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민낯 - 성형수술 타인의 눈으로 나를 조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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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09.15. 17:01조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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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민낯
성형수술
타인의 눈으로 나를 조각하다
요약 상해 또는 선천적 기형으로 인한 인체의 변형이나 미관상 보기 흉한 신체의 부분을 외과적으로 교정·회복시키는 수술
왜곡된 미용성형에 대한 인식
치료와 시술은 질환을 전제로 한다. 정상과는 다른 어떤 징후가 있을 때 의사는 이를 진찰하고 투약으로 그치지 않을 경우 수술을 한다. 그러나 모든 이를 수술이 필요한 병자로 간주하는 의학 분과가 있으니 바로…… 성형외과다.
3D 얼굴 모델링
이 특별한 병원도 처음에는 상처입은 사람들의 외관을 치료하고 복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점차 미용성형이라는 수술이 나타나더니 이상적이지 못한 육체를 질환으로 간주하고 모든 이를 환자로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일정한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졸지에 외과적 시술이 필요한 병자가 된 것이다. 낮은 코, 두꺼운 눈꺼풀, 사각 턱, 빈약한 가슴 등은 질병으로 여겨지고 의사의 손에 의해 ‘치료’된다.
성형수술이 유행하는 이유 : "채용시 외모를 고려"
취업 면접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렇게 자발적인 환자가 되려 하는 것일까? 취업예비자 중 98%는 외모가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기업의 인사담당자 94%도 채용 시 “외모를 고려한다”고 밝혔다. 채용뿐 아니라 취업 이후의 업무 평가에도 외모가 영향을 준다는 답변이 85%였다.
성형수술 유행 이유 : 외모도 경쟁력
이런 공포는 성형수술 붐으로 이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형을 한 연예인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성형이 일반화된 지금은 연예인 스스로가 성형 사실을 밝힐 정도로 거리낌이 줄어들었다. 멀쩡한 얼굴을 수술로 고친 이들을 향한 비난보다는 필요하면 성형을 해서라도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식의 태도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성형수술 : 명예를 재건하는 수술
공식적으로 최초의 성형수술을 받은 인물은 ‘월터 여’로 기록돼 있다. 1차 대전 참전 군인이었던 그는 미사일에 의해 눈꺼풀과 눈 주위 피부를 모두 잃게 되었으나 1917년 8월 8일 “성형수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해럴드 길리스에 의해 피부이식 수술을 받아 새 얼굴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성형수술을 받은 ‘월터 여’
현재의 성형수술처럼 깔끔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 당시 전쟁 부상으로 괴로워하고 있던 이들에게 이는 축복과 같았다. 최초의 성형수술 이후 월터 여와 같은 부상을 안고 있던 많은 군인들이 해럴드 길리스 박사를 찾게 되었고, 그는 총 5천 명의 부상자들에게 새 얼굴을 만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 Daily Telegraph, Pictures of first person to undergo plastic surgery released, 28 August 2008]
그러나 이것은 공인된 외과의사에 의해 이루어진 첫 성형수술이기에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았을 뿐이고, 성형수술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행해져 왔다. 기원전 800년 인도에서는 행실이 나쁜 여자와 범죄자들은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당신의 코를 만들어줄 테니 돈을 내시오.”
“저 자의 코를 베어 평생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게 만들라!”
코가 잘려나간 이는 언제 어디로 가든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드러내게 되었다. 본거지를 떠나 이동을 해도 코로 인해 배척받는 삶을 살았다. 얼굴에 새겨진 처참한 죄의 낙인. 그들에게 새 삶이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수스트라’라는 의사가 이들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당신의 코를 만들어줄 테니 돈을 내시오.”
새 삶을 시작하게 해주는 성형수술
코를 상실함으로써 명예를 잃게 된 이들에게 이를 되찾아주는 수술, 코를 재건한다는 것은 그저 미학적인 이유만이 아니었다. 죄의 낙인을 없애주고 새 삶을 시작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것은 면죄부와도 같았다.
마취 기술이 없던 때라 이런 시술을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그러나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환자들은 고문과 같은 고통과 상상을 초월하는 수술 비용을 기꺼이 참아냈다.
이집트와 인도의 성형수술 : 명예를 재건, 높이기
스핑크스
사자의 몸뚱이에 사람의 머리를 가진 동물로 왕권의 상징한다.
같은 시기 이집트에서도 성형수술이 행해졌다. 왕이 죽은 후에 만들어지는 미라는 왕이 생전에 한 주문에 따라 성형을 했다. 인도에서의 성형수술이 잃어버린 명예를 재건하는 것이라면 이집트는 기존의 명예를 더더욱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로마의 성형수술 : 검투사들의 흉터를 지우다
이집트의 노하우는 이후 알렉산드리아와 로마까지 이어진다. 로마의 검투 열기는 성형수술에 큰 수요를 제공했다. 결투를 통해 상처를 입은 전사들은 알렉산드리아 출신 의사에게 수술을 받았다. 대부분 흉터를 지우는 수술이었다.
4세기 로마시대 헬멧
등에 난 상처는 도망가다 입은 상처이기에 비열함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이를 부끄러워한 전사는 의사에게 치욕을 지워줄 것을 부탁했다. 용맹한 검투사들도 싸움이 끝난 후에는 실패의 상처를 수술로 지웠다.
