提處에常在其中하야 親近不捨하고 恒以所得普賢願海로 令一切衆生으로 智身具足케하야成就如是無量功德하시니라 일체여래의 공덕의 큰 바다가 그 몸에 다 들어갔으며, 일체제불의 국토에 원력을 따라 다 가며, 일찍이 일체제불에게 공양하여 가없는 겁 동안 환희하여 게름이 없으며, 일체 여래가 보리를 얻은 곳에 항상 있으면서 친근하며, 얻은바 보현행원으로 항상 일체중생들에게 지혜의 몸을 구족하게 하는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습니다. 강설 : 화엄대법회에 동참한 모든 보살들의 수승한 덕을 찬탄하면서 끝으로 몇 가지를 더 열거하였다. 특히 “일체제불에게 공양하여 가없는 겁 동안 환희하여 게으름이 없다.”는 것은 모든 생명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변함이 없으며, 부처님임으로 항상 공양올리고 환희하는 마음이 게으름이 없는 것이다. 보살의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에 대한 존중과 생명에 대한 존중하는 것이다. 존중하면 공양하고 찬탄하고 공경하여야 한다. 또한 보현행원으로 일체중생들에게 지혜의 몸을 구족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불교는 지혜의 종교다. 사람이 지혜를 갖춘다는 것은 마치 맹인이 눈을 뜨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화엄법회에 동참한 수많은 보살들은 위와 같은 덕행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설해질 화엄경의 내용이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으며 얼마나 광대한가를 짐작케 한다. 서양의 어떤 학자는 “인류 역사상에서 가장 큰 사건은 세존이 깨달음을 성취한 일이고, 인류가 남긴 가장 위대한 걸작품은 그 깨달음을 남김없이 표현한 화엄경이다.”라고 하였다. 2, 잡류제신중의 이름과 덕행 (1) 집금강신 <1> 이름 復有佛世界微塵數執金剛神하니 所謂妙色那羅延執金剛神과 日輪速疾幢執金剛神과 須彌華光執金剛神과 淸淨雲音執金剛神과 諸根美妙執金剛神과 可愛樂光明執金剛神과 大樹雷音執金剛神과 獅子王光明執金剛神과 密焰勝目執金剛神과 蓮華光摩尼髻執金剛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有佛世界微塵數하니라 또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집금강신(執金剛神)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묘색나라연(妙色那羅延) 집금강신과 일륜속질당(日輪速疾幢) 집금강신과 수미화광(須彌華光) 집금강신과 청정운음(淸淨雲音) 집금강신과 제근미묘(諸根美妙)과 가애락광명(可愛樂光明) 집금강신과 대수뢰음(大樹雷音) 집금강신과 사자왕광명(獅子王光明) 집금강신과 밀염승목(密焰勝目) 집금강신과 연화광마니계(蓮華光摩尼髻) 집금강신입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이 있었습니다. 강설 : 화엄회상의 청법대중 가운데 위에 등장한보살대중을 동생중(同生衆)이라하고 집금강신부터는 이생중(異生衆)이라 한다. 또 이생중에는 39중이 있다. 잡류제신중(雜類諸神眾)의 19중과 팔부사왕중(八部四王眾)의 12중과 욕색제천중(欲色諸天眾)의 8중이다. 이들을 왜 신(神)이라고 하는가. 그 존재가 신령하여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 능력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집금강신(執金剛神)은 즉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손에 잡고 있다는 것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부처님을 보호하고 불법을 보호하고 불법을 믿고 따르는 사부대중들을 보호하려면 험상궂은 모습에 위엄이 넘쳐나야 되기 때문이다. 대웅전의 부첨님 옆면에 모셔진 신중단태화 중심에 금강저를 잡고 있는 신장이 바로 집금강신이다. 그 외의 인물들이 곧 잡류제신중인 19중이거나 많이 그리면 팔부사왕중과 욕계와 색계의 제천중을 포함한 39중들이다. 일반적으로는 사찰에 금강신, 또는 금강신장을 많이 모신다. 금강신은 여래의 비밀 사적을 알아서 오백 야차신을 부려 현겁(賢劫) 천불의 법을 지킨다는 두 신을 말한다. 사찰의 문이나 또는 수미단 앞의 좌우에 세우는데, 허리에만 옷을 걸친 채 용맹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밀적금강으로 입을 벌린 모양이며, 오른쪽은 나라연금강으로 입을 다문 모양을 하고 있다. 입을 벌린 것은 범어의 첫 글자인 “아”자다. 시작과 태어남을 뜻한다.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날 때 “아”하고 태어난다. 입을 다문 것은 범어의 마지막 글자인 “훔”자다. 끝과 죽음을 뜻한다. 사람이 죽을 때는 입을 다물고 죽는다. 천왕문에 이 두 금강신이 서서 사람과 모든 존재의 처음과 끝을 설법하고 있다. 한국의 불자들이 새해를 맞이하여 정초에 반드시 화엄신중기도를 드리는 것은 한 해 동안의 가정의 안녕을 화엄신중에게 비는 것이다. 한국불교가 신라의 화엄의 대가인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부터 화엄경으로서 불교사상의 토대를 마련하고 일상생활의 지침을 삼았기 때문이다. <2> 덕행 皆於往昔無量劫中에 恒發大願하야 願常親近供養諸佛일새 隨願所行이 已得圓滿하야 到於彼岸하니라 이들은 모두 옛날 한량없는 겁 동안 항상 큰 서원을 세워서 모든 부처님을 항상 친근하고 공양할 것을 발원하였습니다. 서원을 따르는 행이 이미 원만해서 피안에 이르렀습니다. 강설 : 부처님을 수호하는 화엄신장의 덕행을 열 가지로서 밝혔는데 먼저 두 가지가 서원(誓願)이다. 오랜 옛날부터 부처님을 친근하고 공양하기를 서원하였다. 그 서원이 원만하게 성취되어 피안에 이르렀다. 화엄신장이 피안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들의 소원인 부처님을 친근하고 공양하는 서원이 성취되었음을 積集無邊淸淨福業하며 於諸三昧所行之境을 悉已明達하니라 가없는 청정한 복업을 쌓았으며, 모든 삼매로서 행할 바의 경계를 다 이미 밝게 통달하였습니다. 강설 : 다음의 두 가지는 가없는 청정한 복업(福業)을 쌓은 것과 삼매로서 행할 바의 경계를 밝게 통달한 것이다. 먼저 청정한 복업을 쌓는 것이란 불교가 지향하는 바다. 복에는 청복(淸福)이 있고 탁복(濁福)이 있다. 세속적 부귀공명을 누리는 것을 탁한 복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참다운 가치관에 의하여 성인의 가르침대로 바르고 참된 이치를 배우고 그를 실천하는 인연을 청정한 복이라 한다. 화엄성중들이 이러한 청정한 복을 쌓았다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리라. 화엄경을 공부하는 일은 청복 중에서 가장 훌륭한 청복이다. 삼매로서 행할 바의 경계를 밝게 통달하였다는 것은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그 일을 실천하기 전에 먼저 안정된 정신 상태를 유지하여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깊이 명상하고 사유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부처님을 수호하는 화엄신장이 이와 같은 자세가 없다면 어찌 부처님을 바르게 수호할 수 있겠는가. 獲神通力하야 隨如來住하며 入不思議解脫境界하니라 신통력을 얻어서 여래를 따라 머물며,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계에 들어갔습니다. 강설 : 대통령을 밀착 경호하는 사람들은 무술실력이 남달라야 하며 항상 대통령과 1미터 주위에 있어야 하듯이 부처님을 수호하는 화엄신장은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 또한 보통 사람들이 짐작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실력이 있어야 지키고 보호하는 의무를 다하리라. 處於衆會하야 威光特達하며 隨諸衆生의 所應現身하야 而示調伏하며 대중들이 모인 법회에 있으면서 위엄스런 빛이 특별히 뛰어 났으며, 모든 중생들에게 알맞은 바를 따라서 몸을 나타내어 조복함을 보입니다. 강설 : 화엄신장들은 탱화에서 보았듯이 그 위엄과 광명이 특별히 뛰어난다. 그러면서 모든 중생들을 따라서 혹은 자비로서 혹은 위엄으로서 교화할 사람은 교화하고 조복할 사람은 조복한다. 이것이 화엄신장들의 의무며 책임이다. 一切諸佛化形所在에 皆隨化往하며 一切如來所住之處에 常勤守護하니라 또 일체제불의 변화한 형상이 있는 곳에는 다 따라 변화하여 가며, 일체여래가 머무는 곳을 항상 부지런히 수호합니다. 강설 : 화엄신장들은 심지어 변화한 부처님의 형상이 있는 곳까지 그들도 역시 변화하여 그곳에 간다. 그래서 일체여래가 계시는 곳에는 항상 부지런히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화엄신장들의 의무며 책임이다. 그런데 어찌 불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화엄신장에 대한 예경과 기도를 올리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화엄신장들은 불자들의 오랜 세월동안 신앙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여기까지 집금강신의 이름과 그 덕행을 살펴보았다. (2) 신중신 復有佛世界微塵數身衆神하니 所謂華髻莊嚴身衆神과 光照十方身衆神과 海音調伏身衆神과 淨華嚴髻身衆神과 無量威儀身衆神과 最上光嚴身衆神과 淨光香雲身衆神과 守護攝持身衆神과 普現攝取身衆神과 不動光明身衆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有佛世界微塵數하니 皆於往昔에 成就大願하야 供養承事一切諸佛하시니라 다시 또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신중신(身衆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화계장엄(華髻莊嚴)신중신과 광조시방(光照十方) 신중신과 해음조복(海音調伏) 신중신과 정화엄계(淨華嚴髻) 신중신과 무량위의(無量威儀) 신중신과 최상광음(最上光嚴) 신중신과 정광향운(淨光香雲) 신중신과 수호섭지(守護攝持)신중신과 보현섭취(普現攝取) 신중신과 부동광명(不動光明) 신중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신중신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지난 옛적에 큰 서원을 성취해서 일체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겼습니다. 