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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설가의 방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내사랑 바우덕이
방영주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결에 잘도 떠나간다.
바우덕이(본명 金岩德)는 이곳 청룡리 불당골에서 자라 기예를 닦고 닦았으니 모름지기 신기의 경지에 이르러 온 나라안의 어디이고 다니면서 펼친 벅구·사당춤·줄타기 등은 그 재주가 너무나 뛰어나 모르는 이가 없이 유명하였노라. 조선조 고종 을축년 四월 경복궁 중건 때 떨친 재주로 인하여 석정동 농악대가 흥선 대원군으로부터 옥관자를 하사 받았으니 그 당시 안성 지방의 예능을 주도했던 바우덕이(필자 주; 이 부분은 아무래도 과장인 듯 싶다. 고종 을축년이면 바우덕이가 1865년에 대원군으로부터 옥관자를 하사 받았다는 말이 된다. 현재 잔류하고 있는 안성 남사당패의 증언이나 안성 남사당패에 대한 기록 등에 의하면, 바우덕이는 1920년대 초 개다리패 유지에 공헌한 윤치덕이 죽자, 그녀의 나이 열 다섯에 꼭두쇠가 됐고, 스물 셋에 운명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920년대의 첫해로 잡아도, 바우덕이가 출생한 해는 1905년이 될 터이다. 바우덕이는 물론 그 8년 뒤인 1928년에 타계한 것이 된다.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대원군으로부터 옥관자를 하사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누군가가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명인 바우덕이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허구가 되어 버린다.)의 공로에서 비롯된 게 아니던가. 이제 그의 얼을 이어받아 안성 남사당이 제三十회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니 영광이로다. 그의 넋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여기에 이 비를 세우노라.
- 바우덕이 묘비명에서
청룡사는 차령산맥의 주봉인 서운산(574m) 발치께에 있다. 이 절은 고려 원종에 창건되고 고려 공민왕 때, 그리고 조선 후기에 중건된 건물이다. 이는 다포계(多包系)의 팔작(八作) 집인데, 공포(拱包)는 안팎이 다 삼출목(三出木)으로 되어 있고, 앞면은 겹처마이며 뒷면은 홑처마이다. 국보 대웅전의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내부가구(內部架構)가 다 드러나 있고, 측면의 기둥에서 대들보 위에 걸쳐지는 충량(衝樑)이 3개씩 있어, 다른 절과는 좀 특이하다. 경내에는 전설을 간직한 3층 석탑, 청동종 등도 있다. 또한 절 밖으로 좀 떨어진 곳에는 석축(石築)의 대지(臺地) 위에 10기의 부조가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것들은 화려하면서도 우아하다. 이런 저런 것들로 미루어 청룡사는 그저 어디서나 접하는 범상한 절이 아님을 누구나 단박에 알 수 있다.
남사당패의 은거지인 청룡리 불당골에도 봄은 찾아왔다. 서운산 기슭에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움을 틔우고 있었다. 얼어붙었던 청룡 저수지는 맑은 물로 출렁였다. 찬바람 속에 이따금 훈풍이 감돌기도 했다. 바야흐로 만물이 용트림을 시작하고 있었다. 지난 해 겨울, 후조처럼 불당골을 찾아 들었던 바우덕이 남사당패는, 이제 슬슬 신명을 풀러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참으로 지겹고도 긴 겨울이었다. 농한기라 공연을 할 수 없는 이들 남사당패에게는 더욱 그랬다. 일제의 노골화된 경제 수탈로 한국의 전역은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었다. 농촌이 더 심했다. 먹을 레야 먹을 게 없고 입을 레야 입을 게 없어, 산야나 노천에 쓰러져 죽어 가는 자가 매년 수만에 이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남사당패는 제각기 흩어져 유랑 걸식을 하다 봄이 되어야 약속한 장소로 모여들었다. 바우덕이 남사당패는 그래도 상황이 좀 나은 편이었다. 모두 바우덕이의 재주와 수완 때문이었다. 그들은 비축해 놓은 양식과 돈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그들은 비록 죽사발을 빨았지만, 바우덕이 덕분에 이 겨울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것만도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은거를 하는 동안 그 좋은 목소리와 재주가 다 녹이 슬 지경이었다. 그래서 뜬쇠(先任子)들은 개인기가 부족한 가열(어느 한 부분의 재주를 익힌 사람)들이나 삐리(초입자)들에게 기예나 선소리 등을 가르쳤다. 이제 그 길고 긴 동면이 끝난 거였다. 오늘부터 놀이판이 시작될 거였다. 우선 단원들 대부분의 고향인 안성에서 한 번 흐드러지게 판을 벌인 다음, 장호원, 충주를 거쳐 청주로 갈 셈이었다. 어제 저녁이었다. 단원들은 이미 꼭두쇠 바우덕이의 명에 따라 짐을 챙겨 놓았던 것이다.
