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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1:1~10 재림을 염두에 둔 교회서신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종말론의 서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마치 노래 후렴구같이, 주의 강림을 계속 주기적으로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후서를 통틀어 거의 7~8번 나오는데, 그 이유는 바울이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 왔을 때, 지진을 경험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역사는 초자연적인 것으로, 바울이라고 지진으로 감옥이 흔들리고 열릴 줄 누가 알았겠나.
행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어느날 집에서 앉아있는데, 갑자기 어지러웠는데, 지진이 난 것을 알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진은 갑자기 난다. 그곳은 서울에서 한 참 떨어진 지역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때 느낀 것은 사람이 죽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티비에서 보듯이 직간접적으로 보는 지진이나 자연재해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순식간에 갑자기 초토화가 된다. 그러므로 바울이 빌립보감옥에서 그런 경험을 한 뒤, 빌립보 다음 지역인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전도할 때, 복음의 내용에 심판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바울이 유난히 주의 강림을 후렴구처럼 강조할 이유가 없다.
‘데살로니가’는 헬라의 군주 알렉산더왕의 이복누이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마게도냐의 가장 큰 성이며, 마게도냐의 수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헬라의 수도 큰 성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바울은 일전에 빌립보에서 겪었던 지진이 연상되었고, 또한 그것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말세의 심판을 떠오르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데살로니가 사역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초림하셨을 때는 죄인의 화목제물로 대속물로 오셔서, 아무 저항없이 죽는 어린양처럼 죽으셨는데, 그러나 재림하실 때는 그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이 성경에 예언이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대망하던 다윗과 같은 군왕으로, 출애굽의 때처럼 구원과 심판이 분명하게 가려지는 때이다. 왜냐하면 모든 죄의 역사를 최종적으로 끝내시는 때이기 때문이다. 아담으로부터 심판의 때까지 죄의 역사는 계속되어 왔다. 왜냐하면 죄는 모세의 말대로, 아버지로부터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죄의 역사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렇지 않은가. 작은 죄로부터 이단에 이르기까지 기술은 발전할지 몰라도, 죄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새 것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응도 계속된다. 이는 십계명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하다.
출20:5~6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가끔 어떤 것은 하나님이 멈추게 하시지 않으면 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오경이나 계시록을 보면,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도 점점 강해져서 7배의 7배의 7배가 더해진다. 그런데 아담으로부터 태어나면서 사람은 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심판에 있어서 오십보 백보이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죄로 파산할 수밖에 없는 인간, 죄로 인한 균열을 멈출 수 없는 인간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사 자신의 아들을 보내어 화목제물로 삼으시고, 그를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이다.
롬5:17~19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3주 정도밖에 머물지 못했는데, 동족 유대인들의 시기심 때문에 둘러싸여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였으나, 형제들이 베뢰아로 밤에 보내었다. 이 때 바울을 돕던 야손과 형제들이 갇혔는데, 보석금을 받고 풀려나게 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베뢰아를 거쳐 아덴 곧 아테네로 건너가 아레오바고에서 설교를 하고, 고린도 지역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또 엄청난 반대에 부딪쳤으나, 하나님의 후원을 받고, 다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유는 이곳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다.
행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그런데 고린도에 올 때, 이미 바울은 초신자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므로 디모데를 아덴에서부터 보냈었고,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가 굳게 섰다는 기쁜 소식을 들고 왔을 때, 바울도 안심을 한 것 같다. 그럼에도 서신을 보내어 초신자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를 도왔다. 그런데 바울은 일전의 빌립보에서의 지진의 경험 때문인지, 또는 고린도지역에서의 강력한 대적 때문인지, 바울은 데살로니가 서신에서 심판 곧 주의 강림을 염두에 둔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 오실 때 도둑같이 오신다고 하였으므로,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처럼,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주의 강림을 염두에 두고 거룩한 삶 경건한 삶을 준비하여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구원받기를 기원하고 있다. 바울은 칭의에 근거하여 살되 영육혼이 온전하게 보전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칭의에 근거하더라도 거룩하게 살지 못하면, 영은 모르나 육과 혼이 마귀에게 넘어갈 수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생활을 강조한다.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바울이 인사할 때 첫 인사와 끝 인사가 거의 은혜와 평강이다. 대부분 교회 이름이 은혜 또는 평강이 제일 많은 이유는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갔을 때, 형제들이 바울을 숨겨주었는데, 야손의 집에 있었고 이들은 폭동에 폭동으로 대항하기 보다는 인내하며 주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것을 기도 때마다 기억한다고 말한다.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 복음은 ‘말’ 뿐만 아니라, ‘능력’, ‘성령’, ‘확신’으로 전한다.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교회에 소문이 났는데, 믿음의 본이 되었다고 한다.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 데살로니가 교회는 다른 교회들에게 칭찬의 대상이 되었는데, 곧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주의 심판 때 곧 강림하실 때를 두고 생활하는 자의 모델 모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장래의 노하심이란, 지진같이 갑작스럽게 오는 주의 최후 심판을 말한다. 그때를 두고 예수님은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는데,
마24:37~44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지막에 오시는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과는 정반대의 모습인데, 사도요한도 그 실체를 보고 기절하였다.
계1:13~18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인간은 소우주인데, 하나님을 알게 모르게 닮아있다. 아무튼 사람이 만든 작은 세계 곧 컴퓨터도 바이러스로 먹통이 되면, 운영자가 중요한 것을 백업하고, 싹 밀어버리듯이, 마지막 때 예수님은 군왕으로서 하나님께서 만든 세계에서 백업한 모든 사람을 부활시켜, 절구통에서 타작하듯이, 또는 포도즙틀에서 포도알을 밟듯이, 세상을 곧 죄의 역사를 으깨버리는 심판을 하신다.
계19:11~16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이는 마치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애굽왕과 군사들이 몽땅 홍해에 수장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계20:11~15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그 때 땅의 큰 성, 바벨론성은 포도즙틀이 되어 심판을 받게 되는데, 하늘의 모임이 그 심판을 참된 것이라고 말한다.
계19:1~2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두려운 것은 복음서를 볼 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같이 먹고 마시며 가르침을 받은 자라도 행악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최후 심판으로 죄의 역사가 끝나면, 비로소 부활한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새하늘과 새 땅에 내려와 땅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을 바라보며, 예수를 믿고 회개하는 삶이 가장 확실한 삶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주의 재림에 초점을 두고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