강설 : 화엄회상의 바다와 같은 대중 중에 이생중(異生衆)이 39중이 있다고 하였다. 그중에 두 번째 신중신(身衆神)이다. 신중신이란 모든 생명 있는 것은 그 몸 자체가 여러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지수화풍 등의 온갖 요소와 무수한 세포 등 여러 가지[衆]로 구성되어 이뤄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몸이든 몸 그 자체가 그대로 신령하여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 능력과 그 세계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신이라 한 것이다. 실로 사람의 몸을 위시하여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그 자체가 신묘불가사의하다. 어찌 신이 아니겠는가. 앞서 보살대중과 집금강신들의 덕행에 대해서는 매우 길게 설명하였다. 신중신부터는 그 덕행에 대한 찬탄을 매우 짧게 설명하고 만다. “이들은 모두 지난 옛적에 큰 서원을 성취해서 일체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겼다.”라고 하였는데 부처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신이라면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려는 서원을 세웠을 것이며, 그 서원은 마땅히 성취되었을 것이다. (3) 족행신 復有佛世界微塵數足行神하니 所謂寶印手足行神과 蓮華光足行神과 淸淨華髻足行神과 攝諸善見足行神과 妙寶星幢足行神과 樂吐妙音足行神과 栴檀樹光足行神과 蓮華光明足行神과 微妙光明足行神과 積集妙華足行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有佛世界微塵數하니 皆於過去無量劫中에 親近如來하야 隨逐不捨하시니라 다시 또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족행신(足行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보인수(寶印手) 족행신과 연화광(蓮華光) 족행신과 청정화계(淸淨華髻)족행신과 섭제선견(攝諸善見) 족행신과 묘보성당(妙寶星幢) 족행신과 낙토묘음(樂吐妙音)족행신과 전단수광(栴檀樹光) 족행신과 연화광명(蓮華光明) 족행신과 미묘광명(微妙光明)족행신과 적집묘화(積集妙華) 족행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족행신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과거 한량없는 겁(劫) 동안에 여래를 친근하여 따라 다니며 떠난 적이 없었었습니다. 강설 : 족행신(足行神)이란 아무래도 발로써 어디론가 걸어 다니는 일을 뜻하리라. 옛날부터 사찰에서는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여러 곳을 잘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고 “족행신이 들렸다.”라고 하였다.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나 움직이며 옮겨 다니는 일은 매우 중요하여 길을 나갈 때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떠난다. 요즘에는 교통이 편리한 대신 위험도 많아져서 진실로 다니는 일을 더욱 신격화하고 신성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발로 걸어 다니는 일 그 자체가 곧 신이다. 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도 역시 신의 일이다. 덕행을 밝히는 내용에 “한량없는 겁(劫) 동안에 여래를 친근하여 따라 다니며 떠난 적이 없었었다.”라고 하였다. 다니는 일 그 자체이므로 여래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것이 이들 족행신들의 덕행이다. (4)도량신 復有佛世界微塵數道場神하니 所謂淨莊嚴幢道場神과 須彌寶光道場神과 雷音幢相道場神과雨華妙眼道場神과 華纓光髻道場神과 雨寶莊嚴道場神과 勇猛香眼道場神과 金剛彩雲道場神과蓮華光明道場神과 妙光照耀道場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有佛世界微塵數하니 皆於過去에値無量佛하야 成就願力하야 廣興供養하시니라 다시 또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도량신(道場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정장엄당(淨莊嚴幢)도량신과 수미보광(須彌寶光) 도량신과 뇌음당상(雷音幢相) 도량신과 우화묘안(雨華妙眼) 도량신과 화영광계(華纓光髻) 도량신과 우보장엄(雨寶莊嚴) 도량신과 용맹향안(勇猛香眼) 도량신과 금강채운(金剛彩雲) 도량신과 연화광명(蓮華光明) 도량신과 묘광조요(妙光照曜) 도량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도량신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한량없는 부처님을 만나서 원력을 성취하여 공양을 널리 일으켰습니다. 강설 : 도량신이란 부처님의 도량을 의지하며 지키고 수호하는 신이다. 화엄경의 안목으로 보면 일체처가 부처님의 도량 아닌 곳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있는 곳은 다 도량이다. 그 모든 도량을 지키고 수호하는 신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활환경을 아름답게 잘 가꾸고 보호하여 모든 사람들이 환희심이 나도록 하면 언제나 도량신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이들 도량신은 과거에 한량없는 부처님을 만나서 원력을 세웠다. 도량을 지키며 부처님께 공양하며 살리라는 것이 곧 그 원력이다. (5) 주성신 復有佛世界微塵數主城神하니 所謂寶峯光耀主城神과 妙嚴宮殿主城神과 淸淨喜寶主城神과 離憂淸淨主城神과 華燈焰眼主城神과 焰幢明現主城神과 盛福光明主城神과 淸淨光明主城神과香髻莊嚴主城神과 妙寶光明主城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有佛世界微塵數하니皆於無量不思議劫에 嚴淨如來의 所居宮殿하시니라 다시 또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주성신(主城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보봉광요(普峯光曜) 주성신과 묘엄궁전(妙嚴宮殿) 주성신과 청정희보(淸淨喜寶)주성신과 이우청정(離憂淸淨) 주성신과 화등염안(華燈焰眼) 주성신과 염당명현(焰幢明現)주성신과 성복광명(盛福光明) 주성신과 청정광명(淸淨光明) 주성신과 향계장엄(香髻莊嚴)주성신과 묘보광명(妙寶光明) 주성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주성신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량없는 부사의 겁 동안 여래께서 거처하시는 궁전을 청정하게 장엄하였습니다. 강설 : 주성신(主城神)이란 부처님의 궁전이 있는 성을 맡아서 장엄하고 수호하는 신이다. 나아가서 법의 성과 마음의 성을 맡아서 수호하는 의미를 가진다. 부처님과 법과 마음은 근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는 사람이 사는 국토와 도시와 읍과 마을과 촌락까지도 모두 맡아서 수호하는 신이라는 뜻이 있다. 또한 사람이 사는 국토와 도시와 읍과 마을과 촌락이 그 자체가 모두 신이다. 어찌 지키고 사랑하며 가꾸지 않겠는가. 마치 신을 섬기듯이 해야 할 것이다. (6) 주지신 復有佛世界微塵數主地神하니 所謂普德淨華主地神과 堅福莊嚴主地神과 妙華嚴樹主地神과普散衆寶主地神과 淨目觀時主地神과 妙色勝眼主地神과 香毛發光主地神과 悅意音聲主地神과妙華旋髻主地神과 金剛嚴體主地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有佛世界微塵數하니 皆於往昔에發深重願호대 願常親近諸佛如來하야 同修福業하시니라 다시 또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 많은 주지신(主地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보덕정화(普德淨華) 주지신과 견복장엄 (堅福莊嚴) 주지신과 묘화엄수(妙華嚴樹) 주지신과 보산중보(普散衆寶) 주지신과 정목관시(淨目觀時)주지신과 묘색승안(妙色勝眼) 주지신과 향모발광(香毛發光) 주지신과 열의음성(悅意音聲) 주지신과 묘화선계(妙華旋髻) 주지신과 금강엄체(金剛嚴體)주지신이엇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세계의 미진수와 같이많은 주지신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지난 옛적에 깊고 무거운 서원을 발해서항상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여 함께 복업 닦기를 서원하였다. 강설 : 주지신(主地神)이란 땅을 맡은 신이다. 마음의 땅을 나타내기도 한다.현실적으로는 땅이라는 그 자체의 신성(神性)을 뜻한다. 땅은 얼마나 소중한가.땅이 없고 존재하는 것이란 없다.실로 땅은 그 자체만으로 보살이요, 부처님이요, 신이다. 땅을 맡은 신이 우리를 보호해 주진 않으면우리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서 신을 섬기듯이 섬기고 보호하며 가꿔야 할 것이다. (7) 주산신 復有無量主山神하니 所謂寶峯開華主山神과 華林妙髻主山神과 高幢普照主山神과 離塵淨髻主山神과 光照十方主山神과 大力光明主山神과 威光普勝主山神과 微密光輪主山神과 普眼現見主山神과 金剛密眼主山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於諸法에 得淸淨眼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산신(主山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보봉개화(寶峯開華) 주산신과 화림묘계(華林妙髻) 주산신과 고당보조(高幢普照) 주산신과 이진정계(離塵淨髻) 주산신과 광조시방(光照十方) 주산신과 대력광명(大力光明) 주산신과 위광보승(威光普勝) 주산신과 미밀광륜(微密光輪) 주산신과 보안현견(普眼現見) 주산신과 금강밀안(金剛密眼) 주산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그 수가 한량없었습니다.