남사당패는 순박한 민중들로부터는 언제나 환영을 받았다. 그렇다 하여 그들이 아무 마을이나 함부로 출입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지배 계층의 혐오와 경계의 대상이었던 때문이다. 두레가 있는 시기에는 반드시 그 마을의 두레기가 들판에서 나부꼈다. 지나던 남사당패는 그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서 그들의 영기를 흔들며 신명지게 풍물을 울리고 온갖 재주를 보여줬다. 이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남사당패를 끌어들이고 싶으면 두레기를 흔들어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들이 가는 곳은 언제나 두레기가 영기를 향해 절을 했다. 대원군 때, 바로 옥관자를 하사 받은 영기였었던 때문이다. 그들은 의기도 양양하게 길군악을 울리며 마을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들은 놀이판으로 잡은 마당에 횃불을 켰다. 풍물잽이들이 단악가락을 울리며 마을을 돌았다. 길놀이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 큰 행렬을 이뤘다. 그들은 주인과 객이 없었다. 모두 흥이 나 있었다. 한편 놀이판에는 줄타기의 줄이 매어지고, 꼭두각시놀음의 포장막과 버나·살판·덧뵈기 등을 연회할 멍석이 대 여섯 장 깔렸다. 여기서 풍물(농악), 버나(대접 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놀음)를 신명지게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에서 새벽까지는 이 세상은 완전히 거기에 모인 사람들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단원들은 기분이 들떠 어깻짓이 절로 났다. 모두 죽었다가 소생하는 기분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바우덕이는 젖을 물린 아들만을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는 거였다.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강덕구는 바우덕이의 그런 모습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읽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뭔가를 획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강덕구는 그녀와 15년 이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한 것이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만 봐도, 무슨 생각을 머리에 담고 있나,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본 여자이기도 했다. 어쩌다 그녀에게 큰 실수를 한 적도 있었다. 재작년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등에 식은땀이 고였다.
강덕구는 바우덕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가 사납게 번쩍거렸다. 오뚝한 코밑으로 도톰하고 작은 입술은 꽉 다물어져 보조개가 깊이 파였다. 그는 새삼스런 눈으로 그녀의 위아래를 훑었다. 바우덕이는 모든 게 길쭉길쭉하여 시원스러웠다. 그런 모습은 어떻게 보면 가냘파 보이기도 했다. 춘풍에 하늘거리는 능수버들과도 같았다. 저런 가녀린 여자가 어떻게 쇳소리 하나로 50여명이나 되는 행중에게 오금을 못 펴게 한단 말인가? 기실은, 자신 역시도 그런 편이었다. 그녀의 저고리 깃 사이로 하얗게 부풀은 살덩이가 슬쩍 보였다. 그는 오금이 저려 왔다.
"아, 바우덕이……."
강덕구에게 바우덕이는 딸 같은 여자였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를 돌봤다. 나이 차가 20년 이상이나 났기 때문이었다. 어느 사이 그녀는 그야말로, 꽃처럼 아름다운, 방년(芳年)의 처녀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이제 자신은 이 남사당 조직의 어름산이(줄꾼 중의 우두머리) 뜬쇠(각 연회 부분의 선임자)겸 기획을 담당한 화주로, 한참 여자를 알 40대의 건장한 남자였다.
남사당패는 숫동모(男)와 암동모(女)라는 이름으로 남색조직(男色組織)을 가지고 있었다. 여장(女裝)을 한 암동모는 초입자 삐리들이 담당했다. 강덕구는 어려 부드러운 삐리의 살을 바우덕이의 그것으로 상상하며 밤새 정염을 불태웠다. 삐리의 허벅지 사이에 정액을 울컥울컥 토해 내기도 했다.
강덕구는 행중에서 떨어져 혼자 잠자리에 들었다. 밤이 점점 깊어 가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치락거렸다. 어디선가 소쩍새가 짝을 부르며 울었다. 심회가 쓸쓸했다. 며칠 전, 나주에서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바우덕이는 밤에 만석꾼 김 초시의 침소에 들었다. 화려하고 환상적이랄 수 있는 그녀의 젊으나 젊은 몸이, 후줄근한 늙은이의 밑에서 유린당했다는 생각을 하자, 강덕구의 속에서 불덩이가 치밀어 올랐다.
강덕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드디어 바우덕이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자고 결심했다. 그런데 바우덕이는 자신의 단원과는 누구와도 절대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 남자들 사이의 절세가인이며 홍일점인 그녀에게 모두 군침을 흘렸지만, 아무도 그녀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 모두 남색(男色)으로만 만족해야 했다.
강덕구는 달빛을 받으며 바우덕이의 침소로 숨어들었다. 등잔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녀의 허연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 속옷의 터진 부분으로 거뭇한 것이 보였다. 거웃은 짙게 윤이 났다. 상당히 도발적이었다. 강덕구는 이성을 잃었다. 그는 달려들었다. 바우덕이는 깜짝 놀라 깼다. 바우덕이가 요 밑에서 비수를 꺼내 자신의 목에 겨눴다.
"날 어떻게 하면 찌를 거야!"
강덕구는 혼비백산하여 뒤로 물러섰다. 무안하고 창피했다. 분노도 치밀었다. 바우덕이를 향한 건지, 김 초시를 향한 건지, 아니면 자신을 향한 건지 모를 그런 거였다. 강덕구는 볼이 부어 쌍소리를 내뱉었다.
"제미럴, 아무나 막 주면서!"
바우덕이는 쨍 쇳소리를 냈다.
"아무나가, 아니지!"
"그럼 뭐야? 어제도 나주 김 초시라는 늙은이한테 몸을 맡기고서."
순간 바우덕이의 눈에 물기가 반짝했다.
"어름산이도 알다시피 행중을 위해 그랬던 거잖아? 곰뱅이(許可)를 틀고 노자라도 두둑이 얻으려면 할 수 없는 일 아냐? 난 꼭두쇠야. 행중의 목줄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란 말이야."
"네미럴 그렇다고, 내가 안될 게 또 뭐야?"
바우덕이의 눈에 맺혔던 물방울이 하얀 볼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그녀는 목청을 가다듬어 부드럽게 말했다.
"나도 당신이 싫진 않아. 아니, 당신뿐만이 아냐. 내가 거느린 모든 사람들이 그래.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 모두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어. 몸보시를 한다는 생각으로 말야. 사내들끼리 그러는 모습을 보면 나도 안타까울 때가 많아."
"헌데?"
"남정네들은 못된 버릇이 있어. 독점하려고 하는 것 말이야. 결국에 우리 남사당패는 어떻게 되겠어?"