중세 : 성형수술의 암흑기
용맹한 검투사들도 싸움이 끝난 뒤에는 실패의 상처를 수술로 지웠다.
로마 멸망 이후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게 되고 그전까지 발전을 거듭해 왔던 성형수술은 암흑기를 겪게 된다.
“신이 만든 육체를 인간의 손으로 변형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기독교가 사회와 문화를 지배하던 시기에 성형수술이 탄압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의 몸을 해부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중세를 겪으면서도 정교하게 발전하던 성형수술은 점차 사라질 것 같았다.
매독의 말기 증상, 코 녹아내리기
타글리아코치
그러던 중 15세기 이탈리아에 프랑스 병사들이 쳐들어온 후 다시 성형수술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혈기왕성한 프랑스인들의 겁탈로 전 유럽에 매독이 급속하게 퍼졌던 것이다. 매독의 말기 증상은 다름 아닌 ‘코가 녹아내리는 현상’이었다.
당시 의사이던 ‘타글리아코치’는 환자들의 코를 고치기 위해 조사를 하다 고대 인도의 코 재건법에 닿게 된다. 침략 행위로 인한 후유증으로 앓고 있던 많은 이들은 몇 세기를 건너뛴 과거의 방법으로 시술을 받는다. 교회에서는 이를 강력히 반대했지만 타글리아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운명에 의해 파괴된 부분을 복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것입니다.”
시술은 강행되었고 교회는 그를 파문했다. 그러고도 성이 풀리지 않는지 사후에 무덤을 파내 시체를 훼손하는 보복까지 했다.
위험한 도박, 성형수술
1차 대전 이후 공인된 첫 성형수술은(1917년) 2천 년 전 인도에서 행해진 성형수술과 수준 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뭘 고쳐보려고 하면 사람들이 자꾸 죽어버리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어.”
1918년 외과수술 장면
세균의 존재도 모르던 시절, 외과수술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처벌의 낙인을 지우고 새 삶을 살기 위해 코를 만들고, 전쟁의 기억이 새겨진 얼굴을 바꾸고 싶어서 피부 이식을 하는 등 필사적인 동기가 있지 않고서야 성형수술은 시도되지 않았다.
페니실린으로 재건 성형술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다
페니실린을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
그러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대전이 시작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바로 페니실린이 발명된 것. 전장에 투입됐던 군의관들은 페니실린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재건 성형술도 군의관들에 의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이전의 투박함을 떨쳐내고 정교함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유래 없는 호황을 통해 많은 부를 차지하게 된 미국인들은 어떤 희망을 품게 된다.
“신은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데 쩨쩨하지만 외과의사의 칼날은 그걸 쉽게 내줄 수 있지.”
여피족이 성형에 관심을 갖다
1960년대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한 부류, 전쟁과 대공황을 겪지 않은 채 풍요롭게 자라난 그들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집단으로 자리 잡는다. 젊고(young) 도시적이고(urban) 전문성을 갖춘(professional) 그들은 여피족(Yuppies)이라고 불렸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4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고 관리자급 이상의 직책을 가지고 있던 이들의 숫자는 4,600만 명가량이었다.
여피족(Yuppies)
젊고(young), 도시적이고(urban), 전문성을 갖춘(professional) 사람들
여피들은 자신들이 엘리트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차려입고 좋은 차를 타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성형수술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81년, 미국에서 지방흡입술을 받은 자는 1천 명에 불과했으나 1989년에는 25만 명이 지방흡입술을 받았다. 그들에게 성형이란 단지 좀 더 아름다워지는 수단만이 아니었다.
미용성형이 붐을 이루다
“나 돈 많아. 뭐든지 살 수 있어. 심지어 얼굴까지도.”
대중화되지 않았기에 비싼 성형수술은 ‘비싸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끌었다. 성형수술은 여피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작용했고 이들에 의해 미용성형은 큰 붐을 이루게 된다.
성형의 의미 : 신체에 자기결정권을 부여하다
성형은 신체에 자기결정권을 부여해 주었다.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외모를 부정하고 스스로 원하는 육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 또 다른 해방일 수도 있다. 혹자는 성형을 “칼을 사용하는 정신의학”이라고도 부른다.
2009년까지 전 세계 3만여 명의 성형외과 의사들이 1,729만 5,557번의 수술을 치러냈다. 그 수술을 받은 이들은 꿈꾸던 결과를 얻어냈을까?
육체를 개조하는 행위로 자기결정권은 상실
호감과 경쟁력을 얻기 위한 성형은 타인의 욕망을 반영한다. 그리고 타인의 욕망에 따라 자신의 육체를 개조하는 행위를 통해 자기결정권은 역으로 상실된다. 피그말리온이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면 성형수술을 통해 생명 있는 육체는 조각으로 변질된다. 그것도 스스로를 투영한 조각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반영한 조각으로.
성형수술을 하는 동기
우리나라 의료사고 중 성형수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3.8%에서 2007년 7.1%로 2.5배 상승했다. 고통과 위험을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2009년 한국에서는 총 65만 9,213건의 성형수술이 이루어졌다. 과연 무엇을 획득하기 위해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겉모습을 바꾸는 것일까?
성형수술을 하는 동기는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향상 의지보다 남들의 시선이 주는 공포에서 나온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처벌을 받거나 전쟁으로 부상을 입은 이들이 느끼던 공포를 지금은 모든 이들이 느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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