다 모든 법에 청정한 눈을 얻었다. 강설 : 주산신(主山神)이란 산을 맡은 신이다.산신, 산왕대신, 산신령이라고도 부른다. 산신당에 예배를 드릴 때 만덕고승(萬德高勝) 성개한적(性皆閑寂) 산왕대신이라고 일컫는다. 산은 높고 수승한 수많은덕을 함유하고 있으며 그 성품은 한적하다. 부동(不動)의 자세로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있기 때문이다. 산의 덕을 찬탄하려면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등산가들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라고 하였다.오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잘 가꾸고 지키며 보호하여야 할 것이다.덕을 찬탄하는 말에 “모든 법에 청정한 눈을 얻었다.”라고 하였는데산에 높이 올라가면 시야가 툭 트여서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8) 주림신 復有不可思議數主林神하니 所謂布華如雲主林神과 擢幹舒光主林神과生芽發耀主林神과 吉祥淨葉主林神과 垂布焰藏主林神과 淸淨光明主林神과 可意雷音主林神과 光香普徧主林神과 妙光逈曜主林神과 華果光味主林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不思議數라 皆有無量可愛光明하시니라 다시 또 불가사의한 수의 주림신(主林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포화여운(布華如雲) 주림신과 탁간서광(擢幹暑光) 주림신과 생아발요(生芽發曜)주림신과 길상정엽(吉祥淨葉) 주림신과 수포염장(垂布焰藏) 주림신과 청정광명(淸淨光明)주림신과 가의뇌음(可意雷音) 주림신과 광향보변(光香普遍) 주림신과 묘광형요(妙光逈曜)주림신과 화과광미(華果光味) 주림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사의할 수 없는 수였습니다. 모두 다 한량없이 많은 사랑할만한 광명을 지녔습니다. 강설 : 주림신(主林神)이란 숲을 맡아 지키고 보호하는 신이다. 숲은 산소를 생산하여 모든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숲이 없는 사막이나 민둥산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삭막한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숲이 있어서 산소가 있고 숲이 있어서 물이 있고 수많은 동식물이 숲에 머물며 삶을 영위해간다. 숲은 곧 생명이다. 따라서 숲은 보살이며, 부처님이며, 신이다. 어찌 지키고 보호하며 존경하여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숲의 덕을 찬탄하는 말에 “한량없이 많은 사랑할만한 광명을 지녔다.”라고 하였다. 길을 가다가 숲을 만나면 마음이 푸근해 진다. 쉬고 싶어 진다. 애착이 절로 솟는다. 그 숲속에다 토굴을 하나 짓고 싶어진다. (9) 주약신 復有無量主藥神하니 所謂吉祥主藥神과 栴檀林主藥神과淸淨光明主藥神과名稱普聞主藥神과 毛孔光明主藥神과普治淸淨主藥神과 大發吼聲主藥神과 蔽目光幢主藥神과明見十方主藥神과 益氣明目主藥神이라 如是等이而爲上首하사其數無量하니 性皆離垢하야 仁慈祐物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약신(主藥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길상(吉祥) 주약신과 전단림(栴檀林) 주약신과 청정광명(淸淨光明) 주약신과 명칭보문(名稱普聞) 주약신과 모공광명(毛孔光明) 주약신과 보치청정(普治淸淨) 주약신과 대발후성(大發吼聲) 주약신과 폐목광당(蔽目光幢) 주약신과 명견시방(明見十方) 주약신과 익기명목(益氣明目)주약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성품에는 모두 다 때를 여의어서 인자함으로써 중생을 돕습니다. 강설 : 주약신(主藥神)이란 병고를 치료하는 약을 맡은 신이다.병에 응하여 약을 준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법의 약을 뜻하기도 하지만현실에서의 약도 법의 약에 못지않다.육신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나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나 모두가 약이다.불교에는 약사여래(藥師如來)도 있고 약왕보살(藥王菩薩)도 있다. 몸도 마음도 병이 들면 모두가 약으로서 고친다.그렇다면 약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래서 약은 곧 보살이며 부처님이며 신이다. 약을 잘 연구하고, 약을 잘 활용하여 신인 약으로서세상의 모든 병고를 다 치료하여야 할 것이다. 병고로서 고통 받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10) 주가신 復有無量主稼神하니 所謂柔軟勝味主稼神과 時華淨光主稼神과 色力勇健主稼神과 增長精氣主稼神과 普生根果主稼神과 妙嚴環髻主稼神과 潤澤淨華主稼神과 成就妙香主稼神과 見者愛樂主稼神과 離垢淨光主稼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莫不皆得大喜成就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가신(主稼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유연승미(柔軟勝味)주가신과 시화정광(時華淨光) 주가신과 색력용건(色力勇健) 주가신과 증장정기(增長精氣)주가신과 보생근과(普生根果) 주가신과 묘엄환계(妙嚴環髻) 주가신과 윤택정화(潤澤淨華)주가신과 성취묘향(成就妙香) 주가신과 견자애락(見者愛樂) 주가신과 이구정광(離垢淨光)주가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큰 환희를 성취하였습니다. 강설 : 주가신(主稼神)이란 농사를 맡은 신이다.원시사회에서나 오늘날과 같이 발달한 문명사회에서나 사람이 살아가는데 영원히 변함없이가장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 또한 농사다. 어찌 신이 아니겠는가. 어찌 보살이 아니겠는가.어찌 부처님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농사를 통해서 음식을 섭취하고 음식을 인하여 육신이 건강해지고정기가 증장해져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데 장애가 없게 된다. 덕을 찬탄하는 글에 “큰 환희를 성취하였다.”고 하였다.실로 큰 기쁨은 농사다. 잘 지키고 보호하며 사랑하고 받들어 섬겨야 할 것이다. (11) 주하신 復有無量主河神하니 所謂普發迅流主河神과 普潔泉澗主河神과 離塵淨眼主河神과 十方徧吼主河神과 救護衆生主河神과無熱淨光主河神과 普生歡喜主河神과 廣德勝幢主河神과光照普世主河神과 海德光明主河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有無量數하니 皆勤作意하야 利益衆生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하신(主河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보발신류(普發迅流)주하신과 보결천간(普潔泉澗) 주하신과 이진정안 (離塵淨眼) 주하신과 시방변후(十方遍吼)주하신과 구호중생(救護衆生) 주하신과 무열정광(無熱淨光) 주하신과 보생환희(普生歡喜)주하신과 광덕승당(廣德勝幢) 주하신과 광조보세(光照普世) 주하신과 해덕광명(海德光明)주하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한량없는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부지런히 뜻을 내어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였습니다. 강설 : 주하신(主河神)이란 강과 하천을 맡은 신이다.지구상에는 크고 작은 강과 하천들이 있다. 강이나 하천들은 모두가 물이 흘러가는 물길이다.그 강이나 하천들이 있으므로 비가 아무리 내려도 크게 범람하지 않으면서 논과 밭에 물을 대어주면서곡식을 자라게 하고 사람과 동물들이 식수로 이용하여 생명을 유지하게 한다. 또한 배가 물건과 사람을 싣고 멀리까지 운반할 수 있게도 한다. 이것이 모두가 주하신이 하는 일이다. 강과 하천의 역할을 깊이 살펴보면 참으로 보살이며 부처님이며 신이다. 화엄회상의 대중에는 당연히 동참해야할 신이며, 역시 우주만유의 일원으로 화엄바다를 이루고 있다. 덕을 찬탄하는 글에 “부지런히 뜻을 내어 중생들을 이익하게 한다.”라는 것은 불을 보듯 밝은 이치다. (12) 주해신 復有無量主海神하니 所謂出現寶光主海神과 成金剛幢主海神과 遠離塵垢主海神과普水宮殿主海神과 吉祥寶月主海神과 妙華龍髻主海神과 普持光味主海神과 寶焰華光主海神과金剛妙髻主海神과 海潮雷音主海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悉以如來功德大海로 充滿其身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해신(主海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출현보광(出現寶光)주해신과 성금강당(成金剛幢) 주해신과 원리진구(遠離塵垢) 주해신과 보수궁전(普水宮殿)주해신과 길상보월(吉祥寶月) 주해신과 묘화용계(妙華龍髻) 주해신과 보지광미(普持光味)주해신과 보염화광(寶焰華光) 주해신과 금강묘계(金剛妙髻) 주해신과 해조뇌성(海潮雷聲)주해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여래공덕의 큰 바다로써 그 몸을 충만하게 하였다. 강설 : 주해신(主海神)이란 바다를 맡은 신이다.우리가 사는 지구면적의 7할이 바다다. 바다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 만덕을 함유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또 불숙사시(不宿死屍)라고 하여 바다는 죽은 시체를 머물러두지 않는다. 