"얼널널, 네기럴꺼! 주면 주고 말면 말지 뭔 새소리야. 아무튼 난, 여기를 떠나겠어. 치마 밑에는 못 있겠다고.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른 패거리에 합류하거나, 내가 남사당패를 하나 조직하겠어."
"앞장 서 나를 꼭두쇠로 추천할 때는 언제고?"
"……."
강덕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바우덕이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흘렀다. 그녀는 남자만의 세계인 이 남사당패에 하나뿐인 여자였다. 그녀는 출생지나, 출생일, 부모의 이름을 몰랐다. 그녀가 다섯 살인가 됐을 때였다. 홀아비인 그녀의 아버지는 신병(神病)에 걸려 있었다. 마을에서 남사당패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무슨 계시처럼 그녀에게 불쑥 '저 남사당패를 따라가라' 하고는 운명을 했다. 그래서 바우덕이는 남사당패가 된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바우덕이의 재주는 출중했다. 그녀는 사내들 틈에서 선소리, 줄타기, 새미(舞童) 등을 배워 2년 뒤부터는 남사당패의 한 사람으로서 당당히 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그 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여 신기에 가까운 경지로 접어들었다. 8도를 누비며 떠돌던 안성패 남사당은, 바우덕이 덕택에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어디를 가나 안성 남사당패가 외면을 당하는 곳은 없었다. 바우덕이가 열 다섯이 되던 해였다. 그때까지 안성패의 윤치덕(일명 개다리)이 죽게 되자, 새 꼭두쇠를 정하는데 뜬쇠들의 이론이 분분했다. 강덕구는 다른 뜬쇠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바우덕이를 꼭두쇠로 삼아 그녀의 인기를 이용하자는 거였다. 다른 뜬쇠들도 강덕구의 의견에 찬성을 했다. 그렇게 하여 이 남사당패에 첫 여자 꼭두쇠가 탄생된 것이었다. 바우덕이는 윤치덕이 이끌 때보다 더 많이 편안한 잠자리를 얻어냈다. 놀 자리를 곰뱅이 트는 데도 남다른 수완이 있었다. 이때부터 안성패 남사당은 어느덧 바우덕이패로 이름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덕은 한편 강덕구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우덕이는 그것을 지적하고 있는 거였다. 그녀는 이윽고 강덕구의 손을 잡았다.
"이러지 마…… 나를 보좌해야 하는 화주인 당신마저 이러면 어떻게 해…… 난, 당신이 정말 좋아…… 하지만……."
"썩을 녀은…… 웃기고 있네에……."
강덕구는 등을 돌렸다. 조금 뒤였다. 그의 뒤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날, 정말 갖고 싶어?"
강덕구는 뒤를 돌아봤다. 그는 기겁을 했다. 바우덕이가 알몸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에 화석이 되어, 강덕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붙박여 버렸다. 거기에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어떤 위엄마저 서려 있었다. 바우덕이가 그를 향해 한 발작 한 발작 다가갔다. 강덕구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이제 그는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 나이에 무슨 주책인가 싶었다.
다음 날이었다. 강덕구가 줄을 탈 때였다. 바우덕이는 다시 누군가에 팔려 가고 있었다. 그는 주색잡기에 이골이 난 한량으로 보였다. 안타까운 눈초리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덕구는 실족을 했다. 땅에 떨어진 그는 허리를 크게 다쳤다. 바우덕이는 잡힌 손을 뿌리치고 내처 달려왔다.
강덕구는 오랫동안 앓았다. 바우덕이는 '모두 자신의 탓'이라며 그의 곁에 붙어 살뜰히 간호했다. 강덕구는 그 후로부터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신경 어디엔가 잘못되었는지 발기도 되지 않았다.
강덕구는 이마에 솟은 땀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았다. 그는 곰방대에 살담배를 재우며 바우덕이 쪽을 다시 보았다. 역시 예뻤다. 아이를 난 그녀는 이제 제법, 농밀한 여자의 냄새까지 풍겼다. 강덕구는 입맛을 쩝 다시며 쓸데없는 생각은 말자고 속다짐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한 거였다. 더구나 이제는 사내 구실도 할 수 없는 자신이었다. 바우덕이의 품에 안긴 아이가 칭얼거리고 있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다. 며칠 전에 유명을 달리한 거였다. 바우덕이는 많은 남자와 관계를 했음에도, 무슨 비법이라도 나름대로 터득하고 있었던지, 임신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었다. 최윤길이라는 사내와 였다.
안성군의 원곡면과 양성면에서 대규모 3·1운동이 있었다. 서울 탑골 공원에서 그 운동이 시작된 지, 꼭 한 달 후인 4월 1일이었다. 시위대는 무려 2000을 넘었다. 그들은 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 등을 파괴하고 불을 질렀다. 그들은 철도와 전선까지 절단하며 조직적으로 일제와 항전했다. 그들은 또 안성에 살고 있던 모든 왜인들을 내쫓으려 하였다. 일제는 많은 경찰과 군인을 투입하였다. 시위대는 열세였다. 그들은 일제의 수많은 총검 앞에서 무력했다. 일제의 군경은 결국 시위대를 진압하고 주모자와 동참자를 색출했다. 수백의 주민이 끌려갔다. 그들의 대부분은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었다. 반면 그들은 안성을 항일 정신이 강한 군민으로 성숙시켜 놓았던 것이다. 이 시위대를 뒤에서 배후 조종한 사람은 최윤길이었다. 그는 서울에 있는 독립단 본부 주요 요인 중의 하나였다. 그는 일경을 피해 다니다 남사당패를 가장하고 바우덕이패에 한동안 숨어 있었다. 강덕구가 보기에 바우덕이와 최윤길은 심상치 않은 관계인 것 같았다. 강덕구는 가끔 질투 비슷한 것이 불쑥불쑥 치밀곤 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또 한번 그녀 앞에서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기로 한 자신이었다. 오히려 남들의 눈을 피하도록 그들을 감싸주었다. 바우덕이는 최윤길을 만나면서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았다. 항상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고 시쳇말로 좀 유식해진 것이었다. 언행의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바우덕이는 배가 불러 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따금 임산부 특유의 만족스런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러니까 최윤길은, 처음으로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바우덕이를 품어, 자신의 씨를 뿌린 사람이었다. 다섯 달 전, 시간이 흐를 만큼 흘렀다고 판단한 최윤길은, 혼자 안성 장터에 나갔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달콤한 회유와 모진 고문, 갖은 악형에 시달리던 그는, 삼일 전에 결국 옥사를 하고 말았다. 그는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따라서 바우덕이패에 숨어 있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안성 장터에서 그 소식을 듣고 바우덕이에게 전해 준 것은 강덕구였다.