언제나 정화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바다에는 용도 있고 용궁도 있다. 보물도 무궁무진하다.뿐만 아니라 무수한 생명들이 바다를 근거지로 하여 살아가고 있다.육지 위의 모든 생명들도 실은 바다에서 수증기를 증발하여 다시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뿌려주는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어찌 바다의 무한한 덕을 짧은 필설로 표현하랴. 그러므로 바다는 진정 살아있는 보살이며 부처님이며 신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덕을 찬탄하는 글에 “여래공덕의 큰 바다로써 그 몸을 충만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바로 여래의 공덕 그 자체다. (13) 주수신 復有無量主水神하니 所謂普興雲幢主水神과 海潮雲音主水神과 妙色輪髻主水神과善巧漩澓主水神과 離垢香積主水神과 福橋光音主水神과 知足自在主水神과 淨喜善音主水神과普現威光主水神과 吼音徧海主水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常勤救護一切衆生하야 而爲利益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수신(主水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보흥운단(普興雲幢)주수신과 해조운음(海潮雲音) 주수신과 묘색륜계(妙色輪髻) 주수신과 선교선복(善巧漩澓)주수신과 이구향적(離垢香積) 주수신과 복교광음(福橋光音)주수신과 지족자재(知足自在)주수신과 정희선음(淨喜善音) 주수신과 보현위광(普現威光) 주수신과 후음변해(吼音徧海)주수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항상 부지런히 일체중생을 구호해서 이익하게 하였습니다. 강설 : 주수신(主水神)이란 물을 맡은 신이다. 사람 몸의 7할이 물이며 지구에도 7할이 물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물이다. 위에서 설명한 강과 하천과 바다와 비와 이슬과 서리와 눈도 그 근원은 다 물이다. 심지어 피와 고름과 대소변까지도 모두 물이다. 그 중요성을 일러 무엇 하겠는가. 모두가 화장장엄의 큰 바다대중으로 화엄회상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므로 물로 형성된 우리는 이 몸 그대로 화엄경이다. 저 드넓은 바다의 그 많은 물이 모두가 화엄경이다. 강물도 하천의 물도 모두가 화엄경이다. 세차게 내리는 여름날의 폭우도 역시 화엄경이다. 있으라는 이슬비도 가라는 가랑비도 역시 화엄경이다. 찬탄의 글에 “부지런히 일체중생을 구호해서 이익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실로 물 보살이며, 물 부처님이며, 물신이다. (14) 주화신 復有無數主火神하니 所謂普光焰藏主火神과 普集光幢主火神과 大光普照主火神과衆妙宮殿主火神과 無盡光髻主火神과 種種焰眼主火神과 十方宮殿如須彌山主火神과威光自在主火神과 光明破闇主火神과 雷音電光主火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不可稱數라 皆能示現種種光明하야 令諸衆生으로 熱惱除滅케하시니라 다시 또 무수히 많은 주화신(主火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보광염장(普光焰藏)주화신과 보집광당(普集光幢) 주화신과 대광보조(大光普照) 주화신과 중묘궁전(衆妙宮殿)주화신과 무진광계(無盡光髻) 주화신과 종종염안(種種焰眼) 주화신과 시방궁전여수미산(十方宮殿如須彌山) 주화신과 위광자재(威光自在) 주화신과 광명파암(光明破闇) 주화신과 뇌음전광(雷音電光)주화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였습니다. 모두 다 가지가지 광명을 나타내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뜨거운 번뇌를 소멸하게 하였습니다. 강설 : 주화신(主火神)이란 불을 맡은 신이다. 불의 특징은 열기와 빛이다. 열기와 빛은 또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빛은 세상의 모든 어둠을 깨트려서 광명천지로 변화시킨다. 또 불교에서 어둠이 어리석음을 상징한다면 빛은 항상 지혜를 상징한다. 무명의 어둠을 지혜의 불로 깨트려 버리고, 번뇌의 섶을 지혜의 불로써 다 태워버린다. 세상사에서도 불의 특별한 장점은 무수하다. 열기가 없으면 성숙하지 않는다. 사물이나 곡식이나 사람이나 모두가 열기로서 성숙한다. 사람은 곡식을 익혀먹고 식물을 익혀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한다. 열기가 없는 땅에는 생명이 없다. 그래서 불은 곧 보살이다. 부처님이다. 신이다. 불의 고마움을 깊이 이해해서 받들어 섬겨야 한다. 찬탄하는 글에는 “가지가지 광명을 나타내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뜨거운 번뇌를 소멸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15) 주풍신 復有無量主風神하니 所謂無礙光明主風神과 普現勇業主風神과 飄擊雲幢主風神과淨光莊嚴主風神과 力能竭水主風神과 大聲徧吼主風神과 樹梢垂髻主風神과 所行無礙主風神과種種宮殿主風神과 大光普照主風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散滅我慢之心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풍신(主風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무애광명(無碍光明)주풍신과 보현용업(普現勇業) 주풍신과 표격운당(飄擊雲幢) 주풍신과 정광장업(淨光莊嚴)주풍신과 역능갈수(力能竭水) 주풍신과 대성변후(大聲徧吼) 주풍신과 수초수계(樹梢垂髻)주풍신과 소행무애(所行無礙) 주풍신과 종종궁전(種種宮殿) 주풍신과 대광보조(大光普照)주풍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아만심(我慢心)을 흩어서 소멸하였다. 강설 : 주풍신(主風神)이란 바람을 주관하는 신이다.사람의 몸과 세상의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요소 중에 바람이 있다모든 움직임은 바람신의 힘이다. 바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은 그 사물이 움직였을 때 비로소 느끼는 것이다. 이렇듯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바람의 역할은 우주만유가 존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실로 바람보살이며, 바람부처님이며, 바람신이다. 인도의 뜨거운 대지 위를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줄기의 시원한 바람은 천금과도 맞먹는다. 어찌 화엄회상을 장엄한 당당한 동참대중이 아니겠는가. (16) 주공신 復有無量主空神하니 所謂淨光普照主空神과 普遊深廣主空神과 生吉祥風主空神과離障安住主空神과 廣步妙髻主空神과 無礙光焰主空神과 無礙勝力主空神과 離垢光明主空神과深遠妙音主空神과 光徧十方主空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其數無量하니心皆離垢하야廣大明潔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공신(主空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정광보조(淨光普照) 주공신과 보유심광(普遊深廣) 주공신과 생길상풍(生吉祥風) 주공신과 이장안주(離障安住) 주공신과 광보묘계(廣步妙髻) 주공신과 무애광염(無礙光焰) 주공신과 무애승력(無礙勝力) 주공신과 이구광명(離垢光明)주공신과 심원묘음(深遠妙音) 주공신과 광변시방(光徧十方) 주공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마음에는 모두 때를 여의어서 넓고 크고 밝고 깨끗하였습니다. 강설 : 주공신(主空神)이란 모든 공간과 존재의 공성(空性)과 허공과 하늘을 맡은 신이다. 그것들 자체가 곧 신이다. 만약 공간이 없고 공성이 없고 허공이 없다고 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허공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진정한 주인공이다. “감정의 먼지가 어지럽게 일어나서 본성이 공한 것을 가려버렸는데, 지혜의 태양이 높이 솟아서 번뇌의 구름을 걷어버리니, 하늘에 태양이 밝게 빛나서 끝없이 툭 터진 것처럼 지혜와 이치가 부합하여 아득히 그 끝이 없더라.”라는 글이 있다. 모든 공간과 존재의 공성(空性)과 허공과 하늘, 이모든 것이야 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진정한 주인이다. (17) 주방신 復有無量主方神하니 所謂徧住一切主方神과 普現光明主方神과 光行莊嚴主方神과周行不礙主方神과 永斷迷惑主方神과 普遊淨空主方神과 大雲幢音主方神과 髻目無亂主方神과普觀世業主方神과 周徧遊覽主方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能以方便으로普放光明하야 恒照十方하야 相續不絶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방신(主方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변주일체(徧住一切)주방신과 보현광명(普現光明) 주방신과 광행장엄(光行莊嚴) 주방신과 주행불애(周行不礙)주방신과 영단미혹(永斷迷惑) 주방신과 보유정공(普遊淨空) 주방신과 대운당음(大雲幢音) 주방신과 계목무란(髻目無亂)주방신과 보관세업(普觀世業) 주방신과 주변유람(周徧遊覽)주방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능히 방편으로 널리 광명을 놓아 항상 시방을 비쳐서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강설 : 주방신(主方神)이란 모든 방위를 맡은 신이다.방위란 일정하지는 않지만 큰 지역 큰 사물이나 작은 지역 작은 사물들이 모두가 그 방위가 있다.또 남쪽방위가 북쪽방위가 되기도 하고, 북쪽방위가 남쪽방위가 되기도 한다. 동서남북 사유상하가 다 그와 같다.그렇듯이 모든 방위는 일정하지 않으나 자유자재하게 다 그 방위가 있어서 자기의 위치를 가진다.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은 어느 것 하나 자기의 방위가 없는 것이 없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의 자리와 그 방위를잘 알아서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방위는 없는듯하나 너무나 확실한 존재다. 덕을 찬탄하는 글에 “능히 방편으로 널리 광명을 놓아 항상 시방을 비쳐서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방위는 선교방편이다. 화엄회상에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당당한 주인공이다. (18) 주야신 復有無量主夜神하니 所謂普德淨光主夜神과 喜眼觀世主夜神과 護世精氣主夜神과寂靜海音主夜神과 普現吉祥主夜神과 普發樹華主夜神과 平等護育主夜神과 遊戲快樂主夜神과諸根常喜主夜神과 出生淨福主夜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修習하야 以法爲樂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야신(主夜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보덕정광(普德淨光)주야신과 희안관세(喜眼觀世) 주야신과 호세정기(護世精氣) 주야신과 적정음해(寂靜音海) 주야신과 보현길상(普現吉祥) 주야신과 보발수화(普發樹華) 주야신과 평등호육(平等護育) 주야신과 유희쾌락(遊戱快樂) 주야신과 제근상희(諸根常喜) 주야신과 출생정복(出生淨福) 주야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등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닦고 익혀서 법으로써 즐거움을 삼았습니다. 강설 : 주야신(主夜神)이란 밤을 맡은 신이다. 밤이 있으므로 낮이 있고 낮이 있으므로 밤이 있다. 밤과 낮의 관계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와 같이 서로서로 상대적 관계에 의해서 유지된다. 밤이 여자라면 낮은 남자다. 밤이 왼쪽이라면 낮은 오른쪽이다. 밤이 음이라면 낮은 양이다. 만약 밤이 없다고 가정해보라. 우리의 삶이 어떻겠는가. 사람들은 휴식의 밤을 믿기 때문에 낮에는 부지런히 일을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밤은 곧 신이다. 그대로 보살이며 부처님이다. (19) 주주신 復有無量主晝神하니 所謂示現宮殿主晝神과 發起慧香主晝神과 樂勝莊嚴主晝神과香華妙光主晝神과 普集妙藥主晝神과 樂作喜目主晝神과 普現諸方主晝神과 大悲光明主晝神과善根光照主晝神과 妙華瓔珞主晝神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於妙法에能生信解하야 恒共精勤하야 嚴飾宮殿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주주신(主晝神)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시현궁전(示現宮殿) 주주신과 발기혜향(發起慧香) 주주신과 낙승장엄(樂勝莊嚴) 주주신과 향화묘광(香華妙光) 주주신과 보집묘약(普集妙藥) 주주신과 낙작희목(樂作喜目)주주신과 보현제방(普現諸方) 주주신과 대비광명(大悲光明) 주주신과 선근광조(善根光照) 주주신과 묘화영락(妙華瓔珞) 주주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미묘한 법에 능히 신해(信解)를 내어서 늘 함께 부지런히 힘써서 궁전을 장엄하였습니다. 강설 : 주주신(主晝神)이란 낮을 맞은 신이다. 밤이 쉬는 시간이라면 낮은 활동하는 시간이다. 식물들도 낮에 성장한다. 길을 가는 것도, 여행을 하면서 이색적인 풍경과 아름다운 산천을 관광하는 것도 모두 낮에 하는 일이다. 낮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하는가. 무엇인가를 이해하여 아는 것이나 불교를 공부하여 이해하는 것은 마치 낮과 같다. 아래 글에 덕을 밝히는 내용에 “먼저 바른 이해를 닦고 뒤에 바른 수행을 닦는다. 믿음만 있고 이해가 없으면 무명만 증장하고, 이해만 있고 믿음이 없으면 도리어 사견(邪見)만 생긴다. 믿음은 이해를 인하여 청정해지고, 이해는 믿음을 가자하여 깊어진다. 이것이 낮의 의미다.”라고 하였다. 실로 소중한 말씀이다. 낮은 보살이며 부처님이며, 곧 신이다. 3, 팔부사왕중의 이름과 덕행 (1) 아수라왕 復有無量阿修羅王하니 所謂羅睺阿修羅王과 毘摩質多羅阿修羅王과 巧幻術阿修羅王과大眷屬阿修羅王과 大力阿修羅王과 徧照阿修羅王과 堅固行妙莊嚴阿修羅王과 廣大因慧阿修羅王과出現勝德阿修羅王과 妙好音聲阿修羅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悉已精勤하야摧伏我慢과 及諸煩惱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아수라(阿修羅)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라후(羅喉) 아수라왕과 비마질다라(毘摩質多羅) 아수라왕과 교환술(巧幻術) 아수라왕과 대권속(大眷屬) 아수라왕과 대력(大力) 아수라왕과 변조(徧照) 아수라왕과 견고행묘장엄(堅固行妙莊嚴) 아수라왕과 광대인혜(廣大因慧) 아수라왕과 출현승덕(出現勝德) 아수라왕과 묘호음성(妙好音聲)아수라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이미 부지런히 힘써서 아만과 모든 번뇌를 꺾어서 조복하였습니다. 강설 : 아수라(阿修羅)왕이란 아수라의 우두머리로서 팔부(八部)중의 하나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인다. 비천(非天)이라고도 하나 불지론에서는 천취(天趣)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또 정법념경에서는 귀신과 축생에 해당한다고도 하였다. 아무튼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싸움의 상징으로서 아수라판이라는 말을 우리는 익숙하게 쓰고 있다. 아수라판도 어쩌면 이 세상을 구성하는 필요악인지도 모른다. 화엄회상의 일원으로 동참하였으니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서야할 과제라고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진정한 불교도라면 정법수호를 위해서는 아수라이상으로 싸울 줄 알아야 그것이 부처님의 뜻일 것이다. 그리고 덕을 찬탄한 글에 의하면 아만과 번뇌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아수라의 의미라고 하였다. (2) 가루라왕 復有不可思議數迦樓羅王하니 所謂大速疾力迦樓羅王과 無能壞寶髻迦樓羅王과 淸淨速疾迦樓羅王과心不退轉迦樓羅王과 大海處攝持力迦樓羅王과 堅固淨光迦樓羅王과 巧嚴冠髻迦樓羅王과 普捷示現迦樓羅王과 普觀海迦樓羅王과 普音廣目迦樓羅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不思議數라 悉已成就大方便力하야 善能救攝一切衆生하시니라 다시 또 불가사의한 수의 가루라(迦樓羅)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대속질력(大速疾力) 가루라왕과 무능괴보계(無能壞寶髻) 가루라왕과 청정속질(淸淨速疾) 가루라왕과 심불퇴전(心不退轉) 가루라왕과 대해처섭지력(大海處攝持力) 가루라왕과 견고정광(堅固淨光) 가루라왕과 교엄관계(巧嚴冠髻) 가루라왕과 보첩시현(普捷示現) 가루라왕과 보관해(普觀海) 가루라왕과 보음광목(普音廣目) 가루라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불가사의한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 이미 큰 방편의 힘을 성취해서 일체중생들을 잘 구호였습니다. 강설 : 가루라(迦樓羅)왕은 가루라의 우두머리다. 금시조(金翅鳥)라고 번역한다.팔부중의 하나로서 불교경전에만 나오는 상상의 큰 새다.매와 비슷한 머리에는 여의주가 박혀 있으며금빛 날개가 있는 몸은 사람을 닮고불을 뿜는 입으로 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이세간품에 “보살 가루라가 여의(如意)의 법력으로 굳센 발을 삼아서인간과 천상의 용들을 잡아서 열반의 저 언덕에 안치하여 둔다.”라고 하였다. 가루라가 실재하든 안하든 덕을 찬탄한 내용과 같이 용을 잡아먹을 정도의 큰 힘으로 모든 일체중생을 잘 구호하여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게 해야 할 것이다. (3) 긴나라왕 復有無量緊那羅王하니 所謂善慧光明天緊那羅王과 妙華幢緊那羅王과 種種莊嚴緊那羅王과 悅意吼聲緊那羅王과 寶樹光明緊那羅王과 見者欣樂緊那羅王과 最勝光莊嚴緊那羅王과 微妙華幢緊那羅王과 動地力緊那羅王과 攝伏惡衆緊那羅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精進하야 觀一切法에 心恒快樂하야 自在遊戲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긴나라(緊那羅)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선혜광명천(善慧光明天) 긴나라왕과 묘화당(妙華幢) 긴나라왕과 종종장엄(種種莊嚴) 긴나라왕과 열의후성(悅意吼聲) 긴나라왕과 보수광명(寶樹光明) 긴나라왕과 견자흔락(見者欣樂) 긴나라왕과 최승광장엄(最勝光莊嚴) 긴나라왕과 미묘화당(微妙華幢) 긴나라왕과 동지력(動地力) 긴나라왕과 섭복악중(攝伏惡衆) 긴나라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체 법을 관찰하여 마음이 항상 즐거우며 자유자재하게 유희하였습니다. 강설 : 긴나라(緊那羅)는 팔부중의 하나로서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가신(歌神)이다.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 또는 말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는 등 그 형상이 일정하지 않다. 축생도에 속한다. 춤추고 노래하는 가신(歌神)이니 화엄회상에 그 역할이 자못 기대된다. 