바우덕이는 고개를 들어 서운산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거기에 어떤 결의 같은 게 서려 있었다. 그녀는 아들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강덕구는 예감이 불길했다. 오늘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바우덕이는 아이를 등에 업고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행중을 향해 외쳤다.
"자, 이제 우리의 안성 장터로 출발합시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농기, 안성 남사당 풍물놀이의 단기를 든 기잡이가 앞장을 섰다. 그 뒤를 이어 양반 광대, 회적수, 상쇠, 징수, 북수, 고장수, 벅구, 새미 등이 뒤를 따랐다. 일행은 온갖 재주를 뽐내 보이며 마을과 마을을 거치고 있었다. 희고 검은, 그리고 파랑·빨강·노랑 삼원색의 긴 물결이었다. 행중은 서운면, 미양면을 거쳐 막바로 안성 읍내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 패거리가 의례적으로 거쳐야 하는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있었다. 안성은 자신들의 본거지였다. 그곳에 그들을 거부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터였다. 연변에 늘어선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했다. 그들 역시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배고픈 계절이었다. 토지조사 사업 이후로 그들 대다수는 소작농으로 전락되었다. 수확량의 7할 이상을 지주의 창고에 바친 그들은 고율지대, 현물지대, 마름제, 종자대, 수리세, 대부금 등등 그 이름도 손가락으로 짚어 낼 수 없는 과도한 착취로, 겨우내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었다. 마을 사람들은 청룡리 불당골 남사당패의 행차를 보며 완연한 봄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면 보리죽이라도 한 사발쯤은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우덕이는 그들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뱃속에 핏덩이 하나를 던지고 저승으로 훌쩍 떠난 최윤길의 덕택이었다. 그녀는 가슴으로 욱, 북받쳐 오는 게 있어, 선소리 한 구절을 불렀다.
에헤 에헤이여 어허야
요홀 에로구나
황혼은 아니 거리검처 잡고
서낭당 숫 벅궁새
한 마리 남게 앉고
또 한 마리 땅에 앉아
네 어디메로 가자느냐
네가 어디메로 가자느냐
바우덕이는 목이 메어 소리를 그쳤다. 지금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덕구의 손을 꼭 잡았다.
"어름산이, 아무래도 내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소."
강덕구는 벌써부터 뭔가 눈치채고 있었다. 바우덕이가 최윤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다음부터였다. 강덕구는 내심 불안했다. 바우덕이가 없는 이 안성 남사당패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강덕구는 딴청을 부렸다.
"거 무슨, 망아지 하품하는 소릴……."
"멸시받고 천대받으며, 더구나 어름산이의 말대로 아무 놈한테나 가랑이를 쫙쫙 벌리며, 광대 노릇을 한 지도 벌써 15년이 넘는군요. 내 죽으면 꼭 개울가에다 묻어 줘요. 하여, 생전에 기구했던 이년의 팔자를 싹 씻어 줘요. 알고 보면 산다는 게, 참 별 거 아니란 생각도 드는군요."
강덕구는 더 이상 농담으로 얼버무릴 기분이 아니었다.
"바우덕이답지 않게 오늘따라 왜 이래?"
"어름산이는 참 좋은 분이었어요. 고아로 자란 나는 어름산이를 아버지로 생각하며 자라 왔어요. 어쩌면 그 날 그래서, 당신을 거부했는지도 몰라요. 아버지를 두 번씩이나 잃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강덕구는 무안하여 큼큼, 헛기침을 했다. 바우덕이는 계속했다.
"내게 처음으로 여자란 것을 가르쳐 준 분이 있어요."
"최씨를 말하는군……."
"전 그분을 따르고 싶군요."
"언제? 어디서? 뭘? 어떻게?"
"두고 보세요."
"우리들은?"
"어름산이가 있잖아요."
"난, 안 들은 것으로 하겠네."
"……."
바우덕이는 입을 꽉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바우덕이와 최윤길은 청룡사 경내에 있는 석탑을 돌고 있었다. 바우덕이의 얼굴은 달빛을 반사해 부옇게 보였다. 아름다웠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최윤길은 그런 바우덕이의 얼굴을 꽤 오랫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다. 최윤길은 아까부터 하던 말을 계속했다.
"…사찰 건립을 위한 재원 모금의 한 방법으로, 화주승(化主僧)을 따른 사승(寺僧) 수십 인이 일단이 되어, 머리에 불두화(佛頭花)를 단 고깔을 쓰고 대금, 소금, 바라, 북, 피리 등의 악기를 사용하여 민가를 돌며 걸립하던 때가 있었지. 이런 사원의 굿중패를 본받아 농악대가 생긴 거야."