음악과 춤은 원시인이나 문명인이나 그 곡조와 형태가 다를 뿐이지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찬탄하는 글에 “마음이 항상 즐거우며 자유자재하게 유희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소임을 맡은 대중이리라. (4) 마후라가왕 復有無量摩睺羅伽王하니 所謂善慧摩睺羅伽王과 淸淨威音摩睺羅伽王과 勝慧莊嚴髻摩睺羅伽王과 妙目主摩睺羅伽王과 如燈幢爲衆所歸摩睺羅伽王과 最勝光明幢摩睺羅伽王과 獅子臆摩睺羅伽王과 衆妙莊嚴音摩睺羅伽王과 須彌堅固摩睺羅伽王과 可愛樂光明摩睺羅伽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修習廣大方便하야 令諸衆生으로 永割癡網케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마후라가왕(摩喉羅伽王)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선혜(善慧) 마후라가왕과 청정위음(淸淨威音) 마후라가왕과 승혜장엄계(勝慧莊嚴髻) 마후라가왕과 묘목주(妙目主) 마후라가왕과 여등당위중소귀(如燈幢爲衆所歸)마후라가왕과 최승광명당(最勝光明幢) 마후라가왕과 사자억(獅子臆) 마후라가왕과 중묘장엄음(衆妙莊嚴音) 마후라가왕과 수미견고(須彌堅固) 마후라가왕과 가애락광명(可愛樂光明) 마후라가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광대한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어리석음의 그물을 영원히 끊어버리게 하였습니다. 강설 : 마후라가(摩睺羅伽)란 팔부중의 하나다. 몸은 사람과 같고 머리는 뱀과 같은 신이다.전통적으로 인도는 신의 나라며 종교의 나라다.예로부터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이 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교들이 있다. 현상계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을 모두 신으로 생각하는 사상과 보이지도 않고 실재하지도 않는 존재들까지 신으로 숭상한다. 화엄회상에 등장하는 신들은 그중에 가장 대표가 되는 것을 소개하면서 헤아릴 수 없고 상상할 수 없이 많고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하였다. 마후라가왕을 찬탄하는 글에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어리석음의 그물을 영원히 끊어버리게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그도 또한 중생들을 위해서 큰 몫을 하고 있다. (5) 야차왕 復有無量夜叉王하니 所謂毘沙門夜叉王과 自在音夜叉王과 嚴持器仗夜叉王과 大智慧夜叉王과 焰眼主夜叉王과 金剛眼夜叉王과 勇健臂夜叉王과 勇敵大軍夜叉王과 富資財夜叉王과 力壞高山夜叉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守護一切衆生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야차(夜叉)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비사문(毘沙門) 야차왕과 자재음(自在音) 야차왕과 엄지기장(嚴持器仗) 야차왕과 대지혜(大智慧) 야차왕과 염안주(焰眼主) 야차왕과 금강안(金剛眼) 야차왕과 용건비(勇健臂) 야차왕과 용적대군(勇敵大軍) 야차왕과 부자재(富資財) 야차왕과 역괴고산(力壞高山) 야차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일체중생들을 수호하였습니다. 강설 : 야차(夜叉)란 팔부의 하나로서 사람을 괴롭히거나 해친다는 사나운 귀신이다. 그 왕을 금비라(金毘羅)라고 하는데 여러 야차들을 거느리고 불법을 지키기를 서원(誓願)한 우두머리다. 찬탄의 글에도 “모두 부지런히 일체중생들을 수호한다.”라고 하였다.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이 아니라 화엄회상에서는 불법과 일체중생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 선신이다. (6) 용왕 復有無量諸大龍王하니 所謂毘樓博叉龍王과 娑竭羅龍王과 雲音妙幢龍王과 焰口海光龍王과 普高雲幢龍王과 德叉迦龍王과無邊步龍王과 淸淨色龍王과 普運大聲龍王과 無熱惱龍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莫不勤力興雲布雨하야 令諸衆生으로 熱惱消滅케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큰 용왕(龍王)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비루박차(毘樓博叉) 용왕과 사갈라(娑竭羅) 용왕과 운음묘당(雲音妙幢) 용왕과 염구해광(焰口海光) 용왕과 보고운당(普高雲幢) 용왕과 덕차가(德叉迦) 용왕과 무변보(無邊步) 용왕과 청정색(淸淨色) 용왕과 보운대성(普運大聲) 용왕과 무열뇌(無熱惱) 용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힘써서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쏟아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뜨거운 번뇌를 소멸하게 하였습니다. 강설 : 용왕(龍王)은 바다에 살며 비와 물을 맡고 불법을 수호하는 용 가운데의 임금이다. 용은 본래 상상의 동물 가운데 하나다. 몸은 거대한 뱀과 비슷한데 비늘과 네 개의 발을 가지며 뿔은 사슴에, 귀는 소에 가깝다고 한다. 깊은 못이나 늪, 호수, 바다 등 물속에서 사는데 때로는 하늘로 올라가 풍운을 일으킨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상서로운 동물로 기린ㆍ봉황ㆍ거북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서 천자에 견주며, 인도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찬탄의 글에도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쏟아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뜨거운 번뇌를 소멸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화엄회상에는 당연히 동참해야할 대중이다. (7) 구반다왕 復有無量鳩槃茶王하니 所謂增長鳩槃茶王과 龍主鳩槃茶王과 善莊嚴幢鳩槃茶王과 普饒益行鳩槃茶王과 甚可怖畏鳩槃茶王과 美目端嚴鳩槃茶王과 高峯慧鳩槃茶王과 勇健臂鳩槃茶王과 無邊淨華眼鳩槃茶王과 廣大天面阿修羅眼鳩槃茶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修學無礙法門하야 放大光明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구반다(鳩槃茶)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증장(增長) 구반다왕과 용주(龍主) 구반다왕과 선장엄당(善莊嚴幢) 구반다왕과 보요익행(普饒益行) 구반다왕과 심가포외(甚可怖畏) 구반다왕과 미목단엄(美目端嚴) 구반다왕과 고봉혜(高峯慧) 구반다왕과 용건비(勇健臂) 구반다왕과 무변정화안(無邊淨華眼) 구반다왕과 광대천면아수라안(廣大天面阿修羅眼) 구반다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걸림이 없는 법문을 닦고 배워서 큰 광명을 놓았습니다. 강설 : 구반다(鳩槃茶)란 역시 팔부중의 하나다.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다는 귀신으로, 사람의 몸에 머리는 말의 모양을 하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의 부하이다.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화엄회상에서는 “부지런히 걸림이 없는 법문을 닦고 배워서 큰 광명을 놓는다.”라고 그의 수행을 찬탄하였다. 이쯤 되면 화엄회상의 훌륭한 청법대중이리라. (8) 건달바왕 復有無量乾闥婆王하니 所謂持國乾闥婆王과 樹光乾闥婆王과 淨目乾闥婆王과 華冠乾闥婆王과 普音乾闥婆王과 樂搖動妙目乾闥婆王과 妙音獅子幢乾闥婆王과 普放寶光明乾闥婆王과 金剛樹華幢乾闥婆王과 樂普現莊嚴乾闥婆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於大法에 深生信解하야 歡喜愛重하야 勤修不倦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건달바(乾闥婆)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지국(持國) 건달바왕과 수광(樹光) 건달바왕과 정목(淨目) 건달바왕과 화관(華冠) 건달바왕과 보음(普音) 건달바왕과 낙요동묘목(樂搖動妙目) 건달바왕과 묘음사자당(妙音獅子幢) 건달바왕과 보방보광명(普放寶光明) 건달바왕과 금강수화당(金剛樹華幢)건달바왕과 낙보현장엄(樂普現莊嚴) 건달바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큰 법에 깊은 믿음과 이해를 내어서 환희하며 애중(愛重)하게 여겨 부지런히 닦아 게으름이 없었습니다. 강설 : 건달바(乾闥婆)란 번역 하면 심향(尋香)인데 팔부중의 하나다. 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 살며 제석천(帝釋天)의 아악(雅樂)을 맡아보는 신으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香)만 먹으며 공중으로 날아다닌다고 한다. 다른 생업은 없고 음악으로 사는데 다만 여러 집의 음식향기를 맡고는 곧 그 집에 가서 음악을 연주하여 음식을 구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모든 음악 하는 사람들을 건달바라 부른다. “큰 법에 깊은 믿음과 이해를 내어서 환희하며 애중(愛重)하게 여겨 부지런히 닦아 게으름이 없다.”고 하였으니 단순히 음악만 하는 신이 아니다. 음악으로 불법을 크게 돕는 신이다. 화엄회상에 왜 오케스트라가 없겠는가. 4, 욕계천의 이름과 덕행 (1) 월천자 復有無量月天子하니 所謂月天子와 華王髻光明天子와 衆妙淨光明天子와 安樂世間心天子와 樹王眼光明天子와 示現淸淨光天子와 普遊不動光天子와 星宿王自在天子와 淨覺月天子와 大威德光明天子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顯發衆生心寶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월천자(月天子)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월(月) 천자와 화왕계광명(華王髻光明) 천자와 중묘정광명(衆妙淨光明) 천자와 안락세간심(安樂世間心) 천자와 수왕안강명(樹王眼光明) 천자와 시현청정광(示現淸淨光)천자와 보유부동광(普遊不動光) 천자와 성숙왕자재(星宿王自在) 천자와 정각월(淨覺月) 천자와 대위덕광명(大威德光明) 천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중생들의 마음의 보배를 나타내었습니다. 강설 : 월천자(月天子)란 곧 매일매일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다. 하늘이란 자유자재하다는 뜻이며, 광명이 빛난다는 뜻이며,청정하다는 뜻이다. 달이 그와 같은 의미를 다 함유하고 있다. 화엄회상에는 우주만유와 천지만물 유현무형을 다 포함하고 있으므로달이 없을 수 있겠는가. 또 달은 청량하다. 고요하고 휘영청 밝은 밤에 부다가야 보리수나무 밑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도란도란 당신의 본생담이나 제자들의 전생담을 듣는 광경을 그려보라.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화엄회상인가. (2) 일천자 復有無量日天子하니 所謂日天子와 光焰眼天子와 須彌光可畏敬幢天子와 離垢寶莊嚴天子와勇猛不退轉天子와 妙華纓光明天子와 最勝幢光明天子와 寶髻普光明天子와 光明眼天子와持勝德天子와 普光明天子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修習하야 利益衆生하야 增其善根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일천자(日天子)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일(日) 천자와 광염안(光焰眼) 천자와 수미광가외경당(須彌光可畏敬幢) 천자와 이구보장엄(離垢寶莊嚴) 천자와 용맹불퇴전(勇猛不退轉) 천자와 묘화영광명(妙華纓光明) 천자와 최승당광명(最勝幢光明) 천자와 보계보광명(寶髻普光明) 천자와 광명안(光明眼) 천자와 지승덕(持勝德) 천자와 보광명(普光明) 천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닦고 익혀서 중생을 이익하게 하여 선근을 증장하였습니다. 강설 : 일천자(日天子)란 곧 매일 아침에 얼굴을 보이는 저 태양이다. 화엄회상에 저 밝은 태양이 마치 주인공인양 당당하게 비취고 있다. 화엄경의 주불인 법신 비로자나불은 광명변조(光明遍照) 또는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도 한다. 저 태양이 온 우주를 밝게 비치듯이 지혜의 태양인 비로자나불이 아비지옥에서부터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생 모든 생명들을 낱낱이 비춰서 살핀다.따라서 사람 사람의 본래의 부처인 사람법신부처님도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환하게 비췬다.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느끼고 안다. 웃을 일이 있으면 웃을 줄 알고, 울 일이 있으면 울 줄도 안다. 때로는 슬퍼도 하고 때로는 화도 낸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을 줄 아고, 피곤하면 쉴 줄도 안다. 이 얼마나 신통방통한 광명이 변조하는 대일여래인가. 어디 그 뿐인가. 저 산천초목들도 춘하추동 사시절의 운행을 따라 봄이 오면 꽃도 피고 열매를 맺다가 가을이면 붉게 물들어 낙엽이 된다. 그 또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무공용(無功用)의 공용이 아니겠는가. 태양을 법신불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절묘하다 하겠다. (3) 삼십삼천왕 復有無量三十三天王하니 所謂釋迦因陀羅天王과 普稱滿音天王과 慈目寶髻天王과 寶光幢名稱天王과 發生喜樂髻天王과 可愛樂正念天王과 須彌勝音天王과 成就念天王과 可愛樂淨華光天王과 智日眼天王과 自在光明能覺悟天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發起一切世間廣大之業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삼십삼천왕(三十三天王)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석가인다라(釋迦因陀羅) 천왕과 보칭만음(普稱滿音) 천왕과 자목보계(慈目寶髻 ) 천왕과 보광당명칭(寶光幢名稱) 천왕과 발생희락계(發生喜樂髻) 천왕과 가애락정념(可愛樂正念) 천왕과 수미승음(須彌勝音) 천왕과 성취념(成就念) 천왕과 가애락정화광(可愛樂淨華光) 천왕과 지일안(智日眼) 천왕과 자재광명능각오(自在光明能覺悟) 천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일체 세간의 광대한 업을 일으켰습니다. 강설 : 삼십삼천왕(三十三天王)을 도리천이라고도 하는데 육욕천, 십팔천, 무색계 사천(四天)과 일월성수천(日月星宿天), 상교천(常憍天), 지만천(持鬘天), 견수천(堅首天), 제석천(帝釋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또 중앙에 있는 제석천과 사방에 여덟 하늘씩이 있다 하여 삼십삼천이라 한다. 화엄회상에 어찌 천상세계를 빼 놓을 수 있겠는가.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하계와 그 은하계의 숫자와 같이 많은 은하계까지도 모두가 화엄회상에 동참한 청법대중들이다. (4) 수야마천왕 復有無量須夜摩天王하니 所謂善時分天王과 可愛樂光明天王과 無盡慧功德幢天王과 善變化端嚴天王과 總持大光明天王과 不思議智慧天王과 輪臍天王과 光焰天王과 光照天王과 普觀察大名稱天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修習廣大善根하야 心常喜足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수야마(須夜摩) 천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선시분(善時分) 천왕과 가애락광명(可愛樂光明) 천왕과 무진혜공덕당(無盡慧功德幢) 천왕과 선변화단엄(善變華端嚴) 천왕과 총지대광명(總持大光明) 천왕과 부사의지혜(不思議智慧) 천왕과 윤제(輪臍) 천왕과 광염(光焰) 천왕과 광조(光照)천왕과 보관찰대명칭(普觀察大名稱) 천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광대한 선근을 닦고 익혀서 마음이 항상 기쁘고 만족하였습니다. 강설 : 수야마천(須夜摩天)이란 육욕천의 셋째 하늘이다. 밤낮의 구분이 없고 시간에 따라 여러 가지의 환락(歡樂)을 누리는 곳으로, 여기서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200년에 맞먹는다. 염라대왕은 이 하늘이 바뀌어 달라진 것이라고 한다. 역시 화엄회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천상세계들이다. (5) 도솔타천왕 復有不可思議數兜率陀天王하니 所謂知足天王과 喜樂海髻天王과 最勝功德幢天王과寂靜光天王과 可愛樂妙目天王과 寶峯淨月天王과 最勝勇健力天王과 金剛妙光明天王과星宿莊嚴幢天王과 可愛樂莊嚴天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不思議數라 皆勤念持一切諸佛의 所有名號하시니라 다시 또 불가사의한 수의 도솔타(兜率陀) 천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지족(知足) 천왕과 희락해계(喜樂海髻) 천왕과 최승공덕당(最勝功德幢) 천왕과 적정광(寂靜光) 천왕과 가애락묘목(可愛樂妙目) 천왕과 보봉정월(寶峯淨月) 천왕과 최승용건력(最勝勇健力) 천왕과 금강묘광명(金剛妙光明) 천왕과 성숙장엄당(星宿莊嚴幢) 천왕과 가애락장엄(可愛樂莊嚴) 천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불가사의 한 수였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일체 모든 부처님의 명호를 기억해 가지었습니다. 강설 : 도솔천(兜率天)은 지족천(知足天)이라고도 하는데 육욕천의 넷째 하늘이다. 수미산의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되는 곳에 있다. 미륵보살이 사는 곳으로, 내원궁과 외원궁 두 원(院)이 있는데, 내원궁은 미륵보살의 정토며, 외원궁은 천계 대중이 환락하는 장소라고 한다. (6) 화락천왕 復有無量化樂天王하니 所謂善變化天王과 寂靜音光明天王과 變化力光明天王과 莊嚴主天王과 念光天王과最上雲音天王과 衆妙最勝光天王과 妙髻光明天王과 成就喜慧天王과 華光髻天王과 普見十方天王이라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調伏一切衆生하야 令得解脫케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화락(化樂) 천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선변화(善變化) 천왕과 적정음광명(寂靜音光明) 천왕과 변화력광명(變化力光明) 천왕과 장엄주(莊嚴主) 천왕과 염광(念光) 천왕과 최상운음(最上雲音) 천왕과 중묘최승광(衆妙最勝光) 천왕과 묘계광명(妙髻光明) 천왕과 성취희혜(成就喜慧) 천왕과 화광계(華光髻) 천왕과 보견시방(普見十方) 천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일체중생들을 조복해서 해탈을 얻게 하였습니다. 강설 : 화락천(化樂天)은 육욕천(六欲天)의 다섯째 하늘이다. 이 하늘에 나면 모든 대상을 마음대로 변하게[化] 하여 즐겁게[樂] 할 수 있다. (7) 타화자재천왕 復有無數他化自在天王하니 所謂得自在天王과 妙目主天王과 妙冠幢天王과 勇猛慧天王과 妙音句天王과妙光幢天王과寂靜境界門天王과 妙輪莊嚴幢天王과 華蘂慧自在天王과 因陀羅力妙莊嚴光明天王이라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勤修習自在方便廣大法門하시니라 다시 또 수없는 타화자재(他化自在) 천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득자재(得自在) 천왕과 묘목주(妙目主) 천왕과 묘관당(妙冠幢) 천왕과 용맹혜(勇猛慧) 천왕과 묘음구(妙音句) 천왕과 묘광당(妙光幢) 천왕과 적정경계문(寂靜境界門) 천왕과 묘륜장엄당(妙輪莊嚴幢) 천왕과 화예혜자재(華蘂慧自在) 천왕과 인다라력묘장엄광명(因陀羅力妙莊嚴光明) 천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없었습니다. 모두 자재한 방편과 광대한 법문을 부지런히 닦아 익혔습니다. 강설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은 육욕천의 여섯째 하늘이다. 