"절굿이라는 것도 있었어요. 이는 어름산이에게 들은 이야기예요. 먼 옛날부터 청룡사에서는 섣달에 농악대를 불러 굿을 놀곤 했다는군요."
"맞아. 바로 거기서 사당패가 파생되었던 거지. 게다가 사당패는 조선 시대에 승려와 함께 팔천(八賤)으로 하대를 받았으니 동료 의식도 있었을 테고…… 어쨌든 그래서 사당패는 절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많아. 그들 이름도 절 사(寺) 자를 붙인 사당패(寺黨牌)이였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우리 것이라면 모두 개 뭐같이 아니까 말이지. 조선 시대에는 우리의 고유한 당신네들의 유랑예인 집단을, 패속패륜 집단으로 왕조실록에까지 매도되었으니까…… 그건 한마디로 봉건적 압박 속에서 싹튼 서민을 위한 자생적인 연회 집단에 대한, 지배 계층의 도식적이고도 폭력적인 난도질이었어."
"그랬었군요."
"바우덕이도 알다시피 남사당을 보통 떠돌이 예인 집단이라고들 해. 이들은 전국 안가는 데가 없었지. 그들은 거기서 놀이를 하며 민중과 아픔을 교감했던 거야. 이 과정에서 민중들의 희망과 신명을 부추기고, 그를 통해 삶의 의욕을 북돋웠던 거지. 한마디로 우리 식의 민중예술이란 말이야."
"우리 식의 민중예술?"
"그렇지. 훌륭한 예술이지. 그것도 우리 만민을 위한. 하여튼 남사당패는 타악기를 중심으로 관악기를 통해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 사람의 소리를 조화되게 울려 내었지."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 사람의 소리란 무슨 뜻인가요?"
"꽹과리는 천둥 번개 소리, 징은 바람 소리, 장고는 빗소리, 북은 심장의 박동 소리를 나타내. 다시 말해 꽹과리는 하늘 소리, 장고와 징은 땅 소리, 북은 사람 소리이지. 이것이 곧 우리의 한웅천왕, 단군왕검께서 말씀하신 한민족 천지인(天地人) 삼신의 참 소리야. 특히 북소리는 심장의 박동을 빠르게 해, 피를 온몸 구석구석 세포에 이르기까지 내보내게 하지. 다시 말해, 북소리는 생명의 근원과 맞닿은 소리이다 이 말씀이야. 맺힌 게 많은 사람들일수록 가속이 붙는 북소리를 들으면, 피가 용솟음칠 수밖에 없지. 그래서 우리를 지배한 이민족이나 자국의 지배층에서 이 소리들, 특히 북소리를 가장 두려워했어."
"왜놈이나 세도가들이 우리를 탄압하는 이유는 바로 그 속에 있었군요."
"바우덕이는 역시 총명해. 사물의 이치를 깨우쳐 가는 속도가 남달라. 하긴 어느 분야에서든 명인이 되는 것은 아무나가 아니지."
최윤길은 새삼 놀란 표정으로 바우덕이를 바라보았다. 어느 사이 그의 말투는 경어체로 바뀌고 있었다.
"삼국유사라는 책을 보면 고구려 대무신 황제 때, 낙랑국에 신고(神鼓)가 있어 적병이 침입해 오면 북이 저절로 울려 경계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그 나라를 침범할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이에 고구려 왕자 호동이 꾀를 내어 그 북을 찢게 하여 낙랑을 굴복시켰다는 기록이 있지요."
"북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거군요."
최윤길은 바우덕이의 말에 개의치 않고 계속했다.
"남사당패는 신인(神人)의 경지를 이룬 갖은 재주를 통해, 놀이판에서 민중들 앞에, 그것을 펼쳐 보였던 거지요. 특히 당신네들 안성 길군악 칠채가락은 전국 어디에서나 사람과 천지가 하나가 되는 삼태극(三太極)의 참소리를 울려 냈던 거예요. 그에 따라 민중들은 가슴을 활짝 열고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거지요. 그것을 외세나 외래문화를 등에 업은 지배 계층이 압박을 했어요. 한(漢)의 문화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어, 이제 왜놈에 의해 완전히 끝장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요약하여 그나마 당신네들이 있기에 우리 민족은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질경이처럼 끈질기게 버텨 내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어설프게 독립운동을 한다고 날뛰는 나보다야 당신네들이 몇 수 위지요."
"……."
바우덕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최윤길이 지금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들로 생각된 때문이었다. 바우덕이는 처음에 최윤길의 이야기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어려웠다. 다만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랐을 뿐이었다. 지금은 바우덕이의 귀도 어느 정도 깨어 있었다.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한 결과였다. 모두 최윤길의 덕분이었다.
최윤길은 자신의 이야기에 뭔가 결말을 짓고 있었다.
"남사당패의 원맥을 찾자면 상고 시대의 화랑도지요. 그것은 우리 민족의 태동과 함께 시작되었어요. 화랑도는 단군인 무군(巫君)의 가르침, 즉 수두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지요. 따라서 남사당은 우리 고유의 종교인 무속과도 관련이 있어요. 그래서 조상 등의 신주를 모셔 놓는 사당(祠堂) 즉, 남사당패(男社堂牌)라고도 해요. 신라의 화랑은 오색찬란하게 구슬로 온몸을 장식했지요. 그들은 노래와 춤을 즐기며 전국을 누벼 심신을 단련했어요. 그런 그들은, 역적 김부식 이후 아예 천인으로 추락한 겁니다."
바우덕이는 최윤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해맑고 갸름한 얼굴에 큰 키, 어디로 보나 귀공자였다. 저런 사람이 도대체 무슨 악업을 타고났기에, 누구에게 쫓겨 자신의 행중에 끼여들어,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다.
바우덕이는 최윤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최윤길은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았다. 바우덕이는 자신의 입을 사내의 입에 대었다. 최윤길의 입술은 몹시도 뜨거웠다.
바우덕이이는 머리를 흔들어 끈질기게 달라붙는 최윤길의 환영을 털어 냈다. 그녀의 볼로 눈물이 긴 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강덕구는 바우덕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몰랐다. 그는 흥성스러워야 할 남사당패의 행렬이 오늘따라 무척 어설프고 구슬프게 보였다.
남사당패는 안성 읍내로 들어갔다. 그들은 장터에서 바우덕이가 허리춤에서 마지막으로 톡 털어 낸 돈으로 국밥을 먹었다. 항상 그래 왔듯이 저녁부터는 이 지방 유지들이 알아서 준비해 줄 터였다. 그런데 바우덕이는 수저도 들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덕구는 슬그머니 국그릇을 밀어 놓았다. 어린 삐리 둘이 달려들어 그들의 국그릇을 채 갔다. 강덕구는 삐리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바우덕이의 눈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바우덕이는 그들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겨우내 배가 고팠지. 많이 들 먹어……."
삐리들은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국물과 건더기를 입안에 처넣었다. 강덕구는 바우덕이와 그들 모두가 민망하여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구름이 끼어 하늘은 잔뜩 흐렸다. 꽃을 시새움하는 건지 바람도 몹시 차가웠다. 강덕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한 번 움찔했다.
행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가 그득한 그들은 웃다리 가락을 바탕으로, 진풀이와 무동, 열 두발 상모를 돌리며 신명지게 골목을 돌고 돌았다. 그들은 일행 중에서 몇 사람이 빠져 미리 준비해 둔 놀이판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바우덕이패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안성 군민이 운집해 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남사당패의 놀이가 시작될 터였다.
횃불이 여기저기서 이글거렸다. 바우덕이가 자청하여 그 동안 갈고 닦은 기예를 일일이 선보였다.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이었다.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다. 그녀는 신들린 무당과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몸짓이 아니었다. 그녀를 보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우덕이는 앵두나무 막대기로 대접, 쳇바퀴, 대야 등을 돌렸다. 그녀와 어릿광대가 주고받는 재담은 배꼽을 움켜쥘 지경이었다. 그러나 구경을 하는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 그들의 꽉 쥔 손에는 진땀이 배여 갔다. 그녀의 댕기를 맨 치렁치렁한 흑발이 허공을 채질 했다. 그녀는 높이 떠 붕붕 나르며 잽이의 장단에 맞춰 곤두질을 쳤다. 그녀는 줄타기까지 마쳤다. 구경꾼들은 그제야 참아 내었던 긴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풀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연회의 절정이랄 수 있는 덧뵈기에서 사단이 일어난 거였다. 거기서 바우덕이는 꺽쇠 역을 맡았다. 꺽쇠가 꽹과리를 치며 비나리를 외었다. 그 중에 엉뚱한 말이 삽입된 거였다.
…하늘이 울어서 천둥살
땅이 울어 지동살
왜놈이 울어 왜놈살
이 살 저 살 모아다가
금일 고사에 때를 바쳐
원강 천리 다 소멸하니
만사는 대길하다
해동 잡으면 조선국에
소원성취가 발원이라…
(이런 부분은 꺽쇠의 대사에도 있었다.)
[옴 탈] 어험! 그렇다면 내 얼굴 우툴두툴한 내력을 들려 줄 것이니 똑똑히 들어봐라. 해동은 조선 땅을 읏식 떠나 중원 땅으로 들어갔겄다. 뭐 가지고 나올 게 있던가 호구별성 손님 마마님을 뫼시고 나왔다가 내 쌍판이 이 모양이 되었겄다.
[꺽 쇠] 이놈아! 중원이 아니라 왜국이다! 호구별성 손님 마마님이라, 이놈 가만히 있거라. 아무튼 내 체검을 해야겠다.
(옴탈의 얼굴을 요리조리 쓰다듬다가 깜짝 놀라 손가락 사이를 긁으며)
[꺽 쇠] 손가락이 왜 이렇게 가려우냐. 호구별성을 모시고 나왔다더니, 그게 호구별성이더냐? 또 어찌 끝으매기가 느르꼼 하느냐, 네 쌍판을 체검을 했더니 내 손 사이가 왜 이리 가려우냐. 그런데 이놈이 암만해도 다르다. 이놈이 왜국에서 이완용처럼 옴을 차독같이 묻혀왔구나.
[옴 탈] 힛힛! 옴 옴 옴 봐라! 옴 봐라 옴!
(꺽쇠 굽히지 않고 대들며)
[꺽 쇠] 얼 널널 네기럴꺼! (구성지게) 금수강산 좋단 말은 바람 풍편에 넌 짓 듣고 (앙칼지게) 왜놈들 이땅에 들어와 금수강산을 똥강으로 만들었네. 얼 널널 네미랄꺼!
강덕구는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바우덕이를 제지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면 더 큰 불상사가 돌발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한마디로 군민을 선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옴탈 역을 맡은 강덕구는 마지못해 자신의 대화만을 간신히 끌어가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그들은 바우덕이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좀 더 자신의 속을 확 풀어 줄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중 연회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며, 지금까지 남사당패가 버텨 올 수 있었던 생명력이었다. 군민은 그러지 않아도 일제나 그들을 등에 업은 소위 봉건성 식민 지주들에게, 목숨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던 바였다. 바우덕이는 그들의 한을 자신의 몸짓과 목소리에 담아 풀어내고 있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조금씩 들렸다. 군민들이 동요를 시작한 거였다. 이런 자리면 어디나 그렇듯 그 반대편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바우덕이들을 늘 감시하던 일본인 순사와 조선인 순사 보조원이었다. 그들이 놀이판으로 뛰어들었다. 강덕구는 우두망찰, 그대로 서 있었다. 군민이 그들 방해꾼들에 달려들었다. 군민은 외래인들을 주먹으로 쳐 넘어뜨리고 발로 밟았다. 주위에서 배회하던 일경이 공포를 쏘며 몰려들었다. 놀이는 중단되었고 판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바우덕이 남사당패' 놀이판은 마지막이 된 거였다.