욕계(欲界)에서 가장 높은 하늘로 마왕(魔王)이 살며, 여기에 태어난 이는 다른 이의 즐거움을 자유로이 자기의 즐거움으로 만들어 즐길 수 있다고 한다. 5, 색계천의 이름과 덕행 (1) 대범천왕 復有不可數大梵天王하니 所謂尸棄天王과 慧光天王과 善慧光明天王과 普雲音天王과 觀世言音自在天王과 寂靜光明眼天王과 光徧十方天王과 變化音天王과 光明照耀眼天王과 悅意海音天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不可稱數라 皆具大慈하야 憐愍衆生하며 舒光普照하야 令其快樂케하시니라 다시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범(大梵) 천왕이 있었습니다.이른바 시기(尸棄) 천왕과 혜광(慧光) 천왕과 선혜광명(善慧光明) 천왕과 보운음(普雲音) 천왕과 관세언음자재(觀世言音自在) 천왕과 적정광명안(寂靜光明眼) 천왕과 광변시방(光徧十方) 천왕과 변화음(變化音) 천왕과 광명조요안(光明照耀眼) 천왕과 열의해음(悅意海音) 천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모두 큰 자비를 갖추어서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며, 광명을 널리 비추어서 그들로 하여금 즐겁게 하였습니다. 강설 : 대범천(大梵天)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셋째 하늘이다. 대범천왕이 있으면서 사바세계를 다스린다고 한다. (2) 광음천왕 復有無量光音天王하니 所謂可愛樂光明天王과 淸淨妙光天王과 能自在音天王과 最勝念智天王과 可愛樂淸淨妙音天王과 善思惟音天王과 普音徧照天王과 甚深光音天王과 無垢稱光明天王과 最勝淨光天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皆住廣大寂靜喜樂無礙法門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광음(光音) 천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가애락광명(可愛樂光明) 천왕과 청정묘광(淸淨妙光) 천왕과 능자재음(能自在音) 천왕과 최승념지(最勝念智) 천왕과 가애락청정묘음(可愛樂淸淨妙音) 천왕과 선사유음(善思惟音) 천왕과 보음변조(普音徧照) 천왕과 심심광음(甚深光音) 무구칭광명(無垢稱光明) 천왕과 최승정광(最勝淨光) 천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넓고 크며 고요하고 즐거운 걸림이 없는 법문에 머물었습니다. 강설 : 광음천(光音天) 색계(色界) 이선천(二禪天)의 셋째 하늘이다. 이 하늘의 중생은 자기의 생각과 뜻을 전달할 때 말소리 대신 입에서 맑고 깨끗한 빛을 낸다. 그래서 “넓고 크며 고요하고 즐거운 걸림이 없는 법문에 머문다.” (3) 변정천왕 復有無量徧淨天王하니 所謂淸淨名稱天王과 最勝見天王과 寂靜德天王과 須彌音天王과 淨念眼天王과 可愛樂最勝光照天王과 世間自在主天王과 光焰自在天王과 樂思惟法變化天王과 變化幢天王과 星宿音妙莊嚴天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悉已安住廣大法門하야 於諸世間에 勤作利益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변정(遍淨) 천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청정명칭(淸淨名稱) 천왕과 최승견(最勝見) 천왕과 적정덕(寂靜德) 천왕과 수미음(須彌音) 천왕과 정념안(淨念眼) 천왕과 가애락최승광조(可愛樂最勝光照) 천왕과 세간자재주(世間自在主) 천왕과 광염자재(光焰自在) 천왕과 낙사유법변화(樂思惟法變化) 천왕과 변화당(變化幢) 천왕과 성숙음묘장엄(星宿妙音莊嚴) 천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이미 광대한 법문에 안주해서 모든 세간에 부지런히 이익을 지었습니다. 강설 : 변정천(遍淨天) 색계(色界) 삼선천(三禪天)의 셋째 하늘이다. 이름 그대로 맑고 깨끗함이 두루 가득하다고 한다. 맑고 깨끗함으로서 모든 세간에 부지런히 이익을 준다. (4) 광과천왕 復有無量廣果天王하니 所謂愛樂法光明幢天王과 淸淨莊嚴海天王과 最勝慧光明天王과 自在智慧幢天王과 樂寂靜天王과 普智眼天王과 樂旋慧天王과 善種慧光明天王과 無垢寂靜光天王과 廣大淸淨光天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其數無量하니 莫不皆以寂靜之法으로 而爲宮殿하야 安住其中하시니라 다시 또 한량없는 광과(廣果) 천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애락법광명당(愛樂法光明幢) 천왕과 청정장엄해(淸淨莊嚴海) 천왕과 최승혜광명(最勝慧光明) 천왕과 자재지혜당(自在智慧幢) 천왕과 낙적정(樂寂靜) 천왕과 보지안(普智眼) 천왕과 낙선혜(樂旋慧) 천왕과 선종혜광명(善種慧光明) 천왕과 무구적정광(無垢寂靜光) 천왕과 광대청정광(廣大淸淨光) 천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그 수가 한량이 없었습니다. 모두 적정법(寂靜法)으로 궁전을 삼아서 그 속에 안주하였습니다. 강설 : 광과천(廣果天) 색계(色界) 사선천(四禪天)의 셋째 하늘이다. 인간이 사는 하늘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곳, 가장 고요한 곳이다. 좋은 곳이든 나쁜 곳이든, 좋다 나쁘다는 주관적인 편견일 뿐이다. 무엇에도 걸릴 것이 없는 사사무애(事事無碍)의 화엄의 안목에서는 오직 화엄회상에 동참한 동참자일 뿐이다. (5) 대자재천왕 復有無數大自在天王하니 所謂妙焰海天王과 自在名稱光天王과 淸淨功德眼天王과 可愛樂大慧天王과 不動光自在天王과 妙莊嚴眼天王과 善思惟光明天王과 可愛樂大智天王과 普音莊嚴幢天王과 極精進名稱光天王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不可稱數라 皆勤觀察無相之法하야 所行平等하시니라 다시 또 수없는 대자재(大自在) 천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묘엄해(妙音海) 천왕과 자재명칭광(自在明稱光) 천왕과 청정공덕안(淸淨功德眼) 천왕과 가애락대혜(可愛樂大慧) 천왕과 부동광자재(不動光自在) 천왕과 묘장엄안(妙莊嚴眼) 천왕과 선사유광명(善思惟光明) 천왕과 가애락대지(可愛樂大智) 천왕과 보음장엄당(普音莊嚴幢) 천왕과 극정진명칭광(極精進名稱光) 천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상수가 되어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형상이 없는 법을 관찰해서 행하는 바가 평등하였습니다. 강설 : 대자재천(大自在天)은 마혜수라(摩醯首羅)인데 대천세계를 주재하는 신이다. 눈은 셋, 팔은 여덟이며, 흰 소를 타고 흰 불자(拂子)를 들고 있다. 원래 인도 브라만교에서 만물 창조의 신으로 큰 위엄과 덕망을 지녔다. 또 일념사이에 대천세계의 빗방울의 숫자를 다 헤아려 안다고 한다. 화엄회상에서 혹은 법을 설하기도 하고, 혹은 법을 듣기 위하여 구름처럼 모여온 대중들을 소개하는 내빈(來賓)소개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구체적으로 소개된 이름은 보살대중이 20명, 그 외의 대중이 390명, 모두 410명이다. 이들은 모두 그 부족들의 상수가 되고 그들을 따르는 대중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무량이며, 무수며, 불가칭수며, 불가사의수다. 유형무형의 우주 삼라만상과 천지만물이 모두가 화엄대중들이다. 그러므로 우주 삼라만상은 곧 화엄경이며, 화엄경은 곧 우주 삼라만상이 되는 샘이다. 여기까지가 화엄경 80권중 제 1권이다. “부처님이 보리도량에서 비로소 정각을 이루고 나니 그 땅이 견고하여다이아몬드로 이루어 졌더라.”라는 이야기로부터 땅의 장엄과 보리수의 장엄과 궁전의 장엄과 사자좌의 장엄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세존의 불가사의 덕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다음으로는 위에서 장황하게 소개한 410명의 운집대중들의 명단을 열거하여 화엄경 제 1권을 마친 것이다. 법을 듣는 대중들이 다른 경전에서는 1천 2백 명이거나 많아야 1만 8천 명 정도다. 청법대중으로서 화엄경의 깊이와 높이와 그 규모를 가늠하면서 공부에 임해야 할 것이다. (제 1권 종) |
첫댓글
화엄경(華嚴經)의 온전한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인도의 말로는<마하 바이프라 붓다 간다 뷰하 수트라
(Maha大
Vaiplya方廣
Buddha佛
Ganda華
Vyuha嚴
sutra經,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漢譯)
불교의 모든 경전은 처음에 인도의 문자인 산스크리트어나 빨리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경전도 함께 들어와서 중국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공부하려는 80권 본 화엄경은 나라 때 실차난타(實叉難陀,652~710)라는 스님이 번역한 것이다.
실차난타 스님은 당시우전국(于闐國), 지금의 중국 서역 신강성의 호탄[和田]지방 출신이다.
스님은 서기695년에 화엄경의 산스크리트 본을 낙양으로 가져다가
남인도 출신인 보리유지(菩提流志,?~725스님과
인도를 구법(求法)여행하고 돌아온 의정(義淨,635~713) 스님 등과 함께
신역(新譯)화엄경 80권을 완역하였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설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을 설명하는 것이다.
제 1회 6품은 보현보살이 위주가 되어 설명하고 있다.
그 6품의 이름은
제1 세주묘엄품,
제2 여래현상품,
제3 보현삼매품,
제4 세계성취품,
제5 화장세계품,
제6 비로자나품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화엄경 약찬게(略纂偈)에서는
육육육사급여삼(六六六四及與三)
일십일일역부일(一十一一亦復一)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것이다.
제 1회에 보리도량에서 6품,
제 2회에 보광명전에서 6품,
제 3회에 도리천궁에서 6품,
제 4회에 야마천궁에서 4품,
제 5회에 도솔천궁에서 3품,
제 6회에 타화자재천궁에서 1품,
제 7회에 보광명전에서 11품,
제 8회에 보광명전에서 1품,
제 9회에 급고독원에서 1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