일경은 꼭두쇠와 뜬쇠들, 그리고 폭력에 가담한 사람들을 체포하여 경찰서로 철수했다. 일경은 그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우선 널빤지를 십자로 짜 만든 형틀에 그들의 양팔과 양다리를 묶어 놓고 엉덩이를 벗겨 맨살을 때렸다. 태는 소의 음경을 사용하였는데 앞에 납을 붙인 것으로, 슬쩍 닿기만 하여도 벌건 선지를 흘리며, 살이 움푹 움푹 패여 들었다. 이것이 며칠이고 계속되었다. 피와 아우성의 생지옥이었다. 군민들은 경찰서로 몰려들어 바우덕이패와 군민들을 석방하라며 연일 시위를 벌였다. 일경과 방위대가 그들의 주모자를 체포해 들였다. 그러자 그 양상이 서서히 1919년 만세운동의 그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이른바 '문화정책'을 표방한 그들이었다. 그들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우선 군민들을 석방하였다. 진료도 시켰다. 하지만 군민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민간요법에 의지하고 있었다. 일경은 바우덕이에게 배후를 대라고 다그쳤다. 그녀는,
"모든 걸 혼자서 결정하고 시행했다. 그날 대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봐라. 여기에 끌려 온 다른 행중은 나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러니 그들을 지금 즉시 석방해 줘라."
라고 주장했다. 바우덕이의 말이 통할 일경이 아니었다. 일경은 바우덕이를 별실로 끌고 가 갖은 고문을 가했다. 그녀를 벌거벗긴 채였다. 일경은 곤봉으로 사정없이 그녀의 온몸을 후려갈겼다. 양손가락에 쇠막대기를 끼우고 끝을 졸라맨 후, 문턱 위에 높이 매달아, 때때로 줄을 잡아 당겼다. 곤봉으로 음부도 마구 쑤셨다. 어찌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바우덕이는 전신이 저리고 사지가 녹아 나는 것 같았다. 물리적인 힘이 가해질 때마다 통증에 오한이 나고 몸은 엿가락처럼 뒤틀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악마와도 같은 일경에 구차하게 생명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당하다 먼저 간 사람, 최윤길의 뒤를 따르고 싶었다. 악업에 엮여 몸을 담은, 천덕꾸러기 남사당패의 하찮은 삶을 씻어, 저 드높은 창공으로 우화등선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만 자신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단원들에 미안할 따름이었다.
군민들은,
"바우덕이 남사당패를 석방하라!"
"우리의 바우덕이를 석방하라!"
그렇게 외치며, 다시 무리를 지어 계속 몰려들었다. 일경은 군민을 풀어 주면 잠잠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군민은 무력 충돌도 불사했다. 삼일만세운동 이후로 사라졌던 태극기도 어쩌다 눈에 띄었다. 경찰서장은 당황했다.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었다. 그는 급기야 조선총독부에 보고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더 이상 군민들의 정서를 자극하지 말고 남사당패를 전원 석방하라는 회신이 왔다. 일경은 바우덕이패를 경찰서 앞 시위대에게 내팽개쳤다. 그리고 그들의 공연을 금지시켰다.
안성 남사당패는 이제 어디에서도 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양식도 바닥나 있었다. 사람의 인심이란 참으로 묘한 거였다. 단원들은 몸이 회복되는 대로 바우덕이를 욕하며 하나 둘 다른 남사당패를 찾아 떠났다. 바우덕이는 그런 그들에게 조금도 야속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때문에 그들이 어디 가서건 배를 곯지 않고 자신들의 재주를 마음껏 펼치기만을 기원했다. 강덕구만이 그녀의 곁에 남았다. 바우덕이가 자신의 곁을 떠나라고 강권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는 비럭질을 하며 송장이나 다를 바 없는 바우덕이를 극진히 간호했다. 바우덕이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 갔다. 하지만 그녀는 벌건 피를 꾸역꾸역 쏟으며 기침을 해대는 거였다. 가슴앓이, 즉 폐병이었다. 강덕구는 산과 논을 뒤져 뱀과 개구리를 잡았다. 남의 집 개도 밀도살했다. 그는 바우덕이에게 그것들을 고아 먹였다. 그녀의 상처는 모두 나았지만 기침이나 각혈은 그대로였다. 그녀의 팽팽했던 살은 어디론가 슬금슬금 빠져 달아났다. 얼굴은 창호지처럼 하얗고 몸은 막대기처럼 팍팍했다. 그녀는 이미 산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따금 토방에 앉아 떠가는 구름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날라리를 불고 북을 치며, 지금 어느 서낭당 고개라도 넘고 있을 행중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듬해 봄, 양광이 흐드러지게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목욕 단장을 깨끗이 하고 누워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진달래도 꽂혀 있었다. 강덕구는 그런 그녀가 전혀 딴 사람으로 보였다.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바우덕이는 강덕구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제 진정한 어버이이며 남편이었습니다. 피만 주었다고 어버이가 아니듯 살만 섞었다고 서방은 아닐 겁니다. 이제 전, 저를 팽개치고 떠난 사람들에게로 가야 할 때가 온 모양이에요.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강덕구는 잡힌 손을 빼내 그녀의 손을 왈칵 움켜쥐었다.
"이봐, 무슨 소리야. 당신의 나이, 이제 스물 셋이야. 청춘이란 말이지. 당신의 인생 길은 아직도 구만리야."
바우덕이는 한바탕 피를 토하며 기침을 해대더니 정신을 잃었다. 강덕구는 그녀의 입과 목에서 피를 닦아 내었다. 그는 바우덕이의 정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였다. 그녀가 눈을 몽롱이 떴다. 동자가 풀려 있었다. 바우덕이는 말했다.
"어름산이 나가 봐! 사람들이 오고 있어!"
"사람들?"
"우리 바우덕이 남사당패들이야. 저 봐, 징소리가 안 들려? 꽹과리 소리가 안 들려? 장고와 북소리는, 또 어떻고?"
"정신 차려.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래."
"눈에 보여. 내 눈에 보인단 말야. 상공운님…… 징수님…… 고장수님…… 북수님…… 회적수님…… 벅구님…… 상무동님…… 회덕님…… 버나쇠님…… 얼른쇠님…… 살판쇠님…… 그들이 풍물을 치며 내게로 오는 모습이 보인단 말야. 어름산이 나를 일으켜. 어여, 그들을 맞아야지……."
"그들은 모두 떠났어! 이젠 더 이상, 여기로 오지 않아!"
"바로 저기에 오는데…… 바로 저기에 오는데…… 나는 선소리 한 가락에 춤을 추며 그들을 맞아야 하는데…… 그들을 맞아야 하는데……."
바우덕이는 허공을 향해 손을 젖더니 거친 숨을 몰아 쉬다, 눈에 흰 창을 깔았다. 고개도 옆으로 돌아갔다. 강덕구는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다. 그의 눈에서는 쉴새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강덕구는 혼자 삼일장을 치르기로 했다. 그는 장례 준비를 했다. 준비라야 별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돈이 없는 때문이었다. 그는 생전에 쓰던 바우덕이의 물품을 소각하고, 밥 한 그릇과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신을 지켰다. 삼일이 되었다. 그는 바우덕이의 시신을 멍석에 말아 곡괭이와 함께 지게에 얹었다. 강덕구는 그녀의 유언에 따라 산 밑 개울가로 향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풍물 소리가 들렸다. 그는 환청이 아닌가 싶었다. 강덕구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아니었다. 실제의 소리였다. 그렇게도 듣고 싶어했던 자신들의 웃다리 가락이었다. 그는 지게를 내리고 작대기로 받쳤다. 진천에서 안성으로 내려오는 고개를 보았다.
바로 안성 남사당패였다. 그들이 '바우덕이 남사당 풍물놀이'라는 단기를 앞세우고 고갯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판이 좁은 세계였다. 누군가에 의해 안성 장터로 흘러들어 갔을 바우덕이의 죽음은 소문에 날개를 달았을 터였다. 강덕구는 양팔을 벌려 그들에게 마구 흔들었다. 얼마 후,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상공운이 강덕구를 향해 계면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말 수가 없어서…… 임시로 행중을 모았지……."
"고마워. 잘했어. 비록 꽃상여는 아닐망정,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아니 오히려, 바우덕이는 이런 것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참으로 그녀다운 장례식이야…… 참…… 그러고 보니, 바우덕이가 전혀 헛소리를 지껄인 것은 아니군……."
"무슨 말이야?"
"바우덕이가 죽던 날이었네. 바우덕이는 목욕 단장을 하고 자네들이 온다면서 하루종일 기다렸지."
"정말 면목이 없네."
"잊어버리게. 모두 흘러간 일이 되었네."
"……."
강덕구는 앞장을 섰다. 그 뒤를 따르는 행중은 풍물을 치며 울먹였다. 자신들의 배덕함과 무관심을 후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덕구는 개울가에 바우덕이를 묻었다. 묘 앞에 큰 낙낙장송이 한 그루 신단수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 뒤에는 큰 바위도 있었다. 강덕구는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으면 될 거였다. 바우덕이가 그리우면 언제고 찾아 올 수 있을 터였다.
강덕구는 행중이 준비해 온 제물을 놓고 예를 올렸다. 일행은 거기서 밤을 기다려 횃불을 밝히고, 남사당 여섯 가지 놀이를 연회(宴會)했다. 이제 바우덕이는 맺힌 한을 모두 풀고 '죽음의 강'을 건널 터였다. 밤이 깊어 갔다. 자정을 넘긴 지도 이미 오래였다. 놀이는 모두 끝났다.
새벽이라 그런지 바람이 꽤 불었다. 강덕구는 바람을 맞으며 동이 트는 벌건 동녘을 봤다. 무엇인가 흰 것이 바람결에 휙 날려 그곳으로 갔다. 그는 눈을 크게 떠 다시 보았다. 그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바람이 되어 날아간다고 했다던가? 그는 그게 혹시 바우덕이의 혼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바우덕이는 바람이 되어 신명지게 천지간을 떠돌다, 자신을 그리는 사람들의 머리 속으로 내려앉곤 할 거였다. 그는 바우덕이가 갑자기 사무치게 그리웠다. 바람결에 바우덕이의 선소리가 들렸다. 강덕구는 개울가에서 얼굴, 그리고 손과 발을 씻었다. 이어 그는 바우덕이의 아이를 안았다. 어디선가 바우덕이의 선소리가 다시 들렸다. 강덕구는 행중에서 멀어지며, 바우덕이의 소리를 따라, 입을 달싹였다.
…에헤 에헤이여 어허야
요홀 에로구나
황혼은 아니 거리검처 잡고
서낭당 숫 벅궁새
한 마리 남게 앉고
또 한 마리 땅에 앉아
네 어디메로 가자느냐
네가 어디메로 가자느냐 ■